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09)
첩자의 마교생활-209화(209/350)
209.
#창귀신
장이서는 고개를 휘휘 저어 불순한 생각을 털어보냈다. 걱정할 게 없어서 마교 걱정이라니. 그것도 애들 앞에서. 정신 차리자.
“허리들 펴. 인사받자고 한 일 아니니까. 그보다 대체 혈교한테는 어쩌다 쫓기게 된 거야?”
화제를 바꾸며 인근에 놓인 암석으로 가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선유와 제갈소미도 가까이 다가와 사정을 밝혔다.
“사천에서 우연히 살해당한 이를 발견했고, 그때 복면인들에게 습격당한 적이 있습니다. 선유 소협께서 나서주셔서 위기를 넘겼고, 그 뒤로는 마주친 적이 없었어요. 그래도 혹 뒤를 밟힐까 싶어 인피면구와 복장도 여러 차례 바꾸었는데 어떻게 알고 귀신처럼 찾아온 건지…….”
제갈소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럴 거다. 제갈상이 부각주로 임명할 정도라면 이미 제갈가의 방대한 지식이 머리에 담겨 있을 터.
그녀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조처를 했을 거다.
“아까 그자가 말하기로 물건을 가져왔다던데. 그건 뭐지?”
아. 제갈소미가 선유를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곤, 품에서 서책 한 권을 꺼내 건넸다.
“이건…….”
“능가경이라는 불가의 경전입니다. 그런데 범어로 되어 있어 자세한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어요. 돌아가서 해석하려면 못해도 수일은……. 대협?”
제갈소미는 장이서의 표정이 급변하는 것을 살피곤, 의문을 담아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저 표정은? 심지어 눈동자가 위에서 아래로 쓸려 내려가는 게 꼭 읽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확실히 경전은 맞네.”
“서, 설마. 그걸 바로 푸셨다고요?!”
스륵, 스륵.
장이서는 별말 없이 빠르게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심지어 제갈소미는 천하제일뇌 제갈상의 손녀이자 지화로 불리는 후기지수. 다른 건 몰라도 무언가를 풀어내는 건 자신이 있었다.
한데 자신도 수일은 책 펴고 앉아 주야장천 해야 할 일을 103호가 눈앞에서 그림을 보듯 술술 넘기고 있으니 경악할 수밖에.
‘이게 암각 최고의 요원…….’
무공 실력부터 두뇌까지. 정말 혀를 내두르는 자다. 활동지가 중원이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제갈소미가 제 발 저린 듯 화들짝 놀라곤 망상을 지워냈다. 그사이 장이서는 마지막 장까지 훑고는 침음과 함께 책을 덮었다.
“무슨 내용인지 전부 아시겠어요……?”
침을 꼴깍 삼키고 물었다. 만일 정말 그렇다면 그는 암각 최고가 아니라 중원 최고다.
장이서가 담담히 답했다.
“아니.”
“역시! 에? 아, 예. 역시…… 그렇죠? 하하…….”
몰랐구나. 제갈소미가 시원섭섭한 표정으로 웃는다. 선유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그가 대단하다고 이걸 앉은 자리에서 어찌 다 해독할 수 있겠는가.
하나 장이서가 아니라는 말은 이들의 기준과는 큰 괴리가 있었다.
‘분명 이 능가경은 부처가 대혜선사의 물음에 답하는 경전이 맞다.’
그는 구규지체를 타고난 천재 중의 천재.
겉으로 드러난 내용은 전부 해독을 마친 게 맞았다.
‘한데 뭔가 이상해. 내용 중 일부 불필요한 글자들이 들어가 있다고 느껴지는 건 착각인가.’
그랬다. 장이서는 내용을 넘어선 그 속에 있는 다른 무언가를 느낀 것이었다.
“그럼…… 이만 돌려주시겠어요?”
제갈소미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손을 내밀었다. 하나 장이서는 능가경을 주지 않고 곧장 제 품에 넣었다.
“저, 저기…… 103호?”
강도야? 제갈소미가 당황한다. 하나 장이서는 돌려줄 마음이 일절 없었다.
해독에 대한 탐구심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너희는 지금 당장 여기서 북쪽으로 내려가. 그럼 중원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다.”
“예?”
“이 책에 천리미향(千里迷香)이 뿌려져 있다.”
천리미향! 말 그대로 천 리까지 향이 남는다는 추적용 향약.
일반인은 그 냄새를 맡을 수 없으나 반응하는 약을 취하고, 훈련을 거듭하면 지척까지도 추적이 가능했다.
“그, 그럴 리가요! 목서(木犀)의 향이라면 그건 제가 분명히 확인을…….”
“정파에서 흔히 쓰이는 목서가 아니니까.”
“그럼…….”
정확히는 마교. 아니, 신강과 서장의 일부 지역에서만 자라는 혈목서(血木犀)라는 희소한 독 나무에서 추출한 향이다.
불사독을 수련할 때 취하였던 독 중 하나.
“아마 지금쯤 혈교에서 이곳으로 오고 있을 거다.”
“그, 그런!”
“가서 각주한테 똑똑히 전해. 혈교는 이미 천하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고. 무림맹이라고 절대 방심하지 말라고.”
“그럴 리가 없어요!”
“놈들은 수십 년 동안 마교 뇌옥에 숨어 칼을 갈고 있었다. 중원이라면 더 쉽겠지.”
“……!”
제갈소미와 선유의 눈이 부릅떠졌다. 수십 년이라니.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이건 초비상 사태다. 어쩌면 무림맹 전체를 조사해야 할지도 모를 일.
“놈들이 뭘 노리고 있는진 모르지만, 이 능가경의 원래 주인과 연관이 있을 거다. 그자를 찾아.”
“아까 분명 왕야라고 했어요.”
제갈소미의 말에 장이서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맞다. 아까 푸른 머리의 혈인이 했던 말 중엔 분명 왕야라는 말이 있었다.
정확히 누굴 지칭하는진 모르지만, 번왕이든 친왕이든 그 수가 많진 않을 터.
“그의 주변을 파다 보면 분명 수상한 점이 나올 거다. 절대 조심해야 한다. 위험한 자들이니까.”
그에게서 진심 어린 걱정이 느껴졌다. 선배로서 후배를 챙기는 마음이리라. 그 담백하면서도 따뜻한 진심이 너무나 좋다.
“네. 그럴게요. 꼭 조심히 알아볼게요. 그럼 대협께선…….”
제갈소미는 더 길게 말을 잇지 못했다. 장이서의 표정에서 그의 결연한 의지를 보았기 때문.
본인 스스로 적들의 미끼가 되겠다는 거다.
“……반가웠다.”
미소 짓는 장이서의 함축적 인사에 두 사람은 알 수 없는 울림을 느꼈다.
특히 선유는 왜인지 모르지만, 눈물이 고일 뻔했다. 애써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면 참기 힘들 만큼.
‘왜?’
그런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아 몇 번을 되물었다. 하지만 끝내 명확한 답은 찾지 못했다.
‘형…….’
그냥 막연하게 형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는 그리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딘가에 제 형도 임무를 받아 저렇게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동병상련의 마음 말이다.
“대협의 존성대명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언제고 은혜를 꼭 갚고 싶습니다.”
“선유 소협! 그건 요원께 큰 실례……!”
제갈소미가 선유의 입을 막아서려는 그때. 장이서가 괜찮다며 웃고는 어깨를 툭툭 쳐주곤 말했다.
“다음에. 다음에 다시 만나면 그때 얘기해 주지.”
“……알겠습니다.”
선유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 그런 동생을 보며 장이서는 저릿한 마음을 숨겼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임무를 마치고 그날이 온다면……. 그때는 꼭 형이 먼저 인사하마. 잘 자라주어 고맙다, 윤아.’
지금으로선 얼굴조차 제대로 보여줄 수 없는 처지이지만, 언젠간 꼭 다정히 웃으며 안아주리라.
“오느라 고생 많았다. 놈들이 오기 전에…….”
그때였다. 삐이이이이-! 아랫목에서 호각 소리가 길게 울렸다.
이어 어수선하게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
세 사람의 얼굴이 하얘진다.
놈들이다.
장이서가 어서 가라며 다급히 외치려는 순간.
“너희들……?”
두 사람은 두 발을 땅에 굳건히 박고는 장이서를 향해 척! 진심을 담아 포권을 취했다.
“언젠가 중원에서 뵐 수 있는 날이 꼭 오기를 바랍니다.”
“오늘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언제고 화산을 찾아주십시오.”
끝까지……. 장이서는 다급했던 행동을 멈추곤 둘을 지그시 살폈다. 그러곤 얕게 숨을 뱉은 뒤 척! 마주 포권을 취했다.
그리고 다정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또 보자.”
라고.
그리고…….
파직!
벼락처럼 적들이 올라오는 곳을 향해 사라져 버렸다.
“크악-!”
“컥!”
이어 쉼 없이 터져 나오는 비명이 산세를 뒤흔들었다.
장이서다.
그가 적들과 조우한 것이다. 저희를 살리기 위해.
두 사람은 입술을 질끈 물고 북쪽으로 몸을 날렸다.
‘부디 무사하시기를.’
어느 날 갑자기 저희 마음에 불화살처럼 불쑥 들어온 103호.
그를 그리며.
*
한편 숲속에 들어선 장이서는 단숨에 복면인 셋을 절명시키고, 빠르게 적진을 살폈다.
‘아까는 선발대고, 이놈들이 진짜였구나!’
딱 봐도 모여 있는 수가 달랐다.
붉은 복면을 쓴 혈인들만 오십여 명이고, 이들의 수장은…….
“백면귀(百面鬼)는 어디 있지?”
갑자기 들려온 매혹적인 목소리와 함께 쾅! 섬찟한 빛줄기가 측면을 강타했다.
장이서는 십여 걸음을 밀려나 나무에 등을 부딪친 채 털썩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런…….”
전신이 저릿할 만큼의 고통. 몸을 돌려 반사적으로 단도를 휘둘러 막지 않았다면 즉사할 뻔했다.
그만큼 엄청난 위력과 속도.
심지어 막아낸 단도는 완전히 부서져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오랫동안 제 옆을 지켜준 녀석이 인사도 없이.
“어, 막았어?”
고개를 들자 휘리릭! 흑색 창을 거꾸로 돌려 역수(逆手)로 쥔 여인이 보였다.
나이는 많이 쳐줘 봐야 이립(30살).
혈교답지 않게 올려 묶은 흑발에 이목구비가 또렷한 미인이다. 복장은 가렸음에도 가려지지 않는 흑색 무복.
사해령이 수려한 미모에 거력을 숨긴 느낌이라면, 이 여인은 그냥 강대함 속에 아름다움이 있었다.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느낌.
“너도 혈교인가?”
“후후, 흑혈의 적아린이다. 본교에서는 창귀신(槍鬼神)이라 불리기도 하지. 뭐 간혹 기린아라고도 하는데 그건 영 별로야. 남사스럽잖아.”
이리 입이 가벼운 걸 보니 확실히 예사 인물은 아니구나. 평범한 척하는 게 더 미쳐 보인달까.
‘하지만 실력은 진짜다.’
아직도 주먹이 쥐어지지 않을 만큼 저릿했다. 엄청난 힘. 그 말인즉 이미 남녀의 한계는 한참 전에 초월한 고수라는 얘기.
긴장한 채 주변을 살피자 이미 복면인들이 주변을 포위했다.
“아, 그리 경계할 것 없어. 본교 사람들은 교양도 없이 피부터 보려 하지만 난 다르거든.”
“그래 보인다.”
“정말로? 그렇게 말해주는 녀석은 또 처음인데……. 어쩌면 우리 대화가 잘 통하겠어.”
“그건 아니고. 내가 똥 묻은 개랑은 뒹굴어도, 혈교 놈들하고는 겸상 안 하거든. 두드러기가 나서.”
“후후, 우리가 뭐 어때서. 어차피 피 묻은 건 피차일반 아닌가. 그게 싫었으면 검 내려놓고 곡괭이 들었어야지.”
“뭘 들었느냐가 아니라 왜 들었느냐가 중요한 거다. 너희는 곡괭이를 들어도 아무나 찍어 죽일 놈들이잖아.”
“생각보다 우리를 너무 잘 아는데? 너, 마음에 든다.”
역시 쟤도 미친 게 확실하다. 하긴 혈교에 정상이 있겠는가. 어느새 떨리던 손은 진정되었다. 다시금 주먹을 꽉 쥐고 생각했다.
이쯤이면 제갈소미와 윤이도 빠져나갔을 터.
도주할 궁리를 하자 적아린도 낌새를 느꼈는지, 입꼬리를 말아 올리곤 서서히 다가온다.
“오랜만에 마음에 들어 길게 대화라도 나누고 싶지만, 알다시피 내가 임무 중이라. 다시 묻지. 백면귀는 어디 있지?”
“누군지도 모르는 놈을 내가 어떻게…….”
장이서가 뒷걸음질 치려 고개를 돌리는 순간.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바로 눈앞의 거목이 뻥 뚫려버렸다.
심지어 그게 시작이지 그 뒤로도 십여 그루의 나무가 먼발치까지 연달아 뚫려버렸다.
쿠구구구궁!
이내 중심을 못 잡고 고꾸라지는 나무들.
‘이게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