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05)
첩자의 마교생활-205화(205/350)
205.
#흑혈의 그림자
우여곡절 끝에 동행하게 된 제갈소미와 선유.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놓인 자그마한 동굴이었다.
한데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이미 한발 늦었기 때문.
“죽었군요.”
“음…….”
두 사람 앞에는 자줏빛 무복을 입고 쓰러진 사내의 시신이 있었다.
그의 모습은 필사적이었다. 쭉 뻗은 손은 죽는 순간에도 동굴에 숨겠다는 의지가 절실했다.
“비수가 장기에 박혔군.”
선유가 엎드린 시체를 돌려 복부에 박힌 비수를 살폈다. 아직 체온이 정상인 걸 봐선 역시 오래 안 됐다.
제갈소미는 망설임 없이 시체의 품을 뒤졌다.
“뭐 하는 거지?”
“계속 여기 있을 시간은 없어요. 임무 중 다른 일에 휘말려서도 안 되고요.”
“그건 알겠는데 왜 원기가 가득한 망자의 유품을…….”
“나중에 가족이라도 찾아서 돌려줘야죠. 쫓기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은 신원 미상으로 끝나는 경우가 태반이에요. 음?”
한데 뒤져도 나오라는 신패는 없고, 웬 서책 하나가 나타났다.
“이건…… 범어인데?”
오래된 흔적이 다분한 범어로 된 서책이다. 양피지로 된 게 서역에서 들여온 물건인 듯했다.
“읽을 수 있는 건가?”
“랑가바타라수트라.”
“뭐?”
“한어로 하면 능가경(楞伽經)이라는 거죠.”
“능가경?”
“유명한 불가의 경전이에요. 석가께서 능가성이라는 곳에서 비구들과 함께 계실 때 가르침을 내려주신 내용이죠.”
“설마 벌써 그걸 다 해석한 거야?”
천재인가. 선유의 눈이 부르르 떨렸다.
“그럴 리가 있겠어요. 범어는 익히기가 까다로워 불가에서도 아는 분이 그리 많지 않아요. 작정하고 해석하려면 자리 펴고 며칠은 걸릴걸요?”
물론 며칠 만이라는 말도 제갈가의 수재인 그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능가경임을 바로 알아본 것은 일전에 사본을 본 적이 있어서였기 때문.
어쨌든 여러모로 이상하긴 했다. 죽은 이의 행색이 불가의 사람처럼 보이진 않는데……. 명패도 없이 이리 오래된 고서만 품고 있다니.
“일단 여기서 벗어나죠.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요. 곧 추적자들이 올지도 모르고.”
“이미 늦었다.”
불길한 기운은 꼭 잘 들어맞는다.
스릉! 선유가 칼을 빼 들곤 제갈소미 앞으로 나선다. 그러자 숲속에서 붉은 복면을 쓴 사내 다섯이 모습을 드러냈다.
“너희는 누구지?”
“그러는 네놈들은 누구냐.”
서로 복면을 쓰고 있으니, 누가 봐도 서로가 범인 같은 이상한 상황.
“둘 다 죽이고 물건은 회수한다.”
다행히 입장 정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누가 봐도 저들이 범인.
붉은 복면인들이 서서히 포위하듯 다가온다. 풍기는 기세가 범상치 않다. 하나같이 모두 일류의 고수들.
“내가 신호하면 이 책 갖고 도망쳐요. 여긴 내가 막아볼 테니까.”
“왜 그래야 하지?”
“한 살이라도 많은 내가 희생해야죠.”
“호위는 나다. 그쪽이 아니라.”
“안 보여요? 저 사람들 후기지수 아니야. 강하다고요.”
제갈소미가 우려 섞인 목소리를 뱉었다. 하지만 오늘 한 말 중 가장 쓸데없는 말.
“말했잖아. 나이 안 따진다고.”
선유가 앞으로 한 걸음을 나서며 천천히 검을 긋는다. 그러자 몸에서 쏟아지는 자줏빛 기운.
『자하진천검(紫霞震天劍) 미완성(未完成) 일초식 매화만개(梅花滿開)』
살랑. 그리고 그 순간 제갈소미는 흩날리는 매화 속에서 일검을 긋는 사내의 그림을 보았다.
너무도 아름다운 명화(名畫)를.
“컥!”
“커헉!”
그리고 동시에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복면인들. 오죽하면 그마저도 아름답게 보인다.
“십초자…….”
이제야 알겠다. 왜 그의 별호가 십초자였는지. 하마터면 반할 뻔했어.
“이 정도면 충분한가, 선임?”
제갈소미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실력에 고개를 끄덕이곤 고갯짓했다.
“가요. 어디 가는지 설명해 줄 테니까.”
“그러지.”
그렇게 암각의 새로운 단짝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 무후사(武候祠).
무후사는 과거 명재상을 기리기 위해 만든 사당. 그리고 그 명재상이 바로 충무후(忠武侯). 제갈세가의 선조라 할 수 있는 제갈량이었다.
그리고 오늘 후대인 제갈상이 알면 기절초풍할 일이 벌어졌다.
“이, 이놈들…….”
바닥에 쓰러져 쿨럭거리며 사혈을 토해내는 노인, 노왕야.
사천의 큰 어른이자 사마외도(邪魔外道)를 멀리하며, 비밀리에 정도를 지지하는 정신적 지주(支柱)였다.
그가 죽어가고 있었다. 이미 사당 안에는 쓰러진 이만 수십에 달했다. 호위무사부터 무후사의 승려들이 모조리 도륙당한 것.
그것도 단 하나.
바로 저 푸른 머리의 사내 손에 말이다.
“이러고도…… 네놈들이 무사할 성싶더냐! 크흑…….”
“고통이 심한가 보군. 걱정 마라. 능가경만 확인되면 죽여줄 테니.”
“얼굴을 보여라……. 죽어서 원귀가 되어서라도 네놈을 괴롭힐 것이니…….”
노왕야의 한 맺힌 음성에 사내가 픽 웃고는 붉은 복면을 내렸다.
“보면. 내가 보이는가?”
“꺼, 꺽!”
그리고 노왕야는 그 순간 너무 놀란 나머지 숨을 거뒀다. 심장 마비였다.
그럴 만도 했다.
마치 수십 개의 얼굴이 쉴 새 없이 변화하는 것처럼 섬찟한 모습이었기 때문. 급기야 눈이 여섯 개로 보이기까지 했다.
실로 섬뜩한 사술이 아닐 수 없다.
“쓸데없이 먼저 죽어버렸군.”
다시 복면을 올려 쓴 사내가 고개를 돌리자, 붉은 복면의 사내가 달려와 부복한 채 보고를 올렸다.
“흑혈이시여! 도망친 자를 찾았습니다. 한데……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흑혈(黑血)! 분명 일흉이 얘기했던 조직이다. 암살과 추살을 담당하는 혈교의 집행자들.
그중 눈앞의 푸른 머리 사내는 백면귀라 불리는 자였다.
“물건은?”
“그것이…… 누가 빼돌린 것 같습니다. 이미 저희가 갔을 때 추적조 다섯이 죽어 있……!”
툭, 데구루루.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사내의 머리가 잘려 나간 채 바닥을 구른다.
칼을 뽑는 모습도, 소리도 없었다.
실로 혀를 내두르는 쾌검!
“쥐새끼가 끼어들었구나. 하나 상관없다. 어디든 쫓아가 도살해 줄 테니. 크큭.”
백면귀의 음산한 미소가 사당에 울려 퍼졌다.
흑혈의 그림자가 제갈소미와 선유에게로 향하는 순간이었다.
***
뇌옥왕의 반란이 허망하게 막을 내린 지도 어느덧 수일 째.
장이서는 암각과 만나기로 한 약속을 앞에 두고 모처럼 자유를 만끽 중이었다.
“천마가 직접 포상을 내렸다고 합니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취선루. 홍란에게 그간의 동향을 들었다.
“만마분총이라……. 정말 큰 걸 얻어냈구나.”
그리고 마오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땐 평형을 이루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가기도 했다.
만일 자신이 평범하게 살았고, 제 아우가 과거에 합격했다면 이런 기분일까.
“소교주 위를 거절하고 받으셨대요.”
“이런 미친놈이?!”
물론 오래가진 못했다. 술상 안 엎은 게 다행.
“그래도 만마분총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건 정말 고무적인 소식이에요.”
“뭐, 그렇긴 하지.”
장이서도 그 부분은 적극 동의했다.
만마분총(萬魔墳塚).
말 그대로 만마의 무덤. 천마전 지하에 있다는 공동묘지다.
아무나 묻히는 건 당연히 아니고, 시대를 풍미한 마두들만이 묻히는 곳.
“그런데 정말 묘지인 걸가요? 그럼 천마전은…….”
“진짜는 아니지. 아무리 천마라도 송장 위에서 자고 싶진 않을 거야.”
아닌가. 진우광이라면 신경 안 쓸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고인 대신 비급들이 묻혀 있다더군. 뭐 무림인은 원래 죽어서 무공만 남기는 법이니까.”
물론 만마분총에 들어간다고 마냥 좋기만 한 것만은 아니었다.
최상위 진법이 펼쳐져 있어 천, 지, 인. 세 단계의 비급 중 선택받은 단 하나만을 얻을 수 있기 때문.
한마디로 뭘 얻을지 아무도 모른다는 얘기.
“근데 주인님께선 안 가보셔도 되나요?”
“나? 나야, 뭐 지금도 충분하니까.”
“역시 주인님이세요.”
응, 아니야. 솔직히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 어쩌면 천마기와 불사독을 이을 초상승 심법을 얻을 수도 있고. 새로운 무리를 깨우칠 무공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임무가 우선이다.’
장이서는 암각에서 보내온 요청에 응할 생각이었다. 시기적으로도 혼자인 이때가 안성맞춤.
뭣보다 궁금했다. 자신을 보낸 이들을 지금 다시 만난다면 어떤 기분이 들지. 그들은 또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참, 호룡당주께서 무사히 깨어나셨다고 해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주인님을 계속 찾으셨다네요.”
“다행이야. 근데 날 왜 찾아.”
“그만큼 고마우셨던 거겠죠. 어쨌든 도라옥의 죄인들을 막아주셨으니까요.”
“그거야 뭐 당연…….”
순간 말하려다가 멈칫했다. 언제부터 마교를 위한 일이 당연해졌나. 머쓱함에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그간 천산에 벌어졌던 실종 사건들도 모두 그들의 소행이었다고 합니다. 그새를 못 참고 살육을 벌였던 거겠죠. 시신은 도라옥에 버려둬서 찾을 수 없던 거고요.”
“마교도 못 견디고 들어간 놈들이다. 더한 짓도 했을 놈들이지.”
장이서가 이를 갈며 고개를 저었다. 놈들을 막아내긴 했으나 피해가 컸다.
특히 신도 중엔 그저 천산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대다수이거늘.
‘뇌옥왕. 너의 최후가 지옥 같았기를 바란다.’
그의 죽음을 직접 보진 못했으나 꼭 그랬기를 바랐다.
물론 지옥이긴 했을 거다.
뜬금없이 나타난 장이서 덕분에 40년간 키운 혈옥을 빼앗긴 것도 모자라, 갈기갈기 찢겨 허망한 죽음을 맞이했으니.
장이서는 그렇게 홍란과의 대화를 마치고 밖으로 향했다.
“와하하하! 한잔하세!”
나른한 초저녁.
도라옥 사태 이후 발걸음이 많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손님이 북적이는 건 여전하다.
아마 누군가의 슬픔도 언젠가는 저렇게 잊히리라.
“살펴 가십시오, 대인!”
1층에 다다르자 점소이의 인사와 함께 여러 시선이 모였다가, 관심 없다는 듯 흩어졌다.
한데 장이서의 모습이 들어설 때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생전 처음 보는 용모에 복장.
놀랍게도 그새 인피면구를 쓰고 나온 것.
‘역시 염탐꾼들이 득실거리는구나.’
굳이 쳐다보지 않아도 훤히 느껴졌다. 밖으로 나올 자신만 기다리고 있는 염탐꾼들이.
예상은 했다. 정확히는 마가에서 돌아올 때부터 낌새가 이상했다.
자꾸 어디선가 의도를 품고 쳐다보는 느낌.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신중하고 은밀했지만, 장이서는 감각이 극에 달한 자.
그의 촉을 피해 갈 순 없었다.
‘대부분 대공자가 푼 녀석들이겠지.’
겉보기엔 왁자지껄 웃으며 술 사 먹는 손님들이지만, 딱 보면 안다. 마주 앉은 이와 대화를 하면서도 내내 곁눈질로 주변을 살핀다는 것을.
평소라면 신경이 제법 쓰였겠지만, 오늘은 오히려 좋았다.
저들로 인해 자신은 취선루에서 쭉 머무는 것이 될 테니.
암각과 접선하는 그 순간까지도 말이다.
‘너희가 이제부터 내 증인이 되어주어야겠다. 그럼 계속 수고해라.’
오늘도 평화로운 마교 생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