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9)
첩자의 마교생활-19화(19/350)
19.
– 월하촌 인근.
타다다닥.
흑색 도포를 입은 중년의 사내가 나름 재빠른 몸으로 숲길을 내달린다.
그의 이름은 용태.
과거 호룡당 출신의 무사이자, 현재는 흑룡파의 두목이다.
그가 이리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는 이유는 하나.
장이서. 그의 요청 때문이었다.
‘너희. 안 바쁘면 사람 좀 불러와야겠다.’
‘누굴 말이신지……?’
‘호룡당.’
호룡당(虎龍堂).
천산의 행정을 담당하는 최상위 다섯 기관인 오룡당 중 하나이자 치안과 호위를 맡는 무장 세력.
관과 비교하자면 육부(六部) 중 형부(刑部)의 역할.
이른바 죄인 무는 범 새끼들이었다.
상대의 습격으로 시작된 싸움이라곤 하나. 어쨌든 교내에서 이런 살상극은 명백한 범법이고 조사 대상이었다.
그러니 호룡당이 월하촌에 당도하는 순간 모든 싸움도 종식될 터.
특히나 이번엔 마을 사람들까지 위협하였으니, 마가 집안의 일이라고 쉽게 넘기진 못할 터였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가서…….
“어후, 숨 차. 잠깐만. 나 방금 수명 줄었어.”
용태가 현기증을 느끼며 나무를 붙잡고 숨을 고른다. 전력으로 이리 오랫동안 달려본 게 얼마 만인가. 머리가 띵하다.
“혀, 형님!”
잠시 후 메기도 흠뻑 젖은 얼굴로 죽을상을 한 채 나타났다.
“헉, 헉.”
“어, 숨 쉬어. 뱉어. 뱉으라고, 새끼야. 먹지만 말고.”
“후아…….”
“그래. 어. 잘했다.”
용태가 메기의 등을 두드려주자, 메기가 스르륵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영혼이 빠져나간 얼굴이다.
“거, 참.”
용태가 입맛을 다시며 주변을 살폈다. 산세가 험한 게 하늘도 잘 안 보이고, 호룡당까지의 길은 멀기만 하다.
이대로면 쉬지 않고 달려도 늦은 밤에나 도착할 기세.
“형님…… 이러다 우리가 먼저 죽지 말입니다.”
“너 아까 왕씨 손에 피 철철 나는 거 안 봤어? 도살방 이 새끼들……. 이번엔 아주 작정하고 왔다. 뭔 짓 저지를지 몰라. 명색이 우리가 인마. 어? 월하촌 대가린데. 지켜줘야지.”
“근데 계속 숨어 있었지 말입…….”
“야, 이 새끼야! 내가 딱 생각 정리하고. 어? 도살방 그 새끼들 그냥 아주 확! 어? 인마.”
뭐라는 건지. 용태가 혼자 횡설수설하던 그때였다.
“도살방이 뭐 어쨌다는 것이냐?”
“어쩌긴 뭘 어째. 그 새끼들이 교인들 해쳤다니까. 아무튼 내가 당주랑 직접 만나서 담판을…… 응, 근데 나 누구랑 얘기하니?”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용태가 두 눈을 크게 깜빡였다.
스스스.
그러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육중한 기운이 도처에 흐르는 게 느껴진다. 꼴깍, 침을 삼키고 슬쩍 옆을 보자 미간이 먼 메기의 눈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모습이 보인다.
염병. 뭐가 있는가 보다. 이어 용태가 바짝 긴장한 채 천천히 고개를 돌린 그 순간.
“으아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그대로 다리 힘 풀린 것처럼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그곳엔 기골이 장대한 사내가 대여섯 명의 수하들을 위시한 채 멋들어진 검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서 있었다.
호랑이 문양이 그려진 허리띠의 금붙이. 그리고 범 무늬처럼 검은색과 황색이 어우러진 무복. 마지막으로 어깨에 적힌 호(虎)라는 글귀.
천산에서 이토록 범을 사랑하는 자들은 딱 하나뿐이다.
“호, 호룡당이 나타났지 말입니다…….”
좀 더 일찍 얘기해 주지 그랬니, 메기 새끼야. 용태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사실 진짜 문제는 이들이 호룡당이라서가 아니었다.
저 검은 수염의 사내가 누구냐가 문제이지.
용태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곤 넙죽 오체투지하며 목청껏 외쳤다.
“신 용태! 당주님을 뵙습니다!”
대주도, 부당주도 아닌 당주.
그렇다.
호룡당의 수장이자 2급귀인 거물 중의 거물.
영리한 호랑이 지대호였다.
“다, 당주……. 히이이이익!”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메기도 뒤따라 넙죽 엎드렸다.
마을도 아니고, 명소도 아닌 이름 없는 산길 한복판에서 천하의 호룡당주를 만났다.
“쉬어.”
“쉬어!”
지대호의 명에 용태가 벌떡 일어나 꼿꼿이 섰다. 눈치 없이 아직도 엎드려 있는 메기를 툭툭. 옆 발로 걷어차 그도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지대호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이를 힐긋 살피고는 입을 열었다.
“용태.”
“예!”
“호룡당 나가고 왈패가 됐다는 얘기는 들었다. 한데 일평생 숨어다녀도 모자랄 녀석이 나와 담판을 짓겠다?”
“억, 그, 그게 아니고 말입니다. 예.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말이지요? 담판. 예. 그것은 쌍방이 의논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는 뜻으로서…….”
“클클, 옳고 그름이라 했느냐?”
호룡당주 지대호가 호탕하게 잇몸 미소를 짓는다. 뭐지. 통했나. 이에 용태와 메기도 따라 웃으려는 그 순간.
크하아아앙! 포효하는 환청이 들리며 지대호가 앞으로 확 얼굴을 들이밀곤 말했다.
“좋다. 지금부터 단 하나라도 거짓을 고했다간, 단단히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도살방이 교인들을 해쳤다고 하였느냐?”
“히이이익! 예, 예! 맞습니다!”
“어디냐. 도살방이 나타나 해악을 부린다는 곳이.”
사태가 아주 제대로 커져 버렸다.
용태는 넋 나간 얼굴로 울상을 지었다.
*
그렇게 월하촌에 도착한 호룡당주 지대호와 용태.
혹여 상황이 다 끝나있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홍예교엔 증거가 아직도 수두룩하게 남아 있었다.
홍예교 위에 얼룩진 핏자국. 그리고 호수 위에 떠 있는 변사체들.
“대체 이게 무슨……. 마을을 샅샅이 뒤지거라!”
지대호는 이를 보곤 즉시 명을 내렸다.
“예!”
이에 빛줄기처럼 마을 안으로 스며드는 호룡당의 무사들.
저벅, 저벅.
지대호는 안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좌우를 진중히 살폈다.
월광호 난간에 걸쳐진 시체. 물에 빠져 둥둥 떠 있는 시체.
사인도 다양했다.
누군가는 찔려 죽었고, 또 누군가는 맞아 죽었다.
하나 오랜 수사 경력을 가진 지대호가 보기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고수. 전부 한 명의 고수에게 당한 것이다.’
그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천산을 넘어 중원까지 이름 알려진 도살방이 이런 촌구석까지 온 이유는 짐작이 갔다.
칠공자.
과거에도 그와 얽힌 사건을 직접 조사하지 않았는가.
한데 이건…….
지대호가 홍예교 끝자락에 다다를 때쯤, 앞서 달려 나갔던 수하들이 돌아와 고개 숙이며 보고를 올렸다.
“당주님. 현재까지 발견된 시체는 모두 스물아홉 구입니다. 다른 이는 없었으며 모두 도살방 녀석들입니다.”
허. 한둘도 아니고 스물아홉? 이건 보통 사건이 아니지 않은가.
지대호가 미간에 범 주름을 짓고는 나직이 읊조렸다.
“용태.”
“예?”
“네가 내게 거짓을 고했구나.”
“제가요? 아닌데요. 얘네 도살방 맞는데요?”
“도살방이 사람들을 해한 게 아니라……. 누가 도살방을 해한 것이 아니냐!”
“아니, 그건……!”
용태의 눈이 띠용 커졌다. 이건 아예 생각조차 못 한 일.
‘잠깐. 그럼 그 보좌 양반이 다 죽였다는 건가?’
마을 사람들이 그랬을 리는 없고. 순간 용태와 메기의 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방첩대 출신인 건 알았지만, 이토록 고수였을 줄이야.
“당주님. 마지막 흔적이 칠소궁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음…….”
지대호의 입에서 짙은 침음이 뱉어졌다. 칠소궁. 아무리 허명뿐인 곳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원칙 주의인 그에겐 증거도 없이 함부로 수사할 수 없는 성역.
하지만 그렇다고 칠공자가 위험할 수도 있는 이 상황을 그냥 얌전히 물러설 수도 없다.
“모두 여기서 대기하거라. 칠공자님께 인사를 드려야겠다.”
철컥.
호룡당주 지대호가 허리춤의 칼을 풀어 수하에게 건네곤 홀로 대나무 숲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아야겠다.
*
– 월하촌 칠소궁.
“그만 일어나시죠. 지금 누가 보면 우리 오해하기 딱 좋거든요.”
“쥐 났어.”
“앱니까?”
장이서가 아직도 무릎을 꿇고 있는 마오에게 일어나라 고갯짓했다.
이에 마오는 절대 안 된다며 검지로 혀를 찍곤 코와 이마에 침을 묻혔다.
도대체 저게 언제 적 방법인지. 하. 이에 장이서가 헛웃음을 흘렸다.
서로의 경계가 풀린 눈빛만 봐도 확실히 뭔가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장이서가 한숨과 함께 일으켜주려고 마오의 한쪽 어깨를 움켜쥐었다. 한데.
“멈추어라. 거기서 손가락이라도 더 까딱했다간 네 목이 날아갈 것이다.”
스스스.
뒤에서 마치 산군이 나타난 것처럼 흉포한 살기가 피부로 느껴졌다.
이에 장이서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점점 동공이 커지며 한눈에 상대를 알아봤다.
‘영리한 호랑이, 지대호!’
그는 장이서를 모르겠지만, 장이서는 그를 너무도 잘 안다.
실세 중 하나인 호룡당주이자 마교 서열 30위 안에 들어가는 주요 관찰 대상.
“칠공자님 물러나십시오.”
“나도 그러고 싶은데 내 다리가…….”
지대호가 마오의 접힌 무릎을 보고 경악한 듯이 말했다.
“설마. 부서트린 건가?”
“아니, 왜 얘기가 그렇게 되는 겁니까?”
“자세한 얘기는 본관에 가서 듣겠다.”
“무슨…… 흡!”
크하아아앙! 범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과 함께 지대호가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빠르다.’
이를 정면에서 마주 본 장이서는 일순 긴장을 느끼며 옆으로 몸과 고개를 피했다.
부웅!
그러자 엄청난 풍압이 귓가를 스친다. 찰나의 순간임에도 엄청난 내력이 느껴졌다. 이건 대충 상대할 수준이 아니다.
“제법이구나!”
지대호 역시 같은 마음인지 뒤이어 사정없이 연격을 퍼부었다. 파파파팟! 이에 장이서는 간신히 이를 막아내며 뒤로 하염없이 밀려났다.
‘큭. 막았는데도 충격이…….’
엄청난 힘. 왜 그를 범이라고 부르는지 알겠다. 차라리 호랑이한테 맞는 게 나을 정도.
뼈가 바스러질 것 같은 통증이 밀려오고, 장이서의 뇌리엔 경종이 울렸다.
‘이대로면 잡아 먹힌다.’
“어디 이것도 막아보거라!”
크하아아앙! 지대호의 주먹이 크게 뒤로 젖혀진다. 장이서의 팔다리가 풀린 걸 깨닫고 이번에 마무리 짓겠다고 판단한 것.
하나 그 순간 장이서의 눈에도 안광이 뿜어졌다.
‘빈틈!’
그리고 반사적으로 몸이 반응했다.
파직! 단전에서 경맥을 타고 유유히 흐르던 내기가 일순 벼락으로 뒤바뀌며 전신을 찰나에 휘감았다.
『뇌전법(雷轉法)』
그리고 지대호의 주먹이 날아들기도 전에 장이서의 손바닥이 그의 가슴팍에 먼저 꽂혔다.
퍽!
“큭?!”
신음과 함께 주르륵 대여섯 보를 뒤로 밀려나는 지대호.
“아.”
장이서는 당황한 듯이 침음을 뱉고, 지대호는 고개를 떨군 채 제 가슴을 멍하니 살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너.”
그리고 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한데 두 눈에선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살광이 뿜어졌다.
저거 화났다.
그것도 아주 많이.
“지금 이거 아주 심각한 오해가…….”
“제대로 상대해주마!”
크하아아아앙!
분노한 호랑이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아직은 둘뿐이지만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