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12)
첩자의 마교생활-212화(212/350)
212.
#가라앉다
“일단 빠져나가는 게 먼저다. 내용은 모두 암기하였으니 나중에 필사라도 해서 주면 돼.”
어차피 다른 묘수는 없었다. 고작 고서에 목숨을 바칠 수는 없는 일.
우우웅!
장이서의 손바닥에서 내기가 휘몰아치고, 이내 거대한 구체가 선회하기 시작했다.
『축뢰환(築雷丸)』
그리고 구결이 적힌 벽에다 내다 꽂는 순간.
꽈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벽의 일면이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움푹 파여 버렸다. 이로써 능가경은 사라지고, 장이서의 머릿속에만 남겨졌다.
이제 남은 건 탈출뿐이다.
***
한편 장이서가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할 무렵.
머리 위에 있던 적아린은 만반의 준비를 마쳐놓고 있었다.
“출구가 여기뿐인 게 확실하더냐.”
“예!”
메기 아가리처럼 벌려진 커다란 동굴 어귀.
그녀가 먼저 출입구를 찾아낸 것이다. 어디 숨든 지옥까지 찾아낸다는 혈교의 집행자다운 면모.
적아린은 다 잡은 물고기를 관람하듯 동굴을 살폈다.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오랜만에 절 여러 차례 물 먹인 상대.
오히려 이리 끝난다는 게 아쉬운 마음마저 든다.
한데…….
“천리미향이 느껴지질 않습니다.”
“뭐?”
“아무래도 물건을 태워버린 것 같습니다.”
그녀의 마음을 알아챈 것일까. 이번에도 상대는 예상을 비껴갔다.
“하…… 하하하!”
터져 나오는 웃음. 지금껏 수많은 이를 처리해 왔지만, 이런 자는 없었다.
자신이 잡고자 하면 잡히는 것이고, 죽이고자 하면 죽어야 하는 거였다.
그런데 이자는 다르다.
‘백면귀를 없앤 것도 모자라 내 귀영부동술을 보란 듯이 능욕하고. 또 쫓아오는 날 기다렸다가 이용해 먹는 대범함까지 보였다. 거기다 이젠 물건마저 없애버렸다?’
그럼 뭣 하러 도망을 다녔단 말인가. 애초에 버렸으면 될 일을.
모르겠다. 하나도 모르겠다. 이놈의 속내를. 그래서 즐거웠다.
적아린의 광대가 승천하고, 희열감이 가득 채워졌다.
“후후후. 그물에 갇히고도 이토록 팔딱거리며 빠져나가는 놈은 내 생애 처음이다. 대체 누구지, 너는?”
적아린의 눈에서 석양빛 광채가 번뜩였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과 달리 상황은 그리 썩 좋진 않았다.
천리미향이 사라졌다는 건 능가경 원본이 사라졌다는 것.
이 말인즉슨 임무의 실패를 의미했다.
이는 기린아로 통하는 적아린이 강등될 수도 있는 뼈아픈 실책.
“필사본이 있으니 대업엔 지장 없겠지.”
하지만 그녀는 흑혈에서도 괴짜 중의 괴짜. 이미 머릿속에 임무 따위는 없었다.
그저 처음으로 제게 실패를 안겨준 장이서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을 뿐.
물론 대우는 확실하게 해줄 생각이었다.
“진천뢰를 준비해라.”
적아린의 지시에 수하들이 술렁였다.
“지금부터 두 시진이 지나면 입구를 무너뜨려라. 내가 나오든, 나오지 못하든. 반드시.”
“예, 예!”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저 안에 묻고 나오겠다는 얘기.
‘궁금하지 않나. 자네가 두 시진 안에 내 손에 먼저 죽을지. 아니면 이곳에 우리가 같이 묻힐지. 하하하!’
물론 어느 쪽도 장이서가 살아날 방도는 없겠지만 말이다.
***
적아린이 동굴로 들어선 그 시각.
장이서도 출입구를 찾아 부단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콰과과과과-!
그러다 어느 순간 시원하게 울리는 물소리에 길을 멈추고 전방을 살폈다.
“지하에 이리 거대한 폭포라니.”
말 그대로였다.
반경 15장(약 50m)에 달하는 둥그런 낭떠러지가 앞에 있고, 저 위에서는 폭포수가 시원하게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아래를 살피자 한참이나 먼 바닥 끝에는 무저갱처럼 어두운 호수가 자리했다.
“잘못 발 헛디뎠다간 영영 빠져나오지도 못하겠군.”
곤륜산맥은 발 닿은 곳보다 닿지 않은 곳이 팔 할이라더니.
그야말로 끝을 알 수 없는 명산이다.
“출구는 위쪽인가?”
마음을 다잡고 길목을 살피자, 여기서부터 나선형으로 난간 테두리가 크게 이어져 있었다.
내려가는 길은 없고, 오르막길뿐이니. 분명 저 위로 가면 출구가 나올 것이다.
“벌써 노을이 지는가 보군.”
걸어 오르다 보니 폭포수 사이로 붉은 빛살이 언뜻 보였다.
고개를 내밀어 위를 올려다보자 천장의 미세한 틈으로 빛이 떨어지고 있던 것.
“꼭 내가 교룡이 된 기분이네.”
실없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새 나왔다.
다시 또 걷고, 또 걷고.
어느새 정상까지 서너 바퀴만을 남겨놓았다. 저 끝까지 올라가면 분명 나가는 길이 있으리라.
석양빛도 사라지고 동굴 안은 어둠이 짙게 자리했다.
솨아아아아!
그 때문인지 시원하게 울리던 폭포수 소리도 어딘가 더 음산해졌다. 아니, 소리뿐만 아니라 등골까지 서늘하다.
“설마…….”
오싹한 기분을 느끼며 눈매를 와락 좁혔다. 그러자 30장(100m) 너머 건너편에 물줄기 사이로 자그마한 인형이 귀신처럼 흐릿하게 보였다.
착각인가. 너무 어두워 확신할 수가 없다. 바로 그때 물줄기가 미약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장이서는 분명히 보았다.
어떤 여인이 이쪽을 향해 손 흔들며 웃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파앗!
자릴 박차고 길을 따라 빛살처럼 쏘아져 내려오는 모습을 말이다!
“적아린!”
그녀다. 눈이 부릅떠지고, 고개가 휙 돌아간다. 느리게 흘러가던 시간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진다.
맞은편에 있던 적아린은 벌써 절반을 내려와 있었다.
이젠 인상을 찌푸리지 않아도 훤히 보일 정도. 이대로면 숨 몇 번 돌리기도 전에 잡힌다.
“빌어먹을.”
뒤돌아 내려가야 하나? 아니. 그건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니다. 어차피 가봤자 막힌 길. 차라리…….
고개가 위로 들려지고, 이내 다시 앞을 살폈다.
“하하하하! 잘 있었어?!”
붉은 내기가 가득 담긴 창을 시원하게 옆으로 뻗고 달려오는 여인.
어둠처럼 진한 흑발에 흑의.
창귀신 적아린이다.
“이 정도면 집착 아니냐?”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은데? 네가 좋은 거 같아.”
“미친!”
“하하하하하!”
여전히 방정맞은 목소리. 하지만 그녀의 손에서 쏘아지는 흑창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천살창법(天殺槍法) 용궐(龍獗)』
쩌어엉!
내지르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쏘아지는 붉은 창기!
하나 이 정도는 이미 예상한바.
파직!
장이서는 옆의 벽을 박차고 이를 흘려보낸 채 내달렸다.
“이번엔 피하지 않겠다는 건가?! 그럼 나야 좋지! 우리 제대로 불태워보자고!”
적아린은 다가오는 장이서에게 호탕하게 웃어주곤, 바닥에 쾅! 진각을 꽂았다.
그러자 부서진 돌 부스러기가 눈높이까지 솟아오르고, 적아린이 흑창을 핑그르르 회전하자.
파파파파팟!
수많은 돌덩이가 장이서를 향해 전방위적으로 날아들었다.
피하기엔 너무 좁은 길목!
한데 그 순간.
“음?!”
장이서가 대뜸 낭떠러지로 방향을 틀더니, 팍! 폭포수를 뚫고 몸을 던졌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설마 자결이라도 한 것인가?
아니, 그럴 리가.
『뇌전법(雷轉法) 천마기(天魔氣) 백뢰(白雷)』
장이서는 추락하는 순간 몸을 돌려 난간을 향해 백뢰를 쏘아냈다. 이내 날이 콱! 박히고 관성의 힘으로 크게 회전하는 순간. 위층으로 높이 날아올랐다.
척! 그리고 다시 질주.
“하하하하! 또 당한 거야? 같은 수법에?”
동시에 이를 깨달은 적아린은 광소와 함께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새 또 너를 얕봤네.”
어리석었던 자신을 규탄한다. 그리 여유를 부리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들어왔거늘. 이 와중에 또 상대에게 빠져들어 버렸다.
“그래서 너무 아까워. 우린 여기 말고, 근사한 곳에서 봤어야 해. 그럼 더 뜨거웠을 텐데.”
휘리릭, 척!
적아린이 흑창을 짧게 쥐곤, 두 다리를 살짝 벌린 채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이내 쫙 펼친 왼손을 하늘로 번쩍 들어 올리자, 몸 안에 있는 거대한 진기가 들끓기 시작한다.
“원래 아무한테나 보여주는 게 아닌데. 특별히 너니까 보여줄게. 염라한테 가서 자랑해도 좋아. 그만한 초식이니.”
우우우웅!
옷자락이 너풀거리고, 그녀의 육신이 붉은 기운으로 가득 채워진다.
구구구구!
이내 사방이 진동하기 시작하고, 그녀의 눈에서 붉은빛 광채가 쏘아지는 그 순간.
『천살창법(天殺槍法) 대천붕괴(大天崩壞)』
하늘로 뻗쳐 올려지는 창에서 응축된 기운이 거대한 버섯구름을 만들어내며 승천했다!
콰과과과과-!
그러자 닿는 것마다 전부 가루로 만들어버리는 막강한 위력!
심지어 그 범위가 무려 10장(30m)이다.
아예 동굴 자체를 무너뜨리겠다는 것.
당연히 위에서 발 빠르게 내달리던 장이서에게도 그 여파가 들이닥쳤다.
“이런 미친년!”
욕지거리가 절로 뱉어졌다. 마치 발밑에서 태양이 솟아오르는 듯한 기분. 한마디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기적인 힘이다.
“하하하하!”
그렇게 적아린의 미친 웃음소리와 함께 파스스스! 발 디딜 공간이 먼지처럼 사라지고, 장이서는 적광에 휩싸인 채…….
“아아악!”
처참한 비명만을 남긴 채 심연 끝자락으로 추락했다.
하늘을 목전에 두고서.
***
한편 동굴 밖에선 끊임없이 울리는 굉음과 흔들리는 지축 탓에 혼비백산했다.
오죽하면 저들이 설치한 진천뢰가 터진 줄 알았다.
그만큼 화산이 폭발한 것처럼 태산이 진동했다.
“대체 이게 무슨…….”
붉은 복면인들은 서로를 살피며 눈으로 의견을 물었다. 하나 그 나물에 그 밥. 서로 본다고 뭐가 있겠는가.
그저 적아린이 지시한 대로 두 시진을 기다렸다가 입구만 봉쇄하면 끝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준비해라!”
누군가의 외침에 복면인들이 각자 설치한 진천뢰로 가서 화섭자(火攝子)에 불을 붙였다.
이내 신호만을 기다리고 있던 그때.
“멈추어라!”
저벅, 저벅.
동굴 안에서 걸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복면인들이 스릉! 칼을 뽑아 들고, 경계하던 순간.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흑발에 흑의. 흑창을 가진 매혹적인 여인.
창귀신 적아린이다!
복면인들은 일시에 칼을 거두고 고개를 숙였다.
어깨 위로 연기처럼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걸 봐선 한껏 젖었던 모양.
하나 완전히 밖으로 나왔을 땐, 물기 하나 없는 상태였다. 마치 안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즐거웠어.”
그러곤 씨익 웃으며 흘깃 뒤를 살핀 뒤, 미련 없이 걸어 나갔다.
“묻어라.”
콰과과과광!
이어 진천뢰가 터지며 폭발하는 출입구.
그렇게 동굴은 자취를 감추었다.
영원히.
***
머릿속에 이명이 울리고, 시야는 흐릿했다.
죽은 건가? 아니, 아직. 하지만 죽어가고 있는 건 확실했다.
적아린의 기공파에 휩쓸렸고, 그 순간 천마기에 불사독마공까지 모든 공력을 끌어 올려 방호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피투성이가 된 채 속절없이 추락.
다행히 그 끝이 단단한 바닥이 아니라 폭포수가 고인 물이었던 터라 운이 따르는가 싶었지만…….
‘정말 심연이었구나!’
하필 들어선 물속이 그 끝을 짐작하기도 어려울 만큼 깊었다.
물론 헤엄쳐서 나오면 된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마저 불가능했다.
이유는 세 가지.
첫째. 빌어먹을 적아린에게 당한 상처가 위중했다. 내공은 고갈 났고, 육신은 만신창이.
둘째. 여기 묻기라도 하려는 것인지, 수면 위로 거대한 암석들이 유성처럼 쉴 새 없이 떨어져 내렸다.
이 상태로 올라간다면 저 돌무더기에 맞아 죽을 가능성이 십중팔구다.
하지만 일 할의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올라갈 수 없는 진짜 이유는 마지막 셋째.
몸이 의지와 상관없이 밑바닥으로 맹렬히 가라앉고 있기 때문이었다.
[쿠오오오오오-!]저 심연 밑바닥에서 뱀인지, 용인지 알 수 없는 거대한 괴수가 아가리를 떡 벌린 채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었으니.
‘정말…… 교룡이 나타나면 어쩌자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