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03)
첩자의 마교생활-203화(203/350)
203.
#또 다른 대업
내 아들. 지극히 개인적인 말. 하지만 그 말을 뱉은 이가 다름 아닌 천마다.
그거면 충분했다.
간부들이 마오를 달리 보기 시작했고, 일장로 마일성은 승천하는 광대를 숨기지 못하고 씰룩였다.
그리고 대공자 천무기는…….
‘마오 네놈이 감히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두 눈에 살기가 맺혔다.
옆에 있던 이장로 천오산이 손목을 잡아 간신히 진정시켰다.
“너희 덕에 신도들이 무사할 수 있었고, 죄인들을 막을 수 있었다. 그 공은 무엇을 줘도 아깝지 않은 일. 말해보거라. 무얼 원하느냐.”
천마의 말에 모두가 탄성을 뱉었다.
“아, 아무거나요?”
반면 마오는 어리둥절했다. 그냥 알아서 줄줄 알았거늘, 아무거나 말하라니.
보통 이럴 땐 유능한 제 보좌가 미리 귀띔을 해줬을 텐데.
“말해보거라.”
“에이……. 아무거나 다 되면 제가 뭐 소교주 자리 달라고 해도 됩니까?”
“원한다면.”
“예?”
천마가 웃는다. 그리고 수뇌들은 심장이 멎은 것처럼 굳어졌다.
지금 저들이 잘못 들은 것인가.
소교주?!
마일성의 얼굴이 진하게 상기되고, 마의는 입을 떡 벌렸다.
“아버님! 이건 이리 쉽게 결정할 문제가…….”
그리고 당황한 대공자가 다급히 끼어들었다. 천오산은 아차 싶었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다.
솨아아아아-!
가공하리만치 쏟아져 나오는 묵중한 기운.
털썩. 천무기가 가장 먼저 무릎을 꿇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털썩, 털썩, 털썩. 쉴 새 없이 수뇌들이 무릎을 꿇었다.
서 있는 건 오롯이 칠소궁의 식솔들과 광명사자뿐.
‘한 마디만 더하면 죽는다.’
천마가 한 건 없다. 심지어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느꼈다.
더 떠들면 이곳이 곧 무덤이 될 것이라고.
무거운 침묵 속에 천마가 웃으며 다시 물었다.
“소교주의 위를 원하느냐?”
마오는 특유의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다, 집게손가락으로 제 턱을 짚은 뒤 당당히 답했다.
“아니요?”
“후후, 왜. 욕심이 나지 않는 것이냐?”
“나죠. 엄청 많이 나는데 그냥 이런 방식은 아닌 거 같은데요. 멋이 없지 않습니까. 우하하하! 그 녀석도 싫어할 거 같고요.”
마오가 누군가를 떠올리는 게 쑥스러운지 배시시 웃는다.
그 녀석. 진우광도 똑같이 웃었다. 아마 그도 익히 잘 아는 그 녀석이리라.
보좌 장이서.
물론 마오가 모르는 게 하나 있었다.
‘미쳤습니까? 그걸 왜 거절해!’
장이서는 누구보다 좋아했을 거라는 것.
자리에 없는 게 죄다.
“그럼 뭘 원하느냐.”
“흐음…….”
솔직히 원하는 게 있긴 했다. 하루 이틀 일도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더더욱 간절했다.
쓰러진 장이서를 두고 무력감만 느껴야 했으니까. 더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소자, 제대로 강해지고 싶습니다-! 저 말고도 칠소궁 전부 다 강해질 기회를 주십시오. 그럼 소교주는 제힘으로 가져오겠습니다!”
마오가 덥석 엎드린 채 우렁차게 외쳤다.
허언인가? 아니면 미친 건가.
하지만 평소 마오를 알던 이들은 그게 허언도, 광언도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이건 포부였다.
늘 어리숙하게 끌려다니던 막내가 처음으로 자신의 포부를 모두 앞에서 밝힌 것이다.
이에 천마의 놀란 얼굴은 서서히 미소로 바뀌었다.
그리고 시원스레 답했다.
“칠소궁에 백일 간 만마분총(萬魔墳塚)의 출입을 허한다.”
헉! 수뇌들이 기함을 토하다 못해 입이 떡 벌어졌다.
만마분총이라면 파격적인 걸 넘어 그야말로 최고의 포상.
하나 이들이 진정할 틈도 주지 않은 채 천마는 태사의로 돌아가 앉았고, 우사는 가차 없이 끝을 고하였다.
“이것으로 대 회의를 마치겠소. 모두 물러가시오.”
“천마지존 만마앙복…….”
대공자를 비롯한 수뇌부들이 아직도 진정이 안 되는지, 넋 나간 것처럼 터덜거리며 물러섰다.
마일성만이 씨익 웃으며 잘하셨다고 속삭이듯 칭찬을 건네고 갔다.
“아, 아니. 잠깐만. 만마분총이 뭔데. 뭔지는 알려줘야지!”
남겨진 마오는 떠나가는 이들을 보며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그렇게 회의는 끝이 났다.
단 하나.
진짜 뇌옥왕을 없앤 일등 공신에 대한 포상만을 제하고서.
*
회의가 끝이 나고도, 천마전 밖은 어수선했다.
오랜만에 모인 수뇌들의 대화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
그리고 그중엔 사해령과 무한성도 있었다.
“어이. 동생.”
한 번 같은 편 먹었다고 친한 척인가. 저를 붙잡는 무한성에게 곁눈질로 답했다.
“뭡니까.”
“장이서 덕분에 이런 근사한 선물까지 받고. 이거, 우리 그 자식한테 뭐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뭔 헛소리인지. 사해령이 냉기를 풀풀 풍기며 가던 길을 가려 하자 무한성이 앞을 막아선다.
“하긴, 칠소궁이 제일 노났지. 만마분총이라니. 거긴 마(魔)의 별호를 받은 자들이 비급과 함께 떼로 묻혀 있는 곳이잖아. 나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
충격적인 이야기. 정말 그게 사실이라면 이만한 포상도 없었다. 그야말로 상승 무공의 무덤이 아닌가.
“근데 참 이상하지 않아?”
사해령이 아래위로 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늘 이상합니다.”
“아이, 씨. 나 말고! 장이서 말이야.”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죠?”
“아니. 이상하잖아. 기억이 없어. 분명히 걜 보러 갔는데. 걔를 본 기억이 없어.”
“그래서요.”
“근데 이상하게 자꾸 걔만 생각하면…… 떨린단 말이지.”
이젠 하다 하다…… 미친 건가? 사해령이 혐오스럽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자 무한성이 소리쳤다.
“아이, 씨! 그런 게 아니고. 아, 이걸 뭐라고 해야 하냐. 그냥……. 좀……. 막……. 뛰어. 가슴이.”
“미친놈.”
사해령은 결국 욕을 내뱉고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무한성이 무어라 소리치는 듯했지만, 그냥 무시했다.
뛰긴 뭐가 뛰는가. 장이서가 그냥 장이서지. 당연히 생각하면.
두근, 두근, 두근.
‘떨……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심장이 널뛰기 시작한 것. 단지 그를 생각했을 뿐인데.
두근, 두근, 두근.
터질 듯이 가슴이 뛴다.
‘왜……?’
누군가를 떠올리며 가슴이 뛰어본 적이 있었던가? 아니, 살면서 단 한 번도 없다.
물론 장이서에 대해 호감이 없다고는 말할 순 없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애초에 남녀 간의 애정만큼 하찮은 감정도 없다는 게 그녀의 지론.
한데…….
‘그를 좋아하는 건가. 내가……?’
사해령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인생 초유의 사태.
어느 날 갑자기 그에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봄이었다.
***
피 흘리는 불상이 곳곳에 가득 늘어진 지하 공동.
흐으으으으-
구슬피 울리는 바람 소리처럼 이들의 분위기도 무척 침울했다.
당연했다.
오랫동안 준비한 대계가 물거품이 되어버렸으니.
도라옥을 통해 천하의 혼란을 야기시키려던 원흉.
혈교의 흉신팔주였다.
“수십 년의 대계가 이리 처참하게 무너질 수 있단 말이오.”
원통함이 담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책임자한테라도 따지고 싶다.
하지만 이미 책임자인 전대 팔흉 천악수라와 당대 팔흉인 사도철은 천산의 거름이 된 지 오래.
“혈옥의 행방부터 찾아야 한다. 천마가 무사하다는 건 어딘가에 혈옥이 남아 있다는 방증.”
일흉의 현명한 발언에 모두가 고개를 주억였다.
어쨌든 혈옥은 무려 5갑자의 혈력이 담긴 귀물. 이것만 찾으면 어떻게든 대업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샅샅이 뒤져 반드시 회수해야 한다.”
일흉이 한 맺힌 목소리로 의지를 불태웠다.
물론 샅샅이 뒤지든, 대충 뒤지든 영원히 회수할 수는 없다. 이미 장이서가 꿀꺽해 버렸으니.
그래도 다행인 건 하나 있었다.
“이번에 대업을 망친 게 칠소궁이라고 들었소. 어떻게든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 아니오?”
알든, 모르든 혈교의 칼날이 장이서에게 향할 수밖에 없다는 것.
오흉의 말에 일흉이 고개를 주억였다.
“본보기로 장이서 그놈부터 처형한다.”
진작에 죽여 없앴어야 했다. 지렁이인 줄 알고 놔뒀더니, 치명적인 독사였다. 너무도 뼈아픈 실책.
“삼흉. 무슨 수를 써 서든 그놈을 죽여 없애라. 여지는 없다. 이건 혈존을 대신하여 네게 내리는 명이니.”
“음, 알겠소.”
혈존의 이름이 나오자 삼흉도 고개를 끄덕였다.
암울한 얘기는 여기까지. 일흉이 화제를 바꿔 물었다.
“사천은 어떻게 됐지?”
이들은 혈교. 세상을 파멸시키는 것이 목적이지, 마교가 목적이 아니다.
당연히 준비 중인 대업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
그리고 그중 하나가 바로 사천이었다.
“차질 없소. 이제 곧 사천 성도 무후사(武候祠)에 노왕야가 비밀리에 방문할 것이니. 그때 확실히 죽게 될 것이오.”
오흉이 담담하게 말했다.
노왕 주후만. 사천을 다스리는 번왕이다.
한데 그는 갑자기 왜.
“노왕야는 겉으로 관무불가침을 주장하는 자이지만, 사실은 정도무림맹의 가장 큰 후원인이오. 이번에 무후사로 가는 것도 능가경(楞伽經)을 되찾아 소림사에 돌려주기 위함이지.”
그런 것이었나. 흉신팔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으로 오흉은 확실히 무림맹의 간부임이 밝혀졌다. 그게 아니라면 절대 알 수 없는 극비이니.
“그런데 능가경이라면…… 천축에서 건너온 불경 아닌가. 그런 걸 가지러 가는데 굳이 번왕이 비밀리에 움직일 필요가 있나?”
이흉이 고개를 갸웃한다. 사실 사천 대업에 대해선 일흉과 오흉을 제하면 누구도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그만큼 각별히 주의에 주의를 기울였다는 얘기.
“그냥 능가경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밝혀도 괜찮은 단계. 일흉이 음산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 능가경은 먼 옛날 달마가 제자인 혜가에게 직접 전한 선법서(禪法書) 원본이다.”
원본이라면, 이미 천년 가까이 된 고서. 확실히 소림사 입장에서는 천금을 주고서라도 되돌려받아야 할 엄청난 유산이긴 하다.
근데 그게 뭐. 무림인에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나 이어진 일흉의 말은 모두가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실전되었다고 알려진 달마의 유일한 심법이기도 하지.”
“다, 달마의 심법이라고?!”
달마의 심법. 이는 전설처럼 알려진 이야기였다.
무림에 제대로 된 심법조차도 없던 시절. 불가인 중 최초로 심법을 창시하고 좌선 수행을 주장하며 열반에 오른 이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달마였다.
그는 생전 자신의 심법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고 떠났는데, 이미 혜가를 비롯한 제자들 나이가 이립(30)을 넘어 제대로 익힌 이가 없었다고 했다.
하여 실전될 것을 우려한 제자들은 이를 더 완성 짓고자 당시 수많은 고수들을 초청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정도 무림의 시작이었다.”
고수들은 달마의 심법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각자 깨달음을 얻어 자리로 돌아가 수련에 매진했다.
이후 각자의 심법들을 창안하였고, 그들은 달마의 제자들이 그러하였듯, 자신들의 깨달음을 다른 이들에게 전파하였다.
그렇게 세대가 흐르면서 당대 정파를 대표하는 심법들이 만들어졌다.
무당의 태극신공(太極神功)이 그러하며 아미의 연명선공(延命禪功) 또한 마찬가지.
하여 달마의 심법을 두고 원류심법(源流心法)이라 기리었다.
정파 조사(祖師)의 탄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