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69)
첩자의 마교생활-169화(169/350)
169.
#다른 이유
【경천채(敬天寨)】
하늘을 공경하는 곳이라. 마가의 심장부로 들어선 장이서는 방 안에 걸린 편액(扁額)부터 시작해 곳곳을 신기한 듯 살폈다.
그 모습이 태사의에 앉은 마일성 입장에선 촌뜨기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장이서는 본디 정파의 인물.
천마전 때도 그랬지만, 자신이 살면서 일장로의 안방에 드나들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볼 수 있을 때 많이 봐둬야지.
“장이서라고 합니다.”
실컷 구경을 마친 장이서가 다섯 보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올렸다.
그러자 마일성은 불쾌한 표정을 갈음하곤 무심한 얼굴로 나지막이 말했다.
“날 보자고 한 용의가 무엇인가.”
본인이 불러내 놓고 대뜸 보자고 한 이유가 무엇이냐니. 실로 주객이 전도되는 질문. 하지만 장이서는 따지지 않고 속웃음을 지었다.
이는 이미 다 알고 불렀으니, 재지 말고 본론이나 꺼내라는 뜻이기 때문.
마교에서 장로들의 수장을 맡은 자. 수 싸움에서는 이미 극도에 오른 이다.
장이서도 거두절미하고 답했다.
“무혈공을 주시겠습니까?”
“……!”
마일성의 눈매가 비틀렸다. 고작 그거였나. 못난 자식들의 묵힌 한이나 풀겠다고 벌인 일이었나. 큰일을 하겠다고 나선 자가 이리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다니.
정녕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
“과욕은 늘 많은 걸 잃게 만들지. 더 할 이야기는 없는 듯하군.”
축객령. 대화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거늘, 확실히 강성이다. 제 뜻에 안 맞으면 대화 자체를 거부한다. 하나 상대는 장이서였다.
“무혈공이 북명신공을 대성하였으니, 깨어난다면 마가의 대를 잇는 건 명확해진 일이겠군요.”
“그걸 알면서도 목숨을 바라다니. 어리석군. 마가와 끝을 보겠다는 뜻인가?”
“패자를 지키고, 승자를 짓누르는 게 본교 제일 가문인 마가의 뜻이라면 끝을 보겠습니다.”
마일성의 미간에 천(川)이 흐른다. 본교는 패자에 인색하고, 승자에게 자비롭다. 이는 근본과도 같은 것.
그리고 오늘의 승자는 마오다. 장이서는 이를 물고 늘어졌다.
“선을 넘는군.”
“교주님께서도 눈여겨보시던 대결입니다. 끝까지 가 보면 누가 선을 넘는 것인지 알게 되겠지요.”
“협박하는 것인가?”
“거래하자는 겁니다.”
“……!”
그러니 협상의 자리에 서로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짚고 가자는 얘기.
마일성의 깔아보던 눈빛이 조금은 격상했다.
“뭘 바라는 것인가.”
“칠소궁은 마가를 바랍니다.”
“자네…….”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어도 되겠습니까.”
마일성이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확신했다.
‘마오를 바꾸고, 칠소궁을 일으켜 세운 게 이놈이 맞구나.’
마이신의 목숨을 저울에 두고 저와 후일을 논하자는 뜻. 이는 지난 과거가 아닌 앞을 내다보는 거목의 식견이다.
하나.
“그게 칠소궁의 뜻인가?”
이건 마오가 소화할 수준의 움직임이 아니다.
“제 뜻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장이서는 제 의사라 피력했다.
하나 점수를 따려고 한 말이면 크나큰 패착이다. 이는 꿀이 아닌 독. 마일성의 표정은 일순 굳어졌다.
아무리 영특한 놈이라 해도 월권을 일삼는 수하는 절대 용납하지 않기 때문.
“멋대로 뜻을 정하다니. 보좌로서 자격 미달이군.”
마일성의 눈에서 짙은 살기가 뿜어졌다. 여차하면 죽여 없애겠다는 뜻.
역시 일장로였다. 이리 살벌하게 나오는 걸 보면.
장이서는 쓴웃음을 삼키곤 답했다.
“내일을 견디려면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지금이 아니고? 마일성의 고개가 또다시 기울어졌다.
“꼭 내일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말하는군.”
“예, 벌어질 겁니다. 다른 이도 아닌 일장로께서 직접 명을 내리시겠지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칠소궁을 지우라고.”
“……!”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자신이 칠소궁을 지우라 명할 것이라니.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대공자가 마가에 충성을 물으려 할 테니까요. 아마 지금쯤 발을 동동 구르며 천가로 향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뜻을 전해오겠지요.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
“장로께선 고심하실 겁니다. 어느 쪽이 더 타산이 맞는지 저울에 다시겠죠. 하나 곧 추는 기웁니다. 이미 대공자와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니 끝내 칠소궁을 버리실 겁니다.”
“억측이 심하군. 설령 그리된다고 한들 마가가 무슨 수로 칠소궁을 지운단 말인가. 그것 자체가 역모이거늘.”
“맞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칠소궁과 연관된 모든 것을 지우려 드시겠지요. 마가라면 가능한 일이니까요. 어차피 곧 알게 되시겠지만, 저희는 주변이 다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허…….”
마일성이 처음으로 입 밖으로 탄성을 뱉었다. 그냥 월권이나 일삼는 영악한 놈인 줄 알았더니…….
‘난 놈이로구나.’
이 정도면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수준.
“하여 첫째의 목숨을 방패막이로 내세우겠다는 건가?”
“무혈공에겐 앞으로 받을 게 많습니다. 사과도 받아야 하고. 책임도 물어야 하지요.”
“꼭 죽이겠다는 것처럼 들리는군.”
“끝까지 정신을 못 차린다면 그래야겠지요.”
“그게 거래가 된다고 생각하는가?”
마일성이 코웃음을 치자 장이서는 당연한 거 아니냐는 표정으로 답했다.
“일장로님. 칠소궁은 더 이상 쓰러져 가던 폐궁이 아닙니다. 소교주의 자리를 바라볼 만한 자격을 갖춘 곳입니다. 이게 부족하다고 보십니까?”
“…….”
“본교 제일 가문에 이어 본교의 주인이 탄생하는 겁니다.”
실로 위험천만한 발언. 하나 그만큼 설레는 말이다.
본교의 주인이 마가에서 나온다라…….
이 얼마나 웅장하고도 감미로운가.
솔직히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오죽하면 속눈썹마저 파르르 떨렸다.
확실히 불가능한 얘기만도 아니었다.
구유는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음을 만천하에 보여주었고, 장이서는 영민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리고 마오는…….
‘내 편견을 깨고 가능성을 보여주었지.’
확실히 기대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 뜻은 변함이 없네.”
“그 말씀은…….”
“마가가 칠소궁을 지지할 일은 없을 거라는 얘길세. 또한 대공자께서 증명을 요구한다면 그 또한 따라야겠지.”
청천벽력이다. 장이서의 얼굴에 그늘이 서렸다.
“이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아직 가능성뿐이지 않은가.”
“……!”
“첫째를 이긴 것은 어디까지나 혼원일체에 올라섰기 때문. 진짜 실력이 아니지.”
알고 있었구나……. 하긴 상대는 일장로.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자신도 알아본 걸 그가 모를 리 없는 일.
“시간문제입니다. 오래지 않아 올라갈 것입니다.”
“그렇겠지.”
장이서는 그 순간 마일성의 표정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다른 이유가 있군요.”
체념하듯 입을 열자, 마일성도 숨기지 않겠다는 듯 눈빛으로 수긍했다.
대체 이유가 무엇인가.
일면의 가능성만 보고 모든 걸 걸 수 없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대공자가 약속한 미래가 있을 것이고, 지금껏 투자한 것들이 있을 테니. 오늘 한 번으로 모든 걸 뒤엎는다는 건 성급한 결정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고민할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마가에서 소교주가 등장할지도 모르는 일. 가능성이 단 일 할이라도 있다면, 이리 칼같이 잘라낼 수 없는 일이거늘.
한데 왜…….
그때 뚫어지게 절 바라보던 마일성과 눈이 마주친 그 순간.
‘설마……!’
장이서는 번뜩하고 깨달았다. 지금까지 느껴지던 이 위화감의 정체를.
그게 무얼 향하고 있는지. 또 어떤 감정인지를.
그건…….
“저 때문입니까?”
충격적이지만 자신을 향한 적대감이었다. 어째서……?
“난 내가 본 것만을 믿지.”
“무슨 말씀인지…….”
“자네는 모두가 포기한 칠소궁을 일으켜 세웠네.”
“그게 왜…….”
“그게 문제인 거다. 불가한 걸 가능케 바꿔놓는 총명함과 번천검객을 꺾은 불가해한 실력. 그리고 그와 어울리지 않는 미흡한 출신.”
“……!”
“이러한 모순이 현실이 되는 경우는 하나뿐이지.”
마일성이 섬찟한 기세를 흘리며 윽박질렀다.
“누가 너를 보낸 것이냐.”
고오오오오-!
그에게서 모든 걸 빨아들일 듯한 묵중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
우우웅!
그리고 이에 반응하듯 몸 안의 내기가 들끓기 시작했다.
이런…… 낭패다.
* * *
한편 그 시각.
가장 먼저 마가에서 나온 천무기는 마차를 타고 장이서의 예측대로 천가로 향하고 있었다.
“으음…….”
한데 무표정한 천무기와 달리 유령마군은 계속 신경이 쓰이는지 입술을 달싹였다.
떠나기 전 무한성이 했던 말 때문이었다.
‘무혈공은 북명신공 대성했지, 마오는 용됐지. 그럼 그 두 아들의 아비인 일장로는. 노났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행사는 마가의 단결력만 키워준 일인 것 같았기 때문.
“이대로 그냥 가도 괜찮은 걸까요.”
“다 끝난 판에 더 남아서 무엇 하려고.”
“솔직히 의심이 거두어지지 않습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건 배신의 진리 아닙니까.”
“일장로가 핏줄에 연연한 자였다면 애초에 우리 쪽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오나 오늘 보여준 칠소궁의 모습은 충분히 위협적이었습니다.”
대공자가 이빨을 까득 깨문다. 그래, 맞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칠소궁은 분명히 달라졌다.
직접 봐 놓고도 이전과 똑같이 무시한다는 건 어리숙한 하수나 하는 짓.
“하여 나는 우리와 같은 마음인지……. 마가에 증명을 요구할 것이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유령마군이 웃음을 지었다. 하긴 대공자가 그냥 넘어갈 리 없지. 하나 웃는 것도 잠시. 금세 다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한데…… 장이서……. 그 버러지 같은 놈이 마음에 걸립니다.”
빠득. 장이서의 이름이 나오자 천무기의 눈에 굶주린 독사의 살기가 뻗쳐 나왔다.
세상에서 가장 쳐 죽이고 싶은 새끼를 당장 꼽으라면 당연히 장이서다.
그만큼 아주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는 얘기.
‘제게 백인장의 인을 시원하게 날려버릴 묘책이 있습니다.’
미꾸라지같이 교묘하게 파고들어 와 주둥이를 놀려대던 버러지 새끼.
그래 놓고 감히 구유를 들여? 마이신이 뭐 어째?
‘적어도 대공자님 앞에선 공명정대할 것입니다.’
틀렸다. 그놈은 절대 공명정대할 수가 없는 타고난 마귀 새끼다.
“장이서 그놈은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죽게 될 것이다.”
“예.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한데 당장 그놈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건 아닐지…….”
“수작? 일장로에게 말이더냐?”
“예……. 송구하오나 소인 그놈처럼 세 치 혀가 간악하고 능란한 놈을 본 적이 없습니다. 번천검객을 이긴 것도 수상쩍지 않습니까. 사전에 매수된 게 아니고서야…….”
솔직히 예전이었다면 개소리라며 흘렸을 말이다. 번천검객이 누구인가. 마가의 이인자다. 그런 그를 무슨 수로 승부 조작시킨단 말인가.
하지만.
‘장이서, 그놈이라면 능히 그러고도 남을 놈이다. 감히 날 속였는데 번천검객이 어려울까.’
빠득. 지금 자신이 아는 장이서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이는 몰라도 상대가 일장로 마일성이라면 아무 걱정도 되지 않았다.
“후후, 걱정할 것 없다. 일장로는 절대 그놈을 신뢰하지 않을 테니.”
“어째서 그리 확신하시는 겁니까.”
“너는 본교 교직에 있는 자들이 가장 많이 들락거리는 곳이 어디인 줄 아느냐?”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음, 오룡당과 천마전이 있는 마해산 아니겠습니까.”
“틀렸다. 마가의 경천채다.”
“……!”
“교주이신 아버님께선 천마전에서 소사(小事)를 논하지 않으신다. 오직 대사(大事)만을 다루실 뿐. 작은 일은 모두 마가에 일임하셨지.”
“음…….”
맞는 말이다. 일장로 마일성을 일인지하 만인지상. 혹은 마교의 재상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여 마가의 경천채엔 수많은 이가 들락거린다. 평교도부터 교직에 머무르는 이들까지. 당연히 그중엔 두더지들도 빼놓을 수 없지.”
“두더지라 하시면……. 첩자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천마전엔 가고 싶어도 엄두가 안 나니 경천채를 노리는 수밖에.”
그런 비사가 있었을 줄이야. 그럴 수도 있겠다. 정사마 평화협정 이후로 첩자들이 부쩍 늘었으니. 한데.
“그게 장이서를 믿지 않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겁니까. 혹 그가 첩자라도 된단 말씀이십니까?”
대공자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건 아닐 것이다. 그런 마귀가 본교의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본교의 사람이겠느냐. 하나 생각해 보거라. 일장로가 그간 얼마나 많은 첩자를 지켜봤을지. 한데 교외자 출신인 장이서가 칠소궁을 뒤바꾸고 이인자인 번천검객을 쓰러트렸다. 너라면 그놈을 믿을 수 있겠느냐?”
유령마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거구나! 아무런 미련도, 걱정도 없이 마가를 떠나올 수 있던 이유.
“후후, 그러니 장이서가 날뛰어 봤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다. 믿을 만한 누군가가 그의 신분을 보증해 준다면 또 모르겠지만. 하하하하!”
대공자의 웃음이 길게 울려 퍼졌다.
유령마군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