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55)
첩자의 마교생활-155화(155/350)
155.
#친선 비무? (4)
잊고 있었다. 자신이 이곳에 왜 온 것인지를.
그동안 마이신에게 당했던 악연의 종지부를 찍기 위함이지 않았던가.
죽고 사는 건 그다음 문제.
구유는 지금 그걸 가르쳐주고 있는 거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넌 우리의 주인이다.”
“구유…….”
위풍당당한 구유와 칠무위를 바라보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건 아마도 사선(死線)을 넘어 전쟁을 마주하는 전사들의 자세를 처음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
싸우겠다는 확고함.
그리고 다시금 깨달았다.
“이 징그러운 것들…….”
자신이 이고 가야 할 건 이들의 목숨이 아니라.
“좋아. 대신 딱 하나만 명심해…….”
이들의 의지라는 것을. 그러니 그 의지를 구부러트릴 게 아니라.
더 높이 비상케 해줘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나가서 뒈지고 오면 나한테 진짜 뒈질 줄 알아. 알겠냐, 이 자식들아-!”
마오의 목청 터지는 외침에 관중인 수뇌들이 황당함에 쳐다보고, 칠무위는…….
마오오오오오-!
맹수가 부르짖듯 더 커다란 외침으로 응답했다.
“미치겠네, 우리 주인.”
「…….」
과평이 피식 웃고, 아신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가지.”
구유가 비무대 위로 올랐다.
그 어느 때보다도 투지를 불태우며.
“지금부터 칠소궁과 마가의 친선 비무 대회를 시작하겠소!”
지대호의 개전 소식이 울려 퍼졌다.
*
“야만인인가.”
“흉노족 같군.”
몸 하나에 머리 두 개. 칠장로 이두쌍마 양유와 양요가 칠무위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둘이 똑같이 생겼지만, 표정이 사나운 게 양유. 온화한 게 양요다.
본래 장로가 되기 전에 그들이 했던 일이 교외에서 인재를 데려오거나 신진 고수를 판별하고, 쓸만한 인재들을 기록해 두는 일이었다.
장이서를 데려온 장본인들이니 말 다 한 것.
그런 의미에서 칠무위의 등장은 흥미를 끌어내기 충분했다. 하지만…….
“모처럼 출사표를 던졌는데 하필 상대가 마가칠객이라니.”
“절반 이상은 관에 들어가겠지.”
아쉽게도 큰 기대는 없었다. 어차피 오늘의 결과는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그리고 이는 이두쌍마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심지어 구유의 실력을 아는 나락과 삼공녀 사해령도 마찬가지.
“흑라마권 탁하천이 선봉에 나서는군요.”
“아래부터 순서대로 내보내려는 거겠지.”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차라리 번천검객이 먼저 나왔다면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칠소궁 측에선 순서를 정하는 것부터 가장 큰 고비일 겁니다.”
나락이 냉정히 현실을 짚었다. 그리고 그의 판단은 명확했다.
마가칠객은 모두가 일백마성에 들어가는 절세 고수들.
구유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선두에 나서 마가칠객 모두를 꺾고 최강자인 번천검객과 싸운다는 건 자멸 행위에 가까운 일이었다.
어떻게든 앞에서 수하들이 최소 넷. 아니 솔직히 여섯은 맡아줘야 했다.
문제는…….
‘그사이 전원이 다 죽을 수도 있다. 그래도 마가칠객을 몇이나 쓰러트릴지는 미지수.’
한마디로 피해가 클 수밖에 없는 일. 하나 지금으로선 다른 방법이 없다.
한데.
“……!”
비무대를 지켜보던 나락과 사해령의 눈이 부릅떠졌다.
아니, 모두가 의문에 잠겼다.
“어째서……?”
이는 칠소궁 측에서 선봉으로 나선 이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우람한 근육에 붉은 눈동자.
구유다. 칠무위에서 수하들도 아닌 칠소궁 최강자인 그가 선봉으로 나온 것이다.
이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최악의 대진표.
‘장이서…… 넌 지금 이 상황을 알고 있는 것이냐.’
사해령의 얼굴에 진한 근심이 서렸다.
*
구유의 등장에 당황한 건 수뇌들뿐만 아니라 마이신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생각이지?’
당연히 수하들부터 내보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승률이 단 일 할이라도 있을 테니까. 해서 자신들도 가장 약한 탁하천을 먼저 올린 것.
물론 상대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멍청함을 꾸짖기 위함도 있긴 했다.
하나 어쨌든.
자신들이 탁하천을 내보내는 걸 봤다면, 응당 수하들을 먼저 올리는 게 순리 아닌가.
심지어 눈앞에 보이는 그의 수하들만 자그마치 일백이다.
그들을 다 내보내면 아무리 마가칠객이라도 여럿은 지쳐 떨어지기 마련.
한데 수장이 먼저 나오겠다니.
물론 수하들을 아끼는 마음 때문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건 잔혹한 마교 수뇌부의 머리로는 즉각 도달하기 힘든 사고였다.
‘매도 먼저 맞는 부류인가? 아니면 어차피 질 것 하나라도 꺾어서 자존심은 챙겨보시겠다?’
결국 지금 할 수 있는 생각은 여기까지가 한계.
마이신은 제 앞에 선 탁하천에게 지나가는 바람처럼 말을 건넸다.
“운이 좋구나.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이리 빨리 얻게 되었으니. 흔히 오는 기회는 아닐 거다. 두 번 올 기회도 아닐 거고.”
알고 있다. 흑라마권의 입가가 비틀렸다.
“염려 마십시오. 저놈이 허장성세에 불과하다는 걸 반드시 눈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중앙으로 걸어 나가는 흑라마권 탁하천.
그리고 맞은편에선 구유가 다가온다.
마침내 한 달 만에 마주 선 두 사람.
흑라마권이 빠득 이를 갈며 먼저 입을 뗐다.
“쥐 죽은 듯이 지내라고 분명히 경고했을 텐데?”
“…….”
“주목이라도 받고 싶었나? 한데 어쩌나. 그게 네놈이 오늘 여기서 죽는 이유인 것을.”
“…….”
“그래도 주제는 알아 다행이구나. 이리 먼저 죽겠다고 나온 걸 보면. 묻자. 왜 먼저 나온 것이냐.”
그의 물음에 사이에 서 있던 지대호도 눈썹을 올렸다. 그도 궁금했다. 왜 그가 먼저 나온 것인지.
하나 구유는 별다른 말 없이 그저 뒤를 슬쩍 흘겼다.
‘대장. 제게 맡겨주십시오.’
‘아니, 아신 너는 빠져. 일대일은 내가 가장 약하니까 나부터 간다. 저쪽도 제일 만만한 새끼가 나왔잖아.’
사실 아신과 과평은 서로 먼저 나서겠다고 했었다. 아니, 외에도 칠무위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자신이 나가겠다고.
하나 구유는 이를 한마디로 일축했다.
‘다음은 없다.’
이는 오만한 과신도, 무모한 대책도 아니었다.
수하들을 믿지 못해서도, 마가칠객을 과대평가해서도 아니었다.
이건 수많은 전장을 승리로 이끈 전사의 감이었다.
‘과평이나 아신이라면 한둘을 상대할 순 있다. 하지만 저들이 원하는 건 우리의 죽음. 하나라도 잃는 순간 기세가 꺾이고, 마오의 대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오늘의 주인공은 자신들이 아니다.
마오와 마이신의 승부였다.
자신들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그를 한없이 비춰주는 조역. 헛된 죽음으로 재를 뿌릴 순 없다.
이것이 바로 구유가 선봉에 나선 이유.
그러니까.
“이쪽 손이었던가.”
구유가 척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이에 흑라마권의 고개가 갸우뚱 숙어진다.
설마 한 달 전 자신이 그랬듯 악력 대결이라도 하자는 것인가.
“크큭, 크하하하하! 네놈이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나. 감히 이딴 식으로 날 도발해?”
“왜. 자신 없는가?”
없기는. 덥석! 흑라마권은 망설임 없이 구유의 내민 손을 붙잡았다.
“어디 재롱 한번 떨어보…… 크악!”
털썩. 말을 다 하기도 전에 탁하천이 비명과 함께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에 귀빈석에 있던 관중들의 눈썹이 동시에 크게 올라갔다.
지금 대체 뭘 본 것인가.
구유는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서 있고, 흑라마권은 옆구리에 화살 박힌 사람처럼 오만상을 찌푸린 채 무릎 꿇고 그의 손을 양손으로 붙잡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비굴해 보여 보는 이들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하나 타들어 가는 속내가 흑라마권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무, 무슨 힘이……!’
그는 비굴함을 느낄 새도 없이 머릿속이 고통으로 가득해졌다.
악력만 놓고 보면 마가칠객 중 대력귀와 금창악불을 제하면 자신이 세 번째로 강했다.
한데도 무용지물이었다. 그냥 짓눌리는 기운에 아무런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이미 손은 말라비틀어진 오징어처럼 쪼그라들었고, 이대로 더 가면 뼈까지 다 박살 날 기세.
“아, 아직이다! 큭…… 아직 비무는 시작하지 않았다! 이건 반칙이란 말이다!”
결국 흑라마권은 최악의 수를 던졌다. 지대호에게 굴욕스러운 도움 요청을 보낸 것.
‘저런 병신이 있나.’
‘크큭, 무혈공 체면이 말이 아니군.’
수뇌부들 사이에서 한탄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이신은 얼굴이 푸르스름해졌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쨌든 주관을 맡은 지대호가 시작 신호를 주진 않았으니.
“음……. 물러서게.”
결국 떨떠름한 기분으로 지대호가 싸움을 중재했다. 그로서도 이런 황당한 경우는 처음.
이에 구유가 손을 놓고 한 걸음을 물렸다.
“크윽…….”
흑라마권은 풀어지지 않는 제 손을 주무르며 치욕을 삼켰다. 고통이 사그라들자 머릿속에 온통 욕지기가 박힌다.
‘이 개 같은 새끼! 찢어 죽일 놈!’
얼굴은 부끄러움에 새빨개진 상태. 하나 그래도 괜찮다며 스스로를 달랬다. 어차피 싸움은 결과다.
이긴 놈이 웃는 거고, 진 놈은 우는 거다.
그러니까.
“시작하시오.”
지대호가 신호탄을 쏘듯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파아앗!
그러자 동시에 흑라마권의 신형이 돌풍을 일으키며 쏘아졌다. 그의 독문무공인 흑마십팔권(黑魔十八拳)이다.
‘실력은 확실하군.’
이를 가까이서 지켜보던 지대호의 눈매가 반짝였다.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비무가 시작된 것.
본디 그의 무공은 강하기도 하지만, 변칙적이면서도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연격이 특기였다.
그래서 그물처럼 빠져나갈 틈이 없다고 하여 붙여진 별호가 흑라마권.
‘그에게 선공을 빼앗기면, 반격의 기회를 노리긴 쉽지 않지. 그의 무공을 본 적이 없다면 더더욱.’
지대호는 진중한 눈매로 선공을 빼앗긴 구유를 지그시 살폈다. 이제 어찌 나올 것인가.
한데 바로 그때.
“큭?!”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펼쳐졌다. 흑라마권의 무수한 주먹이 상대에게 닿기도 전에 앞으로 나온 구유의 발이 먼저 발등을 찍은 것.
그 덕에 일순 자세가 흐트러지고, 덥석! 흑라마권의 얼굴을 구유의 커다란 손이 뒤덮었다.
투두두둑!
뒤늦게 주먹들이 날아가 꽂히지만, 망가진 자세에 거리감까지 무너져 형편없는 애교 수준.
진짜 놀랄 일은 그다음이었다.
“자, 잠깐! 잡는 것도 허용이란 말은 듣지……!”
콰앙! 구유의 무자비한 손이 시끄럽다는 듯 그대로 바닥에 흑라마권을 내리꽂았다.
굉음이 어찌나 큰지 장원 담장을 넘어 밖에 모인 이들에게까지 닿았다.
마일성이 단단한 강옥까지 섞어 만든 비무대에 거미줄 같은 실금이 서렸으니 그 파괴력은 문답무용(問答無用)이다.
“…….”
구유는 바닥에 내다 꽂은 손을 떼고 허리를 편 채 다시 우뚝 일어섰다.
흑라마권은 두 눈에 흰자위만 남긴 채 생사 불명이다.
장내는 정적에 휩싸였다.
코웃음 치던 칠장로도, 우려했던 사해령도, 무심히 지켜보던 가주 마일성도.
아니, 모두가 다 굳은 표정으로 침묵에 잠겼다.
‘단 일격에…….’
‘흑라마권을 쓰러트렸다?’
생각지도 못한 대이변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