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81)
첩자의 마교생활-181화(181/350)
181.
#굴 밖으로
산속 한가운데 지어진 널따란 산채.
잘 모르고 보면 녹림맹이 마교에 진출한 줄 알겠지만, 이곳의 이름은 성산채. 이공자 무한성과 백괴단이 거주하는 이소궁이었다.
“낄낄!”
“으히히히!”
누가 광자 집단 아니랄까 봐, 초저녁부터 환락에 젖은 웃음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
이들의 일과는 간단했다.
“죽여! 크하하하!”
“너덜거리는 저 팔을 노리라고, 새끼야! 그래. 거기!”
술. 싸움. 술. 싸움.
죽일 상대가 있으면 더 좋고, 없으면 저들끼리라도 싸웠다.
그야말로 싸움에 미친 놈들.
그중 조양악은 이를 구경하거나 상상하는 걸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사내아이가 벌레 두 마리를 잡아 싸움을 붙이듯, 자신의 입맛대로 내세운 자가 상대를 찍어 누를 때. 그때 희열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사냥에 성공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비결은 간단했다. 상대보다 무조건 더 강한 자를 보내는 것.
상대가 양이라면 늑대를 보내고, 늑대가 상대라면 곰을 보냈다.
한데…….
“장이서, 네놈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은 것이냐.”
콰직! 그의 손날에 집무실 협탁이 부서졌다. 이번만 벌써 세 번째. 대다수 지략가가 그러하듯 그 역시 안개 속을 걷는 이 기분이 무척 싫었다.
“분명 놈의 실력보다도 한참 높게 쳐준 것이었다. 왕우와 노군을 잡았다는 가정까지 더하여. 하여 우려를 무릅쓰고 검노쌍살과 갈문천까지 보내지 않았더냐. 이건 결코 실패할 수가 없는 일이었단 말이다.”
단전에서부터 깊은 분노가 느껴졌다. 놈이 살아남는 바람에 졸지에 개가 될 뻔했다.
이건 분명 엄청난 변수가 생긴 게 틀림없었다.
‘장호 주변을 샅샅이 조사하라 일렀으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물론 물길을 타고 떠내려갔을 수도 있지만…….’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하나도 아니고 무려 셋이다. 오히려 그쪽보다는 아예 암습을 시도조차 못 했다는 쪽에 무게가 더 쏠렸다.
일단 천산이 조용하지 않은가.
관문이든, 당이든. 기관(機關)이 있는 곳엔 반드시 오룡당의 눈이 있다.
하물며 장이서가 도라옥과 자신들이 연루된 걸 알았다면 가만히 있었겠는가. 호룡당을 찾아가든, 천마전을 찾아가든. 어디든 발칵 뒤집혔겠지.
한데 칠소궁은 마가에서 돌아온 후로 태평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라 전해 들었다. 이제 힘이 없는 것도 아닌데, 당하고도 저리 허송세월하진 않을 터.
결론은…….
‘장이서 그놈은 아무것도 모르는 얼간이다!’
조양악의 입가에 안도의 웃음이 서렸다. 물론 그는 이소궁의 군사. 섣불리 결단 내리고 움직이는 멍청이가 아니었다.
“도라옥에선 아직 아무 소식도 없는 것이냐?”
묵묵히 바닥을 쓸던 수하가 답했다.
“예. 아직 아무 연통도 오지 않았습니다.”
“멍청한 것들. 제대로 하는 것이 없구나.”
욕지기가 튀어나왔지만,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쉽게 나다닐 수 있는 자들이 아닌 터라, 그들과의 소통은 늘 복잡했고 뜸했다.
하지만 큰 걱정은 없었다.
‘도라옥과 우리가 연루된 사실만 드러나지 않으면 된다. 그럼 아무 문제 없는 것이다. 차라리 검노쌍살이 다시 도라옥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라면 좋겠거늘…….’
조양악의 독사 같은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렇게 오만 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던 그때였다.
“보좌님, 큰일 났습니다!”
수하 하나가 헐레벌떡 집무실로 뛰어들었다.
“무슨 일이냐?”
“호룡당주에게서 검노쌍살의 용모화(容貌畫)를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합니다!”
“뭐?! 어떻게. 설마…… 장이서?! 그놈이 호룡당에 들렀다는 말은 일절 없지 않았느냐!”
“그게 아무래도 장이서 쪽에서 새어 나온 얘기가 아닌 듯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장이서가 아니라니.”
무릎을 꿇은 수하가 침을 꼴깍 삼켰다.
“검노쌍살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무, 무어라?!”
조양악이 세상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다리를 휘청였다.
“확실한 것이냐?”
“예. 분명 관문에서 똑똑히 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호룡당도 장이서와 별개로 움직인 것 같습니다.”
아차 했다. 검노쌍살은 밖에 돌아다녀서는 안 되는 죄인. 그냥 얼굴만 비춰도 사달이 날 수밖에 없는 일.
“어디냐. 어디에 나타났다는 것이냐!”
“아직 호룡당으로 보고가 올라가진 않았으나……. 행적을 보았을 때, 월하촌으로 향했을 공산이 큽니다!”
“이런 미친놈들-!”
쾅! 조양악이 벌떡 일어나 의자를 집어 던졌다. 그러곤 씩씩대며 읊조렸다.
“아주 날 엮어 죽이려고 작정을 했구나. 이 멍청한 새끼들!”
뻔한 상황이었다.
장호에서 장이서를 잡지도 못한 주제에 아직도 그를 노리고 있는 거였다.
호룡당주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잡으려 하는 이 와중에 말이다.
이건 말려야 한다. 아니, 일이 커지기 전에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
“호룡당주는 어디 있느냐?”
“당주실에서 두문불출 중이라고 합니다.”
그렇겠지. 도라옥에 있어야 할 검노쌍살이 밖으로 튀어나왔으니 제정신이 아닐 거다.
“장이서는.”
“현재 월광호 인근에서 홀로 뱃놀이 중이라고…….”
“이런 철딱서니 없는 새끼! 보좌라는 작자가 제 목숨 아까운 줄 알아야지. 누가 지놈 목을 노릴 줄 알고 위험한 곳에서 혼자 술을 처먹는단 말이냐!”
“마가에서 이기고 돌아온 후로 칠소궁이 모두 자축에 빠져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아마 그 여파가 아닐는지…….”
아악! 조양악의 얼굴이 백지장으로 변했다. 그럼 검노쌍살에겐 지금이 더없이 좋은 기회가 아닌가.
“지금 검노쌍살은 어디쯤이냐.”
“동선으로 봐선 최대한 관문을 피해 우회하는 듯하니…….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당장……. 당장 채비하거라. 월광호로 갈 것이다!”
“예!”
수하들이 소리치며 밖으로 나섰다.
뱀 한 마리가 스멀스멀 굴 밖으로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
– 월하촌 홍예교.
달빛을 머금은 월광호가 아름답게 빛난다.
피잉!
밤하늘엔 폭죽들이 터지고, 꺄르륵! 웃는 아이들이 꼬치 하나씩을 들고 홍예교 위를 뛰논다.
북적이는 인파가 누군가를 기리는지 임시로 지어진 사당을 오고 간다.
그리고 이곳에 그가 당도했다.
쉴 새 없이 경공을 펼쳐 달려온 뱀. 아니, 흑립을 눌러 쓴 절명수 조양악이었다.
“이곳이 정녕 그 변두리 월하촌이 맞단 말이냐?”
언제 이곳에 와 봤었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땐 분명 이런 다리도 없었고 그냥 호숫가에 다 쓰러져 가는 가옥만 옹기종기 모인 게 다였다.
한데 지금은 십(十)자로 호수를 가로지르는 홍예교와 중심에 놓인 웅장한 마천루.
거기다 수변에는 일관된 느낌의 가옥들이 멋지게 채워져 있었다.
천산 내에 이토록 화려한 번화가가 있었던가. 본교의 가장 큰 마을이라는 천산채도 이 정도로 활기가 돌진 않았다.
‘마치 중원을 보는 것만 같구나. 대체 여기가 언제 이렇게…….’
졸지에 상경한 촌놈이 된 기분. 왠지 스스로가 볼품없게 느껴진다. 솔직히 어디를 가든 자신이 나타나면 모두가 벌벌 떠는 것이 일상이었다.
누군지 꼭 밝힐 필요도 없었다.
그냥 풍기는 기세만으로도 신도들은 흠칫하며 거리를 벌렸다.
한데 지금은…….
“거, 서 있지 말고 좀 비키지 말입니다!”
기다란 목재를 나르는 웬 잡부까지 자신을 촌놈 취급하고 있었다. 그것도 웬 메기 같이 생긴 놈이.
기어코 잠자코 있던 제 어깨를 그놈이 툭 치고 지나갔다.
이걸 참으면 절명수(絶命手)라는 별호가 아까운 일.
“서거라.”
“뭐요?”
날카로운 독사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러곤 강철도 찢어발기는 손톱으로 지나가는 잡부의 어깨를 콱! 찍어 잡으려는 순간.
[보좌님!]옆에서 수하의 다급한 전음이 들려왔다. 이에 조양악이 뱀의 아가리처럼 손톱만 세운 채 주변을 훑었다. 그러자 멋들어진 붉은 무복을 차려입은 사내들이 눈에 담겼다.
[마가에 왔던 자들입니다.]칠무위였다. 삼삼오오 짝을 지은 그들이 자경단처럼 활보하고 있었다.
“섰지 말입니다.”
다시 앞을 보자 메기 놈이 좌우로 벌어진 눈을 아래위로 부라렸다. 그것도 서로 박자가 달라 아주 어지럽게 말이다.
‘이런 발칙한 놈이…….’
하나 그는 아주 운이 좋았다. 오늘은 제 신분을 감추고, 빨리 장이서를 만나야 한다.
“……가거라.”
“서라, 가라. 진짜 이상한 놈이지 말입니다.”
메기가 혀를 차며 돌아 나간다. 졸지에 이상한 놈이 된 조양악은 간신히 살기를 짓누르곤 몸을 돌렸다.
어쨌든 거지발싸개 같은 놈 때문에 대업을 망칠 수는 없는 일.
지금 중한 건 검노쌍살과 장이서다.
‘아직 검노쌍살은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장이서와 함께 있다면 놈들도 눈치가 있는 이상 발길을 돌리겠지. 그때 수하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도라옥으로 돌아가라 전하기만 하면 된다.’
그야말로 완벽한 계획.
조양악은 방향을 돌려 홍예교가 아닌 수변을 따라 쭉 걸어 나갔다.
어느새 인적이 뜸해지고, 주변은 어둑해졌다.
그리고 먼발치에 등을 띄우고 선유 중인 커다란 배 한 척을 발견했다.
“내가 신호할 때까진 여기서 꼼짝없이 대기하거라.”
“예!”
이내 나루터까지 홀로 다가서자 마침내 그의 모습이 보였다.
선박 위 황색 지붕의 멋들어진 2층 정자에 앉아, 달빛을 벗 삼아 홀로 우아하게 술을 홀짝이는 사내.
‘장이서. 아주 팔자 좋게 늘어져 있구나. 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모르고, 이 멍청한 새끼.’
분통함에 이빨을 꽉 물었다. 한데 착각일까. 그 순간 장이서가 이쪽을 슬그머니 바라보며 웃는 듯했다. 꼭 어서 오라는 듯이.
분명 거리도 멀고, 여긴 횃불이 없어 어두우니 그럴 일은 없다. 제가 온 줄은 당연히 모를 것이고.
괜한 의심은 뒤로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오늘 중한 것은 뭐가 됐든 저놈을 살리는 거다.
“감사한 줄 알거라. 내가 바로 네놈 목숨을 구해주러 온 동아줄이니.”
파아앗!
마침내 조양악이 나루터를 박차고 물 위로 쏘아졌다.
***
한편 그 시각 배 위에서는.
‘역시 왔구나, 조양악.’
장이서가 술잔을 든 채 슬며시 미소 짓고 있었다. 조양악은 당연히 절 못 봤으리라 생각했지만, 천만에.
‘일위도강(一葦渡江)인가.’
장이서는 그가 갈댓잎을 사뿐히 밟으며 갈지(之)자로 미끄러지듯 다가오는 모습까지 생생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스무 걸음 정도로 가까워졌을 땐.
파앗!
아주 잔잔한 물보라를 터트리며 도약해 척! 제 앞 난간 위에 올라섰다.
“그쪽은…….”
놀라는 척 운을 떼자 그가 씨익 웃으며 답했다.
“우린 구면이지.”
뱀 같은 얼굴에 어울리는 실로 무례한 인사. 이에 고개를 끄덕이곤 술을 마셔 비운 뒤 답했다.
“그런 것 같구려.”
또르르. 다시 술을 따르는 사이, 조양악은 기감을 잔뜩 끌어 올려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살폈다.
예까지 와놓고도 혹여 함정일까 주의를 기울이는 것. 다행히 배 위에는 그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제야 그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어떤가. 혼자 즐기기엔 분위기가 아까운 것 같은데. 합석해도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