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82)
첩자의 마교생활-182화(182/350)
182.
#합석
조양악의 합석 제안에 장이서가 눈썹을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뜬금없지만, 마침 술도 많이 남았으니 그럽시다.”
“흥.”
승낙의 뜻을 비치자 조양악이 코웃음 치며 난간에서 내려섰다.
힐긋 난간 위를 살피자 나무에 젖은 흔적은 일절 보이지 않았다. 물 위를 달려와 놓고도 밑창이 젖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그의 경지가 고강하다는 얘기.
“장이서요.”
“조양악이다.”
통성명에 긴말은 필요치 않았다. 서로 누군지도 모른다면 그건 보좌로서 자격이 없는 것.
조양악은 독사 같은 눈매로 주변을 흘기며 물었다.
“보좌라는 자가 주군은 뒤로한 채, 뱃놀이라……. 흔한 상황은 아니군.”
자리에 앉긴 했으나 의심이 다 거두어진 건 아니다. 아무리 봐도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야중에 혼자 뱃놀이라니.
“그 흔하지 않은 자리에 때마침 합석을 청한 이가 있구려.”
조양악은 일순 맥이 탁 풀렸다. 하긴 이상한 거로 치면 야밤에 불쑥 나타나 무단 침입한 자신만 하겠는가.
한마디로 제가 묻고 제가 한 방 먹은 셈.
“제법이군.”
조양악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마가에서 칠소궁의 활약을 보았다. 어쩌면 서로 도움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이를테면?”
“알지 않은가. 뒤에 선 자들의 경쟁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서로 뜻이 맞다면 가장 큰 벽을 함께 치울 수도 있겠지.”
“대공자를 말하는 것이군.”
조양악은 화들짝 놀라며 주변을 살폈다. 설마 대공자라며 적나라하게 받아쳐 버릴 줄은 몰랐기 때문.
“생각보다 대범하군.”
“걱정하지 마시오. 여기 들을 자는 우리 말고 아무도 없으니.”
조양악도 그 점에 대해선 고개를 끄덕였다. 배 위에는 아무도 없음을 이미 확인했으니.
“오늘은 그냥 인사차 들른 것이다. 무릇 서로를 알아야 다음을 논할 수 있지 않은가. 마가에서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그땐 보는 눈이 많았으니. 뭐, 이 정도면 몰래 합석을 청한 이유는 설명이 된 것 같은데.”
“충분히.”
웃으며 그에게 빈 잔을 건네자 그가 고개를 젓고는 턱을 올렸다.
받기 전에 이제는 네가 답할 차례라는 얘기.
뱃놀이를 하는 이유 말이다.
이에 장이서는 눈으로 먼발치 숲을 가리켰다.
“칠공자님께선 내가 없어도 저쪽 대나무 숲 너머에 무사히 잘 계시오. 저기엔 용이 한 마리 살고 있거든.”
“용?”
조양악은 되물었지만, 머릿속에 이미 한 사람의 모습을 떠올렸다.
홀몸으로 마가칠객 중 무려 여섯을 쓰러트린 괴물 신예.
전장의 용, 구유를 말이다.
“그래서 혼자 뱃놀이 중이었다는 것인가? 칠소궁은 할 일이 퍽 없나 보군.”
“글쎄. 조 보좌께선 어찌 보실지 모르겠지만, 남들이 칠소궁에 관심을 기울인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오. 오히려 지금처럼 유유자적한 삶이 우리에겐 익숙한 일이지.”
“흐음…….”
말은 또 그럴싸하다. 조양악의 의심스러운 눈빛이 한결 무뎌졌다. 자신도 최근에야 칠소궁을 주시하라 이른 것이지 원래는 뭘 하고 사는지 관심도 없었다.
게다가 장이서는 근본이 들개 출신인데다, 취선루의 기둥서방이라는 말도 있었으니 뱃놀이쯤은…….
“한데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찾아오신 거요. 칠소궁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소궁을 우습게 보는군. 우리가 원한다면 그 정도는 어렵지 않은 일이지.”
“마음만 먹으면 오룡당의 눈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더니……. 이젠 유의해야겠구려.”
“걱정 말아라. 서로 뜻이 같다면 득이 되면 모를까, 해가 될 일은 없을 테니. 한 잔 주겠나?”
조양악이 씨익 웃으며 손을 내민다. 이에 아까 주려던 빈 잔을 건넸다.
“그럽시다.”
그렇게 인사를 끝내고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기울였다.
나름 대화도 잘 통하는 듯했다.
“칠소궁이 바라는 건 간단하오. 그냥 누구도 우릴 건드리지 않는 것.”
“소교주에는 관심이 없다?”
“이미 삼국(三國)이 서로 죽자고 싸우는데 거기 껴서 뭐 하려고. 관심 없소.”
“소탈하군.”
“주제를 아는 거요.”
조양악은 진심으로 웃었다. 이제 보니 죽여야 할 놈이 아니라 살려서 품어야 할 자가 아닌가.
오히려 검노쌍살이 실패한 게 잘됐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이를 원만히 해두고 돌아가는 게 좋겠군.’
어차피 검노쌍살이 나타난다고 해도 자신을 보고 돌아갈 것이고, 나타나지 않는다면 장이서만 무사 귀가시키면 끝이다.
그리고 모든 게 다 잠잠해지면 오늘의 기억을 바탕으로 칠소궁과 진지하게 화합의 장을 여는 거다.
생각지 못한 쾌거에 절로 입가에 웃음이 서렸다.
“음식 솜씨가 좋군.”
그렇게 음흉한 속내를 감추곤 안주를 입에 넣던 찰나였다.
“음?”
먼발치에서 웬 자그마한 나룻배 한 척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두워 또렷이 보이진 않지만, 초점을 잡고 오감을 집중하면 그 정도 고수에겐 어려운 것도 아닌 일.
서서히 모습이 선명해졌다.
‘흡!’
그리고 동시에 조양악의 눈이 부릅떠졌다.
‘저놈들은……!’
늙은 뱃사공과 뒤에 앉은 백색 멱리를 쓴 여인!
‘거, 검노쌍살!’
그들이었다. 그들이 마치 바다의 상어처럼 물살을 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도 빠르게!
이를 본 장이서가 불쑥 의문을 드러냈다.
“이상한 일이군. 월광호는 그리 넓지 않고, 수변에 길이 잘 되어 있어 나룻배를 띄울 일이 거의 없을 텐데. 또 오는 속도가 너무 빠르지 않은가. 수상할 만큼.”
조양악은 흠칫 당황하며 진땀을 흘렸다.
“자네도 배를 띄우고 있지 않은가! 아마 저들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 빠른 이유는 속이 안 좋은 것일 수도 있고.”
“이리 오는 거 같은데.”
“내가 해결하지!”
조양악이 벌떡 일어나 난간으로 다가섰다. 그러곤 일부러 크게 헛기침을 터트렸다.
하나 귀가 먹은 건지 뱃사공은 맹렬히 노만 저었다.
답답함에 장이서를 뒤로한 채 오만상을 찌푸리며 크게 입 모양을 만들었다.
‘돌아가라! 돌아가!’
하나 뱃사공은 초지일관이었다. 위는 쳐다도 보지 않고 신나게 계속 노만 저었다.
전음을 펼치기엔 아직 거리가 멀고, 더 가까워지면 위태로운 상황. 목젖이 꿀렁이고, 이마엔 땀방울이 맺혔다.
“아직 오고 있소? 그냥 두고 오시오. 알아서 피해 가겠지. 우린 술이나 마십시다.”
“그렇긴 하네만…….”
‘이 멍청한 놈들!’
조양악은 안팎으로 다른 말을 뱉으며 주변을 살폈다. 그러곤 까지도 않은 큼직한 술동이 하나를 번쩍 들고는 그대로 휙 내던졌다.
푸화아아악-!
얼마나 세게 던진 것인지 분수가 머리 높이까지 치솟아 오르고, 물결에 몸이 크게 출렁였다.
“지금 뭐 하는 거요?”
뭐긴 뭐겠느냐? 네놈 목숨 구해주는 것이지. 조양악이 뒤집힌 나룻배를 보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자리로 돌아와 말했다.
“대화 중에 방해받는 건 딱 질색이라.”
“그렇다고 멀쩡한 술을……. 그냥 말로 하면 될걸.”
“말로 한 거네. 안 죽였지 않은가.”
조양악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 했으면 눈치껏 되돌아갈 터.
그럼 제 수하들이 알아서 잘 타이를 것이다. 어서 도라옥으로 귀환하라고.
그럼 모든 게 끝.
조양악은 여기 오고 가장 평안한 표정으로 술잔을 들었다.
그런데 그때.
푸화아아악!
“죽어라-!”
사방으로 튀는 물보라와 함께 두 노파가 척! 좌우 난간 위로 올라섰다.
검버섯이 가득하고 심술이 그득한 용모.
틀림없다. 검노쌍살이다!
“이런 미친놈들!”
조양악은 욕지기를 내뱉으며 벌떡 일어섰다. 어찌 이리 눈치가 없을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절명수?!”
아. 눈을 질끈 감고, 손바닥으로 이마를 척 짚었다. 저 멍청한 첫째 갈기룡이 절 보고 아는 체를 해버린 것.
“이게 어찌 된 건가. 자네가 왜 여기 있지?”
“……닥치거라.”
“분명 장이서를 없애라고 하지 않았느냐. 한데 왜 절명수 네가 여기…….”
“닥치라 하지 않았느냐!”
조양악이 상머리를 붙잡고 그대로 천장으로 던졌다. 콰직! 그러자 지붕과 함께 부서져 사방 곳곳으로 잔재가 비처럼 떨어져 내린다.
이를 조양악이 빠르게 손등으로 쳐내자 암기처럼 날아간 파편들이 달려 있던 등롱들을 찢어발겼다.
삽시간에 어두워지는 정자.
검노쌍살의 표정은 당황으로 물들고, 장이서의 안색은 굳어졌다.
그리고.
“도대체 네놈들은 무슨 일을 이따위로 처리하는 것이냐. 내가 분명히 장호에 묻으라고 말했을 텐데? 네놈들 눈엔 이 조막만 한 호수가 장호로 보이느냐?!”
조양악은 결국 본색을 드러냈다. 자신이 사주했음을 제 입으로 실토해 버린 것.
“장호였나……? 월광호 아니었나…….”
“이 멍청한 새끼들!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이번엔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도라옥에 낱낱이 따져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다! 내가 못 할 것 같으냐?”
조양악이 이빨이 부서질 듯 사리물었다. 한데 그는 말실수를 했다.
“도라옥? 도라옥에 책임을 묻겠다니. 그럼 저자들이 도라옥에서 온 죄인들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장이서의 비수처럼 던져진 질문에 조양악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얼굴색을 바꾼 뒤 말했다.
“어쩔 수 없지. 장이서. 넌 이만 죽어줘야겠다.”
솨아아아-
피부가 저릿할 만큼 가공할 살기.
“어이가 없군. 다짜고짜 찾아와 합석을 청하더니. 이젠 날 죽이겠다고? 혹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건가.”
“어차피 네놈은 장호에서 물고기 밥이 됐어야 했다. 저 멍청한 놈들이 실패만 하지 않았다면.”
“하지만 실패한 모양이군.”
“안타깝지만 그렇다. 그게 너에게는 천운이었던 거지. 오늘까지 살아있었으니.”
“이해가 안 되는군. 날 죽이려고 한 이유가 뭐지? 난 이소궁과 원한을 맺은 적이 없는데. 우린 뜻이 맞았던 거 아니었나?”
조양악의 눈썹이 일순 꿈틀거렸다. 맞는 얘기긴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장이서를 죽일 이유는 하등 없었다.
“……그땐 네놈이 대공자와 한패라고 생각했다.”
“오해였군.”
“무려 은원보 100개가 너한테 흘러 들어갔으니까.”
“그건 내가 대공자를 속인 거였다.”
“알고 있다.”
“알아? 그럼 오해로 날 죽이려고 한 것도 모자라, 알게 된 지금도 사과는커녕 또다시 칼을 들이밀겠다는 건가?”
“그……렇다. 하나 네놈이 도라옥에 대해 들어버린 이상 살려둘 수 없다.”
“그걸 누가 말했나.”
“……나다.”
“당신, 혹시 머리가 나쁜가?”
“아니다!”
고요하게 몰아치자 태어나 처음으로 조양악의 뱀 같은 얼굴에 부끄러움이라는 낯선 감정이 서렸다.
하나 어쩌겠는가. 이미 물은 엎질러진 것을.
“대신 고통 없이 보내주마.”
“미쳤군. 여기가 어디인지 잊은 모양이지?”
왜 모르겠는가. 조양악이 뒤를 힐긋 살피자 칠소궁이 있을 대나무 숲과 마천루가 세워진 홍예교가 먼발치에 보인다.
“월하촌 아니더냐.”
“그걸 알면서……?”
“어차피 여기 내가 온 건 아무도 모르고, 이곳에서 벌어질 일 또한 아무도 보지 못한다. 그저 너만. 너만 사라져 주면 된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시간 끌 생각일랑 버리거라. 너와 더 떠들 기분 아니니.”
“후회할 텐데.”
장이서가 입에 술을 털어 넣으며 담담히 말했다. 후회?
“크큭, 크하하하하!”
조양악이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내가 후회하면 네놈 아들이다. 알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