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27)
첩자의 마교생활-127화(127/350)
127.
#굴종의 맹세
장이서의 거침없는 제안.
그리고 모두의 기대가 서린 대답은 너무도 쉽게. 아주 간결하게 흘러나왔다.
“그게 사실이더냐? 그거라면 어렵지 않지. 낄낄낄!”
아아. 털썩. 아신을 비롯한 다수의 병사가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았다.
진정한 기적이 벌어졌다.
“이제 죽을 이유는 사라진 건가?”
장이서가 구유를 보며 환히 웃는다. 구유는 여전히 무서운 얼굴로 부르르 떨었다. 이내 한참 후에야 커다란 손을 내밀었다.
이를 본 장이서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가 말했다.
“칼을 다오.”
“칼?”
무슨 의미인지. 장이서가 등 쪽 허리춤에서 단도를 꺼내 건넸다.
그러자.
서걱! 그가 거침없이 제 손바닥을 베어내곤, 무릎을 꿇고 피가 맺힌 손바닥을 떠받들 듯 들어 올렸다.
「이 몸이 죽어 안식의 대지로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 이제 우리의 주인은…… 너다.」
굴종(屈從)의 맹세.
스스로 노예가 되겠다는 그의 파격적인 선서였다.
이를 알아들은 소오는 입을 떡 벌렸고, 마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장이서는…….
“나 말고.”
덥석 마오의 손목을 붙잡아 구유의 손바닥 위에 손이 겹치도록 얹어주었다.
그러곤 피가 없는 그의 다른 손을 붙잡곤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주인은 이쪽. 우리는 벗 정도로 해두지.」
구유의 시선이 복잡하게 변한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고마움. 그것도 평생 잊지 못할 감정이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마오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네 이름은?”
“갑자기?”
“이름을 말해라.”
마오는 그의 물음에 알 수 없는 기분을 느끼며 나지막이 답했다.
“마오.”
구유는 이에 그의 이름을 몇 차례 되뇌곤 말했다.
“이제부터 마오가 곧…… 우리의 주인이다!”
구유의 돌발적인 선포가 떨어졌다.
마오오오오오-!
그러자 철마적의 하나 된 함성이 늑대의 울음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그 기세가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이를 지켜보던 모두가 화들짝 놀라 경악했다.
당사자인 마오도 마찬가지였다.
전신의 피부가 자극받은 것처럼 따끔거렸다. 이내 심장이 두근거리고 보다 빠른 속도로 피가 돌기 시작했다.
이는…… 전율이었다.
서서히 마오의 입가가 호선을 그리고 그도 답례하듯 큰 소리로 세상 떠나가라 소리쳤다.
“당연하지! 이제부터 너희는 내가 책임진다! 우하하하!”
와아아아아!
마오의 승낙이 이어지자 철마적은 환호와 함께 그의 이름을 구령처럼 쉴 새 없이 외쳤다.
그야말로 지금 사기 최고조. 이 기세라면 천마전까지 뚫고 갈 수준.
마오의 첫 번째 세력이 탄생하는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이제부터 흉노족은 본교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래도 괜찮은가?”
장이서가 구유에게 물었다. 이에 그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과 네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다.”
“그럼 됐다.”
장이서가 웃는다. 그야말로 화목한 결말.
물론 이를 지켜보던 소오 입장에서는 다른 의미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근데 지금 주인인 걸 인정하면 반역이 되는 거잖아!”
아무리 서로 좋다고 우겨봤자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
이렇게 되면 마오가 외부에 마교가 아닌 독자적인 사조직을 만든 꼴밖에 더 되겠는가.
이는 상대한테 아예 죄명을 떠다 먹여주는 수준이었다.
당연히 묘채경과 맹철용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오호호호! 아주 미쳐 돌아가는구나! 뭣들 하느냐? 당장 싹 다 잡아들이지 않고! 칠공자와 저 떨거지 둘도 함께 데려가라!”
예! 그녀의 명에 비룡당과 맹갑귀마대가 맹렬한 기세를 피운 채 다시금 움직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보.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
모든 말은 끝까지 다 들어봐야 하는 거라고. 그리고 아직 장이서의 말은 다 끝나지 않았다.
“이제부터 이곳에 있는 흉노족은 모두 천마신교의 교인이 되었음을 선포하겠소.”
“뭐어? 이런 미친놈이 다 있는가. 네놈이 뭔데. 무슨 자격으로.”
이를 들은 묘채경이 코웃음을 쳤다.
그래, 맞다. 장이서는 자격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없다는 건 아니다.
장이서가 품에서 둥그런 패 하나를 꺼내 들었다.
백인장의 인과는 다른 또 하나의 신패.
앞면과 뒷면이 흑색과 백색으로 이루어진 절대적인 명패.
그러곤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광명우사 흑야의 자격으로. 흉노족을 천마신교의 교인으로 인정한다.”
“누……구……?”
묘채경과 맹철용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이내 다시 눈을 부릅뜨고 장이서가 든 명패를 살폈다.
그리고 헉!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장이서가 든 게 무엇인지 이제야 알아봤기 때문.
광명좌우사자의 직인이 찍힌 패였다.
한 번이지만, 그들의 의사를 대신 발현할 수 있는 존엄하고도 숭고한 신패!
“묻겠습니다. 이것도 억지입니까?”
장이서가 신패를 앞으로 내밀자 어느새 다가온 독산마의가 이를 받아 들곤 활짝 웃는다. 그러곤 얄미운 시누이처럼 호들갑 떨며 말했다.
“으하하! 맞구나, 맞아. 이보시오, 삼장로. 이거 보시오. 광명우사께서 내리신 게 확실하구려. 이렇게 되면 이놈 말이 다 맞지. 암. 우사께서 그리 정하신 건데.”
당했구나. 맹철용은 일순 장이서가 했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이들은 칠공자님의 권솔이라고. 건드리는 순간 역모라고 말입니다.’
‘억지를 부리는군.’
‘그렇게 보이십니까.’
그리고 아까까진 몰랐던 것을 떠올려 버렸다.
그가 말을 마치고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는 것을.
‘허수가 아니라…… 노림수…….’
애초에 이 상황을 유도한 것.
그야말로 정신이 아득했다.
이 정도면 장이서는 그냥 무공 실력만 좋은 놈이 아니라…… 머리까지 뛰어난 불세출의 천재가 아닌가.
“더는 이 문제에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아. 아니…….”
“만일 오늘의 일로 불필요한 말이 본교에 나돌게 된다면……. 그럼 저 역시 오늘의 일을 정식으로 문제 삼겠습니다.”
묘채경의 입에서 허망함과 쓴 내가 우러나는 탄식이 뱉어졌다.
얼굴에 수만 가지 감정이 다 드러난다.
막아야 한다. 어떻게든 판세를 뒤바꿔야 한다.
‘그래. 저놈들이 당원들을 해하지 않았던가. 그걸 문제 삼아…….’
하나 그녀는 어느새 다가와 속삭이는 장이서의 서늘한 말에 그냥 굳어져야만 했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 만일 당주께서 또 일을 벌이셨다. 그럼 저 또한 어째서 삼장로께서 절 죽이려 하셨는지. 도대체 당주께 무슨 말을 들은 것인지. 하나하나 빼놓지 않고 끝까지 가볼 참입니다. 그때 누가 더 크게 다치게 될지. 궁금하면 가보십시오. 말리지 않겠습니다.”
이, 이런 버러지 같은 놈이……!
바들바들 떨리는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보며 장이서가 씨익 웃는다.
‘대체 어디까지 뭘 알고 있는 것이냐.’
모르겠다. 하나 장이서에 대해서라면 잘 알고 있었다.
허섭스레기 같은 가면을 쓰고 모두를 희롱하는 괴물.
섣불리 건드렸다간 도리어 물어버리는 뱀 새끼.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오. 이곳에선 아무 일도 없었던 겁니다. 절 더 시험하려 들지 말란 말입니다.”
지독한 패배감이 서린다.
처절한 완패였다.
끝내 고개를 숙이는 묘채경.
그렇게 모든 것이 끝이 났다.
이것으로 마오는 구유와 철마적이라는 세력을 손에 얻었고, 앞으로는 지금까지와 다른 행보를 보이게 될 것이 자명했다.
그리고.
털썩.
“자, 장이서-!”
자신을 부르는 마오의 외침을 마지막 기억으로…….
장이서의 시야가 어둠에 휩싸였다.
* * *
휘이이잉-!
구룡성 뒤로 지네와 전갈만이 까딱거리며 배회하는 음지의 사막.
“끼, 끼낄낄…….”
인적이라곤 일절 없을 이곳에 모순적이게도 괴기스러운 웃음이 흩날렸다.
그의 이름은 공손절.
광의라 불리는 존재였다.
지금 그는 회생할 수 없는 치명상을 입은 채 죽어가고 있었다.
손목부터 잘려 나간 두 팔에 완전히 비틀린 두 다리. 가슴을 뚫고 나온 흉골을 타고 흐르는 푸른색 선혈.
아직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
심지어 초점이 사라진 두 눈은 어둠만이 가득했고, 육신은 고통의 한계를 넘어 이젠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히…… 킥…… 히히히…….”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입가엔 연신 웃음이 새 나왔다.
“또, 또…… 먹고……싶네. 키히히……!”
놀랍게도 이 와중에도 누군가를 향한 욕망만을 분출하고 있던 것.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고, 세상 그 어떤 기운보다도 정순하고 맛있었던 자.
“장이서…….”
오직 그에 관한 생각뿐이었다.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그야말로 광적인 존재의 광적인 집착.
그리고 툭.
점점 꺼져가는 그의 정신에 묘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구지? 눈이 보이지 않으니 알 수가 없다.
설마.
“자, 장이서?! 설마 날…… 보러 온 것이냐? 키, 키히히!”
그럼 한 번만. 한 번만 더 맛보게 해다오. 한 번만!
악귀 같은 그의 입꼬리가 활짝 올라가고, 혓바닥이 꿈틀거린다.
한데 그 순간.
꽈득.
그의 입술 위에 발이 얹어지고 엄청난 무게로 이를 짓이겼다.
“끼, 끼끼끼!”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비명. 이내 무게가 걷히자 그의 얼굴은 처절하게 뭉개졌다.
어떤 미친 새끼가!
광의의 분노가 극에 달하는 그 순간.
“칠흉(七凶).”
상대의 입에서 절대 나와선 안 될 말이 뱉어졌다. 자신을 지칭하는 또 하나의 별칭. 그리고 저들 외엔 누구도 알아선 안 되는 것.
“흉노족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이 사달을 만들다니.”
주름 가득했던 광의의 표정이 일순 멍해졌다.
“위에서 기대가 컸던 걸까. 아니면 애초에 네가 흉신팔주(凶神八主)에 들 자격이 없었던 걸까.”
“자, 잠깐만…….”
“넌 임무에 실패한 것도 모자라 날 불러냈다. 그 대가가 무엇인진 잘 알고 있겠지.”
“아, 아니야! 하, 한 번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게! 한 번만!”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야. 그리고 알지 않나. 성공이든 실패든…… 뭐든 버릇된다는 거. 잘 가시게.”
“잠까아아안! 아, 안 돼! 장이서! 난 이놈을 다시 만나야……! 커헉!”
빠득! 광의의 튀어나온 흉골 위에 발이 얹어졌다. 그러곤 상대가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되물었다.
“장이서……?”
“그, 그래! 키히히히! 그, 그놈이 얼마나 마, 맛있는 줄…… 꺼어…….”
미약하게 꺼져가는 숨소리.
광의의 눈이 서서히 뒤집힌다. 이대로면 열을 세기도 전에 숨이 넘어갈 터. 그럼 그의 심장만 꺼내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그게 흉신팔주 중 삼흉(三凶)이자 윗분의 명을 받고 온 그의 임무.
하나.
“장이서라…….”
사내는 장고 끝에 품에서 붉은색 환약을 꺼냈다. 그러곤 이내 광의의 벌려진 입에 떨어트렸다.
그러자 연기처럼 녹아내리며 멎어 있던 그의 가슴이 다시 천천히 움직인다.
다 죽어가는 이를 단숨에 살려내다니. 화타가 살아 돌아와 경악할 효능이다.
하나 이는 이들이 속한 곳을 알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죽은 자마저 살려내는 상식을 벗어난 자들이기에.
“네 처분은 윗분께 맡길 것이다.”
그는 혼절한 광의를 어깨에 둘러멨다. 그러곤 품에서 붉은색 가면을 꺼내 쓰곤 서서히 휘몰아치기 시작하는 모래폭풍 사이를 유유히 걸어 나갔다.
혈존천하(血尊天下) 파멸일원(破滅一原).
희미하게 울리는 교령만을 사막에 남겨둔 채.
#구룡성 그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