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
첩자의 마교생활-2화(2/350)
2.
#내가 설마 너희를 모를까 (1)
– 무림맹 호북지부.
남측으로는 아름다운 동정호가 내려다보이고, 뒤로는 푸른 산세가 자리한 고즈넉한 장원.
무당파가 평정한 호북에 자리해 있어, 하릴없이 평화로운 자그마한 무림맹 호북지부다.
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이는 빙산의 일각. 남을 속이기 위한 위장 전술.
진짜는 장원 지하에 있었다.
그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무림맹 최강의 극비 첩보 조직.
암각.
이곳이 바로 그들의 본거지였다.
*
“103호에게 임무 하달되었어요.”
짙은 어둠 속, 범 무늬가 양각된 태사의에 앉은 사내에게 복면을 쓴 여인이 보고를 올린다.
그녀의 이름은 제갈소미.
암각의 부각주이자 무림에는 지화(知花)로 알려진 천재 후기지수였다.
“음.”
그리고 태사의에 앉은 노년의 신사.
마치 제갈량이 환생한 것처럼 윤건을 쓴 채 부채를 펄럭이는 그가 바로 암각의 주인, 무림맹의 전대 군사 제갈상이다.
“그런데 할아버지.”
“갈! 공과 사를 구별하라!”
“죄, 죄송합니다, 각주님.”
제갈소미가 당황하며 곧장 부복했다. 아침까진 손잡고 사이좋게 출근해 놓고, 도대체 여기만 오면 왜 흑막 빙의인지.
마음 같아선 복면 내리고 따지고 싶으나 상대는 조부이기 전에 천하를 앉아서 내다보는 제갈상.
예를 갖추는 건 당연한 일이다.
“상문하거라.”
제갈상의 허락이 떨어지자 제갈소미는 잡념을 털어내고 곧장 궁금한 걸 물었다.
“103호에게 맡기신 이번 일. 칠공자를 소교주로 만들라는 것이요. 각주님께서 품으신 의도가 궁금합니다.”
“의도?”
“예. 103호는 지금까지 저희 암각에서 방치된 자예요. 유령이나 마찬가지죠. 그런 자에게 교주에게도 내쳐진 망나니를 위로 올리라니.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흐음…….”
제갈상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무심한 눈으로 말했다.
“넌 지금 강호의 평화가 얼마나 갈 것 같으냐.”
“예? 그거야……. 하기 나름 아닐까요?”
“3년.”
제갈상이 손가락 세 개를 펼친다.
“딱 3년 남았다.”
“그럴 리가요…….”
“지금의 평화는 우리 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늙었다. 어느덧 새 시대를 맞이할 때가 된 것이지.”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요……?”
제갈상이 침묵한다. 뭔가 있구나. 제갈소미는 표정을 보고 확신했다. 하나 더는 묻지 않았다. 답하지 않는 것을 캐묻는 건 제갈가의 방식이 아니다. 그건 스스로 알아내야 할 일.
“천마 진우광은 일곱 명의 자식에게 신물을 하사했으나, 그중 누구도 제자로 거두진 않았다.”
제갈상이 화제를 바꿔 말했다. 제갈소미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 내용은 누구보다 잘 아는바. 진우광은 19년 동안, 마교 내에 자질이 있는 이들을 가리지 않고 양자와 양녀로 거둬들였다.
“처음엔 후계로 키우는가 싶었지만, 무슨 일인지 절세무공인 천마신공은 그 누구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았죠.”
“이제 곧 그가 소교주를 정할 것이다.”
추측이 아니라 확언이다. 제갈소미의 표정이 먹구름 낀 것처럼 어두워진다.
“가장 유력한 건 일공자와 이공자. 그리고 삼공녀. 어느 쪽도…… 우리에겐 좋을 게 없네요.”
그녀의 말대로다. 세 사람 모두 지극히 패도적인 성향을 가진 자들. 그들 중 누구든 천마가 된다면, 지금의 평화는 깨질 수도 있다.
“19년이다. 그동안 우리 암각은 오직 평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그리고 이제 그 결실을 맺어야 할 때이니라.”
“하지만 칠공자를 소교주로 만드는 건…….”
“적이 강하다면 한 가지 수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로 묶어야 하는 것이라고. 누누이 가르쳐 주지 않았느냐.”
“아…….”
제갈소미는 머릿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역시 그런 것이구나. 103호 하나에 승부를 거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모든 수를 총동원하겠다는 뜻.
하긴, 조부가 이런 무리수로 일을 해결하려 했을 리 없다. 제갈상이 누구인가. 전대부터 지금까지 천하제일뇌로 군림하는 자다.
“감사해요. 궁금증이 풀렸어요. 그럼 전 요원들을 만나볼게요.”
제갈소미가 꾸벅 인사를 올리곤 가벼워진 걸음으로 물러섰다.
한데 그녀가 아직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103호는 방치된 것이 아니다. 숨기고 있던 것이지. 또한 강자를 상대할 때는 다수 사이에 반드시 회심의 변수를 숨겨둬야 하는 법.’
허허허. 제갈상이 흐릿해진 초점으로 부채를 흔들었다. 머릿속에 누군가의 모습이 그려진다.
세상에 대한 독기와 정의로 가득 차 있던 꼬마.
103호.
혹독한 훈련을 만점으로 통과한 세 번째 요원이자, 열네 살에 내공도 없이 원로들이 늘그막에 깨달은 무의 묘리를 전부 깨우치고 맹주를 상처 입힌 바로 그 맹랑했던 녀석.
암각 최강의 변수.
장이서.
‘네가 어떻게 자랐을지. 벌써 기대가 되는구나.’
제갈상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서렸다.
* * *
“스으으으읍, 하아.”
암각주 제갈상이 장이서의 성장을 기대하고 있을 무렵.
정작 당사자는 금괴를 코에 대고 이상한 숨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역시 돈 냄새를 맡아야 머리가 잘 돌아. 문제 내 봐. 나 지금 다 맞춘다.”
문제 낼 사람도 없지만, 아무래도 제갈상의 기대와는 조금 다르게 자란 장이서다.
어젯밤 임무를 하달받고, 아침이 밝았다.
낡은 침상엔 금괴가 가득했고, 부서진 천장에선 시원한 바람이 숭숭 들어왔다.
“마을 한 번 갔다 와야겠네.”
하, 생각할수록 괘씸했다. 어젯밤 밀지를 놓고 사라진 녀석. 따지고 보면 그도 같은 암각 소속의 동료 아닌가. 한데 제 신분은 철저히 감추고 부리나케 도망쳤다. 칼까지 휘두르면서. 그게 무슨 뜻이겠는가.
‘재수 없으면 토사구팽이란 뜻이지.’
이마를 긁적였다. 예상은 했다. 분명 어디선가 암각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고. 해서 때가 되면 접선해 올 것이라고. 하지만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이런 식으로 무례한 건 곤란했다.
이 집 안엔 아무도 모르는 특별한 비밀이 숨겨져 있으니까.
“너희가 날 다 아는 게 아니야.”
후, 장이서가 한숨을 내쉬곤 우둑 목을 돌렸다. 복잡할 땐 단순하게 가는 게 정답이다.
“어쨌든 지령을 안 따르면 고독이 터질 거고, 임무의 대가가 동생을 맡아주기로 한 거니까. 해주지. 해주는데.”
어떻게.
당장 자신은 방첩대 삼조장 7급귀일 뿐이고, 칠공자는 1급귀인 최고위 인사다. 접근 자체가 어려운 소궁(小宮)의 주인.
일단 만나기라도 해야 뭐라도 진전이 있을 것 아닌가.
“뭐 어쩔 수 없지. 보직 변경하는 수밖에.”
그래. 그러면 된다. 아까워서 그렇지. 방첩대만큼 재물 쌓고 마두 멱 따기 좋은 곳도 없는데.
하나 어쩔 수 없다.
“대주한테 바꿔달라 그러면 당연히 안 해주겠지?”
퍽이나. 절대로 해줄 리가 없다. 욕심으로 치자면 저보다 더한 놈이 방첩대주 겸사익이다.
그에 대한 일화가 많지만, 적어도 성과와 돈에 미친놈이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었다.
그러니 검거율 1위에 상납금 최상위 조장인 자신을 그냥 보내줄 리 없다.
떼써도 안 될 일이고.
“그럼 뇌물로 녹이는 수밖에. 뇌물이 통하지 않는 자는 없다. 액수가 적을 뿐이지.”
장이서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환한 창가로 다가가 밖을 살폈다. 개미 한 마리 없이 조용하다.
본래 밤보다 낮이 더 안전한 법.
그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융단을 치워냈다. 그러곤 멀쩡한 바닥의 나무판을 뜯기 시작했다.
끼이익.
자주 벗겨냈던 건지 아무 거리낌 없이 해체된다.
혹 지하로 향하는 길이라도 있는 것인가?
아니다. 아무것도 없다. 그저 평평한 흙뿐이다. 하면 대체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하나 이는 진실을 감추기 위한 연막.
‘첩자의 필수는 상대를 속이고, 또 속이는 거다.’
장이서는 어제 가져온 금괴들을 지게에 싣고는 뒷마당에 준비해놓은 삽과 항아리들을 가져와 흙을 옮겨 담기 시작했다. 일각, 이각. 땀을 뻘뻘 흘리며, 어느 정도 파내자 드디어 숨겨진 공간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뚜껑이다. 둥그런 뚜껑. 정확히는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막아놓은 판자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를 빼내자, 사다리와 함께 우물로 보이는 깊은 구멍이 나타났다.
비로였다.
장이서는 위로 올라가 지게를 짊어지고는 항아리를 닫고 융단으로 구멍을 가린 채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물 끝까지 다다르자 옆으로 빠지는 좁은 샛길이 나타났다.
샛길부터는 좌우 벽면에 고대의 그림이 양각되어 있었고, 드문드문 횃대가 놓여 있었다.
고대의 문물이었다.
이곳을 발견한 건 7년 전.
빼돌린 재물을 급히 숨길 곳을 찾다가 우연히 본 빈 우물에 던져둔 게 시작이었다.
이를 되찾으러 내려왔다가 알게 된 것이다.
이곳에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물론 그때는 샛길이 이렇게 열려 있진 않았다. 점자로 암어가 적혀 있었고, 수십 가지 암어에 능통한 장이서이기에 연구 끝에 열 수 있었다.
아마 암각 만점 통과자인 그가 아니었다면 열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곳은 당대의 교주도 모를 만큼 영영 잊힌 곳인 듯했다.
하나 놀라기는 아직이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한참 안으로 들어서자 천장이 확 높아지고, 정면은 거대한 벽에 가로막혔다.
장이서는 무심히 옆의 횃대를 바라보곤 딸각, 딸각. 이를 옆으로 두 번을 돌렸다.
그러자.
구르르르르릉!
미세한 진동이 울리기 시작하더니 굉음과 함께 벽이 열리기 시작했다.
“스으으으읍, 하아.”
장이서가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두 눈을 감고 숨을 들이켠다.
이내 번쩍 눈을 뜨자.
이럴 수가.
눈앞에 거대한 공동이 나타났다.
금은보화가 가득하고, 푸른 안개가 어른거리는 신묘하고도 영롱한 곳.
“반갑다, 천마고(天魔庫).”
장이서가 마교에 첩자로 들어와 얻게 된 기연.
십마대산에 꼭꼭 숨겨져 있던 보고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
천마고(天魔庫).
사실 명칭은 정확하지 않다. 다만 장이서가 이곳을 처음 발견했을 때, 한쪽 벽면에 천마라는 두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었다. 그 때문에 유추한 것뿐이다.
하지만 이곳이 보물창고라는 사실은 진짜였다.
중앙에 무덤처럼 쌓인 금은보화는 반짝반짝 눈이 부셨고, 바깥 테두리엔 보기만 해도 범상치 않은 온갖 무구들이 장식대에 진열되어 있었다.
실로 엄청난 재물. 이 정도면 못 할 게 없을 지경.
하나.
“역시 마교가 좋아. 무림맹에선 삼 대가 일해도 이 돈 절대 못 모은다니까.”
장이서가 희희낙락한 표정을 지으며 가져온 금괴를 중앙에 와르르 쏟는다.
그렇다.
이 재물은 천마고에 있던 게 아니었다. 그가 10년간 방첩대 활동으로 빼돌린 돈이 이 정도다. 진정한 횡령, 탈세의 달인.
하지만 그렇다면 이상한 일이다.
도대체 왜 천마고를 보고라고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따로 있었다.
“후, 한 번에 가자.”
장이서가 공동 안쪽으로 다가가 커다란 벽에서 이십 보 정도 떨어진 곳에 섰다. 한데 가까이서 보니 뭔가가 묘하다.
은은하게 푸른빛이 나는 이 널따란 벽.
그냥 암벽이 아니었다.
거기다 마치 미로를 그려놓은 것처럼 얇고 깊게 파인 홈이 정신없이 가득했다.
이곳의 이름은 마귀 마(魔)에 벽 벽(壁).
도합 마벽(魔壁)이다.
왜냐고?
백문이 불여일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