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6)
첩자의 마교생활-16화(16/350)
16.
“위험합니다! 도살방은 천마전에서도 인정한 자객들. 간부들은 물론이고, 우두머리인 사씨 형제까지 생각하면…….”
“그러니까 몸조리 잘하고 있어. 내가 다 마무리 지을 때까지.”
취홍란의 얼굴이 오만 걱정에 울상으로 변한다. 이에 장이서는 웃음으로 일관하곤 슥 고개를 돌렸다.
밤하늘을 비추는 초승달이 참으로 예쁘게 떠 있다.
한데 놈들은 알까.
베이는 건 저 달이 아니라 잡으려는 놈들이라는 걸.
‘간만에 천마고 좀 다녀와야겠구나.’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었다.
* * *
– 사흘 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봄바람이 살랑 불어오는 날이었다.
호수 위 무지개처럼 둥근 다리 위에는 아이들이 뛰놀고, 노부들이 낚싯대를 던져 시간을 보냈다.
언제나 그렇듯 고즈넉한 월하촌의 오후.
흑룡파의 용태와 메기도 함께 난간에 기대 닭꼬치를 뜯고 있었다.
“역시 식후 땡은 닭꼬치가 최고지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집 주방장 실력이 좋다니까. 내가 말했지. 여긴 보호비로 돈 대신 받을 만하다고.”
“다른 데도 딱히 돈으로 받는 덴 없지 말입니다.”
“새끼야. 그게 상부상조라는 거다.”
“예, 맞습니다. 형님.”
낄낄대며 웃는 두 사람.
왈패지만 알고 보면 왈패 같지 않은 그들이다.
한데 바로 그때. 메기가 인상을 굳히곤 속삭이듯 말했다.
“형님. 제 시야에 아주 이상한 게 들어왔지 말입니다.”
“뭐. 호숫가엔 아무것도 없는데. 붕어 있다.”
“앞이 아니고 옆이지 말입니다.”
용태가 전방을 살피다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다리 끝자락에서 처음 보는 일련의 무리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가 각양각색의 용모를 지니고 있었는데, 중앙의 덩치 큰 사내는 꼭 원나라 장수처럼 정수리에만 꽁지를 남긴 변발이었다.
그 외에는 죄다 험상궂게 생긴 녀석들이고.
“다른 마을에서 온 놈들 같은데……. 애들 불러 모을까요?”
“아니, 잠깐만.”
용태가 여전히 앞만 보고 있는 메기의 어깨를 누르곤 삐딱한 자세로 골똘히 다가오는 그들을 살폈다.
그리고 조금씩 그의 동공이 커졌다.
“저, 저자들은!”
“아는 자들입니까?”
알다마다. 용태가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답했다.
“너 지금 당장 장이서. 그 양반한테 연통 하나 넣어라.”
“예? 그 형님 요 며칠 안 보이시던데 말입니다.”
“만일 아직 월하촌에 계신 거면…… 피하긴 이미 늦으셨다고.”
“예에?”
메기가 화들짝 놀라는 사이 용태가 휙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뒤를 스치며 지나가는 일련의 무리.
그때 메기도 보았다.
공통점이라곤 일절 찾아볼 수도 없는 그들에게도 딱 한 가지.
똑같은 것이 있다는 걸 말이다.
이는 바로 각기 손과 목 등에 새겨진 두 글자.
죽일 도(屠). 죽일 살(殺).
“도, 도살방…….”
마교 최악의 살수 단체인 그들이 월하촌에 당도했다.
*
삼 년 전.
마오가 칠공자로 승격되어 칠소궁에 입궁하던 날.
그날은 일생에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야! 이신 형님께서 너희랑 같이 사는 거 허락하셨다! 우하하하! 내가 나만 믿으라고 했지?’
노예처럼 부리고 학대하던 마가에서 벗어나게 되어 좋았고, 생전 말 한마디 안 들어주던 마이신이 벗으로 지내오던 하인들과 동반 입궁을 허락해줘서 날아갈 듯 기뻤다.
‘저, 정말로?’
‘진짜야?’
‘그래! 이제 나만 믿고, 눈치 보지 말고 편히 살아.’
‘마오야…….’
그렇게 생색도 내고, 서로 기쁨과 슬픔에 부둥켜안은 채 환히 웃었다.
하지만 꼭 불행한 놈한테 좋은 날은 오래가지 못하듯.
바로 다음 날…….
‘처, 철영아……. 장득아!’
그의 인생에 가장 기억하기 싫은 날이 찾아왔다.
녀석들이 고맙다며 눈물을 흘렸는데. 나는 그걸 또 놀리며 애써 아픈 침을 삼켰는데.
그런데.
왜.
‘으아아아아악-!’
처참하게 갈라진 벗들의 시체들을 붙잡고 하염없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절망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풀어주다니. 저 새끼들이 한 짓이라며. 근데 왜 풀어줘!’
호룡당 밖에서 기다리던 간부들의 인사를 받으며 낄낄대며 멀쩡히 걸어 나오는 두 사람.
금색 이빨을 하고 좌측 입꼬리에 기다랗게 칼자국이 있는 근육질 사내, 사도철. 그리고 그 옆 장신에 올려 묶은 머리의 아우 사호정.
도살방의 사씨 형제.
그들이 아무 죄가 없다며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었다.
이유는 하나.
‘형……님?’
먼발치 마차 안에서 사씨 형제의 인사를 받는 한 남자.
무혈공 마이신.
이 사건의 배후에 그가 있기 때문이었다.
‘당주로서 면목이 없습니다. 위에서도 집안의 일은 집안 내부에서 직접 해결하는 것이 낫겠다는 중론인지라……. 그래도 칠공자님께 원인이 뭔지라도 알려드리는 것이 마지막 도리라 판단해 이리로 모셨습니다. 그럼…… 살펴 가십시오.’
천산의 치안을 담당하는 호룡당주의 말은 잘 들리지도 않았다. 그저 곁눈질로 무심하게 저를 쳐다보는 마이신. 그의 표정만이 뇌리에 깊숙이 박혔다.
모든 걸 들켰음에도 아무렇지 않다는 그 표정.
‘네가 안들 무엇이 달라지겠느냐.’
딱 그렇게 말하는 듯한 저 눈빛.
그 순간 마오는 모든 게 무너져 버렸다.
데려오지 말걸. 나 따위가 그러면 그렇지. 주제에 누굴 챙긴다고. 나는 뭘 해도 안 되는 새낀데.
끝없는 자기 학대와 염세관.
그날로 마오는 모든 걸 내려놓고 망나니가 되었다.
차라리 날 미워해. 나도 너흴 미워할 테니.
그래야 누가 죽어도 아플 일은 없는 거잖아.
“하…….”
마오의 눈이 떠졌다. 그러자 익숙하고 답답한 광경이 시야에 담겼다. 빛 바란 누런 용이 인각된 낡은 천장.
칠소궁이다.
마진구가 왔다 간 지도 어느덧 사흘. 마오는 침상에서 일어나 넘긴 머리를 긁적이며 부서진 문밖으로 나와 좌우 복도를 살폈다.
역시.
오늘도 어김없이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이 조용하다.
“그럼 그렇지.”
마오는 예상했다는 얼굴로 코웃음을 치며 터벅터벅 복도 끝으로 걸어갔다. 그러곤 마루 끝에 털썩 양반다리로 주저앉았다.
드르륵.
이어 장지문을 좌우로 활짝 열어젖히자 햇살이 새어 들어옴과 동시에 푸르른 대나무 숲이 눈앞에 펼쳐졌다.
대문은 어디로 간 것인지 휑하니 사라졌고, 그 앞엔 어둑한 숲길이 보인다.
하나 어디에도 장이서. 그의 흔적은 없었다.
내기니, 소교주니 호기롭게 떠들었지만 결국 다 허세였던 것. 도살방이 두려워 멀리멀리 떠나간 거다.
“보좌는 무슨. 기대도 안 했다!”
……아닌가. 했나.
“그럴 리가. 우하하!”
마오가 괜스레 억지웃음을 터트렸다가 금세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온다. 그러곤 전방을 직시하며 중얼거렸다.
“가는 게 당연하지. 그놈도 속으론 무서웠을 테니까. 차라리 잘 됐다. 기왕 간 거 멀리멀리 가라. 다신 돌아오지 말고.”
흠. 마오가 콧김을 뱉고는 허리를 쭉 펴고 자세를 바로 했다.
스스스스-
그러자 잠시 후 대나무가 흔들리고, 그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왔다.
불편할 만큼 어지러운 잎사귀 소리. 미미하게 퍼지는 비릿한 피 냄새.
놈들이다.
저벅, 저벅.
대나무로 그늘진 어둑한 외길 사이로 걸어들어오는 일련의 무리.
마교 최악의 살수 단체.
“도살방…….”
그리고 이들을 이끄는 자는 마오도 일면식이 있는 자였다. 삼 년 전, 호룡당에서 출소한 사씨 형제를 맞이했던 간부 중 하나.
“칠공자님께 인사 올립니다.”
마오에 굴하지 않는 커다란 장신에 서늘한 눈을 가진 변발의 무사.
“도살방에서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도살방 서열 6위.
변발의 자객, 막귀였다.
* * *
한편, 그 시각.
월하촌에선 아무것도 모르는 교인들이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었다.
“으, 으아아앙!”
“혜이야, 괜찮아. 괜찮아.”
세 살배기 여아를 꼭 끌어안은 엄마를 중심으로 다리 난간에 살 맞대고 쪼그려 앉은 촌민들.
모두가 불안함에 사시나무처럼 눈이 떨리고, 피부는 창백했다.
당연했다.
“그쪽은.”
“없어. 이 새끼 벌써 내뺀 거 아니야?”
위협적인 칼을 꺼내 든 채 이 잡듯이 주변을 샅샅이 뒤지는 자들. 바로 도살방의 자객들 때문이었다.
살수는 본디 아무도 모르게 도둑질하듯 목숨을 빼앗는 게 정석. 하지만 이들한테 그딴 도리는 없었다.
아주 벌건 대낮임에도 거침없이 폭력을 행사했고, 찾아내는 방식도 무식하고 격렬했다.
“이 중에 아는 새끼 하나라도 있겠지.”
지금도 보이는 족족 촌민들을 붙잡아 설명도 없이 한곳에 몰아넣고는 시퍼런 칼을 들이밀었다.
이에 공포는 전염병처럼 번졌고, 차라리 뭐라도 빨리 물어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다행히 자객 하나가 용모화를 꺼내 펼치곤 물었다.
“다들 똑바로 봐라. 지금부터 이렇게 생긴 녀석을 본 적 있으면 손들고 얘기해라. 빨리 찾으면 별 탈 없겠지만, 늦어질수록…….”
설명하던 자객이 옆에 난간을 붙잡고 서 있던 사내의 손등을 힐끗 보더니. 푹. 그대로 단도로 내리찍었다.
“끄아아악!”
일순 비명이 쏟아지고, 자객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그러곤 다시 칼을 팍 빼내며 말을 이었다.
“피차 시끄러워질 거다. 그러니까 아는 게 있으면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빨리 주둥이 터는 게 좋아. 뭐, 대답이 늦어도 상관없다. 난 시끄러운 걸 좋아하거든. 특히 계집년하고 어린애가 울 때는…… 참을 수가 없지.”
“아아아…….”
자객이 입술을 훔치자 혜이 엄마는 애를 더 세게 끌어안고 눈을 질끈 감았다.
원망해봤자 소용없는 일. 이곳은 마의 성지라 불리는 천산. 힘이 없는 것도 죄다. 그저 지금은 이 시간이 부디 무사히 지나가길 비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나 마찬가지.
“크큭, 왜 대답이 없지? 아, 내 말을 x으로 봤구나? 좋아. 그럼 어디 보자.”
자객 하나가 사람들을 밀치며 인파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뒤에서 구경하던 다른 자객들은 저 새끼 또 시작이라며 코웃음을 치더니 반대편으로 목표물을 찾으러 나섰다.
그리고.
“애새끼 하나가 여기 숨어 있었네?”
훅. 사람들 사이에 들어와 쪼그려 앉은 자객은 피 묻은 단도를 핥으며 세 살짜리 여아와 눈을 맞췄다.
섬뜩한 웃음을 지으며.
“아, 안 돼……!”
모두가 곧이어 펼쳐질 상황에 절망하고, 애와 엄마의 눈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제발, 제발 누가 좀 도와주세요.
너무 두려워 목구멍 밖으로 말도 뱉지 못한 채 속으로 간절히 애원했다.
그러자 그때.
슥. 누군가 한 손은 여아의 두 눈을 가림과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 요술을 부리듯 자객의 칼을 빼앗아 그 즉시 목에 툭 꽂았다.
“……아?”
비명을 내지를 틈도 없이 빠르게.
이에 너무 놀라 아이 엄마가 제 입을 손으로 가린 채 덜덜 떨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 그가 있었다.
검지를 제 입가에 가져다 대며 씨익 웃는 노인.
아니, 노인으로 변장한 장이서가 말이다.
풍덩!
그가 자객을 난간 밑으로 내던지고, 굽어 있던 허리를 편 채 앞으로 걸어 나갔다.
사흘간 잠적했던 그가 다시 월하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뭐야, 저 새끼. 진짜 죽여 버린 거야? 하, 이 씨. 위에서 겁만 주고 죽이진 말라 그랬는데.”
반대편으로 가던 자객들이 물소리와 촌민들의 웅성거림에 뒤를 돌아본다.
“이거 괜히 일 커지는 거 아니야? 잠깐. 저 새낀 뭐야.”
대화를 나누던 그들의 시선이 먼발치 홀로 걸어 나가는 노인의 등에 꽂혔다.
이에 서로를 한 번 마주 보곤, 미심쩍은 표정을 짓더니 빠른 걸음으로 촌민들 사이로 다가섰다.
그리고 깨달았다.
“x발…… 저 새끼 잡아!”
호수 위에 떠 오른 시체가 촌민이 아니라 도살방의 자객이라는 것을.
#보좌, 시작이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