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04)
첩자의 마교생활-204화(204/350)
204.
#당가촌
원류심법.
참으로 낭만적인 말이다. 한데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인가. 말인즉슨 흔하디 흔한 고전 심법이라는 얘기 아닌가.
“달마의 심법이 원류가 된 것은 맞으나 그 무엇도 진짜에 근접하지 못했다. 모두 아류에 불과할 뿐이었지.”
대성하지도 못한 제자들이 얼마나 심법을 제대로 전할 수 있었겠는가.
심지어 심오하기가 이를 데 없는 달마의 심법.
수많은 파생 심법이 만들어졌으나, 원류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결국 제자들은 부단히 노력하였으나, 실전되어버리고 만 것.
“한데 그 능가경에 원류심법의 진짜 구결이 담겨 있다.”
이러니 어찌 충격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그야말로 세상이 발칵 뒤집힐 소식이었다. 천 년 만에 달마의 심법이 나타나다니.
만일 이를 소림에서 알게 된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되찾으려 들 거다.
물론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있었다.
“한데 지금까지는 그걸 왜 몰랐는고.”
이흉의 물음에 일흉은 조소와 함께 답했다.
“멍청한 녀석들은 설마 달마가 오래전 혜가에게 준 능가경에 심법이 담겨 있을 줄 몰랐던 거다. 범어와 암어가 가득했고, 또 네 권 중 한 권에만 숨겨져 있었으니 더더욱 알지 못했지.”
그야말로 충격적인 비사.
“덕분에 근골을 극강으로 만드는 역근경(易筋經)과 절초로 이루어진 세수경(洗隨經) 역시 전설 속의 무공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근원이 되는 원류심법을 익힌 자가 아무도 없으니 펼칠 수도 없는 일.”
들을수록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그걸 일흉이 어찌 알고 있는지도 의문이고.
하지만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꿀꺽. 흉신팔주의 가면 속에서 탐욕의 기운이 스멀스멀 새어 나왔다.
다른 것도 아닌 달마의 원류심법이다. 정사마를 떠나 이 정도라면 욕심 한번 부려볼 만한 일.
한데.
“부질없는 헛꿈에 목숨을 걸지 말아라. 설령 얻더라도 절대 익힐 수 없는 심법이니.”
일흉은 자신만만한 어조로 조소를 뱉었다.
뭔가가 있구나.
하긴, 그런 게 아니라면 이리 쉽게 말해 줄 리가 없는 일.
더구나.
“또한 이번 사천의 대업은 흑혈(黑血)에서 마무리 지을 것이다.”
“……!”
흑혈이라는 말에 진득하게 흐르던 욕망의 기운이 증발하듯 사라졌다.
혈교 내에서도 악명이 극에 달한 조직, 흑혈.
암살과 추살(追殺)을 전문으로 하는 자들로 흉신팔주가 혈교의 가면으로 불린다면, 그들은 혈교의 검. 혹은 집행자라고 불렸다.
특히 지옥 끝까지 쫓아가 뿌리를 멸하는 그들의 능력은 이미 정평이 난바.
심지어 배교자 중 하나는 거세한 채 황궁으로 숨어들어 갔으나, 사지가 잘린 채 봉천문(奉天門)에 내걸리기도 했다.
“흑혈에서 나섰다면 뭐…….”
성질머리가 불같은 육흉까지 기세를 삭일 정도면 말 다 한 것.
그렇게 상황은 금세 진정이 되었다.
일흉은 이를 만족스레 살피며 마저 말했다.
“마교가 건재하다 한들 바뀌는 건 없다. 왕야가 죽고 능가경이 우리 손에 떨어지는 날. 천하는 혼란에 휩싸이고, 평화의 시대는 끝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혈존천하(血尊天下) 파멸일원(破滅一原).
그렇게 혈교의 암약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다.
***
– 사천성 성도 당가촌(唐家村).
“제갈가에서 왔다고.”
“하, 하하…… 예, 뭐. 그렇긴 한데. 일단 이것 좀 치워주시면 안 될까요…….”
제갈소미는 제 목젖에 겨누어진 부엌칼을 보며 진땀을 흘렸다. 조부 제갈상의 명을 받아 당가의 집성촌까지 찾아오긴 했는데, 골목을 지나는 순간 포위당해 버렸다.
그것도 마을 주민들한테!
물론 은밀히 움직이려 복면을 쓰고 온 건 잘못이긴 했다. 그렇긴 한데…….
‘뭐 이렇게 살벌해!’
죄다 날붙이에 독까지 발라 올 필요는 없지 않은가. 심지어 의원이 갖고 온 대침까지!
“아니, 거기다가 독을 바르면 환자는 어떡해요?”
“어차피 이 동네는 병명이 죄다 중독이여. 이독제독이지, 뭘.”
“맙소사.”
제갈소미가 복면을 내리고 고개를 절절 저었다. 그러자 곳곳에서 뒤늦게 그녀를 알아보곤 인사를 해왔다.
“제갈가의 지화 소저 아닌가!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해야지.”
그럴 걸 그랬다. 제갈소미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당가를 찾은 건 이번이 세 번째. 지난번엔 조부와 함께 왔던 터라 이 정도로 경계가 심한 줄 몰랐다.
“이해하시게. 사천이 역사적으로 워낙 침략이 잦은 곳이라.”
당문으로 안내하는 인상 좋은 당 의원의 말대로였다.
지리적으로 서쪽엔 마교의 침입이 쉬운 서장과 맞닿고, 남쪽엔 사도련이 자리한 운남이 있었으니 그만큼 외세에 민감했다.
“하하! 다 왔네.”
물론 같은 편에게는 한없이 밝고 좋은 이들이지만 말이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끝으로 마을 중심에 있는 거대한 장원. 당문(唐門)에 도착했다.
제갈가와 마찬가지로 중원에서 가장 이름난 오대세가 중 하나.
그리고…….
“패를 가지고 오셨다고.”
“예.”
암각 요원들을 단숨에 없앨 수 있는 비밀을 지닌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제갈소미가 이곳에 온 이유였다.
“흠……. 확실하군. 잠시 기다리시오.”
지금 나무패를 가져간 이는 당문에서도 서열 3위로 꼽히는 천외당주(天外堂主) 당기륭.
연배나 배분으로 봤을 때 일가의 장로급인 그가 당연히 하대하는 것이 옳겠으나, 지금 소미는 무림맹 암각 부각주로서 온 것.
그에 걸맞은 대우는 당연한 일이다.
“여기 있소.”
온통 칠흑색으로 칠해진 천외당 안으로 들어갔다 나온 당기륭이 자그마한 함 하나를 건넸다. 사신(四神)의 문양이 화려하게 새겨진 단단한 옥함이다.
“사용법은 간단하오. 그 함 안에 있는 모고(母蠱)를 죽이면 십 장(약 30m) 내에 있는 자고(子蠱)가 같이 터져 죽게 되는 방식이지.”
금세 숙지했다. 자고는 요원의 심장에 기생 중일 테니, 일정 거리 내에서 모고가 죽으면 요원은 반드시 죽는다.
다만 기회는 한 번뿐.
“그렇군요. 그런데 이미 자고가 사라졌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있소.”
제갈소미가 흠칫 놀라 토끼 눈으로 쳐다보자 당기륭이 픽 웃으며 말했다.
“대신 숙주도 땅에 묻혀 있겠지. 이미 심장이 터졌을 테니.”
“하하…… 그렇군요.”
농담도 참. 제갈소미는 안심하는 표정을 짓곤 함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근데 어떻게 죽이죠? 여는 방법이 없는 거 같은데.”
“지금 만지고 있는 그 현무의 등껍질. 그걸 누르면 안으로 독침이 쏘아지게 되어 있소.”
“으악!”
생각 없이 등껍질을 누르려던 제갈소미가 화들짝 놀라며 함을 떨어트렸다. 다행히 땅에 닿기 전에 뒤꿈치로 차 올려 잡아내기는 했다.
“하, 하하……. 기술이 참…… 정교하네요.”
“당문이라면 당연한 일이지. 그럼 살펴 가시오.”
당기륭은 볼일 다 봤다는 듯, 어둑한 천외당 안으로 들어섰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빈자리에 꾸벅 고개를 숙여 포권을 취하곤 돌아섰다. 그리고 당기륭은 어둠 속에서 힐긋 뒤를 돌아보곤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각주가 아낄 만하군.”
*
당문에서 나온 제갈소미는 걸음을 서둘렀다.
마음이 급했다.
가장 큰 건 드디어 103호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
그의 행적은 꼭 누군가 지어낸 소설 같았다.
어린 나이에 암각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며 최고의 요원을 달성했고, 이후 마교에 들어가 조용히 칼을 갈았다.
그리고 임무가 떨어진 순간, 거침없이 칠소궁으로 들어가더니 칠공자를 유력한 후보로 만들어 놓았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게 가능한 걸까.
‘궁금해. 보고 싶어.’
떨리는 가슴을 두 손으로 꾹 누르며 걸음을 재촉했다.
‘근데 천산까지 혼자 가도 되나? 너무 위험한 거 같은데.’
물론 현장 요원들을 생각하면, 염치 불고한 생각이지만 어쩌겠나. 103호와 만나려면 다른 곳도 아닌 마교 지척까지 가야 하거늘…….
‘암기라도 사갈까?’
괜히 대장간에 눈길이 가던 그때.
“크악!”
“컥!”
마을 사람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기습?!”
그녀가 서둘러 마을 어귀까지 달려 나갔다. 그리고 상대를 보자마자 경악에 빠졌다.
조각 같은 얼굴로 절 포위한 마을 사람들을 가볍게 제압하는 사내.
“선유 소협?!”
화산파의 별종.
“왔나.”
형을 찾아달라며 눈물 흘리던 그 사람.
“오늘부터 그대의 호위를 명 받았다.”
그가 절 기다리고 있었다.
무림맹 암각의 패를 지니고서.
*
“그러니까. 사문에서 무림맹으로 가래서 갔더니. 제 할아버지가 선유 소협을 호위로 임명했다는 거예요?”
“몇 번을 더 말해야 하지?”
“아직 한 번도 안 했거든요?! 이건 내가 추측한 거고요.”
“그랬나.”
그랬나는 무슨! 제갈소미는 숲길 암석에 앉아 찐 감자를 먹는 선유를 보며 파르르 떨었다.
당가촌 사람들에게 도대체 사과를 몇 번을 한 건지. 솔직히 안 하고 싶었는데 선유가 한 말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저 여자가 내 선임이다. 따지려면 저쪽에 따지든지.’
그냥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더니…….
“완전 이상해.”
“안 먹을 건가?”
선유가 감자를 들이민다.
“됐거든요! 돌아가세요. 이쪽 일 아무나 할 수 있는 거 아닙니다.”
“알아.”
“뭘 알아요. 이건 산속에서 무공을 갈고 닦는 거랑은 차원이 다른 일이라고요. 아주 위험해요.”
“그러니까 날 호위로 붙였겠지.”
말은. 제갈소미가 인상을 확 찌푸렸다. 솔직히 이런 어린 소협을 제 할아버지가 보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매화룡을 이겼다죠. 인정해요. 강하겠죠. 적어도 후기지수 중에서는. 하지만 현장에선 나이를 따지지 않아요.”
“나이 따진 적 없는데.”
“근데 왜 자꾸 말을 놓죠? 화정이 말로는 아직 약관도 안 됐다면서요. 나 스물둘인데?”
“그러니까 나이 따진 적 없다고.”
“이 인간이 진짜!”
“잠깐.”
“잠깐은 무슨…….”
생년 월 시 한번 따져보려는 찰나, 선유가 숲속을 살폈다. 상황을 모면코자 벌인 일치고는 너무 진중하다.
이에 그를 따라 시선을 옮기자 숲속에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이건……!”
“짐승의 피가 아니군. 사람의 피다.”
선유는 피 묻은 흙을 검결지로 훑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걸 보면 알아요?”
“짐승에겐 이토록 강한 원기(怨氣)가 느껴지지 않으니까. 지독히 억울했나 보군. 여럿에게 당했어. 근데 왜 피가 여기에만 있는 거지?”
도사는 도사네. 별걸 다 알아. 제갈소미가 얕게 숨을 뱉고는 말했다.
“나와 봐요.”
이내 핏자국을 골똘히 살폈다.
“암기에 당했네요. 대나무가 베인 각도를 봐선 저쪽 길 밖에서 날아들었고요. 여기서 출혈은 막았지만, 그래도 많이 흘렸어요. 이 정도면 위중한 상태일 겁니다.”
“……그쪽도 도(道)를 배우나?”
“도 아니고 현장이죠. 자, 이거 써요.”
“복면?”
“임무 중이라고 소문내고 다닐 순 없죠. 쓰고 따라와요. 저쪽으로 간 것 같으니까.”
선유는 앞서가는 그녀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선임이 확실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