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39)
첩자의 마교생활-139화(139/350)
139.
#부각주 엽굉
다음 날.
해가 잘 들지 않아 시간도 가늠이 안 되는 이른 새벽.
명상을 끝내고 눈을 뜨자 바깥에서 부스럭거리는 소음과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대충 들어도 자객은 아니다. 은신은 젬병인 자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바깥에서 투박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십니까.”
“무슨 일인가.”
장이서는 여유롭게 옷매무시를 가다듬으며 곧장 말했다.
그러자 안 자고 있음에 당황했는지, 잠시 호흡이 흐트러졌다가 대답이 들려왔다.
“장로님께서 모셔 오라 하셨습니다.”
이 시간에? 장이서가 문을 턱! 열자 밖에 의생 다섯이 눈에 담겼다.
그중 선두에 선 자는…….
커다란 머리. 두툼한 목. 그로 인해 넓지만 좁아 보이는 어깨. 그리고 피 묻은 몽둥이.
수문장인가.
“부각주 엽굉입니다.”
부각주구나. 들어본 적이 있다. 의술에 조예가 깊고, 지닌 무예 실력도 출중하다는 자.
머리 부수는 도깨비, 파두망량(破頭魍魎) 엽굉.
마의를 대행하여 독산각을 장악한 실세다.
“보좌 장이서요.”
굳이 급을 나누자면 부각주는 4급귀. 각주가 아닌 이상 보좌보다 아래다. 하지만 연배나 명성으로 보자면 그가 몇 수 위이기에 관례상 최소한의 예는 갖췄다.
“크흠!”
하지만 그마저도 의생들의 성엔 안 차는 듯했다. 못마땅한 기침 소리와 불편한 시선들. 대놓고 드러내는 적대감이 선명한 걸 보면.
이유는 알만했다.
‘저리 수미일관 화난 얼굴인데 모를 수가 있나.’
입김이 약해진 건지, 아니면 부각주의 장악력이 뛰어난 건지. 이들도 알게 된 것이다.
마의가 자신에게 자리를 물려주려고 했다는 사실을.
어느 날 갑자기 굴러들어온 새파랗게 어린놈이 저들 주인이 될지도 모른다니, 당연히 불만이 터질 수밖에.
‘하지만 고작 이 정도에 발끈하면 실망인데.’
장이서가 속으로 비소를 갈무리하곤,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장로께서 날 찾으신다고 하셨소?”
“따라오십시오.”
그러자 엽굉이 제 말만 던지고 몸을 돌려 걸어 나갔다. 이에 장이서도 지지 않고 툭 뱉었다.
“그러지.”
완전히 달라진 분위기. 명백한 하대.
의생들의 눈이 번쩍 떠지고, 엽굉은 철벽처럼 우뚝 멈춰 섰다.
이에 장이서가 입가에 조소를 품고는 말했다.
“안 가나?”
아니, 이게 무슨. 의생들이 자그맣게 웅성댄다. 그리고 그중 가장 얄밉게 생긴 의생이 눈을 세모나게 뜨고 말했다.
“부각주께선 일백마성에 오르신 분입니다!”
그렇겠지. 장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크흠! 그에 걸맞은 예를 갖춰주시지요. 아무리 장삼이사셨던 보좌께서 하루아침에 출세하셨다 하시어도 엄연히 선진(先進)에 대한 존중과 공경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유교냐. 마교에 존중은 무슨.
그리고 장삼이사면 장씨 일가의 셋째와 이씨 일가의 넷째를 말함인데, 한마디로 듣도 보도 못한 놈이 까불지 말라는 뜻.
오는 게 이 모양 이 꼴인데 좋게 갈 턱이 있나.
그리고 뭣보다.
“부각주 생각도 그러한가?”
장이서는 그가 궁금했다.
그저 힘만 쓸 줄 아는 최악의 마인인지. 아니면 그중 최소한의 정도라도 있는 차악(次惡)인지.
또한 상대를 파악하는 건 암각 최고의 요원인 장이서의 주특기.
‘엽굉. 당신은 어떤 사람이지?’
그 답은…….
휙! 엽굉이 몸을 돌렸다. 성난 도깨비 얼굴. 들어 올려진 손엔 피에 절인 단봉이 들려 있다.
‘결국 화도 못 참는 미련한 마인이었나?!’
장이서의 눈매가 좁혀지고 실망으로 가득 채워지는 그 순간.
부웅, 퍽!
“크악!”
몽둥이는 장이서가 아닌 함부로 입 놀리던 의생의 머리로 정확히 떨어졌다. 의생은 터져버린 머리를 붙잡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무슨…….”
당혹감에 엽굉을 바라보자 그가 마주 노려보며 섬찟한 어조로 말했다.
“도를 넘지 마라.”
지금 자신에게 하는 말인가? 하나 이를 묻기도 전에 엽굉은 곧장 몸을 휙 돌렸다.
“장로께서 기다리십니다. 가시지요.”
이내 걸음을 나선다.
최소 어수룩한 자는 아니라는 건가. 쉽사리 종잡을 수 없는 유형이다.
‘더 지켜보면 알게 되겠지.’
장이서는 그렇게 판단을 유보한 채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나섰다.
* * *
한편 이른 시각, 장이서를 불러낸 마의 사마균은 동굴 깊숙한 곳에 있었다.
“흐흐흐흐흐!”
“으히히히!”
안으로 스며든 바람 소리인가. 아니다. 누군가의 신음과 광소가 뒤섞인 음색이다.
이곳의 이름은 참마동(斬魔洞).
마기가 골수까지 뻗쳐 더는 회복이 안 되는 자들을 가둬둔 곳이었다.
일자로 된 길목 좌우에 놓인 뇌옥 37개가 그들의 집이자 무덤.
지금은 실성한 자들에 불과하나 그래도 한때는 모두 시대를 풍미했던 마두들이었다.
목숨을 연명케 해준 건 그에 따른 예우 차원.
그리고 참마동 가장자리로 가면 여타 뇌옥들과 달리 하늘로 우뚝 솟은 절벽으로 꽉 막힌 햇볕 드는 공터가 나왔는데, 이곳에 바로 그가 머물고 있었다.
“사마균이옵니다.”
육장로인 마의가 두 손 모아 고개를 조아리고, 매번 인사를 올려야 하는 자. 스스로를 천마동에 가둔 유일한 정상인이며, 과거 더없이 찬란했던 존재.
독마(毒魔) 양대헌.
독산각의 전설이자 전대에 천하를 호령했던 그였다.
“……들어오거라.”
낡은 가옥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의는 오랜만에 통달한 장로가 아닌, 젊은 시절의 마음으로 지팡이를 내디뎠다.
* * *
그 시각 바깥에서는 부각주 엽굉을 따라 장이서도 목적지에 다다라 있었다.
한데.
“여기는 막다른 길 아닌가.”
콰과과과과!
정확히 말하면 폭우처럼 시원하게 떨어져 내리는 폭포수였다. 심심해서 이곳에 데려왔을 리는 없고.
“여기부터는 장 보좌님과 둘이 가겠다.”
엽굉은 느닷없이 둘만의 시간을 선포했다.
이에 의생들은 음흉한 입꼬리를 올린 채 포권을 취하곤 걸음을 물렸다.
‘장소도 적당하고, 슬슬 본색을 드러내겠다는 건가.’
엽굉의 등이 갑자기 서늘해 보이는 건 우연 아닌 우연. 폭포수 소리에 비명도 묻힐 기세다. 그야말로 당장 누구 하나 죽어 나가도 이상할 게 없는 곳이란 얘기.
그렇게 두 사람은 못 옆으로 나 있는 으슥한 길을 따라 폭포수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장이서는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뒤를 따랐다.
그리고 폭포수 지척까지 다다른 그 순간.
엽굉이 우뚝 걸음을 세웠다.
“…….”
묵묵부답. 이내 그가 몸을 돌린다. 그것도 피 묻은 단봉을 올려 든 채로. 이에 장이서도 눈매를 좁힌 채 허리춤의 단도로 손을 가져갔다.
그런데.
“발…… 조심하십시오.”
“뭐?”
“젖습니다.”
엽굉이 단봉 끝으로 땅을 가리킨다. 이에 고개를 숙이자 물이 흥건하다.
“아니, 뭐 그런 얘길 몽둥이 들고…….”
“따라오십시오.”
다시 돌아서는 부각주 엽굉. 정말 알다가도 모를 자다.
장이서가 고개를 젓고는 다시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러자 놀랍게도 폭포수 뒤에 동굴로 향하는 거대한 철문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울퉁불퉁한 벽에 새겨진 글귀.
참마동(斬魔洞)이다.
“여기는 독마께서 계신다는 곳이 아닌가?”
갑작스러움에 철문으로 다가가 이를 매만지며 물었다. 이렇게 바로 데려올 줄은 몰랐거늘. 의아함에 젖어들 무렵이었다.
“어째서 장로님의 제안을 거절하신 겁니까.”
“뭐……?”
콰과과과과!
뒤에서 거세게 들려오는 폭포수 소리와 함께 섬찟한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독산각주의 자리를 왜 거절하신 거냐고 물었습니다.”
이런. 장이서가 황급히 뒤를 돌아보자, 그가 퇴로를 점하곤 서 있었다.
우우웅!
짙은 녹색 기운이 둘린 몽둥이를 들고서.
“의생들이 말하더군요. 각주의 자리엔 당연히 제가 어울린다고.”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 건가. 뒤는 철문에 막혔고, 좌우는 운신의 폭이 좁다.
그야말로 궁지에 몰린 쥐 신세.
장이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답했다.
“억울했나? 그 기회가 생면부지인 나에게 오게 되어서?”
“솔직히 그렇습니다.”
“그래서 없애기라도 하려고?”
“…….”
장이서는 말을 하면서도 수없이 상황을 상상했다.
어떻게 해야 엽굉을 쓰러트리고 넘어갈 수 있는지. 하지만 또렷한 방법이 떠오르진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틈이 보이질 않았다.
이는 그만큼 강하다는 뜻.
“분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건 당신들 사정. 그 화풀이를 나한테 하겠다는 거라면…….”
“거절하지 마십시오.”
“……!”
방금 뭐라고 한 것인가.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무슨 뜻이지?”
“거절하지 마시란 말입니다.”
“내가…… 독산각주가 되어도 좋다는 얘긴가?”
되묻고도 황당했다.
하지만 그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표정으로 답했다.
“예.”
“어째서. 나에 대해 뭘 안다고.”
“모릅니다. 하지만 장로님은 알지요. 그분을 모신 지도 어언 30년입니다. 의생들은 아직 어려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전 누구보다도 그분을 잘 압니다.”
대체 뭘.
“제 기준에 맞는 놈이 아닌 이상, 일평생 여지도 안 주신다는 것을-!”
콰과과과과!
갑자기 엽굉은 멀쩡한 벽에 단봉을 휘갈기기 시작했다. 돌 부스러기가 튀어나오고, 폭포수에 굉음이 묻히기를 수차례.
어느새 그가 진정이 된 것인지 다시 몸을 돌리곤 무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방금 본 건 장로님께 비밀로 해주십시오. 일하다 보면 불만도 쌓이는 법이니.”
“아니, 뭐……. 그럽시다.”
장이서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보좌님은 장로님께 수십 년 만에 간택되신 분입니다. 부디 거절치 마시고 독산각을 맡아주십시오.”
엽굉이 각진 머리를 깊숙이 숙였다.
“하……. 당신 정말 특이해. 알아?”
“독산각은 병자들을 살리고, 또 병자들을 죽여야 합니다. 타협은 없으며 자애롭다가도 모질어야 합니다. 각주가 망설이면 의생들이 다칩니다. 그것만 기억해 주십시오.”
“나 한다고 안 했는데.”
“가시지요.”
“내 말은 아예 안 듣는군.”
엽굉은 용건이 끝난 듯 휘릭 몸을 돌린 뒤 그대로 벽에 파인 홈에 단봉을 꾸욱 집어넣었다.
쿠구구구궁!
이에 서서히 문이 열리는 참마동.
장이서는 먼저 가는 엽굉의 등을 보며 생각했다.
부각주 엽굉.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아주 어쩌면 조금은 괜찮은 자일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은 참마동으로 들어섰다.
“으흐흐흐흐!”
“히히히!”
울려 퍼지는 광인들의 곡성에 절로 눈매가 찌푸려진다.
“이미 산 자들이 아니군.”
그때 문득 든 생각은 괴성을 내뱉는 광자들이 아니라 이들 틈에서 살아가고 있을 독마였다.
대체 그가 뭐가 아쉬워서 이런 곳에 머문단 말인가.
애초에 시작부터가 이상했다.
‘독마는 좌우사자와 같은 시대를 누비던 자. 천마보다도 윗세대다. 초(超) 거물이라는 얘기. 한데 나조차 그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마교라면 자다가도 줄줄이 읊을 만큼 빠삭한 그다.
심지어 부각주 엽굉도 이미 알고 있던바.
한데 독마의 생존은 상상도 못 했다.
거짓이 아니라면 분명 어디에도 밝히기 힘든 사연이 있으리라. 그리고 이는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한 지 일각쯤 지났을 무렵.
어둡고 습한 동굴을 지나 햇살 떨어지는 가옥에 다다랐을 때가 되어서야 알 수 있었다.
“끌끌, 왔느냐?”
마의의 옆에 장삼(長衫) 하나 걸친 채 앙상한 뼈와 시커먼 가죽만 남은 노인.
‘저자가…… 독마라고?!’
그는 탁해진 백색 동공으로 살아 있는 목내이(木乃伊-미라)가 되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