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77)
첩자의 마교생활-177화(177/350)
177.
#칠소궁의 원적
도대체 뭔 말을 하려고. 하지만 의문 대신 고개를 끄덕여 줬다. 어쨌든 구룡성에서 제 목숨을 구해준 은인 중 하나.
마교의 마인들보다는 믿을 만한 녀석이다.
“그럼 눈 딱 감아.”
어처구니가 없는 일. 하지만 믿기로 했으니 눈을 지그시 감았다.
“감았어? 좋아.”
그러자 소오는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에 놓인 장으로 다가섰다. 이내 끼이익! 이를 열어젖히며 말했다.
“내가 이번에 손에 넣은 게 하나 있거든. 너무 낯이 익어서 가져왔는데. 정말 소름 돋게도 이 안에 똑같은 게 하나 더 있는 거야. 그게 뭐냐면…….”
“너 백오문이었냐?”
“으아아아악!”
바로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소오가 기겁하며 나자빠졌다. 머리 위로 새하얀 부리의 까마귀 가면이 통! 떨어진다.
“야! 눈 감으라니까!”
“언제까지라고는 안 했잖아. 그것보다…….”
장이서는 황당하다는 듯 바닥의 가면과 장 속의 복장을 보곤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이 가면과 복장. 심지어 이 흑백의 동전들까지. 누가 봐도 백오문이잖아.”
“야, 그건! 와, 미치겠네. 진짜 우리 사이에 이렇게 신용이 없다고? 날 이렇게 뒤통수친다고?”
“대답부터.”
“뭘 물어. 다 봐 놓고. 맞아. 백오문. 까마귀 청소부.”
충격적이다. 까마귀의 실체를 본 것 자체가 처음이라 더 얼얼했다.
“그럼 불문객잔은 뭔데. 위장이냐?”
“미쳐버리겠네. 이봐, 고객님. 그렇게 다 캐물으시면 신변이 위험해지십니다. 몰라서 이래? 아는 양반이 왜 이래. 나도 다 까볼까?”
“벗으로서 묻는 거다.”
훅 치고 들어온 말, 벗. 소오는 말문이 턱 막혔다.
살면서 처음 들은 말이라 더 기분 이상하다. 이 썩을 놈…….
소오가 인상을 와락 구기곤 쥐 죽어가듯 말했다.
“……여긴 그냥 내 취미. 더는 묻지 마.”
“그러지.”
장이서가 두 손을 들곤 놀란 표정을 갈음한다. 소오의 얼굴은 더 구겨졌지만. 하여튼 낯 두꺼운 자식.
“됐고. 이거나 봐. 이 가면 말이야. 똑같지.”
소오가 두 개의 붉은 가면을 내밀었다. 꼭 악귀처럼 생긴 가면이다.
“이게 처음부터 이상했거든. 물론 이런 거 쓰고 좋아하는 변태 놈들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달랐단 말이지. 적어도 혼자 쓰는 건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
“혼자가 아니라면…….”
“놀라지 마.”
휙! 소오가 가면을 뒤집었다. 그러자 뒷면에 각각 숫자가 각인되어 있었다.
【칠(七), 팔(八)】
“봤지. 숫자가 있는 거야. 그럼 뭐겠어. 나머지가 더 있다는 거지. 근데 내가 이걸 광의의 흔적이 끊겼던 그곳에서 발견한 거야. 이상하게 거기에 묘비처럼 나무가 꽂혀 있길래 파 봤거든? 근데 이게 나오더라니까?”
“그럼 나머지 다른 하나는 사도철이 갖고 있던 건가?”
“와, 천재! 맞아. 그때 네가 사도철 죽이고…….”
어?
“역시 너였군. 내 담당자가.”
“으, 으아아악!”
방 안에 소오의 두 번째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것도 아까보다 조금 더 길게.
*
“괜찮으십니까?”
그의 연이은 비명 탓에 수하들이 몰려들었다.
소오는 정기가 다 빠져나간 사람처럼 물러가라며 힘없게 손짓했다.
그리고 한동안 심호흡을 뱉은 뒤 다시 대화를 나눴다.
“도대체 어떻게 안 거야?”
“생각해 보니 목소리와 체격이 비슷하기도 하고.”
“겨우 그거로?”
아니. 그건 아니고.
“찍었다.”
“장난해?”
“널 보고 찍은 게 아니라, 사도철을 찍은 거다.”
“무슨 소리야.”
“얼마 전에 자객들한테 습격받았을 때 사도철과 똑같은 무공을 쓰는 자를 본 적이 있다.”
장호에서의 일을 회상했다.
‘갈문천이다. 남들은 날 사혼검귀라 부르지.’
붉은 힘줄이 두드러진 채 주변의 공간을 일그러트리던 마공. 분명 사도철도 똑같이 이를 구현했었다.
너무나 기괴하고 낯설어 혹 혈교의 마공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하여튼 촉은……. 맞아. 이 팔(八)자가 적힌 건 사도철이 지니고 있던 거지. 그때 네가 그의 무공을 알아봐 달라고 해서 시체를 조사해 봤는데. 신기하게도 혈(穴)마다 사혈(血)이 가득 채워져 있더군.”
“그 말은……?!”
“그래. 운기의 촉매제로 내공뿐만이 아니라 피를 같이 사용했다는 거야. 그땐 그게 뭔지 몰랐지. 근데 오늘 네 말을 들어보니까…….”
“혈교.”
“맞아. 마교에선 금지된 혈교의 마공이었던 거지.”
일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이는 단번에 수용하기엔 너무도 크고 위험한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했다. 이곳이 어디인가.
중원의 그 어느 곳보다도 폐쇄적이고, 혈교라면 이를 가는 마교다.
한데 여기 이만큼 혈교가 뿌리를 내렸다는 건, 바꿔 말하자면 다른 곳은 더 심각하다는 얘기.
“어떡할 거야?”
침묵을 끝내고 소오가 물었다.
“일단 넌 밖에서 광의를 찾아. 안쪽은 내가 찾아볼 테니.”
“방법은 있고?”
장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원수를 갚을 기회가 생각보다 일찍 찾아온 것 같다.
가면을 품에 챙긴 채 걸음을 나섰다.
“가게?”
“혈교가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는 걸 안 이상 그냥 둘 순 없지.”
혈교나 마교. 정파 입장에선 둘 다 악적이지만, 굳이 편을 맺자면 고민할 것도 없이 여태 살아온 마교다.
“참, 그리고.”
문 앞에 선 장이서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가면은 쓴 게 더 낫다.”
“야! 내 얼굴이 어때서. 그리고 어디 가서 내 얘기하면 진짜 벗이고 나발이고……. 장 형! 내 말 알아들어?”
“간다.”
장이서는 손을 흔들며 떠나갔고, 소오는 한숨으로 그를 배웅했다.
***
늦은 밤.
칠소궁에 돌아온 장이서는 곧장 별관 집무실에 회의를 소집했다.
용태네는 미처 자리하지 못했고, 마오부터 마의, 구유, 홍란, 과평, 그리고 아신이 자리했다.
“또 무슨 일인데 밤에 이래. 나 오늘 녹차야. 종일 칼만 휘둘렀다고.”
녹초겠지. 상석의 마오는 땀에 흠뻑 젖어 있었는데, 그 모습이 이젠 제법 어색하지 않아 보였다.
다른 건 몰라도 수련에 있어선 게으름을 극복했다는 얘기.
“너, 설마 또 마이신 때처럼 멋대로 싸움 걸고 온 거 아니지? 그런 거면 미리 말해. 어디야. 맹가야? 설마 천가?!”
“제가 무슨 호전광입니까. 여기저기 싸움을 걸게.”
“그럼 다행이고. 아니면 뭔데.”
“아무래도 전쟁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칵! 전쟁광이었던 거냐!”
과장하여 엄포를 놓긴 했지만, 그 정도 각오는 필요했다. 상대는 천가도, 맹가도 아닌 혈교.
“지금부터 제 말 잘 들으십시오. 아무래도 본교에 혈교가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뭐, 뭐라고?!”
장이서는 경악에 빠진 모두에게 설명했다.
구룡성에서 만난 광의가 실은 독산각에서 쫓던 혈교로 넘어간 배교자였고, 이번에 누군가 그를 데려갔다는 말까지.
“공손절……. 그놈이 결국 살아 있다는 것이구나.”
고개를 끄덕이자 마의가 탕! 두 손에 들린 뱀 지팡이를 바닥에 내려찍었다.
그러자 솨아아! 음습한 기운이 물씬 풍겨 나온다.
비단 분노가 치미는 건 그뿐만도 아니었다.
「광의가 살아 있다니.」
구유를 비롯해 과평과 아신도 못지않았다.
흉노족에겐 일백 번을 찢어 죽여도 풀리지 않는 원수.
특히 과평은 제 동생마저 잃지 않았던가.
관련된 것들이라면 쌀 한 톨 남기지 않고 박멸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홍란 역시 정도에 뿌리를 둔 만큼, 혈교에 대한 감정은 최악이었다.
남은 건 하나.
“흠…….”
마오뿐이다. 그의 침음에 분위기는 무거워지고, 침묵이 자리했다.
어쨌든 이곳의 주인은 그다.
이제 겨우 마가를 꺾고, 더 높이 날아올라야 하는 시국. 한데 여기서 개인적인 원한과 감정으로 혈교의 뒤를 쫓자는 건 그에게 더 없는 무례일 수도 있다.
한데.
“뭘 고민해? 장이서랑 흉노족을 죽기 직전까지 몰아세운 새끼야. 내 식구들 건드린 놈인데 주인인 내가 그냥 넘기면 되겠어? 아주 박살을 내버려야지.”
마오가 씩씩대며 호기롭게 외치자 모두가 씨익 웃었다.
이로써 모두의 마음이 하나가 됐다.
광의. 그리고 혈교.
놈들은 지금부터 칠소궁의 원적(怨敵)이다.
“근데 이 새끼들을 어디서 찾지?”
“광의의 뒤는 불문객잔에서 맡아주기로 했습니다.”
“그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거야?”
“일단은 그런 셈이죠. 문제는 본교에 숨어 있는 혈교의 잔당들입니다. 광의를 빼돌린 것도 그들의 도움이 있었을 거고요.”
“숨어 있다는 증거는.”
툭. 장이서는 말없이 둥그런 협탁 위에 두 개의 가면을 내려놓았다.
보기만 해도 사악하고 괴이한 가면.
마오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를 주워 들곤 제 얼굴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뭐야, 이거……. 제법 멋있는데?”
어디가. 누가 마교 도련님 아니랄까 봐, 취향 참.
“하나는 광의가 사라진 자리에서 찾았고, 다른 하나는 사도철이 지니고 있던 겁니다.”
“잠깐. 사도철? 걔는 지금 실종 상태잖아!”
마오가 평소엔 안 그런데 꼭 쓸데없이 예리할 때가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뭔데. 내 질문에 대답은 왜 안 하는 건데!”
이야기는 계속됐다.
장이서는 장호에서 습격을 받았고, 자객이 펼친 마공을 과거 사도철 역시 똑같이 펼쳤다는 것까지 얘기했다.
“아니, 잠깐. 네가 사도철 무공은 어떻게 아는 건데.”
쓸데없이 예리하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대체 그럼 뭐가 중요한 건데! 마오가 입을 떡 벌리며 소리치지만, 모두의 관심사는 이미 그게 아니다.
홍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얹었다.
“혈교로 드러난 사도철이 자객과 같은 무공을 사용했다면……. 본교에 세력을 형성했을지도 모른다는 말씀이시군요.”
역시 홍란. 찰떡처럼 바로 알아듣는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야. 하지만 알아볼 이유는 충분하지.”
“어찌 이런 일이…….”
마의가 탄식을 뱉자 마오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그거였어!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다!”
“뭡니까, 갑자기.”
“혈교가 이 안에 세력을 만들었다면, 그 답은 간단해.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던 거야!”
“예?”
“생각해 봐. 독산각에서 마가로 가는 중에 자객이 널 노렸다며. 그리고 사도철은 예전부터 마이신의 뒤치다꺼리를 해온 자객이지. 이게 무슨 뜻이겠어.”
“무슨 뜻인데.”
“아직 모르겠어? 이 둘 사이의 공통점!”
“설마.”
“마가! 마가가 혈교였던 거야!”
“뭐라는 거야!”
“이제야 모든 게 맞아떨어져. 마이신이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던 이유. 그건 마이신이 혈교의 소교주였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마일성이 교주다!”
누가 얘 좀 말려라. 그리고 네 말대로면 너 사형이야. 배교자는 삼대를 멸하는 것도 모르냐.
“큰일 날 소리 마십시오. 마가는 아닙니다.”
“그럼 어딘데.”
“지금으로서 가장 유력한 곳은…….”
묵중한 분위기 속에 생각을 말하려던 그때였다.
“형님, 칠공자님! 불입니다! 지금 마을에 불이……. 불이 났지 말입니다! 흐어엉!”
바깥에서 메기의 처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