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59)
첩자의 마교생활-159화(159/350)
159.
#9급귀 단리영
와아아아아!
지대호의 판정이 떨어지자 막혔던 숨이 터지면서 칠무위 측에서 장원이 들썩일 만한 함성이 빗발쳤다.
반면 마가 측은 사색이 되었고, 이를 지켜보던 수뇌부들은 모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건 그냥 풍지산 하나를 꺾은 게 아니었다. 동귀어진을 택한 노구패. 그리고 이를 종용한 마가.
이들 모두를 꺾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야말로 칠소궁의 위상과 기세를 만천하에 알려준 그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이제 누가 그를 무시할 수 있겠는가.
전장의 용, 구유.
그의 이름이 제대로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구유…… 너 괜찮아?”
진영으로 돌아온 구유는 부축을 받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마오의 물음에는 고개만 끄덕였다.
솔직히 대답할 기운이 없었다.
금안창을 박살 낸 왼손은 이미 뼈가 부서진 듯했고, 전신엔 스쳐서 베이거나 찢긴 상처가 수두룩했다.
거기다 앞서 독수마궁과의 결전에서 오른쪽 어깨에 화살이 꽂히고, 중독까지 되었으니. 살아 있는 게 기적.
“안 되겠다. 당장 치료부터 받자. 과평, 뭐 해! 의원. 의원부터 데려와.”
마오의 명에 과평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나 어느새 뻗어진 구유의 손이 그를 붙잡았다.
“……아직이다.”
뭐가 아직이라는 건가. 마오가 답답함에 소리쳤다.
“야, 이 정도면 됐어. 충분히 보여줬다고. 그러니까 여기서 멈춰. 너 또 나가면 죽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다. 구유는 지금 누가 봐도 위험한 상태.
하나 그의 눈빛은 단호히 비무대 위만을 살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벌써 비무대로 올라와 있는 텁석부리 중년의 사내.
검 한 자루로 마가의 이인자 자리까지 올라선 자.
마가칠객의 수장.
“번천검객…….”
마오의 입에서 절망적인 소리가 뱉어졌다.
그렇다. 아직 단리영, 그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를 내보낸 마이신의 입장은 단호했다.
“승부는 끝까지 봐야 하지 않겠느냐. 둘 중 하나가 사라질 때까지 말이다. 후후.”
실로 잔혹하고 비열한 음색. 누가 봐도 구유는 만신창이. 더는 나설 수 없다.
그럼 남은 칠무위가 그를 상대해야 한다는 얘기. 수적으로는 우세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번천검객은 초절정에 오른 절세 고수. 그의 앞에선 상대가 몇 명인가는 중하지 않다. 그의 검을 받을 수 있느냐, 아니냐만이 중할 뿐. 아쉽게 됐군.’
지대호는 입맛을 다셨다. 분명 구유가 경천동지할 실력을 보여주긴 했으나 마가의 마지막 벽은 너무 높았다.
아쉽지만 번천검객이 남은 이상 칠소궁의 패배는 확실한 일.
‘결국 마가에서 얼마나 선처를 해주느냐인데…….’
지대호의 이마에 그늘이 서린다. 자신이 아는 번천검객이라면 분명 지금 상황이 썩 유쾌하진 않을 거다.
당연했다.
너무 비겁하지 않은가. 상대는 마가칠객 중 다섯을 홀로 상대했다. 이 정도면 기세전에선 마가가 패한 것과 마찬가지.
한데 남은 수하들을 학살하라니. 빈집 털이와 다를 게 무엇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는 명에 살고 명에 죽는 자였다.
그리고 마가의 자존심이 바닥에 떨어진 이상 마일성은 그를 통해 어떻게든 결과를 되돌리려 할 것이 자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번천검객의 눈빛은 이미 누구든지 베겠다는 듯 무심했고, 날카로웠다.
‘칠소궁을 완전히 무너뜨릴 생각이로군. 다시는 고개도 들지 못하도록.’
지대호는 결과가 뻔히 보이는 싸움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하나 어쩌겠는가. 이것이 마교의 생리인 것을.
“칠소궁에서 나설 자는 누굽니까.”
그의 단호한 음색이 흘러나왔다.
이에 구유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서고, 마오의 얼굴은 난처함으로 물든다.
“이건 아니잖아. 어? 이대로 다 죽으라고?”
말려야 한다. 막아야 한다.
하나.
마오가 바라본 시선엔 그 누구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사해령은 눈을 질끈 감았고, 천무기와 무한성은 불편함이 걷힌 듯 눈매가 곱게 내려앉았다.
‘드디어 네놈들이 죽어 나가는 꼴을 보겠구나.’
‘우리 막내도 세상을 좀 배워야지. 크큭.’
장로들과 금룡당주도 마찬가지.
참혹한 미래가 뻔히 예상되지만, 그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한번 시작한 승부는 반드시 끝을 맺어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힘을 숭상하는 마교이기에.
“칠소궁에서 나설 자는 누굽니까.”
“지 당주…….”
믿었던 호랑이마저 잔인하게 두 번째 통보를 내렸다.
그야말로 희망이라곤 일절 없던 바로 그때.
“접니다.”
뒤편에서 그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어……?”
마오의 동공이 일순 크게 흔들리고, 입술은 파르르 떨렸다.
저벅, 저벅.
적막 속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 홍해가 갈라지듯 길이 열린다.
“너…….”
그다.
“말도 안 된다! 어떻게 저놈이 여길……!”
조양악을 개처럼 날뛰게 만드는 자.
“아직 완전히 늦진 않았나 보군요.”
칠소궁의 이인자.
“장이서-!”
“형님!”
마오가 활짝 웃으며 달려들고, 과평과 아신이 안도의 숨을 뱉었다.
마침내 그가 돌아왔다.
“어떻게 된 거야! 못 오는 줄 알았잖아.”
“약속했잖습니까. 시간 맞춰 오기로.”
“이 자식……!”
마오가 반가움을 참는다고 코를 찡긋거린다. 장이서는 이를 보곤 픽 웃으며 주변을 훑고는 짤막하게 소회를 밝혔다.
“대충 상황은 알겠습니다.”
그냥 한마디 했을 뿐인데 이렇게 든든할 수가 있는 건가. 마오는 입술을 질끈 물고 간신히 눈물을 참았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장이서가 마이신을 곁눈질한 뒤 말했다.
“상대할 자신은 있으신 거겠죠?”
“당연하지.”
“그럼 됐습니다. 그거만 해주십시오.”
“너는. 괜찮은 거야? 어떻게 된 녀석이 치료하러 가 놓고 더 다쳐서 왔어!”
마오가 장이서의 몸 곳곳을 훑는다. 젖은 건 다 말랐지만, 갈문천에게 당한 상처의 핏자국은 아직 군데군데 묻어 있다.
“오는 길에 누가 선물을 보내놓는 바람에 그리됐습니다.”
“선물? 뭔 선물.”
그런 게 있다. 슬쩍 이공자가 있는 쪽을 바라보니 신경이 쓰이는지 표정이 가관이다. 꼭 귀신을 본 얼굴.
‘보낸 선물은 잘 받았소. 빚은 꼭 갚으러 가리다.’
장이서는 보란 듯이 사악한 미소를 지어줬다. 하지만 그날이 오늘은 아니다.
지금은 마가의 일부터 마무리 짓는 게 먼저.
마오에게 웃음으로 달래주고는 한 걸음 더 걸어 나갔다. 그러자 구유가 지친 기색이 만연한 얼굴로 앉아 있다.
“늦었군.”
“뱃사공이 사라져 헤엄치고 오느라.”
“이유 한번 신랄하군.”
“그러는 자넨 안색이 좋지 않아. 아무래도 쉬는 게 좋겠어.”
장이서가 픽 웃고는 그 앞에 다가가 대뜸 몸을 수그린 채 맥을 짚었다. 그러곤 눈을 감고는 내기를 흘려보냈다.
그러자.
‘음……?’
구유는 화들짝 놀라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분명 방금까지 숨이 가쁘고, 머리를 어지럽히던 독기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독도 다룰 줄 알고 있었나?’
원래는 없었다. 이젠 제법 다루게 되었지만.
당황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장이서는 손을 떼곤 일어섰다.
“이제부턴 내가 맡지.”
구유는 비무대 위로 거침없이 오르는 걸 보곤 괜찮냐고 물으려다 말을 삼켰다.
분명 번천검객은 자신도 상대하기 쉽지 않은 고수. 장이서의 실력이 뛰어난 건 알지만, 그래도 이건 무리다.
하지만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봐서 든든함이 배가 되어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질 것 같지는 않다.’
논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은, 그냥 불투명한 예감.
근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반드시 그럴 거라는 생각이 확연히 들었다.
“자네…… 무사했군.”
비무대 위로 오르자, 지대호 역시 떨리는 눈을 하고선 장이서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다 죽어간다는 소문이 파다하던데. 역시 소문이었구먼. 껄껄!”
지대호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둘의 사이를 알거나, 장이서가 평소 어떤 놈인지를 안다면 별거 아닌 지인 간의 대화다.
하지만 이를 모르는 수뇌부들이나 마일성 입장에선 눈이 휘둥그레질 일이었다.
‘한낱 조장 출신이라더니…… 지 당주와 가까운 사이였던가?’
하나 놀라긴 아직이다.
“조 보좌. 어떻게 된 일이지? 분명 놈이 여기 오지 못할 거라고 하지 않았나?”
“그, 그것이…… 분명 그래야 하는데…….”
이공자 무한성이 격분했고, 조양악은 땀을 뻘뻘 흘렸다.
그뿐이랴.
콰앙! 대공자 천무기는 그대로 벌떡 일어나 내력을 폭발시켰다.
대체 저 보좌가 뭐길래. 다들 이 정도로 과민반응을 보인단 말인가.
심지어 사해령은 그가 온 순간 한 시도 눈을 떼지 않은 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정도면 마교 제일의 유명 인사라 해도 믿을 판.
“맞지? 그놈.”
“맞네. 그놈.”
장이서를 마교로 데려온 장본인인 이두쌍마 양요와 양유는 실로 오랜만의 재회임에도 한눈에 그를 알아봤다.
이만 봐도 확실히 난 놈인 건 알겠다.
“허허, 한데 번천검객을 상대하기엔 너무 젊지 않소이까.”
금룡당주가 넙데데한 턱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운을 띄웠다. 각자의 소회는 적당히 풀고 본연에 충실하자는 뜻.
그가 운을 떼자 어수선함은 사라지고, 모두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맞는 말이다.
장이서가 화제의 인물인 건 맞지만 실력은 미천하기 그지없는 자.
번천검객을 상대한다는 건 세 살배기 아이가 장정에게 달려드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천무기도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반대로 사해령은 언제 웃었냐는 듯 표정이 굳었다.
‘장이서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아무리 그라도 지금 나서는 건 객기에 불과했다. 다만, 왠지 그라면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추측만 했다.
그렇게 모두가 침묵한 채 비무대 위를 살폈다.
“정말…… 괜찮겠는가?”
지대호는 사심을 숨기지 않은 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평소 공정함을 중시하는 그가 얼마나 장이서를 아끼는지 드러나는 일면이다.
장이서는 고개를 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저보단 번천검객께 여쭙고 싶군요. 괜찮으시겠소?”
갑작스레 저를 부르자 단리영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안 그래도 못마땅한 상황이라 썩 좋은 어투로 말이 나가진 않았다.
“무슨 뜻이오.”
“말 그대로요. 이게 그쪽까지 나설 일인가 싶어서.”
가볍게 던진 말인데 정곡을 찌른 탓인지 얼굴이 불그스름해진다.
“……그저 가볍게 겨루는 비무일 뿐이오.”
“내 눈엔 그리 가벼워 보이지 않는데.”
장이서가 슬쩍 고개 돌려 곁눈질로 구유를 살폈다. 간신히 숨만 쉬는 상태. 해독해주지 않았으면 정말 위험했을 수도 있다.
“억지 부리지 마시오. 대련 중에 다치는 건 당연한…….”
“맞소. 당연히 다칠 수 있지. 하나 손님 아니오. 한데 치료는커녕 다음은 누구냐고 윽박지르는 꼴이라니. 이게 핍박이 아니면 무엇이오.”
“그건…….”
“아니면 마가는 원래 손님 대우가 이리 글러 먹었나.”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음이 빗발친다. 마일성의 얼굴은 싸늘히 굳었고, 대부분은 경악했다.
“말을 함부로 하는군.”
번천검객은 곁눈질로 주변을 살피곤 사납게 입을 열었다. 까불지 말라는 뜻. 하나 상대가 하필 장이서다. 말로 이기려다 되로 당한다는 장이서.
“함부로 하지 않았는데? 하지만 그리 말해주니 지금부터 함부로 해 보도록 하지.”
“뭐……?”
눈빛이 달라졌다. 그리고 말했다.
“9급귀 단리영.”
이, 이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