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85)
첩자의 마교생활-185화(185/350)
185.
#도라옥
솨아아아-
늦은 밤 호숫가에 물살이 밀려든다.
철퍽, 철퍽.
그리고 뭍을 향해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걸어 나오는 사내. 고작 반 시진도 안 됐거늘, 그사이 수십 년은 더 늙어버린 조양악이다.
“보좌님, 괜찮으십니까?!”
수하들이 달려와 안부를 묻자, 발작하듯 매섭게 눈알을 부라렸다.
“이 멍청한 것들……!”
괜찮냐고? 검노쌍살이 나타난 것도 모르고, 저 배 위에서 제가 무슨 꼴을 당했는지도 모르고.
도대체 이것들은 하는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마음 같아선 이것들이고, 저것들이고 싹 다 찢어 죽이고 싶지만…….
힐끔 뒤돌아 호수를 바라본 조양악의 눈이 미세하게 떨렸다.
“돌아간다.”
이내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오늘따라 유난히 피우고 싶은 곰방대를 떠올리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렇게 떠나갔다.
그리고 먼발치 떠 있는 배 위에선 그런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이대로 그냥 보내도 괜찮은 건가. 아직 저자가 도라옥과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네.”
“지 당주 말이 맞다. 얼굴만 봐도 알지. 배신하기 딱 좋은 이리 상이야. 도라옥에 당장 연통을 보낼 수도 있다!”
지대호와 마의가 이구동성으로 탐탁지 않은 우려를 표했다. 이해는 갔다. 하지만 장이서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을 겁니다. 그로서도 손해 볼 것 없는 거래일 테니.”
“그게 무슨 말이더냐. 종일 네놈한테 끌려다니다 너덜너덜해져 기어가는 놈한테. 표정을 보니 너한테 복수만 할 수 있다면 혼이라도 갖다 바칠 기세던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조양악이 감정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보기보다 영리한 자입니다. 이미 도라옥에 대해 장로회와 호룡당이 알았으니 미래가 없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흐음……. 해서 놈들이 먼저 절연할 것이다?”
“예. 그리고 이공자에게 신임을 회복해야 하는 그로서는 칠소궁과의 동맹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패일 겁니다. 그러니 당분간은 제 눈치를 살피려 들 겁니다. 말도 곧잘 따를 거고요.”
“허, 해서 그런 말을 했던 것이냐?”
장이서가 씨익 웃자 마의는 고개를 절절 저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는가.
“가만 보니 네놈은 혹 주변을 다 장기 말처럼 생각하는 것 아니냐? 말해보거라. 난 대체 네놈에게 무엇이냐.”
“앱니까. 그런 질문을 하게.”
“어서 말해보래도!”
“됐습니다.”
장이서가 손사래를 치자 지대호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럼 나는 무엇 같은가. 아무래도 나이로 보나, 인상으로 보나. 저기보다는 내가 더 형님 같지 않은가? 오늘 일도 자네를 믿고 이렇게 나서지 않았나.”
“뭐라는 게야, 이 호랭이 놈이.”
“저도 장 보좌와 한 번 해볼까 합니다. 호형호제. 장로께서만 하라는 법 없지 않습니까.”
“누가 네놈을 허락한단 말이냐! 어림도 없다.”
“허락을 왜 장로께 받습니까. 장 보좌한테 받아야지.”
“내가 저놈의 큰형이다! 내가!”
“그럼 마음껏 하십시오, 큰형. 저는 가장 친한 형 할 테니.”
“가아아알!”
두 영감의 유치한 싸움을 뒤로한 채, 장이서는 아신과 함께 계단을 내려섰다.
‘뇌옥왕 천악수라……. 당신은 대체 누구지?’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묘한 안갯속.
하나 생각은 잠시뿐이었다.
이 정도 밝혀냈으면 할 일은 다 했다.
나머지는 마교가 알아서 할 일.
그러니까…….
「돌아가자.」
「존명.」
***
어둑한 어느 지하 공동.
투박하고 비좁은 길목이 개미굴처럼 넓게 퍼져 있다.
대체 뭐 하는 곳인가 싶겠지만, 엄연히 사람 사는 곳.
물론 그리 좋은 주거환경은 아니다.
“흐으으으으.”
괴이한 신음이 귀곡성처럼 밤낮없이 울리고, 간간이 내걸린 횃불은 꽉 막힌 천장만 드러내니.
열흘만 채워도 갑갑함에 미치지 않으면 다행이다.
하나 그보다도 더 괴로운 것은 영영 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망연함이었다.
그렇다.
한 번 들어오면 천운에 천운이 닿지 않는 한 나갈 수 없는 마교의 지하 감옥.
들어올 때 몸 가릴 천 조각 하나 없이, 인간이 누리던 모든 호사를 지상에 내려놓고 와야 한다는 바로 그곳.
도라옥(度裸獄)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머리까지 덮은 피풍의를 쓰고 들어서는 이가 바로 곱슬머리를 가진 광기의 사내.
월하촌을 불태운 사호정이다.
“크크큭.”
이로써 충격적이지만 도라옥에 입출로가 열렸다는 것이 증명된 셈.
하나 놀랄 일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사호정. 분명히 내가 독단 행동하지 말라고 경고했을 텐데?”
들어선 사호정의 앞을 가로막은 자. 일자로 감긴 두 눈에 무심해 보이는 용모.
그는 발가벗겨진 죄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허리춤에 검을 차고, 역시나 머리까지 덮은 서역의 피풍의를 두른 마인의 모습이었다.
“고작 인사 조금 한 거 가지고 뭘 쪼잔하…….”
캉!
어둠 속에 일순 불꽃이 튀며 마찰음이 일었다. 순식간에 발도한 검과 이를 막아낸 손도끼로 인해 벌어진 일.
“큭!”
얼핏 보면 수가 비슷해 보이겠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무심해 보이는 사내는 벨 마음 없이 뻗은 것이고, 사호정은 신음을 뱉으며 정말 간신히 막아낸 것.
여기서 한 수만 더 이어졌어도 목이 베였을 거다.
“말은 살아 있기에 하는 것이다. 죽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사내의 노곤하지만 섬찟한 경고에 사호정은 인상을 찌푸렸다. 닥치라는 말을 고상하게도 하네. 네 x이다, 이 새끼야.
“알아듣겠나?”
“……충분히.”
한데 사호정이 성질을 죽이곤 두 손을 들며 웃는다. 척! 그러자 상대가 우아하게 납도하곤 휙 몸을 돌렸다.
“왕께서 찾으신다. 따라와라.”
“그러지.”
사호정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욱신거리는 손목을 어루만지며 얌전히 뒤를 따랐다.
정녕 놀라운 일이다.
그가 누구던가. 악명 높던 사씨 형제의 둘째이자, 한번 눈 뒤집히면 뵈는 게 없던 광기의 소유자다.
독한 거로 치자면 제 형인 사도철보다 한 수 위.
한데 그런 그가 이런 수모를 겪고도 꼬리 내린 개마냥 조용하다니. 하지만 지상이라면 모를까, 이곳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최소한 인간으로 남고 싶다면 말이다.
이 안에는 딱 두 종류만이 존재했다.
인(人)과 충(蟲).
말 그대로 인간은 옷도 걸치고, 식사도 하며, 대화도 할 수 있는 존재인 거고.
벌레는…… 뭐. 콰직!
“끄아아악!”
그냥 아무것도 허용되지 않는 존재였다. 지금처럼 단지 가는 길목에 발이 놓여 있었다고 짓밟혀 짜부라지는 신세처럼.
죽을 때까지 발가벗고, 비좁은 길 벽면에 꼭 붙어야 하는 벌레.
그리고 이는 간수 없는 뇌옥이 만든 오래된 위계질서였다. 누군가가 편해지려면 누군가는 불편해야 하기에.
다만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과거엔 그냥 약한 놈이 벌레였는데, 지금은…….
‘누구든 왕한테 밉보이면 벌레 되는 거지.’
그랬다. 도라옥은 지금 전제군주제의 시대였다.
천악수라가 광명사자의 봉혈을 풀면서 무공을 되찾았고, 충성을 맹세한 이들에게만 죄를 사하여 준다는 말과 함께 힘을 되찾아 주었다.
그로 인해 새로운 지배 구조가 시작된 것이다.
인간과 벌레. 그리고 그 위에 군림하는 신(神)!
바로 뇌옥왕(牢獄王)과 사면자(赦免者)들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리고 제 앞에 가는 저 맹인처럼 눈을 감은 검객은 사면자 중에서도 최측근인 군자검귀(君子劍鬼) 주사라는 자였다.
굳이 서열을 따지자면 이곳의 이인자.
그러니 도살방의 광견도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물론 그도 입장이 조금 특별하기는 했다.
“사호정을 데려왔습니다.”
미로 같은 길 끝에 당도한 드높고 거대한 굴.
어둡고 척박하던 앞서와는 달리,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야명주와 투명한 지하수가 흐르는 지하 낙원.
“왔느냐.”
묵직한 목소리에 주사는 천연의 돌로 만들어진 울퉁불퉁한 태사의 앞에 서서 깊숙이 고개를 조아렸다.
그가 이 안에서 이리 예우를 갖추는 존재는 오직 하나뿐.
수십 년 전 이곳에 들어와 봉인을 해제하고 왕의 자리까지 오른 사내.
뇌옥왕(牢獄王) 운광이다.
그리고 그가 바로…….
“다녀왔습니다…… 사부님.”
유년 시절 이곳에 들어온 사씨 형제에게 직접 무공을 가르쳐 준, 전전대의 대마두 천악수라(天惡修羅)였다.
길었던 과거의 인연이 재회하게 된 것.
‘늙은이. 뭘 먹었길래 갈수록 커지는 거야?’
사호정은 한없이 거대한 체구를 올려다보며 내심 긴장을 드러냈다.
이는 아부가 아니라 누구라도 마주하면 그럴 만했다.
핏기 없는 피부에 풀어 헤쳐진 백발. 백색 도포에 큼직한 붉은 보석이 박힌 금장 목걸이. 반면 호랑이도 피해 갈 만큼 장대한 기골.
이것이 바로 뇌옥왕의 모습이었다.
“월하촌에 다녀왔다지.”
용모에 걸맞은 중후한 목소리가 천둥처럼 장내에 울렸다.
“그게…… 죄송합니다, 사부님. 그저 보기만 하고 온다는 것이 참을 수가 없어…… 커헉!”
사호정이 말하다 말고, 제 목을 움켜쥔 채 앞으로 털썩 쓰러졌다. 오체투지하듯 엎어진 상태에서도 이마에 땀이 줄줄 쏟아졌다.
뇌옥왕의 몸에서 공력이 흘러나온 것도 아니었다.
그저 눈빛에 살의만을 품었을 뿐이었다.
한데 그것만으로도 사호정은 인간의 발아래 놓인 벌레처럼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
의기상인(意氣傷人).
의념 하나만으로 그를 죽음의 문턱에 올려세운 것이다.
그리고 뇌옥왕이 이를 펼쳐냈다는 건…….
그가 극마(極魔)의 힘을 사용하는 절대자라는 얘기다.
“사, 사아아알려…….”
사호정은 눈물, 콧물, 침까지 다 쏟아내며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이러다 심장이 먼저 터질 기세.
하나 뇌옥왕은 모든 게 태평했다.
“너는 어릴 때부터 네 형보다 많은 게 부족했다. 자질도, 머리도, 참을성도. 그저 경박하기만 했지.”
“끄으으…….”
“하지만 숱한 모자람 속에서도 단 하나 나은 것이 있었다.”
“살려줘……. 살려달라고오오오, 이 개새끼들아아아아-!”
고개를 번쩍 들고 소리치는 사호정.
두 눈은 실핏줄이 다 터졌고, 뵈는 것도 없는지 동공은 따로 돌아다닌다.
그리고…… 뇌옥왕은 이를 보며 웃었다.
“그래. 바로 그 악독함이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라면 절대 포기하지 않는 그 모진 마음이 널 죽이지 않은 이유이다.”
툭.
들끓던 살의가 잔바람처럼 사라지고, 사호정은 쓰러진 채 오들오들 떨었다.
“강해지고 싶으냐. 그럼 견디거라. 견디고 또 견디어 네 형이 닿지 못한 경지에 오르거라.”
뇌옥왕이 일어선다. 그러자 목걸이에 박힌 붉은 구슬의 색이 더 짙어졌다.
이내 앞으로 손을 뻗어내자.
슈슈슈슈슉-!
수백 갈래로 뻗쳐 나온 붉은 빛줄기가 사호정의 단전을 향해 비수처럼 내리꽂혔다.
“으으으…… 끄아아아아아아-!”
참는다는 것 자체가 오만이라고 할 수 있는 끔찍한 고통.
비명은 오랫동안 울려 퍼졌다.
사호정이 완전히 혼절하는 그 순간까지.
“데려가라.”
군자검귀 주사가 나지막이 명을 내리자, 피풍의를 뒤집어쓴 죄인들이 들어와 그를 데리고 사라졌다.
그러자 장내에는 딱 네 사람만이 남았다.
도라옥의 서열 2위 군자검귀 주사.
곰처럼 우직해 보이는 서열 3위 우호법, 붕산권(崩山拳) 대산홍.
흡사 악선이 아닌가 싶은 용모의 서열 4위 좌호법, 팔괘사령(八卦死靈) 악복조.
마지막으로 이들의 왕인 서열 1위 뇌옥왕 천악수라.
바로 이곳 도라옥의 수뇌부들이었다.
그리고 원래는 여기에 한 명이 더 있었다.
“아무래도 사혼검귀가 당한 것 같습니다.”
“으으으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