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62)
첩자의 마교생활-162화(162/350)
162.
#자신 있으신 거죠?
수뇌부들 사이에선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아직도 장이서와 번천검객의 대결에서 헤어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이냐.’
특히 대공자 천무기는 크게 격노했다.
이유도 모른 채 번천검객이 당했다.
그 덕에 장이서는 죽지 않았고, 오히려 칠소궁은 마가칠객을 꺾었다는 경이적인 훈장을 거머쥐었다.
흑화위가 나서도 쉽지 않은 일을 한낱 칠소궁 따위가 해낸 것이다.
그게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일부러 져준 것이 아니고서야…….
‘아니다. 비무의 발단은 나다. 그리고 장이서는 뒤늦게 들어왔지. 절대 그럴 수 없는 일.’
천무기는 떠오른 의심을 단숨에 지워냈다. 마가는 자신을 지지해 주는 훌륭한 충신이다. 당연히 절 배신했을 리가 없다.
‘그럼 대체 어떻게?!’
천무기는 혼란에 빠졌다. 물론 이유야 간단했다. 구유는 강했고, 장이서의 잠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게 다다. 하나 본래 콧대가 높고 비탈진 자는 타인을 쉬이 인정하지 않는 법. 그런 가정은 애초에 머릿속에 없었다.
‘만일 무혈공까지 패한다면…….’
전신이 오싹해지고 동공은 섬찟하게 쪼그라들었다. 그야말로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일.
‘반드시 이겨야 한다, 마이신.’
천무기는 생애 처음으로 제 숙적인 마이신을 애타게 응원했다.
반면 삼공녀 사해령은 감개무량했다. 그리고 장이서와의 지난날을 떠올렸다.
‘1년 안에 이 정도는 충분하지.’
제게 손가락 세 개를 들이밀며 허풍을 늘어놓던 사내. 그가 아무 취급도 받지 못했던 칠소궁을 당당히 이 자리까지 올려놓은 것이다.
감히 누가 이를 해낼 수 있을까.
고개가 저어진다.
아무나 하지 못할 것이고, 아무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한데 그 어려운 일을 그가 해냈다.
‘넌 정말 나와의 약속을 지키려 하는구나.’
사해령의 모든 신경은 그에게로 향했다. 볼수록 탐이 나고, 얻고 싶은 사내.
‘장이서…….’
그녀의 마음에 오늘도 또 한 번 그의 이름이 깊이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이외에도 금룡당주와 오장로 광교는 칠소궁에 더욱 커다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칠장로 이두쌍마는…….
“실력이다.”
“우연이다.”
여전히 다정한 양요의 호평과 흉포한 양유의 혹평이 엇갈렸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제 이 안의 그 누구도 칠소궁을 쉽게 볼 자는 없다는 거였다.
*
한편 지대호는 한껏 굳어진 수뇌들을 살피며 뿌듯함에 사로잡혔다.
‘느껴지는가. 저들의 시선이.’
칠소궁에서 처음 마주했던 그날이 엊그제 같거늘. 그때의 다 쓰러져 가던 폐궁이 이제는 마가를 위협할 만큼 비상했다.
시작부터 이를 지켜보고, 뒤에서 기대하고 응원하던 그로서는 모두에게 인정받는 이 순간이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었다.
“아니, 도대체 이번엔 또 무슨 수를 쓴 것인가. 번천검객이 저리 공포에 질려버릴 줄이야! 클클, 자네는 정말 최고일세.”
“하하…….”
오죽하면 제 역할도 잊고 장이서를 격찬했다. 그러곤 바로 실수를 깨닫곤 눈치껏 한 발을 물렸다.
“크흠, 나중에 따로 만나 얘기 나누세.”
“예, 안 그래도 드릴 말이 많습니다.”
“음? 내게 말인가.”
“누가 제게 장난을 좀 쳤거든요.”
장이서가 픽 웃고는 먼발치에서 부들부들 떠는 조양악과 이공자를 힐긋 살폈다.
하나 다시 말하지만, 그들을 벌하는 건 오늘이 아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크큭, 이걸 지금 믿으라고? 또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이냐. 답하여라, 장이서!”
콰직! 내던져진 나무 의자가 비무대 모서리에 맞아 산산조각으로 흩어졌다.
서슬 퍼런 눈빛으로 노려보는 사내.
무혈공 마이신.
바로 네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그가 분개하며 비무대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그의 등장에 반사적으로 눈에 쌍심지를 켜고 나서는 이가 있었다.
“수작? 무슨 수작! 이딴 뭐 같은 대결을 조장한 너희가 한 짓이 수작이지!”
적발의 미공자, 마오다.
드디어 오늘의 대미를 장식할 대결.
마이신과 마오가 마주 서게 되었다.
“번천검객이 장이서한테 당했다. 넌 그게 가당키나 하다고 생각하느냐?”
“왜 안 되는데? 오늘 나한테 개 처맞을 너도 있는데.”
이 새끼가…….
“아주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어. 나 지금 기분 최고거든. 여기서 너까지 때려눕히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 그러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마오가 맹수처럼 눈을 번뜩였다.
“덤벼, 이 약쟁이 새끼야.”
“크큭…… 크하하하하하!”
마이신이 광소를 터트렸다. 무섭게 축소된 동공은 살기로 번뜩이고, 육신에선 엄청난 내기가 솟구쳤다.
비무대 위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할 수준.
마가의 장자이자, 한때 마교 최고의 후기지수로 손꼽히던 그의 저력이 고스란히 방출된 것.
약에 취해 있던 과거와 달리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장이서가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칠공자님.”
하나 마오는 괜찮다는 듯 손을 들며 말했다.
“나도 눈치는 있어. 구유랑 네가 쌓아 올린 탑을 걷어찰 만큼 멍청이가 아니라고.”
“저기.”
“나서지 마. 이건 내 싸움이니까.”
“그게 아니라.”
“내려가. 명령이야. 너 없는 동안 나 칼 제대로 갈았어.”
“그래, 알겠는데. 그 칼 지금 어딨습니까?”
“어?”
마오가 화들짝 놀라며 제 등을 더듬거린다.
“칼.”
“억!”
없다. 아까 너무 긴장한 나머지 땀이 차서 잠깐 풀어놨다.
이내 칠무위를 젖히고 헐레벌떡 뛰어가 다시 창룡도를 등에 메고 달려왔다.
“이 새끼들이 없으면 없다고 말을 해줘야 할 거 아니야! x될 뻔했네.”
참…… 사람 여전하다. 장이서가 픽 웃으며 물었다.
“자신 있으신 거죠?”
“아니.”
음?
“자신 아니고 확신.”
스릉! 마오가 사악하게 웃으며 칼을 빼 든다.
장이서는 푸하! 웃음을 터트리곤, 비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사람은 쉽게 안 바뀐다.
하지만 쉽지 않다는 거지, 불가능하다는 건 아니다. 바뀔 수 있다. 분명히.
‘그러니까 보여다오.’
선수 교체다.
번천검객까지 들것에 실려 내려가자 어느새 붐볐던 비무대는 두 사람의 무대로 바뀌었다.
긴장감이 고조된다.
“넌 여기 오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올라오지 말았어야 했다. 갈기갈기 찢어 죽여 주마.”
“네가 그래서 친구가 없는 거야. 할 줄 아는 말이 죄다 그 모양이니까. 찢고, 죽이고, 도려내고. 백정이냐?”
“크큭. 예전부터 네놈은 그 입이 사달이었지. 어릴 때 혓바닥부터 뽑아놨어야 했거늘.”
“어. 못 뽑았지?”
마오가 혓바닥을 길게 내밀고 희번덕거리며 조롱한다. 빠득. 이에 마이신의 이빨이 부서질 듯 갈렸다.
콰과과과!
그리고 다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마기.
식었던 비무대의 열기가 미친 듯이 타오르고, 보는 이들이 다시금 눈을 빛냈다.
“시작하지.”
그리고 마이신의 분에 찬 한마디와 함께 지대호의 손이 번쩍 들어 올려졌다.
마오를 일평생 괴롭혀 온 악연에 종지부를 찍을 최후의 대결이 시작됐다.
그리고…….
이런 두 사람의 대결을 바라보며 가장 큰 충격에 빠진 이가 있었다.
‘어디부터 잘못된 것인가.’
오늘 가장 쓰디쓴 독주를 많이 삼킨 자.
바로 마가의 가주이자 일장로인 마일성이었다.
그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작금의 현실을 두고, 깊은 고뇌에 빠졌다.
‘마가칠객이 칠소궁에 당했다?’
몇 번을 되물었을까. 못해도 다섯 번은 될 것이다. 그만큼 겪고도 믿기지 않았다.
칠소궁이 무엇인가. 아비인 자신마저 버린 폐궁(廢宮)이다.
한데 그런 곳에서 감히 마가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마오…….’
그의 시선이 마오에게로 향했다. 무서워 쳐다도 못 보던 제 형에게 이젠 혓바닥을 내밀며 도발하고 있다.
그 모습이 이젠 황당을 넘어 신선하게 느껴졌다.
자신은 마오에게 숱한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저를 만족시킨 적이 없었다.
숙이지도, 덤비지도 못하고 내내 도망만 치는 녀석. 그런 덜떨어진 멍청이는 마가의 핏줄로 용납이 되지 않았다.
평생 바뀌지 않을 쓰레기.
딱 그렇게 생각했다.
한데…….
‘지금의 넌 웃고 있구나.’
그가 달라졌다. 도망치지도, 숨지도 않는다. 세상 모두가 망나니라 비난할 때도 찍소리도 못 내고 죽어 살던 놈이었다.
한데 그랬던 놈이 지금은 당당하게 제 형과 싸우려 한다.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인가. 대체 무엇이 너를 이리 바꿔놓은 것이냐.’
그 순간, 문득 마이신이 다쳐서 돌아왔을 때 육장로 독산마의가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장이서 그놈. 한번 지켜봐 보시오. 어쩌면 마가에 복이 될지도 모를 놈이니.’
장이서……. 우연일까.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 그 순간, 마일성은 비무대 아래에서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장이서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고, 주눅이 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제게 할 말이 있다는 듯이 계속 시선을 보냈다.
‘무엇이냐. 대체 네가 바라는 것이.’
마일성은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갈음하곤 시선을 다시 비무대로 돌렸다.
마오와 마이신.
자신의 두 아들이 싸우려 하고 있다.
처음엔 분명 승패가 명확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잘 모르겠다. 장이서의 웃음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만일 이번에도 기적이 벌어진다면…….
‘그땐 네게 직접 이야기를 듣겠다.’
마일성이 어느 때보다도 차가운 눈매로 대결을 관망했다.
*
장이서는 비무대 아래로 내려와 구유 옆에 털썩 나란히 앉았다. 그러자 구유가 걱정스레 말을 건넨다.
“괜찮은가.”
구유를 바라보니 아까는 몰골이 영 아니었는데, 지금은 급한 치료는 다 끝난 것인지 제법 멀끔해졌다.
“속이 텅 비어서 그렇지. 괜찮아.”
“고생했군.”
“너만 할까.”
두 사람이 픽 웃는다. 이에 뒤에서 지켜보던 칠무위도 훈훈한 표정을 지었다.
구유와 장이서. 둘이 이리 함께 있으니 이보다 더 든든할 수가 없다.
“이제 저들 둘만 남았군.”
구유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는 비무대를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어떨 것 같아.”
“글쎄. 상대를 직접 본 건 오늘이 처음이니. 하지만 누구든 마오를 우습게 봤다간 큰코다칠 거다.”
구유의 표정엔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아마 자신이 못 본 사이에 그만큼 많은 성장을 이룬 것이리라.
“믿어.”
장이서가 활짝 웃는다. 구유는 이를 보곤 표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일그러트렸다.
“……그런 말을 쉽게도 하는군.”
“쉬울 리가. 넌 잘 참아줬고, 잘 보여줬어. 누구도 너처럼 해내진 못했을 거다.”
“네가 오지 않았다면…… 많은 이가 죽었을 수도 있다.”
“아니. 그렇게 되지 않았을 거야.”
“왜지?”
“절대 그리 놔두지 않았을 거거든.”
누가. 구유가 미간을 좁힌다. 하나 금세 장이서의 말을 깨달았다. 저들의 주인인 마오. 그를 말함이로구나.
“어떤 식으로든 개입했을 거야. 제 사람이 죽어 나가는 건 죽어도 못 보는 녀석이니까.”
녀석?! 주인한테 그렇게 막말해도 되는 거냐. 역시 이상한 자식. 피식, 구유의 입가에 웃음이 서렸다.
없던 미소도 짓게 만드는 이놈이 역시 싫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