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65)
첩자의 마교생활-165화(165/350)
165.
#군계일학
‘잘 지켜보거라. 저 아이가 마이신이다.’
천무기가 그를 처음 본 건 천가에서 열린 친선 비무 대회였다. 직접 참가했던 건 아니었지만, 숙부이자 가주인 천오산은 일찍이 그를 눈여겨보게 하였다.
‘마이신 승!’
그리고 천무기가 그날 느낀 감정은 하나였다.
‘포식자.’
그는 또래들에겐 감히 넘볼 수 없는 최강자였다.
그 누구와의 비무에도 변하지 않는 무심한 표정. 내리깔아보는 광오한 눈빛.
그는 위였고, 남들은 모두 아래였다.
그리고 이는 처음으로 천무기의 마음에 경쟁심을 지폈다.
‘넌 훗날 천가를 제일 가문으로 바꿔줄 나의 비검(秘劍). 그러니 명심하거라. 마이신은 앞으로 네가 넘어서야 할 가장 큰 숙적이자, 걸림돌이란 것을.’
그때부터 천무기가 인정한 유일한 호적수는 마이신이었다.
그리고 그가 폐관에 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이신은 교내 최고의 후기지수가 되었다.
너무도 당연한 결과.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오르막길은 생각보다 일찍 꺾여버렸다.
‘시작하거라.’
천마 진우광이 양자를 들이겠다고 선포한 이후.
수많은 후기지수가 모여 비무를 겨루었고, 그중 최종 승리를 거머쥔 건 천무기와의 결승에서 승리한 마이신이었다.
그런데.
‘너희 셋은 이제부터 소궁에서 지내거라.’
천마는 그 말만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고, 가장 앞에 서 있던 마이신은…….
‘내가…… 아니야?’
천마에게 선택받지 못하였다.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던 그날의 사건은 마이신에게 처음으로 상실감을 안겨 주었다.
하나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들었는가. 겸 대주가 마 공자님을 거절하고, 삼공녀님의 스승을 자처했다더군.’
‘허, 겸 대주라면 오랫동안 마 공자님을 봐주던 이가 아닌가. 실상 스승이나 다를 바가 없지 않았나.’
‘그러게 말일세.’
누구보다도 가장 마음을 열었던 이는 허망하게 떠나 버렸고, 사람들은 점점 마이신을 잊어갔다.
최고의 후기지수 대신 천마의 후계라는 새로운 지칭만이 회자되었다.
자신이 단 한 번도 경쟁 상대라 생각해 본 적도 없던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저 멀리 날아 올라가 버린 것이다.
처음부터 이를 시기했던 건 아니었다.
자신도 언젠가는 그 안에 들어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노력했고, 증명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사공자 한, 오공녀 맹원원, 육공자 맹휘.
어디에도 자신은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일이 터졌다.
‘교주님께서 둘째에게 관심을 보이더군.’
‘마오 도련님 말입니까?’
‘어쩌면 그 아이가 장자의 역할을 해야 할 수도 있겠어.’
제 부친인 마일성과 번천검객이 하는 대화를 엿들었다.
그날 마이신은 뭔가가 뚝 하고 끊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천무기, 무한성, 사해령, 한, 맹원원, 맹휘.
저보다 잘난 것 하나 없는 그들이 제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하다 하다 이젠 제 아우이자 서자인 녀석까지?
‘크큭…… 크하하하하!’
마이신은 그날부터 이곳 마교는 강자를 숭배하는 곳이 아니라 그냥 썩어빠진 정치판이라고 단정했다.
이에 환멸을 느꼈고, 이성이 아닌 본능을 좇았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었다.
“너희는 누구보다 냉혹한 일장로가 어째서 약이나 처하고 자객들과 노닥거리던 마이신을 감싸고 돈 것인지……. 그 이유를 아느냐?”
대공자 천무기는 회상을 거두곤 단호하게 말했다. 이에 사해령과 무한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걸 어찌 알겠는가.
“그냥 대를 이을 자가 무혈공뿐이니까 그랬겠지.”
헛소리. 일장로는 그리 자비로운 자가 아니다. 당사자도 모르는 기회를 주고, 이를 통과하지 않으면 가차 없이 내다 버리는 게 바로 그다.
그런 그가 마이신을 여태 놔둔 이유는 오직 하나.
“무혈공이 이미 오래전 북명신공의 대성을 목전에 두었기 때문이다.”
“헉!”
너무도 충격적인 발언에 옆에 있던 유령마군이 저도 모르게 경악을 내질렀다.
사해령과 무한성도 이를 듣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게 사실입니까?”
“사실이다. 벌써 오래된 일이지.”
솔직히 별로 말하고 싶진 않았다. 과거의 그가 천재 위의 천재였음을 대신 증명해준 격.
그야말로 제 살 깎아 먹는 일이다. 하지만 칠공자에게 지는 건 더더욱 싫다.
“저건 내가 알던 무혈공이 아니다. 저리 짐승처럼 움직이지도 않았고, 상대의 일격에 놀라지도 않았다. 모든 걸 예견하고, 내려다보던 존재. 그것이 바로 무혈공이다. 지금은 그저 스스로가 만든 벽에 자신을 가둔 것뿐.”
모두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시선으로 비무대를 살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마이신은 그야말로 짐승에 가까웠다. 본능대로 휘두르고, 본능대로 움직이는.
한데 이것이 스스로가 정한 한계라니…….
“단언컨대 마이신이 삐뚤어진 고집을 버리고, 과거의 오만했던 제왕의 면모를 되찾을 수만 있다면……. 그럼 여기 무혈공을 상대할 수 있는 자는 몇 없을 것이다.”
쿵! 충격의 연속. 유령마군은 정신이 아찔해졌다.
하지만 대공자의 판단은 사실이었다.
그가 피해의식과 열등감을 버리고, 그 어디서도 가장 빛나던 그때의 모습으로 되돌아온다면…….
그렇다면 지금 그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이 안에 몇 되지 않으리라.
“그러니…… 정신 차리거라, 마이신!”
대공자의 눈에서 짙은 안광이 뿜어졌다.
*
“하……. 하아…….”
한편 마이신은 숨을 헐떡이며 절망에 빠져 있었다.
이미 머리카락부터 얼굴까지 곳곳이 그을린 채 난발이 되었고, 몸뚱이는 성한 곳이 없다.
반면 마오는…….
“이제 알겠어? 당하는 새끼 마음이 어떤 건지.”
여전히 흔들리지 않는 압도적인 공력을 뿜어내며 저를 압박해 오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대체 어째서 자신이 지고 있는 것인가.
정말로. 정말로 제가 못났기 때문에? 그래서 밀리는 것인가? 천무기에게도, 무한성에게도, 아니 이 빌어먹을 서자 새끼까지. 칠대공자들보다 제가 못나서?!
“죽어. 죽어어어어어-!”
마이신의 눈이 완전히 뒤집힌 채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마오의 눈에도 보였다.
“너 멍청이구나.”
얼마나 그가 흥분해 있고, 또 형편없는 몸부림을 치고 있는지. 이 정도라면 피할 것도 없다.
그냥.
“가라.”
『염화표풍(炎火飄風)』
마오가 다시금 핑그르르 회전하며 떠오른다. 그리고 쉭! 날카롭게 일(一)자로 그어지는 창룡도.
화르르륵!
“큭?!”
그러자 또다시 거대한 불꽃의 회오리가 비무대를 뒤덮는다.
“크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날아간 마이신은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이 당했다. 너덜너덜해진 육신만 봐도 안다.
하지만 더 문제는 속이었다. 북명신공이 도리어 독이 되었다. 마오의 양기가 창룡도와 맞물리며 화기(火氣)로 변모했고, 이를 흡수하자 제 것이 되기는커녕 오장육부에 단전까지 태울 기세로 들끓었다.
그리고 그건 마이신에게 더 처참한 기분을 선사했다.
‘네놈의 힘은…… 내가 가질 수도, 이길 수도 없다는 것이냐?!’
개탄스러웠다. 역겨웠다.
그에게 마오는 단순히 미운 아우가 아니었다.
못난 건 자신이 아니라 사람을 잘못 고른 천마. 그리고 그의 양자들이라는 저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래서 그는 멍청해야 했고, 못나야 했고, 망나니여야 했다.
왜?
그래야만 자신의 가치가 남아 있을 수 있는 거니까.
그런데.
그런데 왜.
“도대체 왜애애애애-!”
마이신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불꽃 사이로 다가오는 그 녀석을 향해 중얼거렸다.
“도대체 왜……. 왜 네놈 따위가 감히 나를 앞서가려 하는 것이냐.”
“그걸 아직도 몰라? 너 진짜 바보냐?”
“뭐……?”
“내가 앞서가는 게 아니라, 그냥 너 새끼가 계속 같은 자리에 머물고 있는 거잖아. 이 과거에 파묻혀 사는 망종 새끼야!”
“……!”
마이신은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내가…… 과거에 머물고 있다고?’
그 순간 마이신이 고개를 떨구고 제 두 손을 살폈다. 그러자 점점 작아져 고사리 같은 아이의 손으로 변모한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자 마오가 너무도 큰 거인처럼 느껴진다. 마치 열 살배기 아이가 성인을 올려다보듯.
“넌 그냥 자라다 만 애새끼인 거야. 나이 처먹고도 철이 안 든 애송이 새끼! 왜. 부러웠냐? 억울했어? 그래서 나 붙잡고 화풀이한 거냐고, 이 개새끼야!”
퍽! 마오가 달려와 멱살을 쥐고 주먹을 날린다. 마이신의 고개가 픽 돌아가고 귀가 먹먹해진다.
“철영이하고 장득이가 죽었어. 아무 죄도 없었어. 그냥 네 뱀 같은 시기심 때문에. 그것 때문에 죽은 거야. 알아? 아냐고, 이 뱀 새끼야!”
퍽! 퍽! 퍽! 거듭되는 주먹질에 입술이 터지고, 멍해진다. 그리고 와당탕! 끝내 구석까지 날아가 초라하게 쓰러졌다.
흐릿해지는 초점.
아무런 힘도 들어가지 않는다. 지금 자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 과거인가, 현재인가.
모르겠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마이신.”
그때 머리 위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스몄다.
비무대 앞까지 걸어와 쓰러진 절 내려다보고 있는 사내.
“천……무기?”
“저들이 보는 지금의 너는 무엇이냐.”
“뭐……?”
천무기의 시선을 따라 흐릿하게 풀린 곁눈으로 수뇌부들을 살폈다.
이공자 무한성. 삼공녀 사해령. 그리고 제 부친인 가주 마일성.
그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저 무시하듯 내리까는 눈빛들. 지금 저들에게 비친 제 모습은 무엇인가.
“저들에게 너는 군계다.”
“……!”
군계(群鷄). 수많은 무리 중 기억에도 남지 않을 닭.
“그럼 과거의 너는 무엇이냐.”
과거의 나…….
약으로 흐려진 기억 속에 하나둘 파편들이 떠오른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던 그날의 기억들이.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발작한 것처럼 뛰기 시작한다.
아, 이제야 알았다. 어째서 자신이 이들을 이기지 못했는지를. 이는 과거에 멈추어 있던 것이 아니었다.
“너의 과거를 잊지 마라.”
나의 과거.
“다시 묻겠다. 과거의 너는 무엇이냐.”
“나는…….”
우우웅!
마이신의 몸에서 짙은 공명음이 울림과 동시에 서서히 그의 몸이 두둥실 떠오르듯 일어섰다.
“저건!”
그리고 지켜보던 모든 이들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고오오오오-
마이신의 기세가 바뀌고 있었다.
그를 중심으로 잔바람이 비무대에 원을 그리고, 조금씩 모든 기운이 그에게로 빨려 들어가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그뿐 아니라 점점 그의 상처가 옅어지고, 몸에선 막대한 기운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무기는 피식 웃고는 중얼거렸다.
“그래. 그것이 바로 너다.”
일학(一鶴). 홀로 고고히 우뚝 서는 자.
『북명신공(北冥神功) 10성 대성(大成)』
쩌어어어엉!
이내 마이신의 몸으로 흡수된 기운이 터져나가듯 바깥으로 물결을 이루며 쏘아졌다.
엄청난 기의 발출!
“크학!”
이에 마오는 빛살처럼 튕겨 날아갔고, 수뇌부들은 해일처럼 날아드는 파동을 각자 전력을 다해 간신히 막아냈다.
그리고 경악과 동시에 외쳤다.
“무혈공이…… 돌아왔다.”
마교 최고의 후기지수이자 군계일학으로 불리던 과거의 그때로.
다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