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06)
첩자의 마교생활-206화(206/350)
206.
#연천산장
– 곤륜산맥 연천산장(連天山莊).
험난한 산 중턱에 덩그러니 놓인 작은 객잔.
평소 손님 구경이 하늘의 별 따기지만, 오늘 주인은 운이 좋았다.
끼이이익!
이른 아침부터 첫 손님이 문을 열어준 것.
“어서 오시오!”
활짝 웃으며 반긴 이들은 젊은 남녀였다. 얼굴은 천으로 돌돌 감아 보이지 않았는데, 워낙 날씨가 험상궂어 산맥에선 흔한 일이었다.
“하하, 이쪽에 앉으시오. 내가 방금 앉아 있던 곳이라 다른 데보다 뜨실 거요.”
“감사합니다.”
주인은 여인을 먼저 자리로 안내하고, 사내에게는 맞은편의 의자를 가리켰다.
기분이 좋아진 여인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손님이 저희뿐인가 보죠?”
“오늘뿐인가. 어제도 그렇고, 엊그제도 그렇고. 매일이 그렇지.”
“근데 어떻게 장사를…….”
“이 위부터 설풍(雪風)이 몰아쳐 가끔 오긴 하오. 지금도 이렇게 선남선녀 두 분이 오셨고. 하하! 허기지실 테니 요리라도 내오리다. 작장면 하나뿐인데 그냥 드시오. 먹을 만해.”
주인장이 호탕하게 웃으며 부엌으로 가자 두 남녀가 서로 눈빛을 나눈다.
‘아직 안 온 것 같죠.’
‘그런 것 같네.’
그렇다. 이들의 이름은 제갈소미와 선유.
오늘 장이서와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로 먼저 온 두 사람이었다.
이제 내일이면 약속의 그믐날.
전설의 요원인 103호가 이곳으로 온다. 그전에 미리 장소를 살피기 위해 일찍 온 것.
사천에서 곤륜산맥을 지나면서 둘은 제법 가까워졌는지 말없이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주인장은 내가 알아볼 테니 소협은 바깥을 살펴봐요.’
‘추운데.’
‘잔말 말고 가요!’
“소피가 마렵군. 나가서 잠시 누고 와 볼까.”
그렇게 자세하지 않아도 돼! 제갈소미가 초짜 요원의 어설픈 행각에 이마를 척 짚었다. 배울 게 한참이다.
그가 밖으로 나가자 어느새 주인장이 뚝딱 비빔면 요리를 만들어 왔다.
“뭔 소피를 보는데 칼까지 들고 가나. 싸다 말고 싸우려고?”
“하하……. 낭군께서 워낙 조심성이 많으셔서요…….”
“아, 서방이었소? 이런, 낭자가 아깝구먼.”
“그런가요?”
제갈소미가 픽 웃음을 터트렸다. 이에 주인장은 반대편에서 그릇을 드륵 밀며 말했다.
“드셔 보시오.”
“되게 빨리 나왔네요.”
“뭐 넣을 게 있나. 삶아놓은 면에 오이 넣고, 장 넣으면 끝인데. 자, 어서 드셔보시오. 내가 이래 봬도 대장원 숙수였어.”
“정말요? 그럼…… 잘 먹겠습니다!”
제갈소미는 잔뜩 기대감을 안고 얼굴의 천을 풀었다. 이어 드러나는 용모. 한데 지화(知花)답지 않게 평이하다. 인피면구를 쓰고 온 것.
이어 젓가락으로 면을 비비곤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러곤 웩! 다시 뱉었다.
뭐야, 이거. 진천뢰야?
너무 맛이 충격적이라 주인장을 올려 보고 말했다.
“숙수였다면서요. 무슨 요리가 이래요.”
“이러니까 이러고 있지.”
사기꾼! 열흘 만에 제대로 된 음식이라 엄청 기대했는데. 제갈소미가 울상을 지었다.
그리고…….
‘주는 대로 막 먹어? 대체 각주는 요즘 교육 어떻게 시키는 거야?’
주인장. 아니, 주인장으로 변장한 장이서는 속으로 혀를 쯧쯧 찼다.
그렇다.
미리 와서 장소를 살피고 제 영역으로 만드는 건 첩자의 기본 중의 기본!
그는 이미 훨씬 더 일찍 와서 이곳 산장을 제 것으로 만든 지 오래였다.
‘덕분에 주인장만 노났지. 다 쓰러져 가는 산장에 은원보 두 개나 챙겨갔으니.’
그야말로 기는 부각주 위에 나는 장이서다.
물론 그도 제갈소미의 정체는 알아보지 못했다. 정파의 주요 인물이라 용모화는 이미 파악해 두었지만, 두 사람이 인피면구를 쓰고 왔기 때문.
그저 지금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암각에서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애송이들을 내게 보낸 거지?’
심지어 같이 온 녀석은 허우대만 멀쩡하고, 첩자의 재능이라고는 일절 없어 보였다.
지금도 다시 돌아와서 한다는 말이.
“바람이 세게 불어 당황했지만, 옷에 묻진 않았다.”
어떡하라고! 쓸데없이 상세하지 마! 제갈소미가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이런 수준이니 최고의 요원인 장이서 입장에선 기가 찰 수밖에.
‘그냥 마교로 돌아갈까.’
아주 진지하게 든 생각이다.
물론 그런 장이서의 속도 모르고, 제갈소미와 선유의 어설픈 신혼 놀이는 계속되었다.
“밖은 어땠어요?”
“추웠지.”
“됐고요……. 그거나 먹어봐요. 맛있어요.”
제갈소미는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비빔면에 고갯짓했다. 너도 진천뢰 먹고 정신 차리라는 얘기.
한데……. 이 자식이 생각보다 잘 먹는다.
“뭐예요. 안 이상해요?”
“이상해야 해?”
“그럴 리가 없는데.”
내 거만 이상한 건가? 웩! 제갈소미가 한 입 뺏어 삼키고는 그대로 고개 돌려 헛구역질을 뱉었다.
“사람 밥 먹는데.”
“죄, 죄송…….”
“안 먹을 거면 그것도 내가 먹지.”
선유는 금세 한 그릇을 비우더니 제갈소미의 것까지 해치웠다.
진짜 특이해. 하긴 별종이 괜히 별종이겠는가. 물론 선유도 이상함을 느끼긴 했다.
‘왜 이게 맛있지?’
입 안에서 확 터지는 맛에 뭔가 아련한 향수가 느껴졌다. 코끝이 찡했고, 눈물이 설핏 고였다. 너무 향이 세서 그런가.
“울어요?”
“설마. 내가 운 건 태어났을 때뿐이야.”
“아니, 그럼 몇 번을 다시 태어나는 거야.”
“안 울었다니까?”
“됐어요.”
두 사람이 옥신각신 다툰다. 이게 요즘 암각의 세태인가. 평화의 시대가 너무 길긴 했다. 역시 그냥 마교로 가자. 지켜보다 고개를 돌려버리는 장이서.
그런데 바로 그때.
텅!
문이 걷어찬 것처럼 거칠게 열리고, 붉은 복면의 사내들이 들이닥쳤다.
“……!”
선유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제갈소미가 빠르게 그의 손등에 손을 올리지 않았다면, 큰 실수를 할 뻔했다.
‘뭐야, 이것들은. 아는 사이?’
물론 장이서의 번개 같은 눈을 피하진 못했다. 한눈에 연관이 있음을 알아차리곤 흥미로운 시선으로 복면인들을 살폈다.
특이한 적색 복면. 안광에서 느껴지는 살귀의 냄새. 칼집에 담아도 감춰지지 않고 진동하는 혈향.
‘반가운 손님은 아닌 거 같고. 하다 하다 꼬리까지 달고 온 거냐.’
주먹으로 턱을 괸 채 콧김을 뱉었다.
물론 제갈소미와 선유에겐 죄가 없었다. 사천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인피면구를 세 번 바꿨고, 옷도 두 번을 갈아입었다.
단지 저들의 추적 능력이 남달랐을 뿐.
“식사하러 온 거면 빈자리에들 앉으시오.”
장이서의 퉁명스러운 안내에 저벅, 저벅 복면인들이 우르르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뒷문까지 걸어가 퇴로를 막았다. 꼭 이런 놈들은 좋게 말하면 말을 안 듣는다. 내가 앉으랬지, 서랬냐.
이건 대놓고 사달을 벌이겠다는 얘기.
이어 사방이 포위되자 푸른 머리의 사내가 칼을 쥐고 팔짱을 낀 채 들어섰다.
혈교의 집행자.
흑혈(黑血)에 소속된 백면귀다.
드륵. 수하 중 하나가 의자를 빼서 입구 앞 중앙으로 끌고 오자 그가 오만한 자세로 자리에 앉았다.
검은자위가 흰자위를 다 덮을 만큼 특색있는 동공에 시선이 뺏긴다.
잠시 후 그가 비웃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원래라면 그냥 죽이는 게 맞는데…….”
시작부터 음산한 서두.
“궁금하더군. 대체 어떤 놈들이길래 탈까지 바꿔 써가며 여기까지 온 건지. 물건을 가져가길래 처음엔 왕야하고 한패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까…….”
백면귀의 시선이 제갈소미와 선유에게로 향했다.
“수상한 게 한둘이 아니구나. 크큭.”
누가 누구더러 수상하다고 하는 건지. 장이서가 미간을 찡그렸다. 꼬여도 단단히 꼬였음을 직감한 것.
“아니, 이보시오. 손님들께서 뭔가 오해가 있으신…… 컥!”
장이서가 다가서려 하자, 복면인 중 하나가 여타 말도 없이 가슴팍에 일장을 갈겼다.
와지끈! 이에 뒤로 날아가 협탁을 부수고 벽에 처박혀 쓰러졌다.
“소협-!”
제갈소미가 벌떡 일어나 떨리는 눈으로 외친다.
“주, 죽었어?”
안 죽었다. 이 정도에 죽을 리가.
“아무 죄도 없는 자를 죽여버리다니!”
안 죽었다니까. 어쨌든 어설픈 자객들이 아니다. 한낱 수하에 불과한 자가 일류 끝자락의 고수. 대체 이들이 누구기에.
“당신들 정말 용서할 수 없는 자들이군요.”
장이서가 누워 있는 사이, 제갈소미의 눈엔 지독한 분노가 서렸다.
바로 눈앞에서 무고한 이를 허망하게 떠나보냈기 때문.
정도인으로서 이는 참을 수 없는 일.
“저들하고 대화가 통할 거라고 생각해?”
스릉! 선유 역시 노기를 갈무리하곤, 칼을 뽑아 들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문답무용이다.
한데.
“앉아.”
털썩!
“뭐, 뭐야!”
푸른 머리의 백면귀가 나지막이 한마디를 내뱉자 두 사람의 몸이 빳빳이 굳어지고, 꼭두각시처럼 단숨에 주저앉았다.
이건 본인들의 의지가 아니었다.
“설마……!”
제갈소미의 외침에 백면귀의 눈매가 휘어졌다. 그러곤 일어섬과 동시에 복면을 슥 내리며 말했다.
“나의 세계에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
솨아아아아-
동시에 그의 얼굴이 수없이 변모한다.
제갈소미는 이를 무력하게 지켜보며, 얼굴빛이 사색으로 변했다.
이와 같은 사술에 대해 조부인 제갈상에게 들어본 기억이 있기 때문.
섭혼술. 분명 그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였다.
‘섭혼술은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든 위험한 사술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반드시 술법마다 정해진 조건을 성사해야만 한다.’
‘조건이요?’
‘가령 마안탈혼술(魔眼奪魂術)은 열 셀 동안 상대와 눈을 마주쳐야만 한다. 그전에 눈을 피하면 다행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초절정 경지가 아닌 이상 빠져나오기 힘들 게다.’
‘세상에.’
‘아주 극악한 사술이니라. 그러니 만일 얼굴이 수없이 변하는 자를 만나게 된다면, 그건 이미 거미줄에 걸려든 것이니……. 반드시 도망치거라.’
쿵! 절망감이 돌덩이처럼 머리 위에 내려앉는다. 어쩌죠, 할아버지. 도망치기엔 이미 늦은 거 같아요.
그녀가 낙담하는 사이, 백면귀의 입에서 자비 없는 말이 뱉어졌다.
“우선 어찌 생겼는지 그 얼굴부터 봐야겠구나.”
“아, 안 돼!”
아무리 거절해도 부질없는 일.
“가면을 뜯거라.”
그의 명이 떨어지자 제갈소미의 떨리는 손이 턱 밑의 가죽을 붙잡고 쫘아아악! 찢어냈다.
그러자 일순 절세미인의 용안이 모두의 앞에 고개를 내밀었다.
이에 혈교의 복면인들뿐만 아니라 백면귀도 화들짝 놀랐다. 그러곤 섬찟한 욕망을 드러내며 제 입술을 할짝댔다.
“실로 고운 얼굴이로구나. 그냥 죽이기는 아까울 만큼.”
듣기만 해도 벌레가 기어가는 기분. 하지만 제갈소미는 허락 없이 고개조차 돌리지 못했다.
섭혼술에 제대로 빠져버린 것.
그리고 놀란 건 두 번 죽은 장이서도 마찬가지였다.
‘저 얼굴은…… 지화 제갈소미?!’
아무리 마교 쪽보단 소식에 둔하다지만, 제갈가 금지옥엽의 용모까지 모를 리 없는 일.
‘제갈소미라면 각주의 손녀잖아. 그녀가 날 보러 왔다고? 왜?’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상황. 하지만 놀랄 일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크큭, 네년은 그냥 죽이지 않으마. 기대하거라. 그리고…….”
백면귀의 웃던 얼굴이 싸늘히 식는다.
그리고 그의 망막에 한 사내의 얼굴이 눈에 담겼다.
도호는 선유.
이름은 장이윤.
장이서의 친동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