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0)
첩자의 마교생활-20화(20/350)
20.
우우웅!
주변에 엄청난 강풍이 뿜어져 나올 만큼 지대호는 폭발적인 내기를 일으켰다.
어느 정도냐 하면, 그냥 가만히 자리에 서 있는 것임에도 그의 주변 바닥엔 쩌저적 거미줄처럼 금이 서렸다.
단언컨대 그의 무공은 중(重)의 묘리를 다루는 괴력의 신공.
‘역시 호룡당주라 이건가. 이 정도면 뇌전법에, 백뢰. 여기에 무림맹 영감들이 가르쳐 준 것까지 다 써야 일말의 승산이라도 있다.’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좋은 결과가 아니었다.
칠공자야 경지가 낮아 봐도 모르겠지만, 지대호는 다르다.
한눈에 그 위력을 짐작할 만큼 영리한 호랑이.
앞서 미약하게 펼친 뇌전법도 한 번은 우연으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계속되면 분명 꼬리가 잡힌다.
그러니 여기선 패를 숨겨야 한다.
맞다. 그게 맞는데.
크하아아앙!
‘이러다 내가 먼저 죽겠다!’
파아앗! 장이서와 지대호가 동시에 몸을 날렸다. 정확히는 장이서가 도약하는 지대호를 보고 뒤로 발을 뺀 것이다.
하지만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
삽시간에 코앞까지 쫓아온 지대호의 일격이 그대로 장이서를 강타했다.
“칵!”
손을 교차로 얹어 막아냈음에도 내장이 뒤틀리는 통증.
촤아아악!
얼마나 뒤로 밀린 건지 바닥엔 발로 만든 두 줄과 각혈하며 흘린 피가 길게 그어져 있다.
“음?”
이에 지대호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조금 전 움직임은 우연이었던 건가? 내공도 형편없는 듯하고.”
고맙네, 염병.
“숨기려는 것인가? 그럴 순 없지. 네 실력을 꺼내 보거라!”
“미치겠네.”
어차피 상대는 이쪽이 완전히 깨져야만 멈출 것이다. 하지만 모든 힘을 쓸 수 없고, 그렇다고 보좌로 살아가기로 한 이상 무참하게 깨질 수도 없다.
그렇다면…….
팟! 장이서가 이번엔 도망이 아니라 진격을 택했다.
‘될 때까지 상대해준다.’
“사내로구나. 오냐. 받아주마!”
역시나 마찬가지로 지대호도 달려든다.
그리고 시작된 난타전.
퍼퍼퍼퍽!
눈으로 좇기도 힘들 만큼 현란한 공방이 이어진다. 장이서가 화려한 동작과 타격 횟수에서 앞선다면, 지대호는 맷집과 엄청난 힘으로 밀어붙였다.
웃음기 하나 없는 차분하고도 섬찟한 대결.
하나 속내는 겉보기와 달리 둘 다 점점 경악에 빠지고 있었다.
‘미친. 내력도 안 담겨 있는데 무슨 힘이 이렇게…….’
‘볼수록 대단하구나……. 별거 아닌 듯 보이지만, 동작 하나하나에 수많은 무의 정수가 담겨 있다. 처음 보는 얼굴이거늘. 대체 어디서 이런 움직임을……?’
퍽!
동시에 지대호의 일권과 장이서의 일각이 서로의 가슴에 꽂혔다.
“컥!”
“음…….”
하나 승패는 확연했다. 주루룩 밀려나 무릎 꿇고 각혈하는 장이서와 먼지만 털어내고 여전히 태산처럼 우뚝 서 있는 지대호.
한데 승자의 표정이 영 좋지 못하다.
오히려 더 서늘했고, 씁쓸했다.
“아쉽구나.”
더구나 아쉽다는 말까지 뱉었다.
그 이유는 하나.
이번 합에서 장이서의 한계를 여실히 보았기 때문이었다.
‘움직임은 극에 달했으나, 제대로 된 심법을 익힌 적이 없는 자다. 실로 불순하고 미약하지 않은가. 아니면 단전이 상한 것인가.’
지대호의 생각은 정확했다.
장이서는 제대로 된 심법도 익힌 적이 없었다.
이는 암각의 첩자로 선택된 순간부터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다.
첩자라는 의심을 덜기 위해선 불가피한 일이었고, 또 그가 가진 오성과 자질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구규지체라는 체질의 한계이기도 했다.
하여 암각에서도 그의 자질을 놓고 늘 안타까워했었다.
‘구규지체가 아니라 그냥 정상이기만 했어도. 그랬다면 난 널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넌 정도의 무신이 되었을 테니.’
무신. 실로 오만한 단어.
하지만 그 말을 한 자들을 생각하면 절대 허언은 아니었다.
맹주를 비롯한 원로들이 직접 한 말이니 말이다.
당연했다.
자신들이 늘그막에 깨달은 극도의 묘리를 땅에 물 붓듯이 흡수해대는 아이였으니.
장이서는 고금제일의 기재이면서, 한계가 명확한 범부였다.
“그만 끝내지.”
두 눈이 범처럼 강렬해진 지대호의 몸에서 우웅! 폭풍처럼 거대한 기운이 쏟아져 나온다.
장이서는 구슬땀에 흠뻑 젖은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거친 숨을 뱉었다.
호룡당주 지대호. 그는 진짜 강자였다. 마교에 들어와 만나본 몇 안 되는 절대 고수.
그래서 저도 모르게 투기가 샘솟고, 아쉬움에 이빨을 부서질 듯 꽉 깨물었다.
‘마음 같아선 나도 뇌전법으로 상대해주고 싶지만……. 오늘은 아니야.’
아쉽게도 그의 본분은 무인이 아닌 첩자 장이서.
그러니 각본대로 이 싸움을 끝내야 할 때였다.
장이서가 다급히 고개를 돌려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멀뚱히 이쪽을 보고 있던 마오가 검지로 스스로를 가리키며 입 모양으로 물었다.
‘나?’
어. 그래 너.
크하아아앙!
만반의 준비를 마친 지대호가 다시금 뛰어든다.
동시에 장이서도 몸을 날렸다. 한데 방향이 이상하다. 앞도 뒤도 아닌 옆이다.
정확히는 황당함에 동공만 파르르 떠는 마오였다.
“칠공자님 피하십시오-!”
내가? 내가 왜. 왜 그래야 하는데!
짙은 의문이 들지만, 물을 시간 따위는 없다.
“어억!”
어느새 지척까지 날아든 장이서가 씨익 웃으며 마오를 낚아챘다. 그러곤 꼭 끌어안은 채 핑그르르 몸을 돌렸다.
크하아아아앙!
이에 뒤따라 달려들던 지대호의 일권이 두 사람을 강타하려는 그 순간.
화아아악!
거친 풍압만을 떠나보낸 채 코앞에서 멈춰 섰다.
“하, 하하하하.”
마오는 제 눈앞에 멈춰 선 커다란 주먹을 보곤 안도의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장이서는.
“괜찮으십니까. 칠공자님.”
보란 듯이 마오의 뒤에 자리했다.
“어. 너 때문에 죽을 뻔한 것만 빼면.”
“살았다니 다행이군요.”
장이서가 씨익 웃는다. 이를 본 지대호는 두 눈이 묘했다. 정확히는 뭔가 심통이 난 느낌이었다. 싸우다 만 이 느낌이 아주 찝찝했다.
하나 그는 영리한 호랑이.
지금 상황이 뭘 뜻하는지 모를 리 없다. 전신에 가득 퍼져 있던 기운이 바람처럼 사라지고, 두 발은 기둥처럼 우뚝 섰다.
그러곤 찬찬히 시선을 마오에게 돌린 뒤 물었다.
“아는 자입니까.”
마오는 그 말에 장이서를 슬쩍 쳐다보곤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어.”
“누굽니까.”
누구냐면……. 마오가 다시금 장이서를 한 번 살폈다. 그러곤 입맛을 다신 뒤 담담히 답했다.
“내 보좌.”
“보좌……말입니까? 칠공자님께 보좌가 있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입니다만.”
“축하해. 천산에서 제일 먼저 들었어. 조금 전에 생겼거든.”
그게 대체 무슨 말인지. 하나 지대호는 더 깊게 묻지 않았다. 어차피 칠공자가 말한 게 사실이라면 오래지 않아 공문으로 날아올 터.
그것보다도.
“이름이 뭐지?”
이제 지대호의 관심은 장이서 그 자체에 있었다.
아무리 방심했고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지만, 자신을 두 번이나 밀려나게 했다. 그것도 저보다 한참이나 어려 보이는 저 얼굴로.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하면, 열댓 명이 대종을 치는 당목으로 배때기를 후려도 한 걸음을 안 물러섰던 게 바로 지대호였다.
그러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처음 뵙겠습니다. 보좌 장이섭니다.”
“나이는?”
“스물여덟입니다.”
“동안이군. 사문은?”
“그냥 여기저기 어깨너머로 배웠습니다.”
“권각술이 특기인가?”
“아니요.”
“거짓말. 넌 지금 내게 거짓을 고했다.”
“지금 뭐 하십니까?”
“……지대호다.”
뭐지, 이 인간은? 장이서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지대호는 꼭 장난감을 발견한 고양이처럼 계속 장이서만을 노려봤다.
‘잘못 걸린 기분이 드는데. 착각이겠지.’
어째 불안감이 등골을 스친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너무 오래 싸웠고, 또 너무 오래 놔뒀다.
장이서는 곧장 바닥에 쓰러진 자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도살방에서 온 자객들입니다. 겁도 없이 칠소궁까지 들어와 칠공자님을 해하려 하였죠.”
내가 아니고 너겠지. 마오가 들리지 않게 중얼거리자 장이서는 그게 그거라고 넌지시 답했다.
“음…….”
그리고 전말을 들은 지대호는 그제야 장이서에게 눈을 떼곤 본연의 일에 몰두했다. 그러다 문득 시체 하나가 눈에 담겼다. 보름달을 반으로 가른 것처럼 뒷부분만 남긴 머리.
이만 봐도 누군지 알겠다.
“변발의 자객 막귀로군. 자네가 이런 건가?”
굳이 묻지 않아도 정황상 그밖에 없다. 장이서 역시 숨길 마음이 없는지 담담하게 대답했다.
“예.”
어차피 보좌가 되기로 한 이상 어수룩하게 숨겨봤자 오히려 더 의심받는다.
게다가 이미 내기가 엉망인 건 충분히 보았을 테고, 시체를 보면 어느 정도 예상 밖의 상황은 충분히 납득이 갈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대호가 막귀의 입을 벌려 사인을 확인하곤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암기에 당했군.”
맞다. 이것이 내공이 일류를 밑도는 장이서가 절정 고수를 이긴 걸 이해시킬 수 있는 이유다.
물론 실제론 뇌전법이 있기 때문이었지만.
“뭐, 보셨다시피 저 같은 녀석은 이기려면 뭔 짓이든 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제가 시끄러운 녀석은 딱 질색이라.”
“변명할 건 없다. 정파라면 모를까, 여기선 비일비재한 일이니.”
“예, 뭐.”
장이서는 순간 아차 싶었다. 자신이 정파인이기에 저도 모르게 궤변이 나온 것. 하지만 다행히 지대호는 별 관심 없다는 듯 금세 조사를 끝내고 일어섰다.
“정황은 잘 알겠습니다. 자세한 건 모두 본관으로 압송해 더 확인을 해봐야겠습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지대호가 마오를 살폈다. 어차피 도살방과 칠공자의 일이라면 마이신이 얽힌 집안싸움임을 뻔히 알기 때문.
이에 마오도 언짢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데 바로 그때 장이서가 앞으로 한 발 나서며 활짝 웃더니 말했다.
“당연히 괜찮습니다. 마음껏 조사하고, 끝까지 책임을 물어주십시오.”
“자네…….”
“교주님의 양자께서 살해당할 뻔했던 사건입니다. 그것도 성역으로 지정된 칠소궁에서 말이죠. 지금까진 어땠을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그냥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제가 있는 한은 말이죠.”
“최선은 다해보겠네만, 쉽진 않을 걸세.”
지대호가 고개를 저었다. 이미 과거에도 유사 사건이 있었다. 그때도 의논을 했고, 그냥 넘기자는 중론이 나왔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마이신은 일장로 마일성의 장자.
안 그래도 평소 오룡당과 장로회의 사이가 껄끄러운데, 일을 키우면 장로회에서 의도적인 표적 수사니, 뭐니. 말들이 나올 게 자명한 일.
한데.
장이서가 서늘하게 눈을 올려 뜨곤 나직이 물었다.
“이렇게 증거도, 범인도. 거기 조직명도 도살이라고 훤히 적혀 있는데. 이게 어렵습니까? 실망인데요. 호룡당은 원래 이럽니까?”
“뭐라?”
“명심하십시오, 당주님. 만일 어물쩍 넘어가려 하신다면 그땐 제가 호룡당에 이의를 제기할 겁니다.”
하, 이런 맹랑한. 지대호의 입가에 사나운 웃음이 그려진다. 하나 아무리 한참 어린 후배라도 상대는 3급귀 칠공자 보좌.
“내 선에서의 문제가 아니네.”
지대호는 코웃음을 치며 선을 그었다.
“그럼 그땐 우사나 좌사라도 찾아뵙죠.”
“자네!”
“교주님께 갈까요?”
“하.”
이 자식이……. 지대호는 크게 숨을 삼키곤 벌써 지끈거리는 골머리를 지그시 눌렀다.
실실 웃는 표정을 봐선 뭣도 모르고 그냥 나불대는 건 아닌 듯하고.
“뭘 원하는 것인가.”
역시 영리한 호랑이. 지대호의 물음에 장이서의 얼굴이 환하게 폈다.
#아직은 둘뿐이지만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