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86)
첩자의 마교생활-186화(186/350)
186.
#뇌옥왕 천악수라
뇌옥왕의 입에서 격노에 찬 침음이 뱉어졌다. 예정보다 복귀가 늦어져 불안하긴 했다.
아니, 검노쌍살은 당했을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도라옥 서열 5위이자 마지막 간부인 사혼검귀 갈문천은 계산에 없었다.
“아무래도 장이서. 그자에게 역으로 당한 것 같습니다.”
“장이서…… 장이서…… 장이서……!”
뇌옥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원한의 외침을 토했다.
쿠구구구!
그러자 그저 서 있는 것뿐임에도 어찌나 기세가 강렬한지 지축이 흔들리며 투둑, 투두둑! 위에서 돌 부스러기가 떨어져 내렸다.
실로 엄청난 공력. 앞에 서 있는 것 자체가 곤욕이다.
“감히 내 제자를 없앤 것도 모자라, 사혼검귀까지 죽음에 빠트리다니……. 감히……. 감히!”
뇌옥왕은 수십 년의 구금 생활로 세상에 달관하여 냉혈이 흐르듯 차분하고 과묵한 자였다.
그가 이토록 대로한 건 이곳에 갇힌 후로 딱 두 번.
하나는 유년기부터 제 손으로 기르다시피 한 애제자 사도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고 나머지가 바로 지금이다.
“사지를 찢고 찢어 원혼까지 불태워 버릴 것이다-!”
한마디로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장이서는 이미 불구대천의 원수로 등극해 있었다.
물론 장이서 입장에선 억울한 부분이 있다. 먼저 공격해 온 건 그들 아닌가. 심지어 갈문천은 의뢰받고 암살하러 온 자객이었다.
하지만 원인 불문하고 피가 피를 부르는 것은 강호의 이치.
“어찌할까요.”
“당장 놈을 제단에 바쳐 피육(皮肉)을 벗겨도 모자란 일. 하나 그것보다도 우리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하오면…….”
“대업을 앞당겨야겠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주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들에게 대업이란 두 가지.
하나는 천하를 혼란에 빠트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교의 신을 죽이겠다!”
만마의 신. 천마!
바로 그를 죽이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가 극마에 오른 고수라 할지언정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
도대체 무얼 믿고서.
이에 뇌옥왕은 제 목걸이에 박힌 영롱한 붉은 구슬을 내려다보며 답했다.
“이 혈옥(血玉)에는 수십 년간 이곳을 스쳐 간 수많은 죄인의 혈(血)과 기(氣). 그리고 한(恨)이 담겨 있다. 그 가치는 무려 5갑자에 육박하지.”
5갑자라니. 이 정도면 과장을 넘어 허황이다. 정상적인 방법이라면 300년을 수련해야 하는 양.
심지어 독마가 지니고 있던 내공도 그보다 낮은 4갑자였다.
하나 지금까지 그가 죄인들의 봉해진 단전을 풀어주고, 더 강한 힘을 부여해 준 것을 생각하면 이는 결코 거짓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보다 더 충격적인 건 따로 있었다.
“물론 이것으로도 천마와 싸워 이길 수는 없다.”
시작도 전에 패배 선언!
그랬다. 5갑자의 내공을 손에 넣는다고 해도 이길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 그것이 바로 천마였다.
그리고 그 이유는.
“천마란 존재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결국은 인간의 육신일 뿐. 분명 빈틈은 있다. 하지만 천마귀는 아니지……. 그건 인간이 아닌 마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5갑자의 내공으로도 그를 죽일 수 없는 이유!”
천마귀. 시작은 천마신공이 만들어 낸 피조물에 불과하지만, 흡수한 내력이 커질수록 점차 독자적인 존재로 거듭나는 신의 하수인.
“오직 신이라 불리는 천마만이 다룰 수 있는 힘이지.”
그리고 당대의 천마가 지닌 천마귀는 고금을 통틀어도 손꼽힐 만큼 강했다.
하여 그가 천마를 죽인다는 말은 숨통을 끊어놓겠단 뜻이 아니었다. 아무리 자신이 날아올라 봤자 천장일 뿐. 천외천의 존재에게는 닿을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이 혈옥에 담긴 공력에는 죄인들의 광기와 혈기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누구든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그리고 천마귀는 무엇보다도 내기를 탐하는 괴물이지. 하여 난…… 이것을 천마귀에게 선물로 줄 것이다.”
충격을 넘어 경악에 빠질 만한 말이 뱉어졌다. 뇌옥왕은 입가에 참을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5갑자에 달하는 엄청난 공력.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광기와 혈기. 이를 취해 숙주보다 더 강해진 미친 천마귀. 그리고 그걸 마주하는 천마.
상상만 해도 전신이 짜릿하고, 희열에 사로잡혔다.
그렇다.
천마를 죽이겠다는 말은 곧 그의 천마귀를 폭주케 하겠다는 것. 하여 숙주인 천마를 광기와 혈기에 굴복시키겠다는 것.
이것이 그가 말한 대업 중 하나였다.
“어쩌면 마교 놈들은 내게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평화를 택한 천마보단 미쳐 날뛰는 천마를 더 원하고 있을 테니. 하하하하!”
뇌옥왕의 광소가 터져 나오고, 주사는 파르르 떨며 고개를 숙였다.
“사면자들을 모두 불러들이거라! 마침내 때가 되었다고. 피의 복수를 시작하겠노라고.”
“……따릅니다.”
마교 중심의 지하 깊은 곳.
위험한 칼날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뇌옥왕 천악수라에 의해.
***
– 월하촌 칠소궁.
창틈 사이로 여명의 빛줄기가 스민다.
보이지 않던 작은 먼지가 너풀거리고, 그와 함께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장이서의 눈도 슬며시 떠졌다.
“후…….”
잠들었던 건 아니다. 어젯밤 조양악을 떠나보내고, 곧장 돌아와 운기조식을 취했고. 이제 세 시진 정도가 지났다.
사실 이렇게 길게 할 필요까진 없었다. 이미 진기를 더 쌓을 수 없는 몸이고, 고작해야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정도.
하지만 마가에서 천마귀의 정체를 알게 된 이후부턴, 잠 대신 명상을 택하기로 했다.
그래야 마음이 조금은 더 편해졌기 때문.
잠들었다가 심장에 자리한 괴물한테 잡아먹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탓이었다.
그만큼 천마귀와 조우했던 그날의 기억은 선명했고, 강렬했다.
‘녀석에 대해 더 알아내고 싶긴 한데…….’
물끄러미 심장을 내려다봤다.
두근, 두근.
박동도 일정하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잠잠했다.
혹시 몰라 불사독과 천마기를 골고루 심장에 보내도 봤지만, 천마귀는 처음 본원진기마저 탐내던 것과 달리 아무 반응이 없었다.
‘사숙이나 번천검객의 내기가 들어왔을 땐 득달같이 아귀를 벌리던 놈이…….’
이미 잡은 물고기라 생각한 탓일까. 아니면 타인의 기운에만 반응하는 것일까.
모르겠다.
하지만 무엇이든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마치 심장에 진천뢰 하나 박아두고 살아가는 기분.
‘근데 내기를 먹을수록 더 커지는 건가?’
독마의 내공 중 빠져나간 일부를 고려한다고 해도 예상되는 건 최소 3갑자 이상.
이미 자신의 공력을 훨씬 더 상회했다.
그리고 내면에서 보았던 크기가 고개를 한껏 올려다봐야 했으니, 만일 그보다 더 커진다면…….
‘나중엔 스치기만 해도 잡아 먹히겠군.’
그렇게 생각하니 더 등골이 서늘해진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긴 해야 할 텐데.
‘정말 정공 심법이라도 알아봐야 하나.’
답답함이 목젖까지 차오른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런 무자비한 괴물을 다루는 그의 존재감이 다시금 새겨졌다.
‘이것이 천마귀(天魔鬼)다.’
흑화의 불씨를 흩날리는 괴신을 다루던 절대자.
천마 진우광.
그는 대체 얼마나 강한 것일까.
보고 싶다.
그가 펼치는 천마신공의 진짜 모습을…….
‘물론 만나는 순간, 내 목이 날아갈지도 모르지만.’
후, 부풀던 가슴이 푹 꺼졌다.
독마 사숙의 말대로 이제 천마와의 만남은 최대한 지양하는 것이 현명했다.
우선 사부와의 악연이 있고, 또 진짜 천마귀를 깨울 줄은 몰랐을 테니 본교 질서에 위해가 된다며 죽이려 들 수도 있었다.
‘현실을 직시하자. 난 무인이기 이전에 첩자다.’
고개를 휘휘 젓곤 일어섰다.
일단 당장 급한 불부터 끄자.
*
별채에서 나와 곧바로 칠소궁의 주역들을 소집했다.
자리는 정원에서 가졌고, 협탁엔 홍란이 가져온 다과가 놓였다. 마의와 지대호는 불참했다.
‘장로회에 다녀오도록 하마.’
도라옥에 대한 진실을 알았으니,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호룡당주인 지대호와 함께 어젯밤 마해산으로 길을 나섰다.
장이서는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이공자가 도라옥과 손을 잡았으며, 그들을 자객으로 써먹으려 했다는 것.
그리고 덜미가 잡힌 조양악의 목줄을 우리가 잡게 되었다는 것까지 말이다.
“……해서 그는 당분간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제가 한 짓이 있으니.”
물론 앞으로도 놔줄 마음은 없고 말이다. 설명을 마치자 마오는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근데 이렇게 빠져나가게 둬도 되는 거야? 도라옥이랑 손잡았다며. 그럼 같이 벌을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론 도리상 그게 맞겠지만…….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그래봤자 조양악만 책임지고 끝날 겁니다. 이공자는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겠죠. 그럴 거라면 차라리 첩자로 심어두는 쪽이 더 낫습니다.”
“쳇……. 좋아. 그럼 우리는 뭘 하면 되는데? 뇌옥왕인지 사오정인지 게네 잡으러 갈까? 아니면 밖에서 숨어 있다가 나오는 놈들을 노려?”
마오가 두 눈을 활활 태우며 묻는다. 나머지도 내심 기대하는지 의기가 상당하다.
하긴, 마가에서 승리하고 사기가 제대로 올랐으니, 아주 몸이 근질근질할 거다.
하지만…….
“얌전히 집에 계시면 됩니다.”
“뭐야?!”
계획이 바뀌었다.
“도라옥은. 안 쳐들어가? 가서 혼쭐 내줘야지. 내 마을 사람들이 다쳤어. 게다가 혈교일지도 모른다며.”
“광의와 한통속인 자들이라면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맞아, 형님. 그리고 마가에서 우린 제대로 힘도 못 썼지 않소.”
마오부터 구유. 그리고 과평까지.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아신도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동참했다.
모두 맞는 말이다.
굳이 혈교나 복수가 아니더라도 이번 도라옥 건은 칠소궁이 제대로 업적을 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확실히 그냥 놓치기엔 아쉽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현재 밝혀진 바에 따르면 뇌옥왕은 극마의 고수. 이건 저희끼리 해결할 문제가 아닙니다.”
극마(極魔). 그건 이미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영역. 아무 대책도 없이 그를 상대하겠다는 건 부나방과 다를 게 없었다.
칠소궁의 책임자로서 이들을 이끌고 간다는 건, 절벽 낭떠러지로 안내하는 것과 마찬가지.
“그자가 그렇게 강한가?”
물론 구유로서는 그게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니 탐탁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알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극마는 곧 대국(大國).”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 단신의 힘으로 대국의 천군만마와도 능히 겨룰 수 있다는 얘기지.”
“그…… 정도인가?”
관무불가침의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무림 세력이 두려워서? 천년 무림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틀렸다.
황실에도 고수는 모래알처럼 많고, 그들에게 무림은 법전을 어기고 사병을 일으킨 도적 떼와 다를 바 없다.
그런데도 가만히 놔두는 이유는 오직 하나.
“무림에는 늘 신이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