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25)
첩자의 마교생활-125화(125/350)
125.
#명분 싸움 (1)
삼장로 맹철용의 포효에 장내가 얼어붙었다.
맹철용은 주변을 둘러보곤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되었다. 누군지 말하지 않아도 된다. 전부 묻어버리면 그만인 것이니.”
그야말로 그만이 할 수 있는 청천벽력. 그러곤 싸늘히 마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칠공자님은 나가십시오. 무례는 추후 갚겠습니다.”
“어, 나? 가야지. 근데 나만?”
맹철용이 대답도 없이 철마적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이는 장이서와 소오까지만 데리고 꺼지라는 뜻.
이내 손에 쥔 창에선 검은 연기처럼 서슬 퍼런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초절정 고수만이 펼칠 수 있는 전유물. 발기(發氣)다.
아주 작정하고 다 죽이겠다는 뜻.
“너희는 감히 건드리지 말아야 할 걸 건드렸다.”
구유의 얼굴에 먹구름이 서렸다. 상대의 실력이 짐작됐기 때문.
‘몸이 멀쩡했어도 이기기 힘든 상대다.’
냉정하지만 명확한 평가. 그만큼 삼장로 신창마귀의 위엄은 대단했다. 이대로면 필패. 아니 필사다.
한데 바로 그때.
“잠깐! 지금 뭐 하려고. 쟤들 없애기라도 하려고? 누구 마음대로.”
마오가 인상을 찌푸리며 달려와 철마적 앞을 막아섰다.
이에 비룡당주 묘채경과 삼장로 맹철용의 고개가 갸우뚱 비틀어졌다.
“감히 육공자님을 납치하고 옥체에 손을 댄 자들입니다. 죽여 없애는 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아니, 그건…….”
“나오십시오. 다치실 수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여지라고는 일절 없는 무자비한 통보.
마오는 당황한 채 다급히 뒤를 살폈다.
겁에 질린 병사들. 눈을 감은 구유. 그리고 낙담하는 아신.
‘쟤들을 전부 다 죽인다고?’
아니, 그럼 뭐 하러 이 고생을 하며 지금까지 버틴 건데.
맹갑귀마대와 맹철용이 다가오기 시작하자 마오가 두 팔을 뻗고는 소리쳤다.
“멈춰! 지금 뭐 하는 거야? 아까 꼬맹이 얘기 못 들었어? 아무도 잘못한 사람 없다니까?”
꼬맹이? 맹철용의 눈에서 안광이 번뜩인다.
“말씀 가리시지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쟤들은 아무 잘못 없다니까?”
“그건 칠공자님이 정하실 문제가 아닙니다.”
맹철용이 더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수하들에게 고갯짓하며 명했다.
“칠공자님을 모셔라.”
예! 그러자 무장한 맹갑귀마대가 철컥거리며 좌우에서 세차게 다가온다.
“야, 이 씨!”
이대로 정말 끝나버리는 거라고?
버티면 다 된다며.
그래서 버텼잖아.
마오가 안달 난 얼굴로 다급히 소리쳤다.
“장이서어어어-!”
그러자 그의 앞으로 한 사내가 다가와 우뚝 선다.
든든하기 그지없는 등을 내보이며.
“또 뵙는군요.”
이에 맹철용이 손을 들어 올리자 맹갑귀마대도 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자인가.’
제 수하들을 쓰러트린 칠공자 보좌. 맹철용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도 사납게 빛났다. 제 수하들을 도륙할 땐 몰랐는데 이제 보니 믿기지 않을 만큼 평범한 상이다.
“자네와는 별로 말을 섞고 싶지 않군. 얌전히 보내줄 때 가게.”
가차 없는 통보. 흠. 장이서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양해를 구했다.
“잠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기다려달라고?”
“예. 금방이면 됩니다.”
장이서는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몸을 돌려 마오와 마주 섰다. 그러곤 그를 데리고 몇 걸음 물러선 채 말했다.
“여전히 저들을 살리고 싶으십니까?”
“당연하지. 그러려고 목숨 걸고 버텼는데.”
마오와 장이서의 대화에 구유와 철마적의 병사들이 기함했다.
자신들을 살리려고 버텼다니.
그럼 죽기 살기로 싸운 이유가 저들을 살리기 위해서였단 말인가.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얼얼하고, 속가슴이 이상하게 저릿하다.
너희는 대체…….
“근데 보시다시피 저분들이 별로 원치 않으시네요.”
“그래 보여.”
“예. 어쩌면 오늘 일로 마가에 이어 맹가, 천가. 나아가 오룡당까지. 모두 칠소궁을 노릴지도 모릅니다.”
“그냥 나가 죽으라는 거잖아.”
“사실 그렇죠.”
“x같네.”
마오의 얼굴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짜증이 가득했다. 왜 이렇게 사방에 적들이 많은지.
“근데 장이서.”
“예.”
“살다 보니까 원래 내 편보다 적이 더 많더라.”
“오, 그건 또 언제 깨달으셨습니까?”
“방금. 그래서 내 편이 중요해. 왜 희소성이란 게 있잖아. 적을수록 귀한 거.”
“칠공자님한테는 특히 더 그렇죠.”
이 새끼가. 마오가 도끼눈을 떴다 풀고는 담담히 말했다.
“그러니까 그만 후회할래. 쟤들이 내 편 될 놈들이면…….”
마오가 전방의 맹갑귀마대와 비룡당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렇게 명했다.
“살려. 어떻게든.”
장이서가 픽 웃고는 찬찬히 고개를 끄덕이며 시원하게 답했다.
“그러죠.”
다시 앞으로 나서는 장이서. 그가 맹철용 앞에 섰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던 철마적은 감격에 젖었다. 자신들을 살리기 위해 이렇게까지 나서주는 자들이 있었던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없었다.
도대체 저들이 뭐라고. 심지어 죽이려고 하지 않았는가.
하나 감동은 감동이고 현실적인 의문이 들었다.
‘근데 어떻게 살리겠다는 거지?’
누가 봐도 지금 상황은 불리 그 자체.
장이서가 아무리 재주가 좋다고 한들 판세를 뒤엎을 수는 없다.
이는 철마적 사이에 스며들어 있던 소오 역시도 궁금한 일이었다.
솔직히 지금껏 그를 봐온 게 있으니 군말 없이 따른 거지, 처음부터 이상했다.
‘버티면 뭐가 달라지는데?’
처음엔 맹휘를 방패 삼아 삼장로를 설득하려는 줄 알았다. 한데 이제 보니 그것도 아니다.
‘또 봐.’ 이러고 떠나는데 별말 없이 손만 흔들고 보내주지 않았는가. 소오는 그때 장이서가 순간 치매가 온 줄 알았다.
‘설마……! 이번에야말로 백오문의 소문주인 내가 나서주길 바라는 거냐?!’
그럴 리가. 이건 소오가 본원진기까지 끌어다 써도 못 이긴다. 비룡당주와 삼장로를 상대한다? 언어도단이오,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도대체 왜 이렇게 평온해 보이는 거냐.’
장이서는 늘 그렇듯 담담했고, 차분했다.
그렇게 모두가 내심 짙은 의문을 품은 채 장이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입이 열렸다.
“지금부터 이곳에 있는 자들 중 단 한 명이라도 건드리는 자는…….”
싸움이라는 것은 꼭 무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쟁이란 자고로…….
“칠공자님을 공격한 것으로 간주. 교주님에 대한 역모로 단정하겠습니다.”
명분(名分) 싸움이다.
“허!”
장이서의 폭풍 같은 발언에 대다수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이는 맹갑귀마대도 마찬가지.
사해의 모래폭풍마저 돌파한 그들이지만, 역모라는 두 글자 앞에선 심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것인가?’
맹철용 역시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에 잠자코 있던 비룡당주가 언성을 높이며 참전했다.
“역모라니. 뭔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말 그대로. 지금부터 이곳에 있는 자들은 전부 칠소궁의 권솔입니다. 그러니 이들의 생살여탈권 또한 오로지 칠공자님의 것. 물을 죄가 있다면 칠소궁에 정식으로 제기하십시오.”
곳곳에서 웅성거림과 경악이 빗발쳤다.
철마적이 칠소궁 소속이라니.
심지어 구유는 황당함에 좌객처럼 앉아 있다가 성자의 축복을 받은 것마냥 벌떡 일어섰다.
그만큼 어처구니가 없다는 얘기.
“장이서, 네놈이 드디어 정신 나갔구나!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아무리 1급귀라 하나 아무 권한도 없는 칠공자께서 무슨 수로 이들을…….”
묘채경은 조소를 터트리다 말고 흠칫 굳어졌다. 이곳에 오기 전 들었던 정보가 뇌리를 스쳤기 때문.
이내 눈을 번쩍 뜨며 외쳤다.
“설마, 백인장의 인을 쓰겠다는 것이냐!”
장내에 웅성거림이 커졌다.
그래. 정답이다.
이들이라면 분명 마오에게 든든한 기둥이 되어줄 것이다.
게다가 어차피 대공자와도 약조하지 않았는가.
빨리 써먹어 주겠다고.
“역시, 장이서!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구나!”
마오가 활짝 갠 얼굴로 품에서 둥그런 신패 하나를 꺼냈다. 이내 화끈하게 소리쳤다.
“이제부터 내가 너희들 두목이다-!”
모두가 경악에 빠졌다.
“두목이라고?!”
“그게 무슨…….”
왈패냐. 두목은 무슨. 장이서가 피식 웃는다.
하나 의사만큼은 확실했다.
그가 손에 든 건 백마(百魔)의 글귀가 적혀진 백인장의 인.
분명 천마신교의 교주가 하사한 진품이다.
이를 공개적으로 사용한 것.
‘이걸 이렇게 쓰겠다고……?’
맹철용과 묘채경도 얼추 소문은 들어 알고 있었다.
백인장의 인을 삼공녀를 위해 쓰려다가 대공자에게 저지당한 사건.
워낙 유명하지 않았던가. 한데 이걸 교외의 마적들에게 쓰겠다니.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
“아무래도 제가 나서야 할 때인 것 같군요.”
맹철용이 성난 맹수처럼 으르렁거리자, 묘채경이 자신감 가득한 비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곤 비아냥 가득한 목소리로 마오에게 물었다.
“지금 백인장의 인을 여기 마적들에게 쓰시겠다는 겁니까?”
“어. 맞아. 그러니까 건드리지 말고 가라.”
“오호호호! 이들의 죄명이 뭔지는 알고 이러시는 겁니까?”
“알든 모르든 당주께서 관여할 일 아니니까 가라고. 난 이미 썼으니까 불만 있으면 정식으로 따져.”
말은 맞다. 백인장의 인은 지존의 하사품. 이를 사용하는데 비룡당주든 삼장로든 관여할 일은 아니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교주의 뜻에 반하는 것.
하나.
“오호호호호호-!”
비룡당주 묘채경의 당찬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백인장의 인을 쓸 수가 있는 상대라면 그랬겠지요. 한데 이를 어쩌죠? 칠공자님께선 저들과 함께하실 수 없습니다.”
“뭐?”
“이자들은 모두 비룡당으로 압송될 것이며, 여죄까지 톡톡히 물어 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입니다.”
“뭔 소리야! 이거 안 보여? 패 쓰겠다고.”
“예, 쓰세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교도들에게만 허용되는 것. 이들은 아쉽게도 아직 교인이 아니라 외인이네요. 오호호호!”
“그게 뭐 어쨌다고! 교인으로 들이는 거야 가서 허락만 해주면 금방……!”
마오가 따지고 들려는 순간,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외인을 교인으로 들이는 건 비룡당의 일이잖아. 그리고 저 여자가 비룡당주고.’
바로 이것이었다. 묘채경이 의기양양하게 나설 수 있었던 이유. 문제의 허점을 간파한 소오도 주먹을 꽉 쥐고 중얼거렸다.
“이거 제대로 당했군. 원칙상으로 외인은 교의 비호를 받지 못한다. 한마디로 백인장의 인이든, 천인장의 인이든. 입교하기 전까진 식솔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
물론 입교가 어려운 건 아니었다.
칠공자 정도가 나서서 보증해 주면 쉬운 일. 하나 문제는 하필 지금 눈앞의 적이 비룡당주라는 것이었다.
당장 그녀가 흉노족을 끌고 가 조사를 먼저 행하고, 죄인으로 단정 지어 버리면 입교는 물론이오, 비룡당에서 살아 나올 수도 없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칠공자님. 그래도 억지를 부리시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너……!”
마오가 얼굴이 붉어진 채 입술을 오물거린다. 하나 소오가 달려 나와 그를 만류했다.
“만일 칠공자님께서 이들이 외인임에도 식솔로 인정해 버리게 되면……. 따로 세를 꾸려 반역을 도모한 것으로 간주할 수도 있습니다.”
“그게 말이 돼!”
아쉽지만 말이 된다.
이쪽에서 명분을 들고나오자, 저쪽도 똑같이 명분으로 응수한 것.
대체 이걸 어찌 풀어야 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