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99)
첩자의 마교생활-199화(199/350)
199.
#오랜 인연
어둠밖에 없는 저편에서 홀로 빛을 뿜어내는 저 붉은 구슬. 이를 보고만 있어도 갈증이 느껴졌다. 입 안은 바짝 마르고, 목젖이 따가웠다.
그리고 점점 더 빛이 강해지고, 어느덧 태양이 떠오르듯 세상이 붉게 물들자…….
[퀴아아아아아-!]천마귀는 포효와 함께 붉은 빛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장이서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장이서가 깨어났다. 아니, 초점이 풀린 채 일으켜 세워졌다.
등 뒤에 서린 거대한 마귀에 의해. 그리고 마귀는 부서진 혈옥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을 마구잡이로 탐식했다.
“장이서 등에 걸신이 옮겨붙었다!”
“저게 걸신이냐? 저건…… 천마귀잖아-!”
충격에 빠진 마오와 정체를 알아본 맹휘. 둘 다 경악에 빠진 건 마찬가지다.
이는 모두가 그랬다.
만안으로 선명하게 바라보는 구유도. 그리고 뒤늦게 나타난 무한성과 사해령도.
“저건 설마……! 내,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냐!”
“장이서가…… 천마신공을 익혔어?!”
그야말로 대혼란. 누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천마에 비해 자그맣고 부족한 모습이지만, 분명 저건 천마신공을 익혀야만 드러낼 수 있는 천마귀였다.
이를 한낱 보좌인 장이서가 펼치고 있었다. 씨를 뿌린 진우광마저도 납득할 수 없는 일.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건 무려 40년간 혈옥을 준비한 뇌옥왕이었다.
“어째서…… 어째서 저놈이! 수십 년을 공들인 나의 대업이…… 대계가!”
세상을 다 잃은 기분. 오직 천마를 무너뜨리겠다는 일념으로 버텨온 40년의 뇌옥 생활이었다.
한데 그걸 원수인 장이서가 삼켜버렸다.
“으히히…… 히히히히…… 흐아아아아아!”
실성한 웃음인지, 고통의 비명인지. 그도 아니면 절망의 신음인지. 가늠할 수 없는 뇌옥왕의 절규가 뱉어졌다.
그리고 진우광이 나섰다.
“모두 잠들거라.”
자의적으로 따르기 어려운 명령.
하지만 상관없다.
따르게 하면 그만이니.
위이잉!
진우광이 손바닥을 하늘로 뒤집자 자그마한 흑화의 구(球)가 만들어진다.
그러곤 슈슈슈슈슉! 다섯 줄기로 갈라져 포물선을 그리며 마오, 맹휘, 구유, 무한성, 사해령. 이들 다섯에게 날아들었다.
푹!
“아…….”
피할 틈도 없이 공력은 점혈에 박히고, 다섯은 동시에 잠들 듯 털썩 쓰러졌다.
그리고 천마는 담담히 말했다.
“넌 이번에도 날 놀라게 하는구나.”
마침내 모든 혈기를 다 빨아들인 장이서의 천마귀. 작았던 몸집은 거대해졌고, 검었던 색은 피처럼 붉어졌다.
진우광의 천마귀와는 쌍둥이처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모습.
절대 있어서는 안 될 또 다른 괴물의 탄생이었다.
[퀴아아아아아!]포만감이 가득한 희열의 함성.
선물에 대한 고마움인지 장이서. 아니, 천마귀는 한걸음에 뇌옥왕 앞에 귀신처럼 나타났다.
“아아아아!”
그리고 모든 힘이 사라져 초라하게 바들바들 떠는 그를…….
“끄아아아아아아-!”
산산이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살점을 뜯어내듯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뇌옥왕 천악수라.
수십 년 동안 준비한 그의 대업은 그렇게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이제 멀쩡히 서 있는 건 오직 두 사람뿐.
하지만 게걸스레 날뛰던 천마귀에게도 천마는 두려운 존재인 듯했다.
[카아아아아아.]경계가 잔뜩 느껴지는 낮은 울음소리만을 내뱉을 뿐, 감히 덤빌 생각은 하지 않는다.
반면 진우광의 천마귀는 의젓한 성견처럼 무심히 바라만 봤다.
“이건 혈마귀(血魔鬼)라고 해야 하는 건가.”
진우광은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저리 붉고, 또 고스란히 대놓고 거친 살기를 드러내는 포악한 천마귀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아니, 지금 이해가 가는 게 하나라도 있기나 한가.
“구규지체인 네가 그사이 경지에 올랐을 리는 없고. 자격도 되지 않은 네가 천마귀를 깨운 것도 기이하거늘. 이리 혼탁한 종으로 탈태(脫態)를 이루다니. 이마저도 너답다고 해야 하는 것이냐.”
진우광은 알 수 없는 감정에 서늘한 웃음을 지었다.
천마귀가 숙주보다 강해지면 정신을 파고들어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되면 남는 건 욕망에 미쳐 날뛰는 괴물뿐.
혈교가 바랐던 것도 바로 그거였다.
자신의 천마귀에게 양분을 먹여 절 미치게 하는 것.
그리고 성공할 뻔했었다. 제어도 안 되는 천마귀를 가진 장이서라는 희생양이 없었다면.
그러니까 장이서는 천마의 은인이자 천산에서 사라져야 할 괴물이다.
“살려두기엔 너무 먼 길을 가버렸구나.”
천마의 입가에 웃음이 거두어졌다.
“천마신공은 처음부터 너에겐 어울리지 않았다.”
가르쳐 준 것에 대한 후회는 아니었다. 천마에게 그런 감정은 불필요한 덕목. 단지 아쉬움이었다.
천마귀를 깨우지 못할 거로 생각했다. 그의 영특함과 처지가 누군가를 닮아 아닌 걸 알면서도 기량을 베풀었다.
그저 남들이 알지 못하는 자신만의 인연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한데 그러기엔 장이서의 운명이 너무도 기구했는가 보다. 그러니까…….
“네 목숨을 거두어야겠다.”
사형 선고와 함께 천마의 눈에서 경천동지할 어둠의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이것이 네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
진우광은 뒷짐 진 채 한 손만 까딱이며 말했다.
“오거라.”
퀴아아아아악!
그러자 죽음의 위협을 느낀 것인지, 혈마귀가 거친 포효를 내지르며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퉁!
아무런 소리도, 움직임도 없었다. 어느 순간 귀신처럼 천마 앞에 덜컥 나타나 있었다.
뇌전법을 펼쳐도 이보다 빠르지는 않을 것이다. 원래 장이서의 경지를 생각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신위.
반면 그 뒤에 이어진 행동은 무공은 일절 배우지 못한 무뢰한처럼 투박했고, 엉성했다.
호랑이가 앞발을 휘두르듯 그저 무차별한 난격을 퍼부었으니.
콰과과과광!
하지만 그 위력은 우습게 볼 수준이 아니었다. 그저 팔을 휘두른 것뿐임에도 천둥소리와 함께 혈기로 이루어진 폭발이 연달아 광범위하게 터져나갔다.
범위로 보나, 파괴력으로 보나 이건 이미 인간을 초월한 신의 영역.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대는 천마였다.
폭발이 지나간 자리엔 그 무엇도 남지 않았으나, 단 하나 그를 지우진 못했다.
“두 수 남았다.”
이는 곧 아무런 방어도 없이 세 번의 선공을 허용하겠다는 뜻. 광오함을 넘어 실로 무모한 발언.
하나 천마는 결코 허언하지 않으며, 언약의 무게를 아는 자.
[퀴아아아아아-!]혈마귀 또한 이게 마지막 기회임을 아는지, 폭주하듯 혈기를 터트리며 천마를 공격해 나갔다.
바닥을 내리치자 사방에서 용암이 터지듯 폭발했고, 과감하게 모은 두 손으로 가격하자 마른하늘에는 천둥이 울렸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의 분노.
하나…….
“다 하였느냐.”
천마는 천마였다. 천재지변 같은 폭격 속에서도 입은 피해라고는 백옥 같은 팔등에 그어진 상처 하나.
물론 그도 대단한 일이긴 했다.
신검으로도 벨 수 없는 옥체가 깨지고, 성혈이라 추앙받는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으니.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진우광은 피 묻은 손으로 장이서의 머리 위에 느긋이 손을 얹었다.
그러자 서서히 꿇어지는 무릎.
털썩. 이내 완전히 장이서가 고개를 떨군 채 부복했다.
[퀴아아아아-!]죽음을 예감한 혈마귀가 포효를 내질러보지만, 몸은 더 이상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만 쉬거라.”
그리고 아쉬움이 느껴지는 다정한 사형 선고. 이제 끝이다.
천마귀가 내뿜는 흑화의 불꽃은 진우광의 손아귀로 영롱하게 몰려든다.
이내 장이서에게로 서서히 옮겨붙으려는 순간.
[당장 그 손을 거두어라!]솨아아아아아-!
육합전성과 함께 지독한 독 안개가 자욱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련할 만큼 너무도 익숙한 기운.
“불사독(不死毒)?!”
천마가 눈썹을 올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 분개한 얼굴의 그가 서 있었다.
“그 아이를 해하려면 나부터 없애야 할 것이다!”
저물어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과거의 전설.
“독마…….”
독마 양대헌.
아주 오랜 인연의 그가 말이다.
*
진우광에게 오늘은 흔한 날이었다.
무료함마저 무디어진 그저 뻔한 그런 날.
한데 이제는 바뀌었다.
독마 양대헌.
그와의 재회는 장이서가 천마귀를 깨운 것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그만큼 둘 사이에는 각별한 인연이 존재했다.
“참마동에 죽으러 간 게 아니었나. 살아서 나올 줄은 몰랐는데.”
천마는 그가 참마동에 들어간 진짜 이유를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 그래서 더 이해되지 않았다. 독마의 고집 센 성미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아니면 막상 죽을 때가 되니 살고 싶어졌나?”
독마는 팔자 주름을 더 찌푸리며 말했다.
“……그 아이를 내려놓아라.”
“말하는 걸 보니 살려고 나온 건 아닌 거 같고.”
진우광이 다시 고개를 돌려 장이서를 살폈다.
“이 녀석 때문인 건 알겠다만……. 어째서지?”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는 관계.
그가 아는 독마는 누군가를 위해 스스로의 다짐을 깨고, 목숨을 바칠 인간이 아니었다.
더구나 장이서와는 아무런 접점이 없을 나이 차이.
“약속한다. 그 아이를 죽이면 원귀가 되어서라도 널 쫓을 것이다.”
한데도 저리 성화라. 진우광이 씨익 웃고는 말했다.
“이미 원귀가 가득한데 하나 더 는다고 이상할 것도 없지.”
두 눈에서 검은 광채가 번뜩이고, 다시금 손아귀에 힘이 불어넣어진다.
둘 사이? 분명 크나큰 인연이리라. 하나 그게 뭐. 그는 천마다. 언제고 화가 될 혈마귀를 그냥 둘 수 없으며, 이미 먹은 마음은 협박 따위에 되돌리지 않는다.
“편히 쉬거라.”
천마의 통고가 떨어지자 독마는 다급해졌다. 이건 진짜다. 절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이를 꽉 물곤 결국 장삼 속에서 꺼내고 싶지 않았던 패 하나를 꺼내 던졌다.
툭. 진우광의 고개가 바닥으로 향했다.
그러곤 점점 미간이 좁혀졌다.
“천마신패(天魔信牌)?!”
수십 년 전, 자신이 직접 독마에게 주며 반드시 한 가지 청을 들어주겠노라 했던 약속의 증표.
평생 쓰지 않을 줄 알았던 자가, 이제 와 이걸 쓰겠다고? 그것도 저 아이를 위해?
“그 아이를 살려다오. 이것이 내 청이다.”
고조된 긴장 사이로 침묵이 흐른다.
천마가 무심코 하늘을 살폈다.
천기가 뒤숭숭하다.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혼란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잠들거라.”
천마의 나지막한 한 마디와 함께 화르륵! 혈마귀의 육신을 흑화가 뒤덮었다.
[퀴아아아아아!]비명과 함께 도망치듯 사라지는 혈마귀.
털썩. 이어 장이서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이서야!”
독마는 달려 나가 그를 부축했고, 진우광은 천천히 허리를 숙여 천마신패를 주웠다.
이는 굉장히 상징적이고 엄청난 행동이었다.
무심코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 하지만 광명사자나 장로들이 봤다면 경악했을 것이다.
그가 누구인가.
만마의 신, 천마다.
천마는 어느 상황에서도 함부로 허리를 숙이지 않는다. 눈썹만 까닥여도 알아서 신패가 손아귀까지 올라왔을 터.
한데 직접 몸까지 숙여 패를 쥐었다.
그것도 심히 격정적인 눈빛으로.
“……설마 이것까지 꺼낼 줄은 몰랐는데. 이젠 과거 따윈 잊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