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44)
첩자의 마교생활-144화(144/350)
144.
#새로운 가족 (1)
문득 사부가 남긴 글귀가 떠오른다.
‘천마는 신이다. 그리고 나는…… 신을 죽였다.’
입술이 바짝 말랐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설마 마교에 잠입해 수뇌부를 제거하던 희대의 살수였을 줄이야.’
이 정도면 전설의 첩자.
‘잠깐. 그럼 독마와도 불구대천의 사이가 아닌가?’
장이서가 의문을 품고 독마를 살폈다.
분명 누구보다도 뇌신을 원망해야 할 그의 표정은 아무리 봐도 애틋하고 밝아 보였다.
마치 오랜 친구를 떠올리는 것처럼.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지으시는 겁니까?”
독마는 아차 싶었는지 표정을 갈음한 뒤 물었다.
“내 차례다……. 네가 어떻게 그 뇌기를 다루게 된 것이냐……?”
장이서의 오물거리는 입. 하지만 판단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미 패는 던져졌다.
“우연히 본교에서 그분이 남긴 걸 보았고, 그대로 익혔을 뿐입니다.”
“그럼…… 네가 뇌신의 후인이란 말이냐?!”
독마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장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자신에 대해 밝힌 건 목숨을 건 도박과도 같은 일.
드러난 것만 열거해도 뇌신은 독마를 다치게 한 원수이자, 천마를 없앤 마교의 주적이다.
이 정도면 우연히 익힌 것이라 해도 그의 진전을 이은 이상 자신 또한 그 여죄를 피해 갈 수 없다.
하지만…….
‘독마는…… 악의 없이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다. 게다가 사부가 흔적을 남긴 것에 대해 의구심도 갖지 않아. 이는 그만큼 잘 알기 때문이겠지. 분명 둘 사이에는 남들이 모르는 뭔가가 더 있다. 그게 친분이든, 빚이든.’
장이서는 자신의 감을 믿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크큭……. 어떻게 이런 우연이……. 네가 그분의 제자라니…….”
독마는 지금도 그분이라 칭송하며 감격해하고 있었다.
“제 차례입니다. 독마께선 그분과 무슨 관계이신 겁니까.”
홀로 자조적인 웃음을 뱉던 독마는 고개를 끄덕이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실로 어울리지 않는 자상하고 자애로운 목소리로 답하였다.
“내 말 잘 듣거라. 앞으로 절대 뇌신의 이름도……. 뇌신의 무공도……. 뇌신에 대한 그 어떤 것도…… 발설해서는 안 된다. 설령…… 내 제자인 마의 앞에서도…….”
“……!”
“이것은…… 그분의 의형제이자 사숙으로서 네게 하는 충언이다.”
이럴 수가. 한겨울 냉수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정신이 번쩍했다.
그의 말 한마디로 모든 관계가 정리된 것.
의형제.
뇌신이자 사부인 한무영과 독마가 형제였다. 친밀한 사이였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이건…….
‘설마…… 독마가 살수를 도운 배교자였던 건가? 아니면 그도 첩자?’
장이서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휘몰아친다. 한데 독마는 그럴 것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말거라……. 넌 그저 지금처럼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살아가면 된다. 특히…… 절대 천마전에서 알게 해선 안 된다……. 알겠느냐?”
진심이다. 독마는 진정 어린 눈으로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
천마전이라면 천마 진우광과 좌우사자인 흑야와 백야를 뜻하는 말. 그들에게 숨겨야 한다는 건…….
‘사부가 없앴다는 천마가…… 설마 진우광의 사부?!’
전대 천마……. 모골이 송연해진다. 하긴 당대 천마인 진우광에 대한 기록은 널리고 널렸으나, 이전의 천마에 대해선 드러난 게 극히 적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첩자에게 살해당한 걸 숨기기 위해서라도 모든 걸 말소시켰으리라.
‘한데 난 그것도 모르고 천마전을 들락거렸으니…….’
정신이 아찔해진다. 그사이 독마는 한 걸음씩 서서히 다가와 어느새 지척에 섰다.
그러곤 장이서의 두 어깨를 메마른 손으로 쓰다듬듯 붙잡곤 말했다.
“내 평생…… 그분께 사죄할 방도조차 없을 줄 알았거늘……. 이렇게 너를 보내 내게 기회를 주시는구나…….”
굽힐 줄 모르는 강골에 표독스럽고, 독불장군이었던 그가 주르륵 눈에서 눈물을 떨구었다.
그리고 저를 바라보는 저 눈빛은 아주 아득히 먼 옛날에 느꼈던 것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형…….’
저를 애타게 바라보던 동생 이윤.
오직 가족만이 바라볼 수 있는 그 눈빛 말이다.
“장이서라고 하였느냐…….”
고개를 끄덕였다.
콰아아앙!
동시에 철문이 부서지는 소음과 함께 파파파팟! 마의를 비롯한 독산각의 의생들이 달려오는 소음이 빗발쳤다.
그리고.
“이제부턴…… 내가 네 가족이자……. 일평생 조건 없는 우군이 되어줄 것이다.”
쿵! 심장이 떨어져 내리는 기분. 제 편이 되어주겠다는 이 말이 왜 이렇게 먹먹한가. 믿어서가 아니다. 그저 첩자로 살아온 십수 년의 세월을 달래주는 듯한 말이었다.
그리고 문이 벌컥 열리며 마의와 의생들이 들이닥쳤다.
“장이서, 이 쳐 죽일 놈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들이닥친 것이냐!”
마의가 고함친다. 당장이라도 칼부림이 일어날 기세.
한데.
“감히……?”
“스승님! 괜찮으신 겁…….”
독마가 격노한 음성으로 살광을 내뿜었다.
“누가 감히 이 아이에게 함부로 말을 하는 것이더냐-!”
콰과과과과-!
쩌렁쩌렁한 노성과 함께 엄청난 의념이 참마동을 찍어 눌렀다.
“흐으윽!”
일시에 모두가 털썩 무릎을 꿇는다.
이것이 바로 전대의 전설 독마의 포효.
모두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눈을 부릅떴다.
“이제부터…… 장이서 이 아이는…… 나의 혈육이자 나의 화신이다……. 그러니 앞으로 함부로 대하는 놈은……. 나 독마와 상잔을 벌이자는 뜻으로 알 것이다. 알겠느냐?!”
“스, 스승님……?”
“두 번 말하지 않는다……. 반드시 명심하거라…….”
반발은 결코 허용치 않는다.
마의와 의생들은 길 가다 뒤통수 후려 맞은 얼굴이었다. 하나 어쩌겠는가. 독마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지.
이내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뒷짐 진 채 다정히 장이서를 살피는. 생전 처음 보는 다정한 독마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독산각에 새로운 후계가 탄생했다.
* * *
참마동 밖으로 내쫓긴 마의와 엽굉은 부서진 철문에서 몇 걸음 채 가지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도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가.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독마가 대차게 장이서를 깠지 않았나. 한데 이제 와 건들면 전쟁이라니.
“허…… 이거 참. 쯧!”
마의가 혀를 차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협곡에 꽉 막힌 하늘이 보인다. 늘 자부심을 품던 경치가 오늘따라 이리도 답답할 수가 없다.
옆에 있던 엽굉이 조심스레 물었다.
“한데 독마님의 혈육이자 화신이라면……. 저희한텐 도련님이 되는 겁니까?”
“도련님은 무슨-!”
마의의 눈에서 불똥이 튄다. 엽굉은 슥 맷돌처럼 고개를 돌렸다.
“수십 년을 저 안에 갇혀 지낸 분이 무슨 수로 자식을 만든단 말이냐! 그것도 본산 밖에서 들어온 놈을.”
“하면 거짓이란 말입니까?”
“가아아알! 감히 스승님께 무슨 결례더냐!”
엽굉이 무심히 쳐다보자 마의는 제가 말하고도 제 말이 이상한지 헛기침을 터트렸다.
하나 별안간 제 화신이라니. 그럼 저한텐 장이서가 곧 스승님과 똑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닌가.
제 후계로 들이려고 데려온 놈이 머리 위에 앉게 생긴 꼴.
“이제 어찌 되는 걸까요.”
“어쩌긴 뭘 어째!”
마의는 괜히 지팡이를 신경질적으로 탁! 내려치곤 걸어 나갔다.
“막 대하면 상잔이라지 않으시더냐! 스승님과 싸우느니 차라리 혀를 물지. 아이고, 두(頭)야…….”
엽굉은 잔잔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뒤를 따랐다.
* * *
마의와 의생들이 모두 돌아가고, 장이서와 독마는 다시금 둘만 남겨졌다.
하나 아까와는 다소 분위기가 달랐다.
정말 오랜만에 상봉한 가족처럼 장이서는 독마를 부축해 의자에 앉혔고, 독마는 내내 입꼬리를 올렸다.
쿨럭, 쿨럭.
심지어 고개를 돌려 잔기침을 뱉는 모습마저도 다정함이 보인다.
완전히 달라진 태도에 쉬이 적응되지 않을 법도 하거늘, 의외로 두 사람은 쉽게 터놓고 지난 삶을 나누었다.
“나는…… 그분이 떠나간 후로 모든 걸 내려놓고 살았다. 그저…… 숨만 쉬는 송장에 불과했지……. 바라는 것도…… 원하는 것도 없었다.”
독마는 제 삶을 한무영이 떠난 이후로 정의했다.
그 이전은 입에 담지조차 않았다. 삶의 가치가 오롯이 그로 시작해 그로 끝나는 듯했다.
장이서 역시 제 삶을 논하는 게 그리 길지는 않았다.
첩자의 마교 생활이란 게 뭐 있겠는가.
“……방첩대에서 칠소궁에 들어가게 된 겁니다. 그리고 지금 바람은 그저 칠공자님께서 소교주 위에 오르시는 것뿐이지요.”
독마는 그 어떤 반문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장이서의 삶을 귀담아들었다.
사실 크게 해줄 얘기도 없었다.
이미 삶의 굴곡을 지나 끝을 바라보는 독마다. 그 어떤 얘기도 지난 과거에는 도움이 되지 않다는 걸 안다.
단지.
“이제부터는 내가 너의 둥지요, 가족이다…….”
앞으로 든든한 거목이 되어줄 뿐. 그리고 장이서에겐 그 무엇보다도 큰 힘이었다.
‘독마는 진심이다. 진짜 내 편이 되어주려는 거다. 그게 사부님에 대한 속죄 때문이든, 미련 때문이든.’
경위는 모르지만, 그야말로 전화위복.
죽어가는 몸을 치료하고자 온 곳에서 독마라는 기연을 얻게 될 줄이야.
“바라는 게 있다면…… 뭐든 말하거라.”
“정말 바라는 걸 말해도 되겠습니까?”
“아무렴. 네 사부를 생각하면…… 내 목숨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 물론 볼품없이 꺼져가는 목숨이겠지만. 크큭.”
망가진 몸에 대한 자조적인 웃음. 장이서는 고민할 것도 없이 담담히 말을 꺼냈다.
“잠시 손을 봐도 되겠습니까?”
“음……?”
손이라니. 바라는 걸 말하랬더니 갑자기 그게 웬 말인가. 하나 독마는 의문만 가진 채 별다른 의심 없이 손을 내밀었다.
빼빼 마른 손.
이에 장이서가 살며시 맥을 짚으며 눈을 감았다.
파직, 파지직.
역시 느껴진다. 독마의 몸속에 광룡(光龍)처럼 날뛰고 있는 뇌기가.
‘이것이 사부님의 흔적……. 혼미하고, 경쾌하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개의 기운이다.’
다른 이는 모르겠지만 장이서는 뇌전법의 계승자.
뇌기는 공력을 제물 삼아 만들어진다. 그리고 지금 독마에게서 느껴지는 뇌기는 모든 걸 녹여낼 듯이 진한 독 기운을 품고 있었다.
짐작해 볼 수 있는 이유는 하나.
‘내상을 방치하는 사이, 불사독을 집어삼키며 뇌기가 스스로 힘을 키운 것.’
그러니 힘을 쓸 때마다 뇌기가 조금씩 전신을 분탕질 쳤을 것이다. 나중에는 점차 커져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을 것이고.
급기야 오장육부도 제 기능을 하지 못했을 테니, 지금과 같은 목내이가 되었을 터.
한데도 아직 살아있는 건 그만큼 타고나길 강하고 질긴 명줄 때문이리라.
한 마디로 기적이다.
“무얼 하는 게냐?”
장이서가 눈을 뜨자 독마가 당최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에 지그시 바라보며 대꾸했다.
“일찍이 치료받았다면 뇌기가 이 정도로 커지진 않았을 텐데. 어째서 이리 방치하신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