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60)
첩자의 마교생활-160화(160/350)
160.
#진검승부
번천검객은 갑작스러운 호명에 눈매가 확 좁혀졌다. 마가칠객은 마가의 식객을 자처하며 모든 직위를 내려놓은 자들. 당연히 직급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그걸 면전에서 거론하는 자는 여태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한낱 9급귀로 보이나. 그럼 보여주지. 9급귀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걸 봐야 아나. 하는 짓이 딱 말단인데. 지금도 약쟁이 새끼 뒤치다꺼리 중이잖아.”
“친선을 도모하고자 한 일에 목숨을 내거는군. 죽고 싶은 건가?”
“방금 죽다 살아 돌아온 나다. 살기 위해 안 한 게 없는데 무슨 소리지?”
“한데 뭘 믿고 까부는 거지? 도련님은 네가 함부로 입에 담을 분이 아니다. 당장 그 경박한 입을 놀린 것부터 사과해라.”
“좋아. 그러지.”
“뭐?”
“이 집의 장자이자 도련님이신 무혈공 마이신은 감히 교주님의 양자이신 칠공자님께 자객들을 보낸 것으로도 모자라 손찌검하는 대죄를 범했다. 한데 그런 대역죄인을 약쟁이로 미화하였으니. 나의 경솔함을 사과한다.”
허. 그의 거침없는 발언에 웅성거림이 커진다. 이리 대놓고 낱낱이 범행을 거론할 줄은 아무도 몰랐기 때문.
번천검객은 속이 문드러지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이놈은 뭔데 이리 입을 돌발적으로 놀리는 것인가.
더 휘말리기 전에 막아야 한다.
솨아아아-
번천검객이 위압적인 살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선을 넘는군.”
누구든 지레 겁먹을만한 절세 고수의 기세.
하나 그는 장이서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첩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가 바로 두꺼운 낯짝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장이서는 암각 최고의 요원이었다.
“선은 아직 안 넘었는데. 근데 그리 말해주니 지금부터 넘어보도록 하지.”
이, 이런!
“어디부터 넘어가 볼까. 역모에 대해 논해 보면 되나. 아니면 마가가 감히 칠공자님을 홀대한 것부터 얘기해야 하나. 그것도 아니면……. 마가가 평소 교주님을 어찌 생각하고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하나?”
슥. 장이서가 눈을 올려 뜬다. 또다시 눈빛이 달라졌다. 이번엔 아까보다 훨씬 더 무겁고 섬찟한 기세다.
이건 어설픈 고수가 흉내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마른침이 삼켜지고, 긴장감에 모근이 곤두섰다.
물론 교주라는 불감당할 단어가 언급돼 스스로 위축된 것도 이유일 거다.
‘이자도 쉽게 볼 자가 아니구나. 구유라는 자도 그렇고, 이들의 저력이 심상치 않다. 게다가 칠소궁에서 누구도 이자를 말리지 않는다는 건 그만한 믿음이 있다는 얘기.’
번천검객은 이제 와 다시 생각하니 상황이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심지어 수뇌들이 지켜보는 자리. 여기서 꺼내는 말 한마디가 훗날 마가를 옥죌 수도 있다.
“대체 원하는 게 무엇인가.”
“마가에서 먼저 식구 대우를 하지 않았으니, 나 역시 공사를 따져 묻는 수밖에.”
“그게 무슨…….”
“보기보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장이서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귀를 후비곤 코웃음을 친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모욕 행위. 이에 번천검객이 격분해 따지려는 찰나.
“후후후…… 하하하하하!”
비무대 남측에서 커다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에 모두의 고개가 진원지를 찾아 옆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가 서 있었다.
마가의 가주.
일장로 북명마군 마일성.
웃음을 터트린 자는 바로 그였다.
“자네 말대로 마가의 식구들을 너무 홀대하였군. 여봐라.”
그의 나지막한 엄명이 떨어지자 곳곳에서 소란스러운 움직임이 일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의원을 비롯한 수십의 하인들이 칠소궁의 진영으로 몰려들었다.
“아, 아니…….”
“이쪽에 앉으십시오, 칠공자님.”
그 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앉을 자리부터 시작해 시종들이 커다란 부채를 들고 그늘막까지 만들어주었다.
구유의 주변엔 의원들이 모여 치료를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극진한 대우에 마오와 칠무위는 얼떨떨했다.
이를 지켜보는 수뇌부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이가 없군요. 일장로가 일개 보좌의 말에 흔들리다니…….”
특히 유령마군은 실망을 금할 수 없다는 듯 눈매를 좁혔다.
본래 그 역시 대공자 보좌가 아니었다면 장로의 자리에 앉았을 자. 해서 더 실망이 컸다.
하나.
“저게 고작 일개 보좌의 말로 보이느냐? 틀렸다. 장이서 저놈은 마가의 존폐를 쥐고 흔든 것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잘 생각해 보거라. 수뇌들이 모인 자리다. 여기서 마 장로가 막내를 식구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럼 지난날 벌인 일들은 무엇이 되겠느냐?”
그렇게 되면…….
“반역이다. 역모가 되는 것이다.”
“……!”
“아버님이 지금껏 책임을 묻지 않으신 건 집안싸움으로 치부했기 때문. 하나 이 자리에서 일장로가 막내를 부정한다면……. 그럼 그때부턴 아버님에 대한 도전이 되는 것이다.”
“하오면…….”
“일장로가 제 식구임을 스스로 인정하였으니…… 설령 장이서 저놈이 패한다 해도, 남은 모두를 없앨 순 없겠지.”
“그럼 저놈이 제 식솔들을 살리기 위해…….”
“장이서…… 아주 영악한 놈이다. 놈에게 당한 걸 알면서도 탐이 날 만큼…….”
자비 없는 대공자의 상상 못 할 호평에 유령마군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장이서를 살폈다.
‘실로 교활한 놈이 아닐 수 없구나. 대공자님께 이만큼 인정받은 녀석이 없거늘…….’
설마 상황을 이리 비틀어 버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이쯤이면 은원보를 갈취해간 것도 절대 우연이 아니다.
‘위험하군.’
장이서에 대한 평가가 삽시간에 수직으로 상승했다. 다른 건 몰라도 저 머리와 배짱만큼은 인정해야 했다.
하나.
‘본교에서 그리 입을 놀리려면, 그만큼 실력이 따라줘야 하지. 네놈은 스스로 지옥 불에 뛰어들기를 자처한 것이다.’
유령마군의 입가에 피식 비소가 서렸다. 자신이 아는 일장로라면 절대 여기서 그냥 넘어갈 리 없기 때문.
“이제 되었는가. 후후후.”
아니나 다를까. 마일성이 웃으며 묻는다. 하나 그 웃음이 결코 호의는 아니다. 딴 사람은 몰라도 너만큼은 기필코 죽이겠다는 살기가 느껴진다.
“여러모로 아쉽긴 하지만……. 이해해 보겠습니다.”
한데도 장이서는 여전히 겁이 없었다. 이 정도면 죽여달라고 호소하는 수준.
“그럼 마저 비무를 속행하지.”
마일성이 재시작을 알리자 지대호는 씁쓸한 표정을 짓고는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비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다.
한데 두 사람은 무슨 일인지 서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우두커니 서로만을 살폈다.
무엇인가. 설마 장이서가 한 말 때문에 번천검객이 주눅이라도 든 것인가?
천만에. 그건 그를 몰라도 한참 모르고 하는 소리다.
마가를 위해서라면 사지(死地)에 들어가 기꺼이 웃으며 칼춤을 출 자가 바로 그다.
두 사람이 저리 멈춰 서 있는 것은.
“왜 그런 것이지?”
번천검객은 의도한 것이고, 장이서는 놀라서였다.
‘기막(氣膜)인가.’
깨달음이 깊을수록 기의 흐름은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이는 상대의 것도 마찬가지.
두 번째 구멍을 막기 전이라면 몰랐겠지만, 지금 장이서의 두 눈엔 자신과 번천검객 주변을 둘러싼 반투명한 막이 느껴졌다.
번천검객이 발출해 낸 기가 바깥과의 소통을 완전히 차단해 버린 것.
이제 이 안의 모든 기는 바깥에 닿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그게 설령 아주 작은 목소리라 할지라도.
“저들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다면 네 판단은 옳았다. 가주님께서 허락해 주셨으니.”
번천검객이 힐긋 마오와 칠무위를 흘겼다. 그새 전음까지 보냈나. 이에 장이서도 뒤를 돌아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패해도 저들은 건들지 않겠다는 얘기.
“다행이군.”
“하나 네 목숨은 여기 놓고 가야겠다.”
스릉. 영롱한 음색과 함께 번천검객이 칼을 뽑아 들었다. 이에 천천히 그를 바라보자 표정이 잔뜩 굳어져 있다.
“식구라더니 바로 본색을 드러내는군!”
“……감히 마가에 대해 함부로 입을 놀린 대가다.”
“푸하!”
“왜 웃는 거지?”
“아, 예상 밖이라서 말이야.”
“왜. 너도 살려줄 줄 알았더냐. 그건 마가를 너무도 우습게 본…….”
“그게 아니라.”
“음?”
“보통 이런 경우엔 직접 본색을 드러내기보단 배 속에 칼을 품고 입으로는 꿀을 뱉거든. 한데 그거 속이는 게 힘들어 기막까지 펼치다니. 생각보단 순진하네.”
“하…….”
번천검객이 황당함에 헛숨을 뱉었다. 마가에서 이리 나올 걸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럼 죽을 걸 알고 벌인 일이었단 말이냐?”
“아까도 말했지만 겨우 살아 돌아왔어. 오자마자 또 죽으라는 건 너무하지 않나.”
“그럼 대체 무슨 생각으로…….”
장이서가 뒤의 식솔들을 힐긋 살피며 말했다.
“별거 아니야. 그쪽 말대로 혹시 내가 패할지도 모르고.”
혹시? 어이가 없군. 번천검객이 기가 찬다는 듯 고개를 절절 젓는다.
한데.
“또 이렇게라도 안 하면 만나주질 않을 거 같아서.”
“무슨 말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발언에 번천검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에 장이서는 태연하게 곁눈질로 한 곳을 살폈다.
이를 따라 번천검객의 시선도 자연스레 움직였다.
그러자 그곳엔…….
“가주님?!”
일장로 마일성. 바로 그가 앉아 있었다.
정신이 혼미했다. 가주를 만나기 위해 벌인 짓이라니. 그럼 일부러 관심이라도 끌었다는 것인가. 대체 왜.
“오늘은 특별한 날이야. 길가의 돌처럼 만만하고, 관심도 없던 칠소궁이 저 높이 날아올라 모두에게 보여주는 날이거든.”
“보여주다니. 무얼 말인가.”
장이서가 다가간다. 번천검객은 저도 모르게 한 걸음을 뒤로 물렀다. 이내 이를 깨닫곤 더더욱 머릿속이 하얘졌다.
내가 지금 긴장을 한 것인가? 저자에게?!
“발에 치이는 한낱 돌인 줄 알았으나, 실은 지하에 파묻혀 있던 거대한 부유성이었달까.”
“그게 무슨 헛소리냐?”
“그런 게 있다. 아무튼 오늘로써 모두가 알게 될 거다. 그런 의미에서 마가는 더더욱 특별해. 그 부유성 안에 올라탄 첫 번째 세력이 될 테니까.”
“올라탄다니……. 너 대체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이냐!”
“별거 아니야.”
툭. 장이서가 발을 크게 내디디며 번천검객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그러곤 씨익 웃으며 말했다.
“한 식구니까. 끝까지 같이 가자는 거지.”
우우웅!
이내 장이서의 몸에서 엄청난 내기가 용솟음친다. 이에 번천검객은 당황하며 손을 빼내려 했으나, 독사 같은 손길은 악착같이 이를 붙잡았다.
그리고 번천검객이 벼락처럼 칼을 휘두르려는 순간.
‘이, 이놈!’
장이서의 공력이 해일처럼 몸 안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격체전공(隔體傳功)이다.
정확히는 내공을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승부를 걸어온 것이다.
‘단전을 휘저어 놓으려는 것이구나!’
잦지는 않으나 간혹 있는 일이었다.
상대의 몸 안에 내공을 주입해 커다란 내상을 입게 하는 잔혹한 수법. 이를 막기 위해선 상대의 내공을 자신의 내공으로 날려버려야만 했다.
이른바 내공으로 가리는 진검승부.
이것이 바로 장이서가 준비한 승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