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11)
첩자의 마교생활-211화(211/350)
211.
#달마가 남긴 마공?
읽는 내내 기분이 오묘했다. 자꾸 문장 사이마다 괴리가 느껴지는 글자가 하나씩 끼어 있었기 때문.
가령 이런 것이었다.
【나를 부처라 하고, 모든 여래‘심’ 또한 부처라 한다. 명호는 차별이 없으니 이는 글자의 평등‘연’이다.】
얼핏 보면 무심코 넘어갈 수도 있다. 오래된 고서이기도 했고, 난해한 경전이다.
그러니 모르는 말이 있을 수도 있다.
하나 이를 따로 빼 나열해 보면 ‘심연’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진다. 이와 같은 것이 꽤 많았다.
‘무엇보다도 그저 오래된 경전일 뿐이라면 혈교가 애타게 찾을 이유가 없지.’
결국 장이서는 다시금 책을 펼치고 조약돌로 한 글자씩 벽에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일각, 이각, 한 시진.
어느덧 어둠마저 익숙해질 만큼 시간이 지나자 벽면엔 문장이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심연 끝의 규룡(虯龍)이 빛을 찾아 오르는구나. 기나긴 여정에 성년이 되고, 새끼를 품으니. 배가 불러 가슴으로 낳았노라. 노년에 다다라 숨이 차고, 눈이 멀어 길을 잃었을 때. 비로소 뜻이 닿아 빛을 마주하니, 그곳이 하늘이었도다.】
얼핏 보면 난해한 시 같기도 하고, 또 어린아이가 장난으로 써놓은 낙서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장이서는 감히 이를 허투루 볼 수가 없었다.
아니, 심장이 벌렁거리고, 손이 부르르 떨렸다.
그 이유는 바로 지금 쓰고 있는 마지막 글귀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 경전을 필사하고, 그사이에 낙서를 써놓은 어린아이일지도 모르는 자.
【남천능가경(南天楞伽經), 보리달마(菩提達磨).】
툭. 쥐고 있던 조약돌이 떨어지고, 장이서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달마(達磨).
정파의 조사이자 그 존재만으로도 모든 강호인의 가슴을 들썩이게 할 위대한 이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묻는다고 답이 나오진 않는다. 가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장이서는 본능적으로 확신했다. 이 오래된 경전은 달마의 원본이 확실하다는 것을.
다시금 벽면을 살폈다. 휘갈겨진 문장. 만일 이게 정말 달마가 남긴 것이라면, 이건 어린아이의 한낱 낙서가 아니다.
“무공이다……. 그것도 남천능가경이라는 초문(初聞)의 무공 구결!”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혈교가 수면 위로 나타나 이 악물고 찾아 헤매는 이유.
이제야 알겠다. 그건 바로 이 능가경이 달마 조사께서 남긴 무가지보(無價之寶)이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말했다.
절벽 아래 동굴은 기연을 찾는 곳이라고.
바로 지금, 이 순간처럼 말이다.
***
한편 장이서가 능가경의 비밀을 알아챈 그 시각.
혈교의 가면이자 흉신팔주의 수장인 일흉의 귀에도 소식이 흘러들었다.
“능가경을 빼앗겨?!”
창 하나 없이 온통 새카만 흑지로 채워진 어두컴컴한 방. 피눈물 흘리는 불상이 즐비한 이곳에 붉은 악귀의 가면을 쓴 그가 음성을 터트렸다.
“그렇습니다.”
이에 보고를 올리러 온 수하가 노예처럼 벌벌 떨면서 납작 엎드려 고했다.
그의 용모가 조금 특이했는데 모든 것이 새하얬다. 머리카락도, 눈썹도, 심지어 눈동자마저도 하얬다. 그래서인가 붉은 힘줄이 유독 더 도드라진다.
“어떤 멍청이가 그걸 가져갔다는 것이냐.”
“그게…… 정확하진 않으나 구파일방 쪽에서 움직인 듯합니다. 무후사에 알고 온 것은 아닌 듯하고, 근처를 지나다 발견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연히 가져갔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수하는 보고를 다 올린 후에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일흉이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우연이다. 늘 우연의 다른 이름을 무능이라 말하곤 했으니.
한데.
“흠…….”
예상외로 그는 턱을 괸 채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괜……찮으신 겁니까?”
“네놈은 능가경이 무엇인지 아느냐.”
말해준 적이 없으니 당연히 모를 수밖에.
“달마가 남긴 경전 아니옵니까.”
하하하! 일흉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맞다.”
근데 왜 웃지?
“또한 실전되었다고 알려진 그의 심법이기도 하지.”
“다, 달마의 심법 말입니까?!”
수하가 너무 놀라 고개를 번쩍 들고 되물었다.
“죄, 죄송합니다.”
그러곤 급히 사과를 건넨다. 둘의 관계를 알 만도 하다.
어쨌든 일흉이 화가 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본래 능가경은 소림사 장경각에 고이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수백 년 전, 마교가 침범했을 때 빼앗기고 말았지. 무공서들은 용케 챙겨 달아났지만, 설마 경전에 심법이 담겨 있을 줄은 몰랐던 거다.”
“그럼 그 능가경은…….”
“그래. 본래 마교에서 지니고 있던 것이다. 하나 혈교와 분리되면서 능가경도 혈교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지.”
수하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 그렇다면 지금 그 능가경을 세상에 풀어놓은 것이……!”
“맞다. 능가경은 우리가 풀어놓은 것이다. 그것도 원본 그대로.”
경악에 빠져버렸다. 대체 왜. 그만큼 귀한 무가지보를 중원에 풀었단 말인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궁금한 것이냐.”
일흉의 물음에 수하가 침을 삼키곤 고개를 휘저었다.
“아, 아닙니다. 어디 감히 제가 주인님의 생각을……. 주제넘은 짓입니다.”
“되었다. 짐승보다 못한 네놈의 탐욕이 여기까지 들린다. 하나 아서거라. 능가경은 아무나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그가 흉신팔주에게도 했던 말이다.
“이상하지 않으냐. 달마가 어째서 일언반구도 없이 능가경에 자신의 심법을 숨겨 놓았는지.”
이상하다. 대체 왜 그런 번거로운 짓을 한단 말인가. 제자들을 골려주기 위해? 그럴 리가.
답은 간단했다.
“그만큼 심오하고 난해하기 때문이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달마의 심법은 익히는 순간 살의에 미친 광인이 되거나 주화입마에 빠져 죽어버리는 최악의 마공이다.”
“원류심법은 정파의 근간이 아닙니까! 한데 어째서…….”
“믿기지 않으냐?”
솔직히 떨떠름한 마음이 좀 들었다. 한데.
“그 능가경이 바로 지금 혈교의 근간이 된 혈천마뢰공(血天魔賴功)이라면 믿겠느냐?”
“무, 무슨!”
수하의 입이 떡 벌어졌다. 혈천마뢰공은 혈교의 상징과도 같은 심법. 한데 그게 달마의 원류심법이라니…….
“그만큼 능가경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수없는 갈래로 나뉘는 사이한 심법이다. 능가(楞伽)의 참뜻이 무엇인 줄 아느냐? 오를 수 없는 태산의 이름이오, 금역에 자리한 나라의 이름이고, 정상에 놓인 아수라의 성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불가도난입(不可到難入). 그만큼 도달하기 어렵고, 들어서기 어렵다는 뜻이지. 이것이 바로 달마가 심법을 숨겨두고 제자들에게 알리지 않은 이유이다.”
충격 그 자체. 이런 비사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일흉의 말은 일말의 거짓 없는 진실이었다.
이를 가장 먼저 발견한 마교와 혈교가 능가경을 수없이 연구했지만, 제대로 익힌 자는 여태 단 한 명도 없었다.
시도한 이들 절반이 살의에 빠진 광인이 되었고, 절반은 주화입마로 죽어버렸다.
그나마 혈천마뢰공으로 발전한 것도 시행착오 끝에 구결을 바꿔 부작용을 줄인 것.
“능가경은 그런 것이다. 단 한 번의 잘못된 시도도 절대 용서하지 않는 악귀의 무공이지.”
수하는 너무 놀라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결국 능가경은 독이라는 얘기가 아닌가.
그럼 이걸 중원에 푼 이유는…….
“아무리 오랜 세월 수양한 고승일지라도 능가경을 익히는 순간 절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부작용을 견디지 못하고 미쳐버리고 말 테니. 그것이 설령 신주오절 중 하나인 남승(南僧)일지라도 말이다!”
“헉!”
수하는 이제야 사천 대업의 의미를 깨달았다. 이는 비단 노왕야를 없애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죽음으로 능가경의 존재를 만천하에 알리고, 천하가 들썩일 때!
“능가경은 어차피 정파로 넘어갔어야 할 일. 설령 되찾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필사본이 있으니.”
“그럼 모든 게 소림에게 넘기려고…….”
“그래. 정파의 태두인 소림은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바로 저들의 조사인 달마로 인해!”
하하하하하!
일흉의 광소가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런 그의 웃음이 무색하게도 가장 먼저 마(魔)의 능가경을 접한 이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구규지체의 천재 장이서였다.
*
“남천능가경이라…….”
장이서는 여전히 처음 장소에서 제자리걸음이었다. 이유는 당연히 벽에 새겨진 구결.
“이건 심법이 분명해.”
거침없이 단언한다.
【심연 끝의 규룡(虯龍)이 빛을 찾아 오르는구나. 기나긴 여정에 성년이 되고, 새끼를 품으니. 배가 불러 가슴으로 낳았노라.】
심연은 깊은 못. 쉽게 말해 내면을 뜻하고, 규룡은 곧 기의 움직임.
빛은 하늘에 머물러 있으니, 이를 찾아 오른다는 건 엉덩이에 자리한 회음혈부터 생식의 기관과 밀접한 곡골혈. 태아를 품는 복부인 신궐혈. 나아가 가슴에 달하는 전중혈까지.
임맥을 통해 내기를 끌어올리라는 뜻으로 유추할 수 있었다.
또한 교룡은 머나먼 하늘에서 심연으로 떨어진 빛을 따라 움직인 것이니, 그 내기 또한 태양을 뜻하는 양기를 기반으로 하라는 뜻처럼 보여졌다.
쉽게 말해 자연의 수많은 기운 중 양기를 흡수해 이를 순서에 맞게 운기를 하면 된다는 얘기.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 구결이었다.
【노년에 다다라 숨이 차고, 눈이 멀어 길을 잃었을 때. 비로소 뜻이 닿아 빛을 마주하니, 그곳이 하늘이었도다.】
숨이 차다는 건 식도에 자리한 염천혈을 떠올릴 수 있다. 그 또한 임맥에 해당될 테니.
하지만 눈이 멀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치에 맞지 않았다.
“눈을 상징하는 건 미간에 있는 인당혈이다. 하지만 그곳은 독맥과 임맥을 비롯한 십사경맥(十四經脈)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경외기혈.”
한마디로 교룡이 임맥을 타고 잘 가다가 갑자기 샛길로 빠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하늘을 코앞에 두고서 말이다.
물론 고민할 것도 없이 일단 해보면 된다.
그런데.
“이상해. 그것도 아주 많이. 분명 정도의 조사이신 달마께서 남긴 심법이다. 한데 흐름이 꼭 사마외도나 익힐 법한 괴이한 마공 같잖아.”
누구보다 공명정대하고, 대기만성을 지향해야 할 정도의 우상이 이런 괴공을 남겼을까.
아니, 그럴 리가.
아무리 봐도 이 길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깊게 들었다.
마치 이대로 익히면 정말 마공이 되어버릴 것만 같은 기분.
“우선 이것부터 처리하자.”
장이서는 곧장 고개를 떨궜다. 그러자 쓸쓸히 바닥에 던져진 경전이 눈에 들어온다.
달마의 무공이 담긴 절세의 비급.
“도리를 따르자면 어떻게든 이 서책을 소림에 돌려주는 것이 옳다…….”
하나 아쉽게도 여기엔 천리미향이 묻어 있다.
장이서는 경전을 앞에 두고 세 걸음을 물러나 공손히 삼배를 올렸다.
“조사께서 남기신 위대한 유산은 제가 반드시 잘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곤 심심한 사과와 함께 화르륵!
능가경을 양손에 쥐고 삼매진화(三昧眞火)로 불태웠다.
그렇게 이름 없는 동굴 속에서 소림의 천년 유물이 잿더미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