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56)
첩자의 마교생활-156화(156/350)
156.
#친선 비무? (5)
침묵 속에 술렁인다.
단순히 구유가 이긴 것에 놀란 게 아니었다.
이는 기세였다.
단 일격에 흑라마권 탁하천을 쓰러트리고, 우뚝 서서 저들을 바라보는 저 시선.
그건 딱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자신 있으면 와라.’
보고만 있어도 수뇌들의 눈매가 좁혀지고, 내기가 꿈틀거렸다.
걷잡을 수 없는 살기가 뿜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는 전장의 용.
수만 명의 살의도 견뎌냈던 그다.
그리고 구유는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지금 저들은 그저 관중일 뿐.
이곳에서 미쳐 날뛸 수 있는 건, 오직 비무대 위의 자신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칠소궁 승! 마가에서는 다음 상대를 준비해 주시오.”
지대호의 외침이 흩날리고, 그제야 얼어붙었던 공기가 다시금 서서히 흐르기 시작했다.
마이신과 대공자는 두 눈에 불길이 서렸고, 이내 마가의 수하들이 달려와 흑라마권을 비무대 아래로 끌어 내렸다.
지대호는 그사이 구유를 힐긋 보며 생각했다.
‘괴물 같은 녀석을 안으로 들였군. 이것도 장이서 자네가 한 일인가?’
몸이 아프다더니. 그 이유가 저들을 얻기 위함인 것이었다면, 백 번. 아니 천 번 이해하고도 남겠다.
흑라마권을 단 일격에 무력화시킬 괴력이라니.
하나 그것보다도 놀라운 건 한순간에 상대의 허를 찌른 움직임이었다.
그물망처럼 쏘아진 십팔 번의 연격에 현혹되지 않고, 단번에 발등을 찍어 흑라마권의 무공을 파훼했다.
이는 수라장을 수없이 헤쳐 온 이들도 쉽지 않은 일.
‘우연인가?’
지금으로선 그렇게 생각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었다. 이는 다른 수뇌들이 보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우연이야.”
“운도 실력이니.”
칠장로 이두쌍마 역시 그리 생각했고.
“어떻게 생각해?”
“초행자에겐 본래 천운이 따르는 법이지요.”
무한성의 물음에 조양악도 그리 답했다.
그나마 진면목을 알아본 건 이미 그의 실력을 알고 있던 나락과 사해령뿐이었다.
‘나락을 이긴 건 우연이 아니었구나.’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모두의 머릿속에 구유의 존재감이 깊이 각인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사이 마가 측에서 두 번째 무인이 비무대 위로 올라섰다.
웬만한 장정보다 머리 하나 작은 단신의 사내.
“제가 한번 나서보도록 하지요.”
그림자가 그 움직임을 쫓아가지 못한다는 경신술의 대가.
무영신보 거북조였다.
‘쌍옥접과 대력귀가 아니라 무영신보가 먼저 나섰다?’
지대호는 그의 등장에 고개를 끄덕이며 흥미진진한 눈빛을 보냈다.
그뿐 아니라 수뇌들도 모두 같은 반응이었다.
단순히 실력으로 치면 마가칠객에서 다음으로 쌍옥접 곡수련이나 대력귀 양두이가 나서야 할 텐데, 다다음 순번인 무영신보가 먼저 나선 것.
그 이유도 충분히 짐작이 갔다.
‘거북조는 경공뿐만 아니라 보법에도 능통하다. 그라면 조금 전 구유의 움직임이 우연인지, 실력인지도 판가름 나겠지.’
지대호처럼 마이신도 궁금했던 것. 과연 구유의 진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말이다.
그렇게 모두의 기대 속에 두 사람이 마주 섰다.
지대호는 아까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이번엔 인사 나눌 새도 없이 바로 손을 들어 올렸다.
“시작하시오!”
그렇게 마가칠객과 구유의 두 번째 대결이 시작되었다.
팟!
역시나 이번에도 먼저 움직인 건 마가 측이다.
다만 무영신보 거북조는 흑라마권처럼 무작정 덤벼드는 성급한 결정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타인보다도 신중한 편이었다.
‘자네 같은 자들을 잘 알고 있네. 타고난 거력으로 힘이면 다 되는 줄 아는 자들.’
구유의 주변을 빙그르르 돌던 무영신보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한다. 그러자 어느새 수없이 많은 잔상이 남겨지기 시작했다.
‘나왔군. 거북조의 다신보(多身步)!’
지대호의 눈매가 번뜩이고, 이를 지켜보던 이들도 한껏 집중했다.
“저게 뭐야. 뭐가 진짠데!”
마오는 제 눈을 박박 비비며 그의 신형을 좇았다. 하나 이젠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이었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이건 마치 수십 명의 거북조가 구유를 둥그렇게 둘러싼 형국이었다.
구유 역시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는지 두 손을 늘어트린 채 멍하니 이를 지켜볼 뿐이다.
이에 무영신보는 회심에 찬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솔직히 자네가 흑라마권을 쓰러트릴 줄은 생각 못 했네. 그 힘만큼은 인정해 주지. 하나 승부는 결단코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닐세. 내 오늘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음을 가르쳐 주겠네.”
말을 마침과 동시에 기류가 돌변했다.
핑!
날렵한 음색과 함께 거뭇한 무언가가 구유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서걱!
이내 어깻죽지의 천이 찢어져 너풀거린다.
하나 이건 시작일 뿐. 비무대 위엔 시커먼 실선이 구유를 가로지르듯 계속해서 그어졌다.
“저건……!”
마오의 당황한 외침에 옆에서 웬 커다란 그림자가 입을 열었다.
“다신보에 이어 지금의 무영신보를 만들어준 또 하나의 비기이지요.”
“엉큼한 호랑이!”
엉큼?!
“크흠!”
한껏 노려보는 영리한 호랑이 지대호다. 그가 어느새 비무대에서 내려와 옆에 우뚝 서 있었다. 무영신보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고 미리 피신한 것.
“본래 무영신보는 선천적으로 작은 체구 탓에 숱한 괴롭힘을 당하고 자랐지요.”
“뭔데, 갑자기. 하나도 안 궁금해. 누가 물어본 거야!”
“이에 참다못한 그는 결국 마을 사람들을 모두 없애버렸습니다. 그때가 고작 그의 나이 열세 살.”
“뭐?!”
무영신보의 복수극은 제법 유명한 일화였다.
천산의 작은 산골 마을에서 자란 그는 친모가 죽으면서 태어난 조산아였다.
아비란 자는 어미 죽이고 나온 놈이라며 그를 막대했고, 주변에선 자라다 만 놈이라며 조롱하기 일쑤였다.
힘도 없고, 지켜줄 자도 없었던 또래보다 자그마한 아이.
그가 택한 건 슬픔도, 분노도 아닌 복수였다.
“무슨 수로 죽인 건데? 열세 살이면 지금보다 더 힘도 없고 작았을 거 아니야.”
어느새 이야기에 빠져든 마오가 물었다. 이에 지대호는 바닥의 돌멩이를 주워 들고 말했다.
“바로 이겁니다.”
“돌?!”
“타고난 돌팔매 실력과 지치지 않는 민첩한 두 다리!”
그랬다. 무영신보는 돌을 던져 맞추고, 쫓아오면 도망친 뒤 다시 돌을 던지고……. 무려 반나절에 걸쳐 마을 사람들을 모조리 쓰러트렸다.
“그럼 저 거뭇한 게…….”
“흑영비도(黑影飛刀). 그의 절기이자 지금의 그를 본교 서열 69위까지 오르게 만든 원천이지요.”
흑영비도.
이것이 바로 저 거뭇한 실선의 정체였다.
“그리고 한 번 걸려든 이상 이를 피해내기는…….”
쐐애애액!
그 순간 흑영비도 하나가 비무대 밖으로 넘어온다. 그것도 하필 지대호가 있는 곳!
“엇!”
당황으로 물든 사이, 푹! 지대호가 이를 팔등으로 막아냈다.
황당해 바라보자 팔에 박힌 비도를 쑥 뽑아내곤 씨익 웃으며 마저 말을 이었다.
“쉽지 않을 겁니다.”
아니, 무섭게 칼 맞고 왜 웃는 건데. 마오가 침을 꼴깍 삼켰다. 어쨌든 중요한 건 지금 상황이 매우 위험천만하다는 것 아닌가. 자칫하면 가만히 서서 당할 수도…… 잠깐!
“피할 수 없다면 돌파하면 되잖아!”
마오가 지대호의 두꺼운 팔뚝을 이리저리 살폈다. 한데 아무리 봐도 피 한 방울 나온 게 전부다.
이 정도면 요혈만 피해 몸으로 막아내면 된다.
“호오.”
지대호는 의외라는 듯 눈을 빛내며 제 턱을 어루만졌다. 왈패 같던 마오가 이젠 제법 무인의 티가 나기 때문.
하지만.
‘무영비도 거북조의 진짜 무서움은 다신보도, 흑영비도도 아닌 마지막 세 번째.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하는 신중함이다.’
절대 생각처럼 그리 간단하지 않을 거라는 얘기. 만일 마오처럼 섣불리 판단하고 움직였다간 그의 심계에 도리어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흑라마권 때와 같은 우연은 절대 불가한 상황.
‘과연 자네는 답을 찾을 수 있겠는가.’
지대호가 흥미진진한 눈으로 구유를 살폈다.
물론 이번에도 큰 기대는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거슬리는 건 있었다.
힐긋 뒤를 살폈을 때, 칠무위가 시종일관 웃고 있었다는 점. 그것도 아주 여유롭게 말이다.
“헛!”
그리고 마침내.
구유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이 정도면 네놈도 슬슬 깨달았겠지.’
한편 무영신보는 흑영비도를 내던지며 생각했다.
‘그 자리에서 벗어날 방법은 오직 돌파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이는 놀랍게도 마오가 한 생각과 일치했다.
본래 아무리 빠른 것도 일정한 속도로 계속 보다 보면 느리게 느껴지는 법.
거기다 살짝씩 스치는 흑영비도의 위력 또한 분명히 파악했을 것이다.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정도라는 것을.
이런 상황에서는 십중팔구 대부분이 똑같은 결론을 내렸다.
‘육참골단. 살을 내어주고 뼈를 취하겠다고 말이다.’
특히 흑라마권을 일수에 쓰러트릴 정도의 강자라면 더더욱 그랬다.
수없이 많은 수라의 장을 거친 만큼 어느 정도 모험적이고 또 도전적인 자신감이 짙게 깔려 있기 때문.
하지만…….
이는 모두 무영신보가 유도한 움직임이었다.
‘곧 불나방처럼 달려들겠지. 하나 이건 모를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진짜 비도가 숨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후후후.’
바로 이것이었다. 지대호가 말했던 무영신보 거북조를 고수의 반열로 오르게 만든 신중함!
태생적 약골이기에 함정을 파놓고 상대를 사냥하는 바로 이 치밀함 말이다.
‘자, 오거라!’
마침내 구유의 눈빛이 돌변하고, 발걸음이 내디뎌지는 그때.
“끝내 주마!”
팟!
무영신보의 품에서 기존 것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날카로운 암기가 쏘아져 나갔다.
분명 같은 모양이었지만, 내용은 달랐다.
암석도 뚫어버릴 정도의 강도와 첨예함을 지닌 진(眞) 흑영비도였다.
심지어 거침없이 날아가는 속도 또한 기존과는 비교가 안 됐다. 오히려 다른 비도들에 시야가 익숙해진 탓인지 다섯 배는 더 빠르게 느껴졌다.
‘됐다!’
이에 무영신보가 승리를 확신하며 마지막 절망에 빠진 구유의 눈을 확인하려는 그 순간.
‘어……?’
도저히 믿지 못할 모습이 두 눈에 담겼다.
‘어째서……?’
그의 초점이 너무도 여유롭게 자신을 좇고 있던 것.
흑영비도도 아니고, 제 잔상들도 아닌.
진짜 자신을 말이다. 마치 진 흑영비도를 펼치는 순간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행보는 더더욱 경악이었다.
쉬쉬쉭!
자세를 한없이 낮춘 그가 앞서 던졌던 실낱같은 흑영비도를 모두 피해낸 것.
그리고 다음으로 날아든 진(眞) 흑영비도는…….
핑그르르 돌아 낚아채고는 사형 선고를 내리듯 역으로 내던졌다.
푹!
그대로 발등에 꽂혀버리는 비도.
“큭?!”
무영신보는 당황함에 제 자리에 멈춘 상태로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보았다.
한 손을 뻗은 채 저를 향해 야수처럼 달려드는 사내를.
콰아앙!
거북조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그 뒤로 모두에게 보인 그의 모습은 흑라마권과 마찬가지로 머리부터 바닥에 내다 꽂혀 무력하게 기절해버린 패배자였다.
그리고 구유는 자리에서 일어나 태연하다 못해 무심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다음.”
좌중이 또다시 침묵에 빠져드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