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3)
첩자의 마교생활-13화(13/350)
13.
한편 앞서 야생마처럼 달려 나간 마오는 어느새 취선루 인근에 다다라서야 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러고도 아직도 화가 주체가 안 되는지 울긋불긋한 얼굴로 세상 떠나가라 소리까지 질렀다.
“으아아아악!”
이 개자식. 난데없이 나타나 구질구질한 설교를 늘어놓다니. 더구나 뭐 소교주?
“어디서 가진 것 하나 없는 7급귀 따위가 함부로 입에 올려? 그리고 뭐. 내가 짐승보다 못한 쓰레기라고?”
그렇게까진 말 안 했지만, 그렇게 보고 있기는 했다.
“뭘 봐!”
으아아앙! 지금도 지나가는 여아한테 윽박이나 지르는 망나니 아닌가.
“젠장.”
마오는 우는 아이를 보며 진한 자괴감을 느끼곤 괜스레 죄 없는 돌멩이만 툭 걷어찼다.
이래저래 참 쪽팔린 날이었다.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7급귀한테 설교를 듣질 않나, 전력을 다해 휘두른 주먹이 그 자그마한 손바닥에 가로막히질 않나.
하지만 무엇보다도 쪽팔렸던 건.
‘그 새끼 말에 내가 설렜다는 거다……. x발.’
왜 남들에게 인정받는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없겠는가. 왜 소교주가 되는 순간을 상상해 본 적이 없겠는가.
다 해 봤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찍혀 있던 낙인은 이를 허용치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던 유년 시절에 아버지한테, 형한테. 아니, 가족들한테 조금이라도 인정받고 싶어서 어깨너머로 본 무공을 흉내 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 돌아온 건 인정이 아니라 지독한 엄벌이었다.
‘주제를 모르면 혼나야지.’
마오는 답답한 한숨과 함께 떠오르는 제 형의 모습을 박박 지웠다. 그러곤 홍예교 난간에 기댄 채 햇빛이 담긴 수변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난 지금이 딱 좋거든? 이젠 굶을 일도, 맞을 일도 없고. 얼마나 좋아?”
마오는 그렇게 애써 스스로 위로하곤 몸을 돌렸다. 취선루에 가서 술이나 흠뻑 마셔야겠다. 그래. 그러면 된다.
그렇게 마음먹고 걸어가려던 찰나였다.
“이게 누구야.”
앞에서 낯익고도 비열한 목소리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이내 전방을 살피는 순간 마오의 두 눈이 길 잃은 아이처럼 흔들렸다.
벚꽃 흩날리는 다리 위에서 만난 후기지수 무리. 그중 시선을 사로잡은 중심의 사내.
번들번들 기름진 흰 피부에 야비해 보이는 인상. 화려한 백색 도포를 걸치고 저를 보며 장난감을 찾은 것처럼 비웃는 자.
“칠공자님 아니십니까?”
“마진구…….”
마가의 방계 혈족이자 마오의 사촌.
마진구.
유년 시절부터 만날 때마다 지독히 깐족대던 개자식.
“안 그래도 지금 찾아뵈려던 참인데. 여기서 뵙는군요.”
찾아뵐 생각이었다고? 하. 마오의 입에서 헛웃음이 뱉어졌다. 저가 그 낯짝으로 자신을 볼 일이 뭐 있다고.
“아, 자네들도 인사 올리시게. 여기 우리 대 마가의 자랑이신 칠공자 마오 님일세.”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마진구와 함께 있던 무리가 모두 똑같이 비열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굳이 누군지 말하지 않아도 고귀한 맵시만 봐도 알겠다. 장로회 가문의 자제들이다. 그것도 직계가 아닌 마진구처럼 방계인 자식들.
“오늘 새로 보좌를 들이셨다길래, 궁으로 인사라도 드리러 갈까 했는데. 여기 계셨네요?”
그거 때문이었냐? 마오가 고개를 절절 흔들며 대충 답했다.
“아, 뭐. 그렇게 됐다.”
“크큭, 왜요. 벌써 내치신 겁니까?”
마오의 이마에 주름이 세 줄 그어졌다. 그리고 이를 본 마진구의 입가는 더 야비하게 삐쭉 올라섰다.
“자네들. 내가 분명히 말했지. 우리 칠공자님께선 절대 보좌를 하루도 옆에 두지 않으실 거라고. 하하하! 이번 내기는 내가 이긴 듯하군.”
“이런. 아무리 그래도 며칠은 있을 줄 알았거늘.”
“못 버티지. 그랬다가 경치를 일 있나. 말하지 않았는가. 집안에서 알면 엄벌을 내릴 거라고. 그게 무서워 지금까지 혼자셨는데. 이제 와 보좌라니. 어림도 없는 일이지.”
“크큭, 하긴 가문만큼 무서운 게 없지.”
와하하하! 보란 듯이 비웃는 무리에 마오의 얼굴이 벌게지고 커다란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 새끼들이. 하나 마진구는 본래가 힘보단 교활함이 앞서는 자. 그가 날뛰기 전에 먼저 교묘하게 틈을 비집고 들어섰다.
“자, 자. 웃자고 하는 말입니다. 웃자고. 칠공자님 기분도 별로 좋지 않아 보이시는데 취선루로 가시죠. 제가 오늘 딴 돈도 있고, 크게 대접하겠습니다.”
“입 닫고 얌전히 꺼져. 기분 더러우니까.”
“싫으시면…… 뭐, 이신 형님이라도 부를까요?”
우뚝. 무시하고 가려던 마오의 걸음이 멈추어졌다. 아니, 정확히는 얼어붙은 것처럼 굳어졌다.
마가의 적통이자 배다른 형인 마이신.
그의 이름에 대한 자동 반사적인 반응이었다. 지독한 괴롭힘에 학습된 조건화 반응.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아무리 강산이 바뀌어도 지워지지 않는 공포의 존재.
턱. 떨리는 마오의 어깨 위로 마진구의 손이 둘렸다. 그리고 아무도 듣지 못하게 귓가에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가자고, 이 새끼야. 사람 쪽팔리게 만들지 말고.”
“마진구, 너 이 새끼…….”
“왜. 칠공자 대우 좀 해주니까 이제 내가 우스워 보이냐? 왜. 예전처럼 한 번 해줘?”
살기를 드러내던 마오의 눈이 떨리고 이내 입술을 꽉 문 뒤 고개를 돌렸다.
마진구가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더러워서지.
어차피 그는 앵무새처럼 입만 나불대는 마이신의 졸개.
“좋아. 가. 대신 술값은 다 네가 내는 거다.”
어차피 시궁창 인생, 더러운 놈하고 좀 놀면 어떤가. 마진구는 마오의 반응에 잠시 놀랐다가 이내 피식 웃고는 일행들에게 손을 흔들며 외쳤다.
“칠공자님께서 함께 하신다네! 우리 오늘 실컷 마셔보세나!”
“오, 가시죠!”
“하하하!”
마오는 칠소궁이 있을 뒤쪽을 한 번 살피곤 그들의 뒤를 따랐다.
* * *
– 월하촌 흑룡파.
“이런, 쉬부럴. 방첩대가 왜 나와, 방첩대가. 염병. 죽다 살았네.”
제집으로 돌아온 흑룡파 두목 용태는 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금 간 탁자에 턱 엎드렸다. 얼마 전 마오가 집어던진 그 탁자였다.
그러자 옆에 선 부두목 메기가 침을 꼴깍 삼키며 말을 받았다.
“어쩐지 그놈 아주 교활했지 말입니다. 제 사각지대를 노리고 가운데로 머리가 딱 들어오는데. 보통 놈이 아니지 말입니다.”
그건 인마, 네 눈이 귀에 달려서 그런 거고.
용태는 어쨌든 십년감수했다는 표정으로 소회를 밝혔다.
“방첩대 출신이면 그렇다고 말을 해줘야지. 7급귀라는 말에 속아 땅에 묻힐 뻔했어. 칠공자 그 새끼. 일부러 나 담그려고 그런 거 아니야? 내가 이 탁자 밑에 돈 숨겨둔 거 알고.”
띠용. 메기의 눈이 커졌다.
“여기 돈 숨겨두셨습니까, 형님?”
“아니? 아닌데? 그냥, 해본 말이잖아. 새끼야. 농담 몰라?”
“농담이 아닌 거 같은…….”
“아무튼 당분간 문단속 확실히 하고, 애들한테 칠소궁 근처엔 오줌도 싸지 말라 그래. 알았어? 싸는 새끼 보이면 그냥 짱돌로 찍어. 아주 꺾여 갖고 그쪽으론 서지도 못 하게 만들어 버려. 알았어?”
“그렇게까지는 좀……. 예! 알겠습니다!”
용태는 서슬 퍼런 눈으로 한 번 노려보곤 이내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 역시 6급귀로 교직에 있어 본 자.
그래서 잘 알고 있었다. 방첩대가 얼마나 악독하고 무서운 놈들인지. 아무리 옷 벗은 놈이라고 해도, 당분간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 형님. 아까 그 다리에서 본 놈들 말입니다.”
“누구.”
메기가 먼 미간을 미약하게 좁히곤 중얼거렸다.
“제가 아까는 기억이 잘 안 났는데. 생각해 보니까 아는 놈이지 말입니다.”
“메기야. 내가 네가 아는 애까지 알아야 되니?”
“그게 아니고 말입니다. 마가에서 온 사람이지 말입니다.”
“마가? 칠공자님 댁에서?”
“예. 마진구였나. 제가 담양촌에 있을 때 아주 악명이 자자했지 말입니다.”
“잠깐만…… 마진구? 내가 그 이름 어디서 들어봤더라. 아는 이름인데. 잠깐만 있어 봐…… 그게…… 헉!”
용태가 상기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생각났다.
“아는 분입니까?”
메기의 물음에 용태는 뭐 마려운 개마냥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오를 지독히 괴롭혔던 마이신의 졸개.
“야, 너 일단 칠공자님한테 가봐. 아니, 내가 직접 갈 테니까 넌 애들 모아서 아까 그 새끼들 미행해.”
“예? 아깐 그쪽으로 오줌도 누지 말라고…….”
“야, 이 새끼야! 너 그동안 마가에서 칠공자님한테 어떻게 대했는지 몰라?”
“당연히 모르지 말입니다.”
“하……! 그렇지. 넌 모르지.”
그건 내가 호룡당에 있을 때 들은 얘기니까. 용태가 머리를 박박 긁고는 참담한 표정으로 답했다.
“이런 염병. 다 죽였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자객들을 보내 하인이고, 뭐고. 칠공자님 주변 놈들을 싹 다 죽였다고.”
“예에?”
“그거 때문에 칠공자님이 혼자 지내셨던 건데. 이런 니미. 됐고. 넌 빨리 나가서 애들부터 모아. 일단 가서…….”
용태가 신경질적으로 문으로 달려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콰직!
문짝이 안으로 부서지며 주르륵 발밑까지 수하 하나가 밀려 들어왔다. 아주 피떡이 된 채로.
“얘, 네가 불렀니?”
“그럴 리 없지 말입니다.”
그럼…….
“그 얘기. 자세히 좀 들어볼까?”
문밖에 일렬로 늘어선 길목에 우후죽순 쓰러져 있는 제 수하들을 배경 삼아 나타난 사내.
“히이이익!”
칠공자 보좌, 장이서가 나타났다.
* * *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 노을이 졌고, 취선루 오 층에 자리한 방 안엔 빈 술병과 먹다 남은 안주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마진구와 그의 벗들은 한껏 벌게진 얼굴로 대화가 한창이었다.
“이번에 양양에 갔다가 객잔을 들어갔는데. 아, 거기 매화가 그려진 도복을 입은 녀석들이 딱 있는 걸세. 그래. 화산파 놈들이지. 이놈들이 날 보더니 저들끼리 대화를 멈추고 지그시 노려보더군.”
“허, 그래서 어찌 되었는가?”
“어찌 되긴. 내 혼자이긴 해도 마가의 진구일세. 정파 새끼들한테 꿀릴 수 있나. 체면이 있지. 해서 놈들 앞자리에 앉아 탁자 위에 탁! 칼을 내려놓았지. 일장로님께 하사받은 바로 이 녀석 말일세. 그랬더니 바로 일어나 줄행랑을 치더군. 하하하!”
“똥 마려워 간 거겠지.”
마오는 재미도 없는 개소리 삼매경에 귀를 후비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마진구가 정색한다.
“뭐요?”
“뭐. 맛있네, 이거.”
들은 체도 안 하고 과일 안주나 하나 냉큼 주워 먹었다. 그러자 마진구도 약이 오르는지 게슴츠레한 눈으로 말했다.
“아, 이거 너무 내 얘기만 했나. 칠공자님은 종일 굶으셨나 봅니다. 그리 허겁지겁 먹기만 하시는 걸 보니. 아니면 맨날 퍼진 국수만 먹다 비싼 걸 보니 참을 수가 없으신가.”
“와하하하!”
웃기냐, 새끼들아? 돈 말곤 가진 것도 없는 것들이. 마오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턱을 괴곤 무시로 일관했다.
성질대로면 대가리부터 들이박았겠지만, 상대는 마이신의 졸개 마진구. 지린 똥은 외면이 답. 조금만 참아주면 된다.
마진구는 그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슬슬 본색을 꺼내기 시작했다.
#보좌 장이서입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