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8)
첩자의 마교생활-18화(18/350)
18.
중원 서쪽 끝자락에 자리한 신강 천산.
천마신교가 자리한 곳이자 흔히 천산이라 불리는 이곳엔 누가 봐도 홀릴 만한 5대 절경이 존재했다.
사시사철 새하얀 눈꽃이 피고, 한가득 쌓이면 나흘 동안 눈사태가 떨어져 내린다는 만년설봉.
해발 3리(약 1,200m)에 달하는 비좁고 길쭉한 바위산이 옹기종기 수천에 달해 한번 숨으면 죽어서도 못 찾는다는 대석림(大石林).
숲 사이로 떨어지는 수십 가닥의 폭포수가 불같은 마음을 평안하게 해준다는 수낙원(水樂園).
수백 년이란 세월에 걸쳐 만들어졌다는 절벽 속의 미궁, 천마전(天魔殿).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널따란 온천 호수 한가운데, 다리 하나 없이 홀로 떠 있는 외딴 작은 섬.
올라오는 김이 마치 구름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천상도(天上島).
이곳엔 그녀가 살고 있었다.
자그마한 나루터 옆에 지어진 아늑한 장원의 주인.
천마의 양녀이자, 장이서를 칠소궁에 추천해준 장본인.
삼공녀 사해령.
바로 그녀가 말이다.
*
수풀과 안개로 가로막힌 아담한 야외 정원에 암석으로 둥그렇게 담을 쌓은 청록색의 온천.
“음.”
사해령은 새하얀 발끝을 물속에 담갔다. 적절한 온도. 이윽고 무릎부터 잘록한 허리를 지나 가슴께까지 스르륵 들어서자 모락모락 날아가는 김처럼 쌓인 피로가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녀가 궁에서 이처럼 평안한 일상을 보내는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특히 요즘은 더욱 격화된 형제들과의 경쟁 탓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이번에 삼소궁으로 되돌아온 것도 무려 50일 만의 귀가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나락.”
하지만 그녀에겐 이 달콤한 휴식도 일각 이상은 사치. 몸 담근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거늘, 곧장 보좌인 나락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그러자 뒤쪽에서 귀신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부복한 채 나락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르륵.
사해령이 일어서자 새하얀 나신을 타고 물방울이 미끄러져 내린다. 이에 가볍게 내공을 일주천하자 몸에 묻은 모든 물기가 스스스 방울이 져 공중에 떠오른다.
그리고 촤아아악!
그녀가 털어내듯 손짓하자 소나기처럼 수풀에 날아가 꽂혔다.
마오처럼 단순히 몸에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를 조종까지 하니 그 경지가 실로 경이롭다.
사해령은 휘릭! 옆에 놓인 천을 크게 돌려 몸에 두르곤 고운 맨발로 나락의 옆을 스쳐 지나며 말했다.
“그 아이는. 어떻게 됐지?”
그 아이. 그녀가 잔혹 살벌한 천산에서 이리 편히 부르는 존재는 오직 하나.
마지막 아우이자 칠공자인 마오뿐이다.
나락은 그녀의 뒤를 따르며 담담히 답했다.
“예상한 대로 도살방에서 나선 듯합니다.”
도살방! 그녀 또한 그들이 월하촌에 나타날 걸 알고 있었다는 것인가.
“그 아이가 일어서기 위해선 반드시 한 번은 거쳐야 할 관문이다. 가문의 위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영원히 우물에 갇혀 살게 될 테니. 아마 장이서도 이젠 알고 있겠지.”
마이신이 사씨 형제와 긴밀한 관계라는 건 교에서도 극히 소수만이 아는 일.
그리고 그 소수엔 그녀 역시도 들어 있었다.
마오가 지금 망나니로 살게 된 연유부터, 그의 주변인들을 모두 살해 위협에 놓이게 된다는 것까지. 모두 다.
그녀는 이를 다 알고도 장이서를 보좌로 보낸 것이다.
어느새 정원을 지나 제 방으로 들어온 그녀가 거리낌 없이 천을 스륵 떨구고 옷을 갈아입는다.
나락은 이에 고개를 떨군 채 묵묵히 기다렸다.
둘 사이에 신의가 엿보인다.
어느새 머리를 묶고 붉은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화려한 비풍(겉옷)까지 차려입은 사해령이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다시 물었다.
“이번에도 사도철이 직접 나선 것인가.”
도살방의 방주이자 사씨 형제의 맏이.
그녀는 그가 직접 움직였다면, 장이서와 마오의 필패라 여겼다. 사실 나락은 그래서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황으로 봐선 그 둘을 키워주려는 듯하면서도 어째서 아무런 도움도 주질 않는 것인가.
“이번엔 간부인 막귀만 움직인 듯싶습니다.”
나락이 답했다. 그러자 사해령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서렸다.
“운이 좋았구나. 하지만 그 또한 실력이지.”
“하나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사씨 형제를 비롯한 간부들은 장로회와 오룡당에서도 인정한 자들. 아무리 실력 좋은 방첩대원이라고 해도 7급귀가 막기엔 무리가 있을 겁니다. 더구나 몸에서 발출하던 불순한 내기를 봤을 땐…….”
나락이 장이서와의 만남을 떠올렸다.
그 정도 실력이면 능히 알 수 있을 만큼 장이서는 몸에서 불규칙하고 혼탁한 내기가 새어 나왔었다.
한마디로 절대 절정의 단계에 오를 수 없는 자.
반면 도살방의 막귀는 이미 절정의 벽을 부순 자다.
“정공법으로는 절정의 고수들을 이길 순 없겠지. 그래. 하지만 내게 필요한 건 둥지에서 어미만 기다리는 아기 새가 아니라 떨어질지언정 싸워 줄 수리다.”
“죽더라도 말입니까?”
“글쎄. 그건 가봐야 알겠지.”
나락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숙였다. 사해령은 이를 보곤 코웃음을 얕게 흘렸다.
자신 역시 보지 못했다면 똑같이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좌측 셋을 맡지.’
‘좋아. 내가 원래 손해 보고 사는 성격이 아닌데. 까짓것 해주지. 그럼 내가 우측 넷.’
분명 취선루에서 자객들의 기습을 받았을 때 장이서는 자신보다 처리해야 할 상대가 하나 더 많았음에도.
‘움직이지 마.’
먼저 싸움을 끝내고, 융피산까지 몸으로 막아주었다.
이만 보고 모든 걸 판단할 순 없지만, 적어도 움직임 하나만큼은 자신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건 분명한 사실.
더구나 싸움의 승패에서 내공이 유리한 것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결론은 누가 먼저 칼날을 상대의 심장에 박느냐로 정해지는 것.
“만약 나락 너라면. 상대하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막귀를 말입니까?”
표정 변화가 극히 적은 나락의 눈이 의문으로 가득 채워졌다.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다.
왜? 그만큼 형편없는 상대니까.
그가 오룡당 중에서도 가장 과격하다는 광룡당의 최연소 당주였던 것을 생각했을 때 실로 무례할 수도 있는 질문.
하지만 나락은 잠시간 생각하고 솔직하게 답했다.
“막귀가 선공을 취했다면 십합. 아니라면 이합입니다.”
“역시…… 그런가.”
사해령이 나락의 자신 가득한 말에 더욱 짙게 웃는다. 이는 보좌에 대한 자부심이다.
그녀가 슥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만일 장이서가 설령 일천 합이 걸리더라도. 막귀를 꺾을 수만 있다면. 그럼 그땐 기대해 봐도 되겠지?”
칠공자 마오.
그 아이가 든든한 우군이 되어 날아오르는 그 순간을 말이다.
“장이서. 부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해령의 진심 어린 응원이 삼소궁에 울렸다.
*
– 월하촌 칠소궁.
“치워.”
마오의 입에서 두 글자가 뱉어졌다.
“끼아아아아악-!”
동시에 막귀의 입에서 새소리에 가까운 비명이 터졌다. 웅웅웅! 그러자 사방으로 음파가 맹렬하게 퍼져나갔다.
귀에 닿는 순간 내이가 손상돼 치명적인 중상에 빠트리는 보이지 않는 암기!
그렇다.
변발의 자객 막귀의 성명절기는 권법이 아닌 소리에 내공을 실어 뇌리를 뒤흔드는 절정 고수의 음공이었다.
그가 키워 놓은 근육과 이를 드러내는 옷맵시는 모두 방심을 위한 허수.
나락이 만일 막귀가 선공을 펼치면 싸움은 십합이 넘어갈 거라고 했던 말도 이 때문이었다.
더구나 주변을 자세히 보면 그의 수하들은 이미 귀에 마개를 꽂은 상태. 그야말로 허를 찌른 공격.
“큭.”
아니나 다를까, 가까이서 가장 먼저 음공에 당한 마오는 귀에 이명이 울리고 세상이 빙그르르 돌았다.
연이어 털썩 무릎까지 꿇려졌다.
이도 그가 바다와 같은 내공을 가졌기에 버텨낸 것이지, 아니었다면 이미 귀에서 피를 쏟고 기절했을 것이다.
‘안 돼……!’
하나 깨어 있다고 달라질 건 없다.
망연자실한 눈으로 자객들의 먹잇감이 될 장이서만 애처로이 살폈다. 한데 그 순간.
“명. 따릅니다.”
그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무심한 눈으로 우수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백뢰(白雷)』
콰지직! 새하얀 벼락이 음파를 찢어발기며 전장을 가로질렀다.
“끼아아아……악!”
퍽!
그리고 비수는 음공을 내지르던 막귀의 벌린 입까지 날아가 그대로 뒤통수를 뚫고 나왔다.
한 수.
쿵!
단 한 수만에 도살방 서열 6위 막귀가 눈도 감지 못한 채 뒤로 넘어갔다. 즉사였다.
“무, 무슨!”
괴물을 본 것처럼 당황으로 물드는 자객들.
하지만 그땐 이미 늦었다. 모든 건 한순간이었다.
핑!
장이서는 지붕에서 날아든 화살을 좌수로 잡아냄과 동시에 핑그르르 회전하며 그대로 날아온 노선으로 화살을 던졌다.
퍽!
이에 지붕 위에 있던 자객의 이마가 뚫렸고.
어느새 막귀를 처리하고 되돌아온 새하얀 날뿐인 비도를 손에 쥐곤, 지척까지 달려든 좌우의 자객 다섯을 발등, 옆구리, 가슴, 목. 가리지 않고 전광석화처럼 마구잡이로 쑤셔댔다.
털썩.
우두커니 선 장이서 주변으로 우르르 쓰러지는 자객들.
더 놀라운 건 그 누구도 비명 한번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는 거다. 심지어 이를 지켜보던 마오마저도 숨 한번 제대로 뱉지 못했다.
왜? 너무 빨라서. 너무 순식간에 일이 벌어져서. 정말 벼락이 몰아친 기분이었기에.
“너, 너…….”
그렇게 상황은 정리됐다.
그리고 마오는 자신이 무릎을 꿇고 있다는 것조차 잊은 채 말까지 더듬으며 중얼거렸다.
저벅, 저벅.
저에게 다가오는 그를 바라보며.
7급귀라면서. 그냥 출세가 하고 싶은 거라면서.
자신을 꽉 붙들고 저 위까지 올라가 주겠다고 허세나 부리던 그를 말이다.
“너 뭐야…….”
마오의 두 눈이 사정없이 떨린다.
어느새 지척에 선 그를 올려다보자 그의 뒤로 후광이 비쳤다. 눈이 부실 만큼 커다란 후광이.
그리고 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보좌 장이서.”
뭐?
“약속드립니다.”
뭘.
“소교주. 제가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아…….
그가 손을 내민다. 마오는 홀린 듯 이를 살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그저 그렇고 평범한.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꽉 붙잡고 싶어지는 그런 손을 말이다.
“같이 올라가시죠.”
그가 환하게 웃었다.
“장이서…….”
그리고 마오는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제대로 불렀다.
척.
마침내 두 사람의 손이 마주 잡혔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새로운 인연을 두 눈에 담고서.
“안 떨어지려면 각오는 하셔야 할 겁니다.”
“너야말로 나 잡으려면 각오하는 게 좋을걸? 교주님도 포기한 놈이 나거든.”
자랑이다, 인마.
두 사람이 피식 마주 웃었다.
암각 최고의 요원이자, 무림맹의 첩자 장이서.
그리고 마교 제일의 망나니 칠공자 마오.
전혀 어울리지도. 어울릴 수도 없는 두 사람이 드디어 한배에 올랐다.
목적지는 소교주.
기한은 달성하는 그날까지.
보좌, 시작이다.
#아직은 둘뿐이지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