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78)
첩자의 마교생활-178화(178/350)
178.
#아비규환
“이게 대체…….”
칠소궁의 식솔들이 달려 나와 홍예교에서 바라본 광경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먼발치 수변에 어두운 밤하늘마저 집어삼킬 거대한 불길이 치솟고 있던 것.
족히 수십 개의 가옥을 집어삼킨 화마였다.
“으아아아앙!”
“불이야-!”
그야말로 아비규환. 홍예교 위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신도들 사이에선 비명과 통곡이 울렸고, 취선루를 찾아온 수많은 인파가 이를 지켜봤다.
마을 인근에선 몇몇 용감한 이들이 불을 끄려 애쓰는 듯 보였으나, 그래봤자 산불에 오줌 누기.
“어떻게 된 거야!”
마오가 다급히 소리치자 메기는 울먹이며 말했다.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불이 나기 시작하더니…… 흑!”
“그래서. 용태는. 용태는 어디 가고 너 혼자 온 건데.”
“용태 형님은…… 저 안에 계시지 말입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용태가 저 안에 있다니.
“사람들을 구하러 간다고……. 흐어어엉! 형님 좀 구해주십시오!”
메기의 그렁그렁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이에 장이서와 마오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
*
*
‘부, 불이야!’
불길이 일기 시작한 건 일각에서 이각 사이의 일이었다.
누군가 비명을 내질렀고, 인근 시장통을 거닐던 용태와 식구들은 가장 먼저 그 소리를 듣게 되었다.
‘형님! 저기 불이 났지 말입니다!’
메기가 가리킨 곳에서 뿌연 연기가 솟아올랐고, 용태는 화들짝 놀라며 달려 나갔다.
‘이런 젠장! 뭘 구경하고 서 있어! 당장 사람들한테 도망치라 알리고, 나머진 양동이 챙겨 따라와!’
하지만 이들이 도착했을 땐, 처음과는 다르게 이미 불길이 많이 번진 상태였다.
‘용태 형님! 불길이 너무 셉니다!’
누가 기름을 발라놓았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화마는 빠르게 덩치를 키웠다.
‘물! 물 가져와!’
그리고 용태의 지시하에 흑룡공방 식구들과 마을 신도들은 불을 끄기 시작했다.
하나 아무리 해도 진척은 보이지 않았고, 절망을 외면한 채 반복적으로 불을 끄던 그때.
‘사, 사람 살려! 누가 우리 아이 좀 살려주세요!’
가장 앞에 있던 용태의 귀에 구조를 청하는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버렸다.
그 순간 용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제 몸에 물을 들이부은 채 그대로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혀, 형님-!’
그게 메기가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
*
*
“도대체 왜…….”
마오는 이야기를 듣고는 넋을 놓았다. 용태가 원래 모진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까지 남을 생각하던 녀석은 아니었다.
근데 도대체 무슨 바람이 들어서…….
“의협심은 누구에게나 있다……. 단지, 행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 혹은 외면에 익숙해져서. 나만 하는 게 손해인 것 같아서.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얇은 종이로 덮어 가려진 것뿐이다.”
“그게 무슨 말이야, 장이서.”
유년 시절 각주에게 들었던 말이다. 용태는 분명 그 찰나의 순간, 제 안 깊숙이 숨어 있던 의협심을 마주한 것일 거다.
이는 능히 본받아 마땅한 일.
그런 그를 이리 쉽게 죽게 할 수는 없다.
장이서가 잠시 먼 곳을 바라보다 마오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용태를 구해야겠습니다.”
“응.”
마오가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장이서는 굳은 눈매로 불길을 살폈다.
‘이 정도 화마라면 물 한 동이씩 날라서 될 일이 아니다. 원래 같으면 전소될 때까지 기다리거나, 하늘에서 비가 내리길 기도해야 하는 수준.’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바로 앞에 월광호라는 방대한 물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
장이서가 몸을 돌려 마의 앞에 다가섰다. 그러곤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말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도와달라니. 설마 마의가 저 불을 끌 수 있단 말인가.
“칠소궁의 보좌로서 하는 말이라면 들어줄 수 없다.”
“아우로서 하는 말이라면요.”
“그것 또한 싫다면?”
“저라도 들어가야죠.”
“미친 게야? 그깟 왈패 놈이 뭐라고 목숨까지 건단 말이냐.”
“그런 왈패 놈도 저희 마을 지키겠다며 목숨 걸고 뛰어들지 않았습니까. 이렇든, 저렇든 칠소궁의 식구입니다.”
“허! 생긴 건 제 부모 등에다 칼도 꽂게 생긴 것이 대체 뭘 할 수 있다고 불 속을 기어들어 가. 답답한지고.”
독설도 이런 독설이 없다. 듣고 있던 메기가 왈칵 울분이 차올라 목구멍까지 욕지기가 올라왔다.
한데.
“거기 네놈. 이거나 잘 갖고 있거라. 네놈 목숨보다 귀한 것이니.”
휙! 마의가 들고 있던 지팡이를 다짜고짜 메기에게 던졌다. 얼떨결에 이를 받아 들자 마의가 천천히 난간으로 걸어 나갔다.
장이서가 화색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해주시는 겁니까?”
“그럼 어쩌겠느냐! 한참 어린 아우 놈의 상주 노릇을 할 수는 없지.”
“감사합니다, 형님.”
“치워라. 늘그막에 내가 아주 별 지랄을 다 하는구나. 보자……. 누군지는 몰라도 아주 불을 제대로 지펴놨어. 쯧쯧.”
마의가 호수 너머 불길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
“최대한 높이 띄우거라.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
도대체 뭘. 하나 장이서는 이를 찰떡같이 알아듣곤, 곧장 고개를 끄덕인 뒤 뒤돌아 외쳤다.
“지금부터 잘 들어. 수면을 내려쳐 최대한 물방울을 띄우는 거다. 칠공자님도요. 아시겠습니까?”
“어? 그렇게만 하면 끌 수 있다고?”
“그럴 겁니다.”
장이서가 답하자, 모두가 반신반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메기가 눈을 끔뻑이는 그때.
“지금!”
파아앗!
장이서의 외침과 함께 모두가 월광호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철쇄장(鐵碎掌)』
『염화표풍(炎火飄風)』
각자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힘으로 수면을 향해 일격을 쏘아 보냈다.
그러자.
푸화아아아악!
하늘 위로 물보라가 역행하는 소나기처럼 치솟았다.
“더! 더 많이!”
마의가 다급히 외쳤다.
하나 성급한 발언. 아직 끝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용(龍)이 남았다.
한발 늦게 뛰어든 구유의 눈에 붉은 만안이 서리고, 거칠게 출렁이던 물결이 전부 두 눈에 담겼다.
그리고 힘껏 숨을 들이마신 뒤, 그대로 가장 평평하고 균열이 진 지점을 향해 두 주먹으로 수면을 강타했다.
쩌어어엉!
그러자 엄청난 굉음과 함께 월광호 전체가 웅웅 울렁이더니, 푸화아아악! 십여 개의 용오름이 동시에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지켜보던 수많은 인파가 경악에 빠지고, 마의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말했다.
“충분하구먼.”
그리고 두 손을 위아래로 바퀴 돌리듯이 움직이자.
솨아아아-!
엄청난 공력이 그의 육신에서 뿜어지고, 이내 모두가 두 눈을 의심할 만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솟아오른 물방울과 물기둥이 어느새 공중에 멎어버린 것.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내 서서히 서로를 끌어당기듯 뭉치기 시작하더니…….
“히야아아앗!”
마의가 기합성과 함께 두 손을 앞으로 쏘아내자, 사상 초유의 거대한 물방울이 화마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그리고…….
촤아아아아악!
물방울이 터지는 음색과 함께 불길 위로 거센 폭포수가 떨어져 내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경이적인 신위.
메기를 비롯한 수많은 인파가 입을 떡 벌린 채 다물질 못했다.
이것이 바로 장로의 자격.
“꺼, 꺼졌다!”
“불이 전부 꺼져버렸다!”
와아아아아아!
침묵 끝에 신도들의 열광적인 환호가 흘러나온다. 마의는 갑작스러운 고함에 제 귀를 막으며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가아아아알! 이것들이 늙은이 귀먹게 할 일 있느냐! 닥치지 못할까-!”
흐이익! 인근에 있던 신도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망간다.
참, 잘해놓고 저런다. 장이서가 웃으며 다가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인사했다.
“고생하셨습니다, 형님.”
“흥, 뭐 이 정도야. 장로라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
어려운 일인 거 안다. 말은 저리 해도 지닌 공력의 상당수를 쏟아부었을 터. 지금도 연신 기침을 터트리며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래서 더 고마웠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감사합니다!”
메기 역시 울먹이며 달려와 지팡이를 건네고 엎드려 절을 올렸다.
“시끄럽다. 가서 사람들이나 구해오거라. 뒈진 것만 아니면 살려낼 용의가 있으니.”
마의가 힘겨운 듯 바닥에 앉는다.
“구하러 가자-!”
이에 마오가 큰 소리로 외치며 자릴 박차고 달려나갔다.
*
월하촌을 덮친 불길은 모두 소화되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났다면, 마을 전체로 옮겨붙어 더 큰 피해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마의가 있던 건 천운이었다.
그리고 용태도 화상을 입긴 했으나 천만다행히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는 아니었다.
“가, 감사합니다. 장로님. 장로님이 아니었다면…….”
그의 마음에 장이서와 마오 외에도 또 다른 귀인이 자리매김하는…….
“가아아알! 고작 왈패 따위인 네놈을 구하려고 내가 얼마나 많은 공력을 소모했는지 아느냐?!”
“히이익!”
물론 관계가 아직은 그리 썩 좋지는 않다. 차차 해결이 될 거다.
메기와 흑룡공방 녀석들도 드러누운 용태를 붙잡고 한참을 울다가 돌아갔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용태처럼 살아 돌아온 이도 있지만, 워낙 불길이 거셌던 터라 끝내 돌아오지 못한 자들도 있었기 때문.
“빌어먹을!”
마오는 수습해 온 시커먼 시체들을 보며 한참 동안을 분통함에 파르르 떨었다.
활기로 가득했던 월하촌이 숙연해졌다.
비통함과 침울함으로 가득했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 주십시오. 비용은 일절 받지 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홍란은 취선루의 문을 걸어 잠그고 터전을 잃은 신도들을 위한 임시 처소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칠무위는 질서 정연하게 찾아온 손님들을 마을 밖으로 안내했다.
그렇게 사태를 완전히 정리하기까지 어느덧 한 시진.
장이서와 칠소궁의 식솔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리고 용태의 집을 찾았다.
그리고 침상에 누운 그를 보자마자 낯빛이 굳어졌다.
마의가 서둘러 치료하긴 했으나, 팔과 옆구리에 화상이 크게 남았기 때문.
“으하하하! 오셨습니까.”
한데도 용태는 여느 때처럼 환한 목소리로 반겼다.
“……너 이 자식.”
이에 더 속이 쓰린지 마오는 인상을 와락 찌푸린 채 다가와 그를 안았다.
“왜 이러십니까, 칠공자님. 낯 뜨겁게.”
“닥쳐.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마오가 한 발 물러서자 용태는 기억을 회상하며 답했다.
“그게 비명이 들렸습니다. 아이 좀 살려달란 말에 갑자기 뭐에 홀린 것처럼 안으로 들어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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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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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요! 어디야! 어디냐고!”
허겁지겁 불길 속으로 달려온 용태는 뜨거운 열기를 뿌리치며 소리쳤다.
“여, 여기예요!”
그러자 밑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몸을 낮추고 살피자, 무너진 가옥 아래 몰린 사람들이 보였다. 어림잡아 열댓 명.
지하 창고인 듯했다. 불길을 피해 숨어든 모양. 한데 기둥이 무너져 나올 길이 막힌 거다.
“조금만 기다리시오! 조금만!”
용태는 소매로 입을 가린 채 무너진 가옥의 기둥을 지그시 노려 살폈다.
그리고…….
“오른손의 검은 용! 크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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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나이 용태. 바로 이 손으로 기둥을 날려버린 것이죠. 한 방에.”
“와아! 근데 다친 건 왼손이잖아.”
“크흠! 아무튼 사람들을 꺼내려고 저도 지하로 들어갔는데……. 그때 웬 이상한 놈들이 보이는 겁니다.”
“이상한 놈들?”
“예. 그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