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92)
첩자의 마교생활-192화(192/350)
192.
#그냥 두거라
“북부로 향했다면 집하촌. 하지만 그곳엔 소오가 있으니 괜찮습니다. 동부도 마찬가지. 지나려면 주마지를 넘어야 하는데 거긴 오공녀와 육공자가 머물고 있죠.”
술술 뱉어지는 장이서의 말에 마오는 넋을 잃고 귀를 기울였다.
“남은 건 중부와 이곳 남부인데……. 중부 쪽은 그냥 지나쳤을 공산이 큽니다.”
“왜?”
“마해산이 바로 앞에 있으니까요.”
오룡당과 천마전이 자리한 그곳에 어느 죄인이 가고 싶겠는가. 그들의 복수심 이면에는 분명 공포심이 자리하고 있을 터. 그러니 남는 곳은 하나.
바로 이곳 남부다.
“대부분 이 근방에 몰려 있을 겁니다. 사호정과 출발한 시간도 비슷할 테니 멀리 가진 못했을 터. 예상컨대 이곳에서 1리밖에 있는 소촌, 3리 떨어진 웅주, 두을산 중턱에 있는 원연촌으로 향했을 가능성이 가장 농후합니다.”
마오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문득 든 생각인데 도대체 장이서가 모르는 게 뭘까 싶었다. 솔직히 기대하고 물은 것도 아니었는데…….
“그럼, 거기만 막으면 되는 거야?”
“확신은 아닙니다. 하지만 피해를 줄일 순 있을 겁니다.”
마오가 표정을 굳히고 고개를 돌렸다. 수많은 신도의 통곡이 다시 귓가에 박힌다.
그리고 어느새 상황을 정리한 구유와 칠무위가 다가온다.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이내 꽉 움켜쥔 채 마음을 굳혔다.
“지금부터 구유와 칠무위는 남쪽 마을로 가서 죄인들을 쫓아.”
구유의 눈이 번뜩였다.
“무슨 말이지? 함께 대곡고로 가려던 게 아니었던가.”
“거긴 나랑 장이서가 간다.”
“……!”
“구유 넌 놈들을 찾아. 분명 인근 마을에 있을 거야. 못 찾겠으면 흔적이라도 찾아. 어떻게든 찾아서 전부 막아.”
구유가 깊은 눈동자로 마오를 바라본다. 그러곤 시선을 장이서에게로 옮겼다.
진심인 것 같은데, 정말 그래도 되냐는 물음. 잠시간 시선을 맞추고 이윽고 그가 말에 올라탔다.
장이서가 그린 약도를 제대로 이해하기엔 천산에 있어선 문외한.
하지만 근방에 있는 걸 안 이상.
「아신! 놈들의 흔적을 찾아라.」
「예.」
전장의 화신인 저들만의 방식으로 찾아내면 그뿐이다.
칠소궁에 있는 기둥은 장이서만이 아니었으니.
“가자, 장이서.”
그렇게 마오와 장이서. 그리고 구유와 칠무위가 각자의 방향으로 말을 타고 쏘아져 나갔다.
동이 트는 새벽.
천산을 구하기 위한 이들의 활약은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
한편 칠소궁이 천산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 중이던 그 시각.
대공자 천무기는 서문에 지어진 막사에 들어앉아 깊은 고심에 빠져 있었다.
‘묘하구나.’
놀랍게도 돌아가는 상황에 그가 이상함을 느낀 것이다.
누가 말해준 건 아니었다.
그냥 느낌이 그랬다.
사실 장이서한테 번번이 당해서 그렇지. 독사처럼 예민하고, 영민한 게 바로 그다.
‘정황은 확실했다.’
서문으로 향한다는 정보는 사전에 입수된 것이며, 실제 흔적도 다수 발견되었다.
‘계획도 완벽했다.’
관문부터 서문까지 모든 입출로를 봉하였고, 천천히 숨통 조이듯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이보다 더 쉬운 일이 어디 있을까.
한데 바로 그게 문제였다.
‘광명사자가 당했다. 천운이 따른다고 할지언정 그게 쉬운 일은 결코 아니지.’
그런데 그런 놈들이 너무도 허술하다. 이리 쉽게 포위되다니.
그 괴리감이 천무기의 신경을 자극했다. 마치 중요한 무언가를 하나 빠트린 기분.
‘관문을 불태우고, 뒤이어 안쪽의 마을까지 불타 사라졌다. 남겨진 흔적만 보더라도 놈들의 머릿수가 헤아리지 못할 만큼 많다.’
하여 당연히 모든 죄인은 이 안에 있다고 단정을 지었다. 하나.
‘오히려 수가 많으면 떨어져 나가는 부스러기는 눈에 안 드는 법이지. 만일 놈들 중 일부가 이곳이 아니라 천산으로 간 것이라면…….’
생각이 깊어지던 천무기가 픽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괜한 생각이다. 쓸데없는 기우다.
놈들이 아무리 복수심에 눈이 멀었다 하더라도 이건 아니다. 뭐 하러 천산에 남겠는가.
그건 자멸의 길을 가겠다는 것인데. 겨우 얻은 자유. 하루라도 더 누리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
게다가 기껏해야 약해 빠진 도라옥의 죄인들.
무림은 수로 싸우는 게 아니었다. 한 명의 고수가 전쟁을 좌지우지하는 것이지. 걱정할 것 없다.
그렇게 다시 마음을 다잡고 얕은 숨을 뱉어내던 찰나였다.
“대공자님!”
그의 보좌인 유령마군이 다급히 들어섰다.
“음?”
이에 천무기는 그를 보자마자 고개를 갸웃했다. 둘은 서로 눈만 봐도 속내를 꿰뚫는 사이. 한데 그의 눈빛이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혼란스러워하고 있으며, 초조해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나지막이 묻자 그가 뒤를 한 번 흘기곤, 손에 들린 서신 한 장을 건넸다.
힐긋 살피곤 이를 받아 들자 그가 부언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천산으로 빠져나간 자들이 있는 듯합니다.”
“뭐?”
“제12 관문에서 급히 날아든 서신입니다.”
12관문이라면 칠소궁 인근. 천무기가 고개를 갸웃하며 서신을 빠르게 훑어내렸다.
“이건……!”
그리고 경악에 휩싸였다. 월하촌에 죄인들이 출현했고, 다수가 대곡고와 다른 마을을 노리고 있다는 것.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간담을 서늘하게 한 것은…….
【혈교 개입 유력.】
혈교. 바로 이 두 글자였다. 뒤통수를 퍽 후려 맞은 기분이었다.
머릿속에 경종이 뎅뎅 울렸다.
“누가. 누가 보내온 것이냐?!”
천무기가 매서운 눈매로 묻자 유령마군이 주저하듯 입을 열었다.
“그것이…… 칠소궁입니다.”
“뭐?!”
와락! 손안에서 서신이 구겨지고, 천무기의 이마에 짙은 노기가 서린다.
“또 장이서…… 그놈이라는 말이냐?”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장이서. 장이서. 장이서!
도대체 어쩌다 그딴 보잘것없는 놈의 이름이 번번이 제 귀에 박힌단 말인가.
“이미 일부 마을이 불탄 것도 확인되었습니다. 다만, 그저 살욕에 빠진 몇 놈만이 빠져나간 것은 아닐는지요.”
그럴 수도 있겠지.
“무엇보다 장이서가 보내온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대공자님의 업적을 방해하려는 모략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맞다. 장이서는 그러고도 남을 놈.
하지만 천무기는 보좌의 말에 쉬이 호응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건 장이서가 옳다.’
혈교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내내 불쾌했던 안개가 개운하게 걷혔기 때문이었다.
지금 상황이 이리 쉽게 느껴지는 이유? 간단하지 않은가. 그건 그렇게 짜인 함정이기 때문인 거다.
천산의 세를 이곳으로 모으고, 대곡고를 열게끔 하기 위한 함정!
“…….”
분위기가 서늘해지고, 침묵이 길어지자 유령마군은 제 생각에 힘을 더했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굳이 대곡고를 노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본진이라 할 수 있는 천산채나 마해산이라면 모를까. 얼토당토않은 억측입니다.”
한데.
“정말 그리 생각하느냐.”
대공자가 팔꿈치를 팔걸이에 걸치곤 턱을 괸 채 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놈들이 대곡고를 노리는 이유가 정말 없다고 생각하느냔 말이다.”
유령마군의 눈이 의문으로 가득 채워진다. 이유랄 게 뭐 있는가. 곡식이 날아가면 힘들기야 하겠다만, 다시 구하면 그만인 것을.
하나 천무기의 생각은 달랐다.
“척박한 신강에는 십만 신도를 먹여 살릴 식량을 구하기가 어렵다. 본교의 천년 역사에 중원을 침공한 이유 중 대다수는 이에 해당이 되지.”
맞다. 하지만 19년 전, 당대 천마인 진우광이 평화 협정을 펼치면서 이 문제는 해결되었다.
중원에서 평화의 증표로 매년 대량의 곡물을 거래할 수 있게 보증해 주었으니.
“대곡고가 불타면 당장 돌아올 겨울이 고비다. 신강에선 이를 얻어낼 방도가 없고, 그럼 어찌해야겠느냐.”
“중원에서라도 구해야겠지요.”
“그래. 하지만 그도 쉽지 않은 일이다. 자그마치 십만 명이 짧게는 반년에서 일 년을 버텨야 할 양이다. 그 많은 걸 갑자기 어디서 구하겠느냐. 분명 말도 안 되는 값을 요구하거나, 불가능하다 말하겠지.”
“하나 정파에서 이를 거절하면 지존께서 결코 가만히 계시지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놈들은 분명 거절할 거다.”
“어째서입니까.”
“작금의 평화가 신주오절 때문이라고 믿는 천치들이니까. 돌아서면 저들이 얼마나 나약했는지 새카맣게 잊고 짖어대는 놈들 아니냐.”
유령마군의 붕대 사이로 눈이 번뜩였다. 이제야 진의를 깨달은 것.
그러니까 대곡고가 사라진다는 건 단순히 곡식이 부족해지는 게 아니라…….
“전쟁이다. 19년의 평화가 깨지고 중원에 다시 피바람이 시작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었다. 그리고 장이서 또한 단번에 이를 깨닫고, 대곡고로 서둘러 달려 나간 것이다.
최악의 상황만은 반드시 막아야 하므로.
“당장 회군하라 이르겠습니다.”
유령마군이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하나 천무기는 입가에 미소를 드리운 채 고개를 저었다.
음? 이에 의구심을 품고 바라보자, 그가 노곤한 어조로 말했다.
“그냥 두거라.”
“……!”
“장이서는 이미 날 속인 전례가 있는 놈이다. 그놈의 말을 내가 어찌 믿겠느냐.”
유령마군은 순간 제 귀가 잘못된 줄 알았다. 방금까지 실컷 장이서의 말에 힘을 실어놓고, 이제 와 뭔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
이에 따져 물으려는 찰나.
‘설마!’
그의 음험한 미소를 보곤, 진짜 속내를 깨달아 버렸다.
“천하가 너무 오랫동안 조용하긴 했지.”
전쟁이다. 천무기가 전쟁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대곡고가 불타고, 그걸 빌미로 중원을 불태울 생각인 것이다.
혈교와 이 순간만은 뜻을 함께하겠다는 얘기!
“그 누구도 내 허락 없이는 관문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거라.”
유령마군은 흔들리는 눈빛을 갈무리하곤 답했다.
“……존명.”
그리고 홀로 남겨진 천무기는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장이서, 어디 한번 잘 막아보거라. 물론 네 말대로 진짜 혈교가 개입한 것이라면…… 이번엔 알량한 머리만으론 살아남기 힘들겠지만 말이다. 크크큭.’
***
-사암산(蛇巖山) 대곡고.
비좁은 오르막길을 드높은 성벽이 우뚝 막아선다.
좌우에는 비탈진 숲이 놓여 난공불락처럼 느껴지는 이곳은 산 중턱에 자리한 거대한 요새, 대곡고.
히이이잉!
드디어 두 사람이 이곳에 도착했다.
얼마나 오래 달렸는지 먼지투성이가 되어버린 적발의 미공자.
“놈들…… 아직인 거 같지?”
그리고 이에 막힘없이 답하며 내리는 사내.
“예. 다행히도요. 관문을 피해 오느라 늦어지는 모양입니다.”
칠공자와 그의 보좌. 마오와 장이서였다.
“좋았어. 그럼 빨리 소식만 전하고 가자.”
“무슨 오자마자 갈 생각부터 합니까.”
“뇌옥왕은 극마라며. 늑장 부리다 나타나면 어떡해.”
“참나. 아깐 멋이란 멋은 다 부리시더니. 불같이 화내던 분은 어디 갔는데요.”
“오는 동안 식었어. 여기 산이라 추워.”
“시끄럽고 따라오십시오. 대곡고가 불타면 이번 겨울은 둘 중 하나일 겁니다. 동사하거나, 아사하거나.”
장이서가 대문 앞으로 걸어 나가자 마오가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린다.
“겨울은 무슨. 그전에 나부터 전사하게 생겼구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몸은 나란히 옆에 섰다. 장이서는 속으로 픽 웃으며 답했다.
“어차피 그것까지 각오하고 오신 거 아닙니까.”
마오는 움찔하더니 쳇, 볼멘소리를 뱉고는 당당하게 말했다.
“후, 좋아……. 가보자고!”
이에 장이서가 고개를 끄덕이곤 대문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보좌 장이서다! 칠소궁에서 나왔다. 문을 열어라!”
그러자 잠시 후 끼익하는 소음과 함께 천천히 양 문이 안으로 열렸다. 이어 금룡당을 상징하는 황색 무복의 무인들이 부복하며 일시에 외쳤다.
“칠공자님을 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