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28)
첩자의 마교생활-128화(128/350)
128.
‘윤아. 어른들 말씀 꼭 잘 들어야 해. 알았지?’
‘형아는?’
‘형은…… 잠깐 어디 갔다가 나중에 윤이 찾으러 올 거야.’
‘언제?’
‘음…… 윤이가 강해졌을 때?’
‘형아보다 더?’
‘앞으로 네가 머물 곳에서 가장 강해졌을 때. 그때 올게.’
‘나 그럼 빨리 강해질래. 그래서 형아랑 같이 살래.’
‘그래. 그렇게 하자.’
‘약속.’
‘약속…….’
따스한 바람이 불던 어느 날.
나는 그렇게 동생과 인사를 마치고, 초라한 집 밖으로 나섰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대로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것을.
그래서 미련이 발목을 잡아. 한 번만 더 동생을 안아주고 싶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네가 어디에 있든 그 뿌리는 정도에 있음을 절대 잊지 말거라.’
이내 뒤에서 들려온 귀에 익은 목소리에 걸음을 멈춰 세워야 했다.
‘암각 요원 103호.’
퍽! 뒤통수에 강한 충격이 가해지고, 정신은 아득해졌다.
그리고 내가 다시 깨어났을 땐 이곳에 와 있었다.
머나먼 신강에 드높은 봉우리들이 즐비한 이곳, 천산에.
무림맹이 아닌 마교의 소속이 되어.
그리고 지금은…….
“장이서어어어-!”
“헉!”
천둥 같은 고함에 벅찬 숨을 뱉으며 눈을 부릅떴다.
손바닥에 흥건한 땀이 느껴진다. 그제야 꿈에서 벗어나 현실 감각이 공기처럼 스며들었다.
이내 고갤 돌려 옆을 바라보자 웬 잘생긴 멍청한 녀석 하나가 울상을 짓고선 서 있다.
“마……오?”
“어, 나야! 정신이 좀 들어?”
“……그래.”
“새끼. 반말하는 거 보니까 살아났구나!”
아무래도 그런 거 같다. 두통은 좀 있지만.
“응?”
덥석!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던 그 순간. 마오가 갑자기 달려와 저를 껴안았다.
뭐야, 이 자식. 당황함에 머리가 지끈거리던 것도 새카맣게 잊었다.
“지금 뭐 하십니까?”
밀쳐내려 하자 잘게 떨리는 어깨가 보인다.
설마…… 우는 건가? 이거야, 원…….
아무리 강한 척해도 고작 열아홉 살. 장이서는 얕은 숨과 함께 톡톡. 어깨를 두드려줬다.
“앱니까? 울게.”
“닥쳐. 넌 진짜…….”
마오가 툭 밀치고 일어나 눈물을 슥슥 닦는다.
그를 보며 픽 웃고는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활짝 열린 창 너머로 낯익은 광경이 눈에 담긴다.
칠소궁.
이제는 집이 되어버린 그곳이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분명 마지막 기억은 구룡성.
으레 해야 할 말을 뱉자, 마오는 언제 울었냐는 듯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대꾸했다.
“기억 안 나? 너 진짜 죽다 살았어. 도대체 그 몸으로 어떻게 버틴 거야?”
“제가 얼마나 혼절해 있던 겁니까?”
“열흘. 마의 말로는 오장육부가 녹아내리지 않은 게 기적이라더라.”
열흘이라. 많이도 지났구나.
깨어난 순간 대충 예상은 했다.
생각보다 광의의 불사독은 지독했다.
중독되고 조기에 점혈을 짚어 더 퍼지는 걸 막아냈고, 이후엔 조화술을 펼쳐 최대한 독을 다루어냈다.
하지만 처음 퍼져나간 독 기운은 점점 육신과 정신을 갉아먹었다. 그리고 모든 일을 마치고 더 버티기 힘들겠다고 생각한 순간. 긴장이 풀리며 정신을 잃었다.
“구유는. 흉노족은 어떻게 됐습니까.”
“지금 그게 궁금해? 너 진짜 죽을 뻔했다고.”
“압니다.”
“알아? 그걸 아는 자식이……!”
“그 안에 목숨 안 건 사람은 없으니까요.”
“어휴, 말이나 못하면. 너 아직 다 나은 것도 아니거든? 너 지금 시한부야. 언제 뒈질지 모르는 처지라고.”
시한부……?
마오의 말에 문득 제 손을 살폈다.
손톱은 이미 다 부서져 사라졌지만, 피부색은 멀쩡하다. 조금 까슬까슬 탄 것만 빼면.
하나 호흡을 통해 들여다본 내면은 달랐다.
‘독이…… 다 퍼져버렸구나.’
불사독은 그 이름에 걸맞게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그것도 오장육부를 비롯해 너나 할 것 없이 전부 다 중독된 채.
그나마 뭉쳐 있던 독이 자잘하게 흩어져 있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겠다.
‘마의가 응급조치를 취한 건가.’
그렇게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쨌든 이 정도면 정말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태.
“혹시 흉노족도 아직 그대로인 겁니까?!”
“지금 남 걱정할 때냐!”
약속이니까. 장이서가 단호하게 쳐다보자 마오가 가슴을 탕탕 치며 답했다.
“걔넨 아니야. 걔들은 독을 소량만 섭취했던 거라 금방 나았어. 근데 넌 완전 제대로 당했다더라.”
그랬지. 설마 제 발로 구룡성에서 뛰어내리면서까지 절 벨 줄은 몰랐으니까.
‘네 내공은 내 것이야-! 다 내 것이란 말이다! 으하하하!’
지금 생각해도 정말 정신이 아찔해지는 자다.
“어쨌든 그럼 흉노족은 안전한 겁니까?”
“어. 전부 다 멀쩡해.”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었다. 하긴. 마의가 자신도 없이 고쳐주겠다고 확답했을 리가 없지.
“웃어? 웃음이 나와? 이거 가만 보면 심성이 아주 글러 먹었네. 너 인마. 죽게 생겼다고!”
“보통은 그런 걸 심성이 곱다고 하죠.”
“네 입으로 그딴 말 하지 마! 아무튼 마의가 깨어나면 바로 독산각으로 데려오랬어. 그때까지 내공 사용은 절대 금지. 언제 또 독이 발작할지 몰라.”
“내공까지 금해야 합니까?”
“어. 죽고 싶으면 안 그래도 되고.”
광의……. 그가 주고 간 선물이 꽤 크구나. 그를 너무 쉽게 봤다.
“바로 독산각으로 가자. 지금 가서 치료부터 받아.”
마오가 팔을 붙잡고 일으켜 세운다.
“저 방금 깨어났습니다. 그래서. 그 뒤로 어떻게 된 겁니까.”
“와, 이런 답답한 여우를 봤나.”
“묻는 말에 대답.”
슥 눈을 올려 뜨자 마오는 한숨을 길게 뱉고는 기억을 회상했다.
“네가 그때 그렇게 쓰러지고…….”
*
*
*
구룡성은 침묵에 잠겼다.
‘……돌아간다.’
그리고 삼장로 맹철용은 침중한 얼굴로 돌아섰다. 묘채경이 쓰러진 장이서를 향해 살기를 드러내며 부들부들 떨었지만…….
‘자네는 안 가나?’
‘이이익……! 가야지요. 갑니다! 안 가고 뭣들 하는 것이냐!’
육장로인 마의가 떡하니 버티고 선 탓에 별수 없이 몸을 돌려야 했다.
그다음은 치료의 연속이었다.
약재가 부족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지만, 홀연히 사라졌던 소오가 기적처럼 이를 조달해온 터라 무리 없이 치료에 전념할 수 있었다.
소오는 그 후로 인사만 건네고 사라졌다.
‘칠공자님, 제가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웠네요. 객잔 일을 마치고 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하하, 다음엔 이름을 꼭 기억해 주십시오. 소오입니다.’
‘가, 이 객잔 자식아.’
그렇게 사흘에 걸쳐 흉노족의 치료를 마치고, 다시 하루가 더 지나서야 모두가 본산으로 돌아왔다.
‘임시방편은 취했으나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겝니다. 이놈이 살 방도는 오직 독산각에 있으니……. 깨어나면 꼭 찾아오라 하십시오. 꼭.’
그리고 마의는 장이서에 대해 신신당부한 채 떠나갔다.
다시 닷새가 흘렀다.
*
*
*
“……맹휘는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고 하더라고. 아무래도 끝내 얘기가 잘 안된 모양이야. 그래도 꼭 돌아오겠다고. 그때까지 잘 지내라더라.”
설명을 마친 마오가 씁쓸한 기색을 내비쳤다. 장이서도 얕게 침음을 뱉었다.
맹휘를 구해내는 데엔 성공했지만, 정작 맹가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할 수는 없었던 것.
하지만.
‘……그러면 안 됩니까? 장 보좌와 마오는 제 벗입니다. 그리고 저들은 아무 죄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도 저 둘을 탓하지 마세요.’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맹휘는 처음으로 제 부친에게 제 의사를 단호히 밝혔고, 또 그의 부친인 맹철용도.
‘육공자님의 체부를 건드린 놈이 누구냐.’
소문처럼 아예 부정이 없는 냉혈한은 아닌 듯했으니.
아마 언젠가는 그 삐뚤어진 부자 사이가 제대로 마주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뭐, 어쨌든 결말은 모두가 무사하다는 것.”
마오가 활짝 웃었다. 이에 장이서도 마주 웃는다.
그리고 그때 뒤편에서 낯익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깨어났는가?”
이에 고개를 돌리자 세 사람의 모습이 눈에 담겼다. 장이서의 눈이 초승달처럼 휜다.
“다행이군.”
전장의 용, 구유.
“무사해서…… 천만…….”
익숙지 않은 어눌한 어조로 꾸벅 고개를 숙이는 댕기 머리의 여전사 아신.
그리고.
“어, 어이……. 형……님.”
고개를 푹 숙여 붉어진 눈을 감추는 녀석, 과평.
그들이 이곳 칠소궁에 함께하게 되었다. 장이서는 픽 웃고는 말했다.
“그 얼굴에 형님이라고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냐?”
“아직 스물일곱이다!”
“세상에. 내가 형 맞네. 와, 이리.”
쭈뼛거리며 다가오는 과평. 장이서는 손을 내밀며 인사를 전했다.
“살아줘서 고맙다. 장이서다.”
“과평이오……. 살려줘서 고맙소, 형님.”
“사내자식이 울기는.”
“우, 울긴 누가 울어? 그냥 무사하니 다행이라는 거지.”
과평이 새빨개진 얼굴로 발을 굴리자 모두가 웃음을 터트린다. 다음은 아신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눈을 피하는 걸 보니 아직 어색한 게 많은 모양.
「편히 지내도록 해. 잘 지내보자.」
「잘…… 부탁드립니다. 아신입니다.」
「장이서다.」
아신이 그제야 눈을 맞추고 고개를 숙였다. 과묵한 성정에 실력까지 겸비했으니 참으로 든든하다.
그리고 마지막은…….
“구유다.”
전장의 용, 구유.
사해의 잠룡이라고 할 수 있는 그를 품에 얻었다.
이는 이번 행보의 가장 큰 수확이자, 앞으로 마오를 지탱해 줄 든든한 첫 번째 기둥이 세워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칠소궁에 새로운 식구들이 생겼다.
“근데 여기서 흉노족이 다 지내기엔 좀 부족했을 텐데?”
훈훈한 인사가 끝나고 장이서는 문득 든 생각을 꺼냈다. 그러자 마오가 어깨가 잔뜩 올라간 채 대꾸했다.
“내가 용태한테 이미 말해놨지. 구유만 궁에 남고 나머진 전부 마을에 머물 곳을 마련해 뒀다. 언제 또 자객들이 들이닥칠지 모르니까 일종의 방범 차원? 뭐 세간에는 도적 떼를 끌고 왔다느니, 이래저래 난리지만. 어때. 잘했냐?”
웬일로? 나쁘지 않은 묘안이다.
과평과 아신이 철마적과 함께 마을을 지켜준다면, 그보다 더 안심할 것도 없는 일.
“잘하셨습니다.”
“우하하! 자, 그럼 이제 독산각으로 가자. 너 얼른 치료해야 해.”
“그전에.”
“어?”
“구유와 잠시 할 말이 있으니 나가주십시오.”
“갑자기?!”
“예.”
와, 씨. 매정한 새끼. 마오는 느닷없는 축객령에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 어쩌겠는가.
환자의 말을 따라야지. 마오는 과평과 아신을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어느새 구유와 둘만 남겨지자 장이서는 침상에서 내려섰다.
“아.”
순간 세상이 핑 돈다. 하나 땅에 발만 내리고 기다리자 금세 나아진다. 그 모습이 우려스러웠는지 구유가 다가와 물었다.
“괜찮은가?”
“아니.”
“솔직하군. 더 눕는 게 어떤가.”
“그러기엔 할 게 많네.”
“치료가 다 끝난 게 아니라고 들었다.”
구유의 표정이 미안함으로 가득해진다. 이를 본 장이서가 픽 웃고는 그를 스쳐 지나며 말했다.
“나가자. 바람이나 쐴 겸.”
“……그러지.”
두 사람이 밖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