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74)
첩자의 마교생활-174화(174/350)
174.
#모든 게 시작일 뿐
오랜만에 돌아온 칠소궁은 많은 게 달라져 있었다.
근사한 대문. 일면에 만들어진 연무장. 연꽃이 가득한 연못과 정원. 그리고 그 앞에 여럿이 앉을 수 있는 협탁까지.
자신들이 한 층 더 성장해 돌아온 것처럼 이곳 또한 발전해 있었다.
무엇보다도 특이했던 건 바로 대문부터 시작해 곳곳에 새겨진 문양이었다.
둥그런 원 바깥면에 촘촘히 고리가 박힌 모양. 태양인가?
“크하하하! 형님, 이거 보이십니까? 대공자가 불꽃이라면 우리는 태양! 아주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용태가 신이 난 듯 곳곳의 문양을 가리켰다. 나쁘지는 않다. 소속감을 키워줄 것도 같고.
무엇보다도 마오가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다.
“오, 용태, 이 자식! 제법인데? 결국 나 천재 마오가 태양이라는 얘기 아니야.”
“크하하하! 그렇죠. 여기 루주하고 저희가 고심해서 준비했습니다. 흐흐. 앞으로 딱 뜨면 그냥 어이쿠 눈부셔. 애들 자지러지는 거죠. 옷이고, 무기고. 전부 박아드리겠습니다.”
“좋았어. 역시 마음에 들어. 넌 내가 소교주 되면 바로 월하촌의 봉수(縫手)로 임명한다.”
“보, 봉수?!”
x발? 그냥 바느질장이잖아.
“우하하하! 들어가자!”
칠소궁으로 들어서자 마오오오오! 칠무위는 대문 앞에서 힘차게 인사를 올린 뒤, 여아를 데리고 다시 마을로 돌아갔다.
*
식솔들은 자연스레 넓어진 정원 협탁에 모여 앉았다.
새로운 식구도 늘었고, 여정을 마치고 돌아왔으니 뒤풀이 대화는 필수 덕목.
중심에는 당연히 마오가 앉았고, 그 옆으로는 마의, 구유, 과평, 아신, 홍란, 용태, 메기가 자리했다.
장이서는 마오의 뒤에 시립했는데, 앉으라고 거듭 말했지만 이게 편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칠소궁의 제대로 된 궁회(宮會)가 시작되었다.
“제갈 선생도 없이 이 정도라니. 용태랑 메기. 너희가 고생이 많았구나.”
시작은 자연스레 흑룡공방에 대한 칭찬으로 이루어졌다.
다른 이들은 그래도 계속 봐 온 게 있겠지만, 장이서는 근 한 달이 넘도록 돌아오질 못했었으니 더 크게 체감됐다.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뭐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요즘 제대로 일 하나 벌이는 중이니 기대해 주십시오. 소개해 드릴 녀석도 있고요. 흐흐.”
용태가 잇몸을 드러내며 자신감 넘치게 웃었다. 아직 호언장담할 시기까지는 아닐 텐데. 그래도 뭐든 해보겠다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다.
“근데 소개해 줄 사람이 있다고?”
“예. 구하운이라고 어리지만 아주 쓸만한 야장입니다. 다음에 정식으로 인사 올리겠습니다.”
그의 말에 솔깃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인 중 실력 좋은 야장에게 호감 품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가까이 있다면 여러모로 좋은 일.
“기대하마.”
“예!”
용태가 힘차게 답하자 옆에서 마의가 미간을 좁힌 채 중얼거렸다.
“뭐, 저런 왈패 놈까지 안에 들인 게야. 이러니 칠소궁을 우습게 여기지. 쯧쯧.”
“왈패 놈?! 그거 청산한 지가 언젠데!”
“마의이시다.”
“왈패하면 용태. 왈용태입니다.”
쯧! 마의는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고, 넙죽 엎드린 용태는 거북목이 된 채 쭈뼛거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장이서는 흘깃 눈치를 주곤,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말했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는 마가와의 대결에서 승리했습니다. 마가칠객을 쓰러트렸고, 칠공자님께선 무혈공을 꺾고 긍지를 되찾으셨습니다. 충분히 기뻐하고, 또 자랑스러워해도 될 일입니다.”
마오를 비롯해 모두가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하나 장이서는 표정을 굳히고 단언했다.
“하지만 그것도 딱 오늘까지. 이젠 전보다 더 많은 이가 우리를 주목할 거고, 호시탐탐 틈을 노리고 접근하려 들 겁니다. 위험한 순간도 많을 겁니다. 더 강해져야 합니다. 안주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에겐 시작과 끝 두 가지만 존재합니다. 칠공자님께서 소교주 자리에 앉기 전까진 모든 게 시작일 뿐입니다.”
더없이 현실적이면서도 비장한 말.
맞다.
소교주가 된다는 건 만마의 위에 군림하겠다는 것. 그러기 위해선 그 어떤 누구보다도 더 치고 나가야만 한다.
“칠공자님.”
“응.”
“저희 모두는 칠공자님을 보고 모인 사람들입니다.”
마오의 표정이 다소 굳어진다. 과거라면 좋다고 방정맞게 웃었겠지만, 마가에서 칠무위와 장이서의 의지를 보았다.
“나도 알고 있어.”
마오가 진중하게 답하자 장이서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들이 곧 칠소궁을 이루는 기둥이며, 앞으로 만마에 칠소궁을 알리는 낯이 될 겁니다. 그러니 이제부턴 칠공자님께서 이들을 올바르게 쓰셔야 합니다.”
“음?”
“지켜야 한다면 누굴 붙일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고, 베어야 한다면 누구를 보낼지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또 앞으로 어떤 일을 맡길 것인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모든 걸 심도 깊게 생각하시라는 말입니다.”
“뭔 말인지 알 것 같아……. 장수들을 다루듯 제대로 써먹으라는 말이잖아.”
대충 그런 말이다.
“좋았어. 그럼 일단 취선루가 진상도 많고 하니까 거기 용태를 보내도록 하자. 또 쟤가 술 좋아하거든. 상성이 잘 맞아.”
“누가 누굴 지킨다고 거길 보냅니까. 홍란이 마음만 먹으면 일초지적도 안 되는데.”
“하긴. 루주가 좀 평범하진 않지. 그러면 아신으로 간다. 같은 여자들끼리 또 통하는 게 있거든. 우하하하! 역시 난 천재?”
“글쎄요. 미녀가 둘이라면 진상들만 더 늘어나지 않을까요. 진상들은 손대지 않고 치우는 게 제일입니다.”
“어, 그래……? 그럼 구유로 하자. 좋았어, 끝!”
“그는 칠공자님을 지키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 잠깐만. 그러면은…… 육장로?!”
“말이 됩니까?”
“과평.”
“훌륭하십니다.”
x발……? 기분 x나 이상한데.
“취선루엔 앞으로 과평이 머무는 것으로 하고, 월하촌은 칠무위가 5인 1조 3교대로 구역을 정해 순찰을 도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마의께선 식솔이 아닌 빈객의 신분이시므로, 공적으로 도움을 청해선 곤란합니다.”
안 그랬다간, 너도나도 외부의 힘을 끌어다 쓰려 할 테고, 종국에는 천마전까지 나서서 시시비비를 가리게 될 거다.
“끌끌. 알겠다. 하나 의생으로서 눈앞의 다친 놈들을 자발적으로 치료해 주는 건 문제 없겠지.”
고개를 끄덕이자 마오가 이제 됐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냥 얘 말대로 다 해. 뭐, 언젠 안 했냐. 근데 이거 하나는 양보 못 해.”
“뭘 말입니까.”
“아신. 네가 장이서 옆에 붙어.”
뭐?
“아뇨, 그럴 필요는…….”
“시끄러워. 보좌가 돼서 혼자 다니면 되겠어? 수신호위가 붙는 건 당연한 일이지.”
첩자에게 붙는 건 수신호위가 아니라 감시자다. 여러모로 거추장스러운 일.
“괜찮습니다.”
“괜찮긴 뭘 괜찮아. 아신, 네가 무조건 장이서 지켜. 한 시도 떨어지지 마. 이 자식 걸핏하면 코피 흘리면서 픽픽 쓰러지거든? 그러니까 잠을 자든, 똥을 싸든. 옆에서 무조건 지켜.”
“내가 언제 코피를…….”
“조용해. 이건 내 항명이다.”
명령이겠지. 솔직히 반박하고 싶었지만, 마오의 표정이 너무도 단호해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잘 부탁하지.」
「따르겠습니다.」
용태와 흑룡공방엔 따로 호위를 붙이려고 했으나, 그가 한사코 거절했다.
“크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용태. 지금껏 눈치로 버틴 놈입니다. 괜히 호위들 붙여봤자 오해만 살 텐데, 일단 제가 알아서 해보겠습니다.”
“문제가 생긴 것 같으면 바로 홍란에게 말해라.”
“예, 형님!”
이어 자금과 정보는 취선루에서 담당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각자의 역할이 배정되었다.
“좋았어! 그럼 이제부터 제대로 한번 가 보자-! 아, 일단 오늘까지는 쉬고.”
하하하! 마오의 포부에 화기애애한 웃음이 퍼졌다.
*
그 뒤로 칠소궁은 무탈한 하루하루를 맞이했다. 물론 조금 소란스럽기는 했다.
“아니, 이 꼴들을 하고서 여태 빨빨거리며 싸돌아다녔던 게야?!”
등목이나 하려고 윗옷을 벗은 것뿐이거늘. 무수한 상처에 마의가 경악을 금치 못한 것.
“이런 미친놈들을 보았나! 당장 따라오거라!”
“우하하하! 장이서 잘 가.”
“칠공자님은 예외인 줄 아십니까?”
“아니, 나도?!”
“너도! 그리고 구유 너 역시 마찬가지다. 전부 별관으로 집합!”
“아니, 아무리 장로라도 나 칠공자야. 말은 조심하자.”
“가아아알! 환자에게 문벌 따윈 없는 법!”
“x발?!”
그렇게 며칠 간은 나란히 누운 채 마의의 치료를 받았다.
실력은 확실했다.
“구유, 이놈은 지난번에도 그렇고 매번 송장이 따로 없구만! 그렇게 소원이면 그냥 죽지 그러냐. 그리고 이서 넌 번천검객한텐 베이지도 않았다면서 이 상처들은 다 무엇이냐. 누가 이런 것이야!”
잔소리가 좀 심해서 그렇지.
“근데 장이서. 육장로가 왜 네 형님인데?”
“모르셨습니까. 주름이 많아 그렇지, 보기보다 어립니다, 저 형님.”
“그, 그런 거였어?!”
그런 거겠냐. 그렇게 칠소궁은 조금씩 천천히 적응해 나갔다.
그야말로 아늑한 평화.
물론 담장 밖의 상황은 그리 조용하진 못했다.
‘칠공자가 무혈공을 쓰러트렸다!’
이 간단하면서도 짤막한 한 줄이 천산을 활화산처럼 달구었기 때문. 이에 가장 많이 나온 첫 번째 반응은 딱 세 글자였다.
‘어떻게?’
역대급 불가사의. 저 한 문장을 이해하고자 무수한 부언이 뒤따랐다. 물론 처음엔 아무도 믿지 않았다.
‘약 때문이겠지.’
‘방심한 거야.’
사람들은 대부분 모든 이유를 마이신의 문제로 삼았다. 하지만 이도 오래가진 못했다. 새롭게 등장한 소식이 너무나 충격적이었기 때문.
‘무혈공께서 북명신공을 대성하셨다네!’
헉! 경악이 절로 터질 수밖에 없는 일. 북명신공을 대성했다는 건 완전한 새로운 경지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했다.
이는 마가에 두 번째 마군(魔君)이 탄생한 것.
‘그럼 그분을 이긴 칠공자님은 대체…….’
천산은 다시 혼란에 빠졌다. 도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 믿으라는 얘기인가.
모두가 진실을 궁금해했지만, 칠소궁과 마가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그 탓인지 덩달아 수뇌들도 말을 아꼈다.
덕분에 모든 건 마가의 칭송으로 이어졌다.
‘망나니니, 약쟁이니 아무리 떠들어도 호부견자는 없었구나.’
‘마가에 두 개의 태양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대공자에겐 악재로 돌아갔다.
“다시 말해보거라. 일장로가 내 제안을 거절했다고?!”
대공자의 그림에 예기치 않은 기다란 곡선이 북 그어졌다. 일장로 마일성이 칠소궁을 치지 않겠다는 거절 의사를 표해온 것.
유령마군은 침을 꼴깍 삼키곤 답했다.
“외람되오나 친선 비무였고, 또 세간에선 두 개의 태양이 떠올랐다며 칭송하는데……. 마가가 칠소궁을 치면 자칫 옹졸해 보일 수 있다며…….”
콰직!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대공자의 손에 쥐어진 붓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버렸다.
문방사우를 애병처럼 아끼는 그를 생각하면 제대로 화가 났다는 얘기.
“두 개의 태양? 감히 누가 그딴 소리를 지껄인단 말이냐-!”
푸푸푸푹!
그가 던진 붓 파편이 암기처럼 날아가 벽을 뚫고 박힌다.
실로 엄청난 경지.
하나 화가 날 만도 했다. 마가의 치욕으로 분위기를 몰아가려 하기도 전에 느닷없이 두 개의 태양이라는 낭설이 돌기 시작한 것.
“대체 어떤 놈이 그딴 망언을 떠들고 다닌 것이냐. 당장 가서 잡아내거라!”
대공자의 고함에 유령마군은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섰다.
하나…… 잡고 싶다고 잡히면 그게 어디 첩자겠는가.
맞다. 그 소문의 근원지가 바로 장이서.
정확히 말하자면 이 휘몰아치는 풍란의 이면엔 발 빠르게 움직이는 홍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