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5)
첩자의 마교생활-15화(15/350)
15.
“뭐, 왜.”
마오가 곁눈질로 부서진 창문을 한 번 보곤 괜스레 마른침을 삼키고 물었다. 무서운 건 아니다. 단지 장이서가 보통 미친놈이 아님을 깨달은 것뿐.
한데 예상과 달리 그는 환히 웃으며 다정히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하, 괜찮냐고? 너 지금 네가 뭔 짓을 했는지는 알아?”
“보좌로서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만.”
“야, 이! 너 지금 마가를 건드린 거야. 저 새끼는 이신 형님의 심복이라고. 지금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지.”
“예. 이만 궁으로 갈까요?”
“으아아아악! 너 똑바로 잘 들어. 지금 당장 짐 싸 들고 월하촌에서 떠나. 그리고 방첩대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천산 떠나서 아무도 못 찾을 해남으로 가든지. 뭐든. 다신 돌아오지 마.”
죽고 싶지 않으면.
마오가 잔인한 축객령을 던지고 문밖으로 향했다. 이에 장이서가 입맛을 다시며 눈썹을 긁적이곤 말했다.
“왜 그래야 합니까.”
“왜냐고? 우하하! 안 그러면 너 죽어. 자객 새끼들이 이제부터 너만 노릴 거거든. 그것도 그냥 자객도 아니고 도살방. 그 악귀 같은 놈들이 말이야. 며칠 뒤면 저 검은 호수 위에 시체로 둥둥 떠다니게 될 거다.”
“내기할까요.”
“뭔 내기.”
“제가 이곳 월하촌에서 살아남는지에 대한 내기 말입니다.”
“뭐?”
“살아남으면 그땐 군소리 말고 제가 칠공자님 보좌하는 겁니다.”
하. 마오의 입에서 헛숨이 뱉어졌다. 지금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도살방은 마교 제일의 살수 단체. 그것도 말이 살수지, 돈이면 안 하는 짓이 없는 악랄함의 극인 자들이다.
한데 살아남는다고? 천민인 네가?
“하하하하! 좋아. 만약 살아남으면. 그럼 그땐 네 말대로 다 해주지.”
마오의 입가에 비소가 서리고, 눈은 일말의 기대도 없이 차갑다. 하나 이를 마주 보는 장이서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다.
“그때 가서 딴말하기 없는 겁니다.”
“당연하지.”
두 사람의 안광이 허공에서 얽혔다. 남아일언은 중천금이라. 장이서는 약속을 받아내듯 근엄하게 선문을 제시했다.
“남아일언.”
그러자 마오도 당당하게 답했다.
“남아일언!”
x발……. 됐다. 그냥 약속받은 거로 치자. 장이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오는 다시금 밖으로 걸어 나가며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객기 부리지 말고 떠나. 내 옆에서 누가 죽어 나가는 거 이젠 쳐다도 보기 싫으니까.”
그렇게 마오는 떠났다. 그리고 어느새 홀로 남겨진 장이서.
그가 박살이 난 방을 살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내가 가긴 어딜 가냐. 너랑 네 누이. 그리고 너희 본가인 마가까지. 아니? 천산 다 털어먹기 전까진 절대 안 가, 인마. 알겠냐?”
피식.
장이서의 입가에 웃음이 짙게 서렸다.
* * *
– 무림맹 호북지부 암각.
“이건가. 아닌데.”
어둑한 방바닥에 주저앉아 발 디딜 틈 없이 널브러진 서류들을 뒤적이는 미모의 여인.
이지적인 꽃, 지화(知花)로 알려진 암각 부각주 제갈소미다.
본래라면 곧 퇴근할 시간이라, 문서정리 다 끝내고 얌전한 고양이처럼 제갈상을 기다리고 있어야 정상이거늘. 웬일인지 그녀는 최근 들어 야근이 일상이었다.
그것도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의적으로.
“으흠, 소미야. 이제 집에 가야 하지 않겠니.”
“아, 할아버지. 먼저 가세요. 전 아직 찾아볼 게 더 남아서요.”
“허허, 모든 일엔 때가 있는 법이거늘. 쉴 땐 쉬어야 하는 것이 효율을 증진하는 방법이라 내 누누이…….”
“그냥 혼자 가기 심심해서 그러신 거잖아요. 각주님, 공과 사 구분 좀 해주세요. 저 바빠요.”
“어흠……. 대체 뭘 한다고 그러는 게냐.”
제갈상이 깨갱 고개를 숙이고 슬그머니 옆으로 다가와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제갈소미가 앞에 분류한 서류들을 보곤 눈을 빛내며 물었다.
“이건 마교의 사조직들이 아니더냐.”
“예.”
마교의 조직이라 하면, 천마전 아래 광명좌우사자와 칠대공자가 있고, 그 밑에 장로회와 오룡당이 있으며 외에도 백여 개가 넘는 소대가 있었다.
하나, 이건 어디까지나 대외적으로 알려진 빙산의 일각.
실제로는 수많은 가문과 사조직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그중 제갈소미가 이토록 야근까지 하며 찾아내고자 했던 곳은 바로…….
“찾았다.”
죽일 도(屠). 죽일 살(殺).
“도살방?!”
그렇다. 그녀가 활짝 웃으며 간신히 찾아낸 서류는 공식적으로는 마교 살수 단체로 기재된 도살방의 기록이 적힌 것이었다.
제갈상은 더더욱 의문이 깊어졌다.
“도살방이라면 마교의 은거 고수인 사씨 형제가 운영하는 곳이 아니더냐.”
“예. 그들의 난폭함에는 유명한 일화들이 많죠. 천산의 평범한 교인들에겐 그들이 교주보다 더 두려운 존재라는 말도 있고요. 실력은 웬만한 대주에 버금간다고도 하죠.”
“그렇지. 한데 그들을 왜.”
제갈상의 물음에 제갈소미가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제갈상은 아차 했다. 이 정도 얘기를 해줬으면 나머진 스스로가 찾아내야 하는 법.
“어디 보자.”
제갈상이 흥미로운 웃음을 짓고는 다시 바닥에 늘어진 서류들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자 한 가지 공통점이 발견됐다.
“전부 마가에 대한 것이로구나. 도살방의 사씨 형제 중 아우인 사호정이 장자인 마이신에게 목숨 빚을 진 적이 있지.”
“예. 사호정이 멋모르고 건드린 자가 하필 금룡당주의 조카였고, 그때 마이신이 중재를 서 겨우 목숨을 건졌죠.”
“흐음, 기억이 나는구나.”
한데 그게 왜. 제갈상이 고개를 갸우뚱 숙이자 제갈소미가 능청스레 웃는다. 더 분발해 보시라는 거다. 이에 제갈상이 괘씸하다는 듯 살짝 눈매를 좁히곤 생각에 잠겼다.
“도살방이라면……. 과거 칠공자의 하인들을 죽인 전례가 있지. 호룡당 내에선 그들을 범인으로 지목했었지만, 이상하게도 죄를 묻지 않고 쉬쉬한 사건이었다.”
“맞아요! 제 생각엔 그때 의뢰인이 칠공자의 형인 마이신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본보기였던 거죠. 하루아침에 신분이 급상승한 서제(庶弟)한테 까불지 말라는 경고.”
제갈상이 침음을 뱉었다. 그 말인즉슨…….
“어쩌면 칠소궁에 들어간 103호에게도 그 화가 닿을 수 있겠구나.”
“제 생각이 맞다면요. 그리고 그 사람은…….”
제갈소미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서렸다.
103호에 대해 샅샅이 조사하고 알게 된 사실은 그가 구규지체라는 선천적인 제약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절정의 단계에 올라설 수 없는 치명적인 제약.
한데 그런 그가 위험천만한 도살방과 맞붙는다면 어찌 되겠는가. 필패. 아니 필사(必死)다.
“녀석. 요즘 왜 이리 열심히 일하는가 싶더니. 모두 103호 때문이었느냐?”
제갈상이 불쑥 질문을 던지자 제갈소미가 당황하며 중얼거렸다.
“아, 그게……. 그냥 궁금하기도 하고. 또 어쩌다 보니까…….”
“왜. 그가 마음에 드는 것이냐? 자중하거라. 요원에겐 절대 어떠한 감정도 담아선 아니 되니.”
“할아버지! 그런 거 아니에요.”
“껄껄, 그리고 네가 걱정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그만 집에 가자꾸나.”
“없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원래 같으면 이리 쉽게 말해줄 양반이 아니나, 오늘은 빨리 집에 가고 싶은 탓인지 바로 답을 해주었다.
“귀주의 풍림(風霖)을 아느냐?”
“풍……림이라면……. 설마 십 년 전쯤에 사라진 살수 단체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제갈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제갈소미가 화들짝 놀랐다. 풍림. 본래 수 대에 걸쳐 명맥을 이어올 만큼 유명했던 살수 무리였다.
한데 그들이 왜.
“103호 그 아이가 마교에 들어가 처음으로 보내온 보고서에 딱 세 글자가 적혀 있었느니라.”
제갈소미가 인상을 찌푸리자 제갈상이 껄껄 웃으며 또박또박 이렇게 말했다.
“풍(風), 림(霖), 멸(滅).”
“세상에.”
“그 아이 열아홉 때의 일이었지. 허허. 방첩대에 들어가 일하다 보면 여기저기 원한도 쌓이기 마련. 하필 풍림이 그때 그 아이를 목표로 삼은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지.”
제갈소미는 벌려진 입을 채 다물지도 못했다. 도대체 구규지체인 그 몸으로 어떻게? 아무리 암각에서 길러낸 첩자라고 해도 무슨 수로…….
“그러니 걱정 말고 이만 가자꾸나. 껄껄껄!”
제갈상이 호탕한 웃음과 함께 밖으로 나섰다. 제갈소미는 손에 들린 도살방의 문서를 한 번 살피곤, 바닥에 툭 내려놓더니 밖으로 나섰다.
“같이 가요, 할아버지!”
천하제일뇌, 제갈상이 저리 말했다면 걱정 없이 발 편히 뻗고 자도 되는 거다.
물론 103호에 대해 더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 * *
– 취선루 8층.
“고생하셨습니다.”
홍란은 일을 마치고 올라온 장이서를 위해 근사한 상을 차려놓고 반겼다.
한데 장이서의 표정이 영 좋지 않다.
“일이 잘 안되셨나 봅니다.”
“어. 엄청.”
솔직한 대답에 취홍란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졌다. 대략 무슨 상황인지는 알고 있었다. 마오에 대해 조사를 하면서 그와 가문에 얽힌 악연을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서자가 조금이라도 올라서는 걸 원치 않아, 계속 훼방을 놓는다고.
아마 그래서 싸움이 난 것일 테다.
한데.
“마진구 그 새끼 친구들이 검을 챙겨갔어. 은자 이백오십 냥짜린데. 술값 대신 받으려고 했던 내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버렸어. 받아내지 못할 거였다면 문하고 창문까지 부술 일은 없었을 텐데. 그게 너무 화나.”
쾅! 행여 상이 부서질세라 소심하게 내리치는 장이서. 취홍란은 이를 멍하니 보다가 푸훗 입을 가린 채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곤 황급히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웃기냐. 웃기겠지. 나도 웃겨. 왜 놓쳤을까. 하. 이걸 어떻게 받아내지?”
참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마가와 그 사달을 벌여놓고 머릿속에 온통 받을 돈 생각뿐이라니.
또르르.
취홍란이 진정하라는 의미로 다소곳하게 술잔을 채웠다. 그러자 장이서가 고맙다 눈인사하곤 이를 한입에 들이켰다.
캬. 쓰다.
이내 입맛을 다시곤 대뜸 청천벽력 같은 말을 던졌다.
“내일부터 가게 문 닫아.”
“예?”
“도살방에서 자객들이 올 거야.”
홍란이 벌려진 입을 조신하게 손을 올려 가렸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도살방의 자객이라니.
“들어보니 도살방의 사씨 형제랑 마이신이 각별한 사이인 듯하더군. 전에도 몇 번 칠공자 주변 사람들을 해친 적이 있나 봐.”
“설마 하인들이 살해됐다는 그 사건이…… 전부 도살방 짓이었단 말입니까?”
장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도 몰랐던 얘기다.
이를 알게 된 건 의외로 흑룡파의 두목인 용태의 입을 통해서였다.
‘그러니까 아실지 모르지만, 제가 호룡당 출신으로 7급귀보다 한 단계 위인 6급귀. 예,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그때…….’
그는 자신이 호룡당에 몸담을 때 마오의 하인들이 모두 살해당했던 사건이 벌어졌었다고 했다.
이에 치안과 호위를 담당하는 호룡당은 이를 특급 사건으로 분류. 특별조를 구성해 조사했었고, 그 결과 사씨 형제의 짓이라 특정했었다.
한데.
“덮었다더군. 용태의 말로는 무혈공(無血公) 마이신이 손을 쓴 것 같았다고 했다. 위에서도 가문의 일이니 가문 내에서 해결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던 것 같고.”
“어떻게 그런 일이…….”
아무리 미워도 가족이거늘. 자객들까지 보내 훼방을 놓는단 말인가.
“그럼 이번에 도살방이 온다는 건…….”
취홍란이 설마 아닐 거라며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불안한 예감은 늘 틀린 적이 없다.
“그래, 나다.”
장이서의 입에서 청천벽력이 떨어졌다.
#보좌, 시작이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