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49)
첩자의 마교생활-149화(149/350)
149.
#칠소궁, 출정! (1)
장이서는 담담하게 말했다.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죠.”
“칠공자에게 말이더냐?”
“예. 다들 많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쉽지 않은 길일 거다.”
“아시면 좀 도와주십시오.”
“크큭. 능청스럽기는. 네놈이 공력을 모두 가져가 버린 탓에 어느 정도 회복하려면 시일이 좀 걸릴 게다. 때가 되면 찾아가마.”
“너무 무리하진 마십시오.”
“실컷 부려 먹겠다는 놈이 이제 와 걱정하는 척은. 되었다.”
독마가 피식 웃는다.
“명심하거라. 불사독마공은 모두 다섯 단계로 이루어진 무공이다. 첫 단계가 웅덩이라면 다섯 번째는 바다. 깊이와 영역을 달리하지. 허나 지금 네 공력으로는 고작해야 첫 단계뿐이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의 불사독마공은 신공이라 부를 만한 초상승 무공. 필요한 공력 자체가 수준을 달리했다.
짐작건대 대성을 하기 위해선 최소한 초절정의 벽은 뚫어야 할 거다.
그런 의미에서 티끌 같은 내력으로 철벽을 녹여버렸던 광의는 이미 4단계에 오른 초절정 고수. 과거엔 몰랐으나 이제는 알겠다.
“험한 강호에 제 실력 숨기는 건 당연하나, 숨길 게 많을수록 위험해지는 법이다. 매사 조심하거라.”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장이서는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말을 곱씹었다.
“예. 그리하겠습니다.”
그 진실된 모습에 독마는 훈훈한 미소를 짓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그분께 큰 죄를 지었다…….”
불문율처럼 닫혀 있던 사부의 이야기다.
“허나 사과할 기회도. 또 갚을 기회도 없이…… 그분은 홀연히 사라져버리셨지. 그러니…… 내 남은 생은 오직 널 위해 살 것이다.”
독마의 말에 짙은 후회와 의지가 느껴진다.
장이서는 일순 고민했다.
사부의 행방에 짐작이 가는 바가 있기 때문.
확실하진 않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면 그 이유는…….
‘혈교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분명히 벽에도 적혀 있지 않았던가.
‘이제 오래지 않아 그가 동면을 깨고 나올 것이다. 불사의 존재. 혈존(血尊).’
솔직히 허황한 이야기였던 터라 크게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게다가 이미 훨씬 오래전에 작고한 머나먼 과거의 인물이라 생각한 탓도 있었다.
하나 사부가 전대의 인물이라면…….
‘분명 지금도 어딘가에서 진행 중인 일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사부는 예상컨대 저와 같이 정파에서 첩자로 보내진 인물. 그렇기에 첩자만이 알 수 있게 천마고를 꼭꼭 숨겨둔 것일 거다.
저의 후인은 마인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사부는 그런 사람이었다.
한데 마교의 수뇌부와 천마까지 없앤 그런 사부가 혈교를 가만히 놔두었을까?
아니다.
분명 혈존을 쫓기 위해 움직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이걸 말했다간 숙부가 일평생 혈교만을 쫓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독마라는 회심의 패를 잃게 되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는 일.
그렇게 고심이 깊어지는 사이, 사숙이 말했다.
“저 물길을 따라 내려가면 뱃사공이 올 게다. 소란은 이 정도면 되었으니, 그만 칠소궁으로 떠나거라.”
“지금 바로 말입니까?”
“왜. 싫으냐?”
아니, 그건 아니다. 어차피 곧 떠나려고 하긴 했다. 시간이야 빠를수록 좋은 일.
하나 아무런 인사도 없이 이리 바로 떠나라니.
“아니면, 오늘처럼 의생들과 하나하나 마주 보고 인사하며 떠나겠느냐?”
“아니요……. 그냥 가겠습니다.”
“후후, 그래. 먼저 가 있거라. 곧 찾아가마. 오래 걸리진 않을 게다.”
독마가 싱긋 웃는다. 이에 장이서도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때까지 꼭 건강하십시오.”
“오냐. 너도 조심 또 조심하거라.”
“예, 사숙.”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인사를 나누고, 장이서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차라리 잘 됐다. 이게 맞는 거다. 어차피 사숙이 알아봤자 내게 좋을 건 없다.’
한 걸음, 두 걸음. 첩자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위로한다. 실제로 이런 경우는 허다했다.
남을 속이고, 그로 인해 실리를 취하고.
그것이 제 팔자 아닌가.
하나……. 어째서일까.
“사숙.”
“음?”
차마 열 걸음도 떼지 못한 채, 우뚝 멈춰 서버렸다.
그새 정이 든 것인가. 아니면 미쳐버린 것인가.
무엇이든.
이대로는 못 가겠다. 그래서 눈 딱 감고 말해버렸다.
“이 말씀은 꼭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음?”
“사부께선……. 어쩌면 혈교를 찾아간 걸지도 모릅니다.”
“그게 무슨!”
정말 멍청한 짓이 아닐 수 없다. 제 발로 독마라는 비교 불가의 패를 버려버리는 선택을 하다니.
하지만…….
이미 이곳에선 많은 걸 얻었다. 계획도 하지 않았던 크나큰 실리였다.
이에 독마의 남은 앞날까지 가져갈 필요는 없다.
그것이 사부를 그리워하고, 자신을 가족이라 불러준 이에 대한 최소한의 정도(正道)라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남기신 기록이 있습니다. 그곳에 조만간 혈존이 깨어날 것이라고 하셨죠.”
“혈존이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게다가 공손절도 살아 있었으니……. 어쩌면 혈교의 잔당이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장이서는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후련하게 숨을 뱉었다.
이대로 떠나간다고 해도 괜찮다.
웃으면서 보내줄 수 있다. 오히려 그게 더 나을 거 같았다.
그럼 최소한 죄책감은 느끼지 않을 테니.
한데.
“……상관없다.”
독마의 반응이 예상과는 달랐다.
“상관이 없다고요?”
“그래.”
“어째서입니까.”
이제 사부의 흔적이 중요치 않다는 뜻인가, 아니면 잔당이 남아 있어도 상관이 없다는 것인가.
이해가 안 되어 되물으려는 순간.
“그분이 움직이셨다면, 이미 모든 건 40년 전에 끝난 것이다.”
“무슨 말씀입니까?”
“혈교의 주인이든, 무엇이든. 결코, 살아 있지 못할 거란 얘기다.”
하. 사부를 높이 평해주는 건 좋지만…… 이 정도면 너무 맹목적인 믿음 아닌가.
“그분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입니까?”
“강하냐고? 어리석은 질문이구나.”
사숙이 입가가 길게 호선을 그렸다.
“그분은 강한 것이 아니라 신이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뇌신(雷神). 더 긴 말이 필요하겠느냐?”
장이서가 황당하다는 듯 입을 벌린다.
하지만 또 그의 말이 맞긴 했다. 어쨌든 마교의 신이라는 천마까지 죽인 자가 아닌가.
괜히 멍청한 소리를 한 기분.
“이십여 년 전. 당대 천마께서 혈교의 잔당을 일망타진한 적이 있지. 그때도 혈교의 주인은 없었다. 그게 무슨 뜻이겠느냐?”
짐작이 갔다.
“이미…… 대가 끊겼을 거라는 말이군요.”
독마가 환하게 웃는다. 도대체 그에게 사부는 어떤 존재였을까. 의형제라고 하였지만, 가만 보면 경외에 더 가까웠다.
‘하긴, 정파인과 의형제를 맺고 도라옥까지 갇혔던 양반이다. 한마디로 사상이 괴짜인 자. 한데 힘을 숭배하는 마교에 수뇌부들과 천마를 없앤 존재가 나타났으니…….’
충분히 선망할 수 있는 일.
“또한 혈교의 잔당이 남아 있다고 한들……. 벌레들은 날뛰어봤자 벌레인 것이다. 언제든 밟아 죽일 수 있는. 그저 조금 거슬릴 뿐인 게지.”
그런 것인가.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넌 그분에 대해 완전히 잊거라. 이미 40년도 전에 떠난 사람이다. 알려고 해봤자 네겐 하등 좋을 것이 없다.”
그것도 맞는 얘기. 결국 장고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그는 사부의 뒤를 쫓지 않고, 나와 함께 하겠다는 것.
더는 이에 대해 의문도, 걱정도 갖지 않으리라.
마지막으로 말했다.
“앞으로 많은 도움을 청할지도 모릅니다.”
“그러거라.”
“불편한 일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상관하지 않는다.”
“사숙이라고만 생각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 비정하게 이용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러니 무르려면 지금 무르십시오.’
그러자 독마가 다정히 웃으며 다가와 어깨를 쓰다듬으며 답했다.
“내가 갈 때까지. 조심 또 조심하거라.”
고요한 호수에 돌멩이가 떨어진다. 장이서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잠시 후 한 발 물러나 다시 한번 정중히 예를 갖춰 포권을 취했다.
“기다리겠습니다, 사숙.”
마음의 짐 하나가 덜어지고, 더 무거운 하나가 쌓인다. 하나 이처럼 칼로 맺어진 연을 겹겹이 쌓아 나가는 것이 바로 강호다.
그러니 이제 더는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단호히 몸을 돌렸다.
독산각도, 마의도, 그리고 독마도.
최대한 이용해주리라.
또한…….
누군가 그들을 이유 없이 해한다면…….
‘반드시 피로 되갚아 주리라.’
그것이 내가 가는 마(魔)중의 정(正)일 테니.
장이서는 그렇게 서서히 모습을 감추었다.
언제고 다시 만날 이들을 고대하며.
그리고…….
‘자라난 잎은 마기를 머금은 흑화(黑花)인데, 그 뿌리는 백련(白蓮)이라……. 무척 닮았습니다, 형님하고.’
독마는 그런 장이서가 떠나고 난 후에도 한참을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제게는 형제이자 주군이었으며, 생애 유일하게 믿었던 정도였던 자.
뇌신.
그를 그리면서 말이다.
*
– 월하촌 칠소궁.
솨아아아아-
대나무가 시원하게 흔들린다. 바람은 선선하고, 하늘은 적절히 구름 끼고 푸르다.
이 정도면 길일.
“날 한번 더럽게 잘 골랐네.”
마오가 하늘을 보며 피식 웃는다.
단정히 올려 묶은 적색 머리에 은빛 관. 긴 체구에 어울리는 흑색의 고급스러운 무복.
그리고 등에 비딱하게 맨 창룡도 한 자루.
본래도 빼어난 용모였으나 이리 멋스럽게 꾸미니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뒤돌아볼 호남이다.
“준비됐나.”
들려온 목소리에 고갤 돌리자 못지않은 장신에 무복으로도 가릴 수 없는 근육질의 사내가 서 있다.
전장의 용, 구유.
그 역시 일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멋스럽게 꾸몄다. 화려함은 없지만 고풍스러움이 느껴진다.
그 옆으로 다소곳이 웃는 취홍란과 주먹 꽉 쥐고 응원의 눈길을 보내는 용태와 메기도 보인다.
바로 오늘이었다.
오랜 악연이자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반드시 넘고 가야 할 숙적.
무혈공 마이신.
바로 그와 종지부를 찍을 그날 말이다.
“괜……찮으십니까?”
괜찮냐고? 훗. 용태의 물음에 코웃음을 쳤다.
“당연하지. 난 천재니까. 우하하하!”
“동공이 엄청 흔들리셨지 말입니다.”
“시끄럽다, 메기! 추워서 그런 거다. 추워서.”
추운데 왜 눈이……. 마오가 죽일 듯이 노려보자 용태와 메기는 거북목이 됐다.
하나 모두가 다 알고 있다.
마오가 힘들어하는 건 아직 장이서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
“하여튼 쓸데없이 일만 벌여놓고 코빼기도 안 비치지. 빠져가지고…….”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그의 표정은 자신만만했다.
이건 장이서의 싸움이 아니니까.
그랑 상관없이 자신이 끝맺어야 할 일이다.
“다녀오마.”
이내 픽 웃고는 대문으로 향해 걸어 나갔다.
결과를 확신할 수는 없다. 재수 없긴 해도 마이신 그 자식은 강하니까.
하나 오늘 한 가지만큼은 확실히 보여줄 생각이었다.
이젠 예전처럼 입 꾹 닫고 멍청이같이 당하기만 하던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칠소궁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다녀오십시오, 공자님!”
“꼭 이기셔야 합니다!”
용태와 메기가 소리치고, 홍란은 꼭 쥔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끼이이익!
문을 활짝 열어젖히자.
척! 길목에 과평과 아신을 시작으로 이 열로 시립한 일백의 적색 무복의 무사들이 위엄있게 그를 맞이했다.
철마적.
아니, 이제는 칠무위가 된 그들이다.
“가자.”
그들이 마침내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마가.
목표는 마이신.
드디어 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