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73)
첩자의 마교생활-173화(173/350)
173.
#흉신팔주
흐으으으으-
새어 들어오는 바람이 음산한 곡성처럼 울리는 어느 지하 공동.
벽면엔 피 흘리며 고통받는 기괴한 불상들이 가득하고, 곳곳에 놓인 촛불들은 매섭게 일렁인다.
딱 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곳.
이는 자리에 모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회의를 시작하지.”
중앙의 둥그렇고 넓은 단상 위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붉은 악귀의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피풍의까지 시뻘건 게 어디서 쉬이 보기 힘든 행색이다.
이는 단상에 선 이들 모두가 똑같았다. 해서 각자 서 있는 자리 밑에 적힌 숫자로 서로를 구별했다.
일(一), 이(二), 삼(三), 사(四), 오(五), 육(六), 칠(七), 팔(八).
이들의 이름은 흉신팔주(凶神八主).
더 정확히 말하면 가면 속에 스스로를 감춘 위군자(僞君子)이자, 세상을 멸하겠다는 뜻을 수행하는 피의 대리인.
혈교(血敎).
바로 혈교의 흉살들이었다.
평소 이면의 모습을 철저히 숨긴 채 살아가는 자들이기에, 이처럼 직접 모이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만나는 경우는 오직 하나. 무언가를 멸할 때뿐이다.
그리고 이들의 흉악한 입에 오늘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인물은 바로.
“장이서라고 했나.”
칠공자 보좌 장이서.
동명이인 아니고, 진짜 그였다.
장이서가 혈교에 대해 알아가려는 찰나, 그들 역시도 일직선 위를 마주 달려오고 있었던 것.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얼마 전에 칠흉(七凶)이 당했다던데.”
칠흉 광의. 흉신팔주 중 하나이자, 지금은 비어 있는 일곱 번째 자리의 주인이다.
장이서가 알고 벌인 일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칠흉이 당했다.
“아직 죽은 건 아니고. 뭐 살아는 있을 거요. 살아도 산 게 아니겠지만.”
남 얘기하듯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자. 삼흉이다. 구룡성에서 추락한 광의를 데려간 자이기도 했다.
“칠흉의 말에 따르면 제대로 싸워서 당한 건 아니랍디다. 내공이 고갈된 상태에서 스스로 뛰어내려 그렇게 되었다고.”
“자결이라도 하려 했다는 것인가?”
탁한 노년의 음성. 이흉이 황당하다는 듯 말을 던지자 삼흉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맞소.”
“허허, 예부터 제정신이 아닌 것 같더라니.”
“어쨌든 우리를 알고 온 건 아닌 모양이었소. 그저 와 보니 맞닥뜨린 것뿐.”
“허허, 흉신팔주인 것도 모른 채 우연히 칠흉을 쓰러트렸다?”
“그런 것 같소.”
삼흉은 담담하게 자신의 뜻을 피력했다. 하나 돌아오는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못했다.
그럴 리가.
되도 않는 소리!
누구 하나 믿지 않는 눈치.
당연했다.
장이서에게 당한 건 하나가 아니었기 때문. 비어 있는 자리는 하나가 더 있었다.
팔흉(八凶).
그도 당한 것이다. 그것도 칠흉보다 먼저!
“그놈 때문에 우리 중 둘이 당했소. 한데 그게 전부 우연이다? 그걸 믿으라는 말인가.”
오흉이 정기(正氣) 가득한 목소리로 되묻는다. 정황만 놓고 보면 당연히 문제가 심각했다. 하나 어쩌겠는가. 삼흉은 그저 제가 보고 느낀 대로만 말할 뿐.
“믿기 싫으면 말든지.”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하다니!”
그의 퉁명스러운 답에 웅성거림이 커지고, 곳곳에서 거친 언성이 터졌다.
이에 이흉이 타이르듯 중재했다.
“자, 자. 그만들 하시게. 우리에게 중요한 건 이유가 아니라 처분일세.”
맞는 말이다. 우연이든 의도든 이미 장이서는 혈교의 주적으로 급부상한 건 사실.
“뭔 혓바닥들이 이리 길어? 뒈진 새끼는 대체할 놈 찾으면 되는 거고. 뒈질 새끼는 죽이면 되는 거지.”
풍채만 봐도 얼마나 거친지 지레짐작이 되는 자, 육흉이 입을 열었다.
실로 간결한 해답.
하지만 이에 반박한 건 놀랍게도 삼흉을 추궁하던 오흉이었다.
“쓸데없이 또 계획에도 없는 일을 벌이겠단 것인가? 그러다 대업에 차질이라도 생기면. 자네는 생각이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하여튼 정파 새끼들은 죄다 겁보 새끼들만 모였나…….”
“지금 뭐라고 했는가?!”
“아, 들렸어? 귓구멍이 꽉 막혀서 들을 줄 몰랐네.”
“감히…….”
“뭐. 꼬우면 대가리 걸고 붙어보든지.”
솨아아아아!
엄청난 기운이 휘몰아친다. 사실 이들은 서로의 정체를 모른다. 하나 딱 보면 알지 않은가. 가면 벗고 겸상할 수 있는 자인지, 아닌지.
그런 의미에서 오흉과 육흉은 누가 봐도 정과 사였다.
그렇게 둘 사이에 당장 터질 듯한 기류가 흐르던 그 순간!
“그만!”
쐐애애액!
단호한 일언과 함께 막대한 기운이 두 사람 사이를 거침없이 가로질렀다.
“흡!”
“음…….”
콰아앙! 그리고 이어진 굉음. 오흉과 육흉은 침을 꼴깍 삼키곤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마치 과녁을 만들 듯 중심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고, 주변엔 원형으로 실금이 잔뜩 새겨졌다.
그리고 반대편엔 한 사내가 검지를 쭉 뻗은 채 서 있었다.
일흉(一凶). 흉신팔주의 수장이다.
그가 나선 효과는 확실했다. 오흉과 육흉은 헛기침을 터트리곤 머쓱히 고개를 돌렸다.
이는 단순히 그의 지위 때문이 아니라 방금 그가 보여준 신위 때문이었다.
이 공동으로 말하자면 가장 강도가 높다는 한철(寒鐵)을 겹겹이 쌓아 만들어 놓은 곳.
한데 그걸 지풍만으로 박살을 내놓은 것이다. 이 정도면 최소로 잡아도 초절정 끝자락.
잠시간의 소강이 이루어지고, 삼흉이 어수선한 분위기를 잘라내듯 회의를 재개했다.
“장이서가 우리를 뒤쫓고 있는 게 아니라면, 건드려서 좋을 건 없을 거요. 어쨌든 이번 마가 건으로 칠소궁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소. 괜히 벌집을 쑤셨다가 대업을 망칠 수도 있단 얘기지.”
“허허,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우리에겐 무엇보다 대업이 중한 일이니. 하나, 이대로 그냥 넘기기엔 손실이 너무 크지 않은가.”
점잖은 이흉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평소 담백하면서도 설득력이 짙은 게 그의 설법.
쉽게 말해 직접 나서긴 모호하나 살려둘 순 없다는 입장이다.
이 정도면 양측의 의견은 모두 나온 셈.
긴 침묵이 흐르고, 일흉이 음산한 목소리로 상황을 정리했다.
“이번 일은…… 함구한다.”
음. 곳곳에서 침음이 뱉어진다. 썩 마음에 드는 얘기가 아니기 때문. 하나 곧 이어진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곧 마교에서 대계가 시작될 것이다.”
장내가 웅성거렸다.
“그 말은 마교가 피로 물들 날이 도래했다는 것 아닌가. 허허.”
“드디어…… 수십 년의 기다림이 난화를 피우는구려!”
이흉과 오흉이 감격을 드러냈다. 도무지 듣고도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천년 마교를 피로 물들이겠다니.
천마가 우스운가? 아니, 그가 아니더라도 광명사자에 장로회. 오룡당과 칠대공자. 외에도 광명천마대부터 경천동지할 고수들이 수두룩했다.
한데 대체 뭔 수로.
아마 다른 이가 이 말을 했다면 코웃음 치며 비웃었을 거다.
하지만 이들은 혈교.
그 이름이 결코 가볍지 않다.
“오랜 기다림이었다. 마교 놈들은 모를 것이다. 저들의 배 속에 무엇이 태동하고 있는지. 이날을 위해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인내하고, 또 인내해 왔는지를.”
일흉은 차오른 흥분을 최대한 눌러내며 말했다.
“하나 이제 곧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혈옥(血玉)이 피로 가득 채워지는 날. 천산은 피로 물들 것이고, 천하는 혼란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거짓된 평화가 깨지고,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눌 것이며 종국에는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그때쯤엔 모두가 알게 되리라.”
혈교는 사라지지 않으며, 언제나 곁에 함께하고 있음을.
“혈존천하(血尊天下) 파멸일원(破滅一原)!”
장내에 모인 이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외쳤다.
대계까지 남은 시간은 정확히 보름.
혈교가 준비한 폭약이 마교 내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 * *
월하촌 초입.
“내가 돌아왔다아아아아-!”
햇살 반짝이는 월광호를 가로지르는 홍예교 앞에서 커다란 고함이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기다란 장신에 적발을 가진 미공자.
마오의 귀환이다!
그것도 마가와의 대결에서 대승이라는 쾌거를 이룬 채.
“우하하하하!”
발보다 빠른 게 말이라고, 벌써 소문을 듣고 구경 나온 마을의 신도들은 칠소궁의 행렬에 웅성거렸다.
“칠공자님께서 마가를 꺾으셨다니. 믿을 수가 없어.”
“예전의 칠공자님이 아니라니까! 봐봐. 자태부터가 다르잖아. 난 지난번 자객들이 쳐들어왔을 때부터 알아봤다고.”
“세상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니까.”
전반적인 분위기는 우리 칠공자가 달라졌어요. 딱 이거였다.
망나니였던 과거는 이제 추억 속의 그땐 그랬지가 되어버렸다. 특히 가장 두드러졌던 것은 이젠 저절로 고개가 숙어진다는 점.
물론 그간 잔치를 열며 노력한 덕분도 있겠지만, 당장 보이는 모습이 너무도 웅장했다.
좌우로 갈라진 신도 사이를 횡단하는 저들을 보라.
칼 한 자루 등에 멘 채, 활짝 웃으며 위풍당당하게 걸어오는 칠공자 마오.
그의 뒤를 차지한 보좌 장이서와 독산마의 사마균.
그리고 위압적인 기세를 드러내며 이를 뒤따르는 구유, 과평, 아신과 붉은 무복의 칠무위.
누가 감히 이들 앞에서 함부로 고개를 들 수 있겠는가. 아니, 누가 이들이 가는 길을 막을 수 있겠는가.
그런 존재가 있다면 그건 필시 미치광이이거나, 그도 아니면…….
“아부우우!”
“혜, 혜이야!”
당과의 주인 세 살배기 여아뿐일 것이다.
당과를 들고 뒤뚱거리며 달려 나온 여아가 마오의 앞을 착! 가로막았다.
“뭐냐, 애송이.”
마오가 미간을 찌푸리며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이에 맞춰 뒤의 행렬도 척! 멈춰 섰다.
“애한테 애송이가 뭡니까?”
“장이서. 넌 가만있어. 이건 나하고 저 녀석의 문제니까.”
뭔 문제. 네가 당과 뺏어 먹어서 울렸던 애잖아. 장이서가 어이가 없어 쳐다보자 마오는 자세를 낮춰 아이와 눈을 맞췄다.
설마 또 뺏어 먹으려고? 이 많은 사람 앞에서?
모두가 두 사람을 주목하고, 침을 꼴깍 넘기는 바로 그때.
“아부우!”
여아가 활짝 웃으며 당과를 척! 한 입 먹으라며 내밀었다.
“오오오!”
“혜이마저 칠공자님이 달라진 걸 알아본 것인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주변을 살폈다. 음? 그러다 문득 집요한 시선을 느껴 골똘히 살피려는 찰나.
마오가 우하하하! 크게 웃고는 당과를 한입에 남김없이 해치웠다. 그러곤 배신감에 울먹이는 여아를 제 어깨에 태우고 외쳤다.
“우하하하! 가자!”
무턱대고 다시 시작되는 행렬. 잠깐, 애는 왜 데려가는데! 장이서가 당황해하는 사이, 신도들은 환호를 내질렀다.
“칠공자님이 달라지셨다!”
“와아아아!”
도대체 뭘 보고! 아니, 그것보다 지금 그게 중요하냐. 아이 엄마 당신도 지금 좋아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하…….”
얕게 한숨이 뱉어지고, 이내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어느새 홍예교를 지나 대나무 숲에 다다르자…….
“형니이이이임-!”
“오셨어요.”
용태와 식구들. 그리고 취홍란.
그들이 반갑게 웃으며 맞이했다.
드디어 칠소궁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