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80)
첩자의 마교생활-180화(180/350)
180.
#이걸 믿으라고?
호랑이가 앞발을 핥듯 술잔을 천으로 닦는다.
또르르, 이내 잔이 채워지고 장이서 역시 병을 건네받아 반대로 따라주며 말했다.
“지나가던 길에 잠시 들렀습니다. 마가에서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고요.”
“이해하네. 일장로께서 불러서 가지 않았는가. 그날 걱정 많이 했었네. 들지.”
지대호와 함께 술잔을 한입에 털었다. 단 향 뒤에 쓴맛이 알싸하게 식도를 턴다. 호랑이답게 독한 술이다.
하지만 장이서는 머뭇거림도 없이 곧장 다시 술을 따랐다. 상대가 뭘 원하는지 이미 알기 때문. 이에 지대호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대작했다.
“대체 어찌 된 건가. 그때 경천채가 무너졌다지. 난 자네가 죽은 줄 알았네.”
“근데 보지도 않고 그냥 가버리신 겁니까?”
“후후, 난 자네를 잘 알지 않은가. 호랑이 굴에 들어와도 이리 무사한데. 거기서 답답해하느니 술상 펴놓고 나중에 천천히 들으려고 그냥 온 걸세. 아껴 둔 거야.”
하여튼 사람 참. 씨익 웃으며 뒤를 돌아보자, 지대호가 괜찮다는 듯 말했다.
“걱정 말고 말해보게. 내 집까지 숨어들 쥐새끼는 없으니.”
이에 고개를 끄덕이곤 답했다.
“일장로께선 다행히 중립을 지키기로 하셨습니다.”
“오오! 정말인가? 그분 성미에 그리 쉽게 넘어가진 않으셨을 텐데.”
그랬지.
“죽다 살았네요.”
“껄껄! 그럴 줄 알았네. 보통 양반이 아니거든. 어지간하면 인정을 안 해. 특히 교외자라면 더더욱.”
“그렇습니까.”
“자긍심을 가지게.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니.”
얕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한데 정말 어찌한 것인가. 그때 분명 육장로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까진 봤는데……. 설마 독산각에서 새로운 인연이라도 쌓은 것인가?”
누가 영리한 호랑이 아니랄까 봐 눈치도 빠르다.
“독산각에서 몸을 고치는 동안 마의께서 백방으로 도와주셨습니다. 그 덕에 사이가 가까워졌고요.”
“얼마나 가까워졌길래?”
“호형호제하기로 했습니다.”
크아아아악!
지대호가 대뜸 고함을 지르며 입을 떡 벌린 채 벌떡 일어섰다. 지금 제가 뭘 들은 것인가. 호형호제라니. 누구랑. 마의랑?
동공이 혼란으로 가득 물들었다.
“자네, 대체 뭔 짓을 하고 다닌 것인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더 회자되는 건 원치 않으니 알아도 모르는 체해주십시오.”
“허……. 미치겠군. 자네와 육장로가…… 호형호제?!”
지대호는 순간 초점이 흐려지고, 뱀 지팡이 짚는 마의와 팔팔한 장이서가 함께 산을 오르는 모습을 상상했다.
‘형, 다리는 괜찮아? 업혀.’
‘고, 고맙네…… 장 아우.’
“크아아아아악!”
지대호가 냅다 소리를 질렀다. 쿨럭. 장이서는 먹던 술을 살짝 뿜고 사레가 들렸다. 어처구니가 없어 입가를 소매로 닦아 내며 물었다.
“지금 뭐 하십니까?”
“넌 지금 내게 거짓을 고했다. 이건 누가 봐도 조부를 묻으러 가는 손주 아닌가!”
그게 뭔 소리야. 장이서는 잔기침을 뱉고는 말했다.
“이상한 소리 그만하십시오. 자세한 건 마의 형님께 들으시고요.”
“크흠…….”
지대호가 불쾌하다는 듯 침음을 뱉는다.
“또 왜 그러십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일세.”
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정파로 치자면 배분, 항렬 무시하고 불쑥 올라서는 격이니.
하지만 이곳은 마교.
다른 것보다도 직급과 힘이 더 중한 곳이다.
그런 의미에서 3급귀 보좌인 자신이 2급귀 장로와 친분을 맺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닐 텐데?
“둘이 이러면 내가 뭐가 되는가.”
“무슨 말씀이신지.”
“마의께 자네를 먼저 소개해 준 건 나 아닌가. 자네를 먼저 만난 것도 나고. 한데 둘이 이리 친해져 버리면. 그럼 나는. 나는 뭐가 되는가!”
크하아아앙!
뭐가 되긴. 그냥 호랑이지. 귀를 막고 아래위로 흘기자 그가 대뜸 괴언을 뱉었다.
“나도 하겠네. 호형호제.”
“예?”
“나이 차도 내가 더 적지 않은가.”
“제 아비뻘은 돼 보이십니다만.”
“할아버지뻘보다는 낫겠지.”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겁니까?”
“그럼 육장로님과는 어찌 그리 쉽게 하였단 말인가.”
“그거야…….”
아랫사람으로 대하는 것보단 나으니까 한 거고.
“나도 하겠네. 칠소궁 입장에서도 좋은 일 아닌가? 잘 생각해 보게. 호룡당주인 나와 죽고 못 사는 형제가 되는 걸세.”
“……진심이십니까?”
너무 어이가 없어서 물끄러미 쳐다보자 공작새가 유혹할 때 꼬리를 펼치듯 당당하게 어깨를 쫙 편다. 별로 매혹적이진 않다. 하지만 진심인 건 알겠다.
뭐, 나쁘진 않다. 첩자에게 있어서 필요한 이들과의 친목은 임무 성공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것.
그런 의미에서 지대호와 의형제를 맺으면 많은 게 쉬워진다. 사람도 좋다. 정도 간다. 자신을 아낀다는 것도 알겠다.
하지만 그렇기에.
“죄송합니다, 지 당주님.”
거절이다.
“어, 어째서?!”
이유를 묻는 것인가. 일단 굳이 의형제를 맺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용할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아우에게 속은 못난 형이 되게 해드리고 싶진 않습니다, 지 당주.’
씁쓸한 미소를 삼켰다. 물론 지대호는 큰 충격에 빠졌다.
“날 거절하다니…….”
서운할 거다. 마음도 상할 거고.
그런데.
“으하하하하!”
지대호가 흐리멍덩했던 초점을 바로잡고는 갑자기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충격이 컸나?
“역시 자네는 걸물일세. 호룡당주라는 껍데기가 아닌 나 지대호라는 알맹이를 원하다니. 감동했네.”
뭐라는 거야. 왜 감동을 해.
“마음 잘 알겠네. 나도 자네가 날 진짜 형제로 생각할 때까지 부지런히 노력해 보지.”
크하아앙!
호랑이가 탐욕스러운 발톱을 드러내며 무섭게 웃었다.
아니, 노력은…… 됐다. 그에 대한 이해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자.
“그래. 어쨌든 찾아온 용건이나 말해보게. 그때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누가 장난을 친다고.”
지대호가 깍지를 끼며 본론으로 화제를 넘기자, 장이서도 붙였던 허리를 떼곤,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마가로 가던 날, 장호에서 습격을 받았습니다.”
“……!”
지대호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래서 그날 늦었던 것인가?”
고개를 끄덕이자 허! 지대호가 얕게 숨을 뱉으며 말했다.
“죗값은. 치렀나?”
“아직입니다.”
“……사주한 놈부터 잡아야겠군. 누군진 아는가? 말만 하게. 내 당장 잡아 처넣어 주지.”
든든하네. 하지만 누군지 들으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거다.
“조양악. 그가 보냈더군요.”
“……!”
지대호의 표정이 경직되며 일순 당황한 티를 드러냈다. 이에 픽 웃고는 물었다.
“잡아 주시겠습니까?”
“크흠…… 그것이…….”
호랑이의 눈이 사정없이 좌우로 흔들린다.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이공자 측에서 움직인 이상 이는 후계 간의 다툼. 호룡당이 개입할 일이 아니다.
단지 의형제 운운한 게 조금 전이었으니, 그가 쉽게 말을 못 하는 것뿐.
더 시간을 끌면 그의 벌게진 얼굴이 터져버릴 것 같아 바로 입을 열었다.
“해본 말입니다. 어찌 소궁의 전쟁에 당주가 나설 수 있겠습니까. 그건 교주님께서 용납지 않으실 겁니다.”
“으음…… 도움이 못 되어 미안하네.”
“이해합니다.”
미안할 건 없다. 어차피 도와주게 될 테니.
“자네…….”
물론 속을 알 리 없는 지대호는 감격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한결 내려놓은 표정으로 물었다.
“한데 어찌 살아 돌아온 것인가. 절명수가 손을 쓴 것이라면 쉽지 않았을 텐데.”
“그에 대해 잘 아십니까?”
“뱀과 같은 자이지. 철두철미하고, 신중하기도 하고……. 특히 사냥감을 정하면 절대로 대항할 수 없게 두 배. 아니 세 배의 힘으로 짓누르는 자일세. 분명 자네한테도 쉽지 않은 상대가 갔을 것이고.”
맞다. 검노쌍살과 갈문천. 분명 조양악은 그들을 보냈을 때 성공을 자신했을 거다. 수많은 변수도 가늠했을 것이고.
그가 실패한 이유는 딱 하나. 너무도 간단한 가설 하나를 놓쳤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보다 더 강할 수도 있다는 것.’
물론 지대호에게 일일이 다 설명해 줄 마음은 없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딱 한 줄.
“운이 좋았습니다.”
“크흠, 다행이군. 천만다행이야.”
지대호가 검지를 툭툭 두드리며 안도의 숨을 뱉었다. 그러곤 문득 깨달은 게 있는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한데 그런 일을 겪고도 여길 혼자 온 겐가? 호위무사들은.”
“원래 하나 있는데, 오늘은 좀 바빠서요.”
“이런, 이런! 상대는 절명수 조양악일세. 그가 노리는 이상 독사 수만 마리가 도처에 깔려 있다고 봐도 무방하단 말이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될 일은 없을 거다.
그전에…….
‘내가 먼저 조양악을 잡을 것이니.’
씨익 입꼬리를 올리곤 지대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나 여쭙겠습니다.”
“갑자기 말인가?”
“도라옥의 죄인들이 버젓이 밖을 활보한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크하아아앙!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연관된 놈들은 싹 다 잡아 뼈를 마디마디 분절해 버릴 걸세! 우리가 어떻게 잡아 처넣은 놈들인데.”
“진심이십니까?”
“날 뭐로 생각하는 것인가. 나 호룡당주일세. 절대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네.”
“풀어준 게 절명수라도 말입니까?”
“절명수든, 뭐든 일단 잡히면 바로…… 응?”
장이서의 입꼬리가 길게 올라갔다. 이에 반비례하듯 지대호의 얼굴은 점차 그늘이 서렸다.
“자네…… 지금 뭐라고 했는가?”
“절 기습한 자객은 검노쌍살이었습니다.”
“거, 검노쌍살!”
지대호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들이라면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중원이 평화를 이루자 결국 살욕을 참지 못하고, 신도들에게 손을 댄 마두들. 하여 자신이 직접 잡아 처넣은 자들이 아닌가!
“그들을 없애자 셋째인 갈문천이 나타나더군요.”
“허…….”
사실이구나. 지대호의 입에서 깊게 한숨이 나왔다. 사혼검귀 갈문천이 검노쌍살의 아우라는 건 대부분이 모르는 사실.
‘잠깐, 그럼 검노쌍살에 갈문천을 이겼다는 것인가? 그건 운이 좋아서 될 일이 아니지 않은가!’
자신이 알던 과거의 장이서라면 천운에 천운이 따라도 절대로 불가능한 일.
‘번천검객을 이긴 것도 설마 진짜 실력이었나…….’
혼란이다. 머릿속이 멍멍했다. 이건 조양악이 문제가 아니라 이놈이 제일 문제 아닌가.
대체 어찌 단시간에 사람이 이리 강해질 수 있단 말인가.
어쩌면 자신이 아는 한 가장 위험하고, 이해 불가의 존재는 천마 다음이 바로 눈앞의 장이서일 거다.
하나 지금 중한 건 그게 아니다.
“그럼 절명수가 도라옥에 있어야 할 검노쌍살을 끄집어내 자네를 없애려 했다는 얘기인가?”
“어제는 월하촌에서 화재가 있었죠. 빨리 불을 끄긴 했지만, 인명 피해도 있었습니다. 그 일 역시 도라옥에서 빠져나온 자의 짓입니다. 기억하실 겁니다. 사호정이라고. 사씨 형제의 둘째이죠.”
“……!”
너무 놀라서 말문이 막혔다. 지금 이걸 믿으라고 하는 말인가?
“안 믿기십니까?”
솔직히 도라옥을 관리하는 당주로서 그렇다는 말이 목젖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그는 장이서를 알았다.
그가 저런 표정을 짓고 저렇게 말할 땐 이미 확신할 만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결국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믿네.”
그리고 그의 빠른 인정에 장이서는 한결 가까워진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저랑 뱀 한번 잡아 보시겠습니까?”
지대호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잘은 몰라도 이번엔 독사가 미친개 한 마리를 잘못 물어도 한참을 잘못 물었다는 사실을.
벌렁거리는 호랑이 가슴에 술만 더 고파지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