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13)
첩자의 마교생활-213화(213/350)
213.
#빛줄기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위에선 커다란 암석들이 유성우처럼 떨어지고, 밑에선 교룡처럼 생긴 괴물이 아가리를 떡 벌린 채 빨아들이고 있다니.
게다가 용머리라고는 해도 전설 속의 상서로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우둘투둘 나 있는 섬찟한 이빨에 뱀같이 무서운 눈만 봐도 그냥 굶주린 이무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대화는커녕 누가 봐도 잡아먹겠다는 기세.
하지만 피할 방법은 없었다.
급류에 휩쓸리듯 육신은 속절없이 가라앉았고, 점점 숨은 가빠왔다.
‘이렇게 죽는 건가.’
막막함에 지난날을 떠올렸다.
사실 삶에 큰 미련은 없다고 생각했다.
첩자로 사는 동안 수없이 각오했었고, 어두운 삶의 이면엔 환멸과 죄의식이 가득했으니.
솔직히 첩자 이전도 되돌아볼 만큼 썩 좋은 인생이 아니었다.
고아인데 가난했고, 살려면 각주의 손을 잡아야 했다.
‘굶지는 않을 테다. 나와 함께 가겠느냐?’
그때부터 시작된 수년간의 고된 훈련.
하지만 진짜는 마교에 들어서고 난 후부터였다.
‘죽여라!’
돈 한 푼에 어제까지 웃고 떠들던 이들까지 물어 죽이는 들개들. 그 안에 자신을 지우고, 녹아들어야만 했다.
14살의 나이였다.
많은 이를 해하였고, 많은 이의 원한을 샀다.
수년이 흐르자 피 냄새는 살냄새보다도 익숙해졌다. 그리고 방첩대에 들어갔다. 그곳이라고 크게 다를 건 없었다.
‘네 돈은 내가 가져간다.’
그저 나름의 악인을 규정하고, 그들을 벌하면서 제 삶을 위로하였을 뿐.
하나 그래봤자 이미 피와 거짓으로 점철된 삶이었다.
임무는 기다려도 오지 않았고, 모든 게 무의미했다.
별다른 감흥조차도 없었다. 당장 죽어도 그러려니 했을 거다.
분명히 그랬다.
임무를 하달받기 전까지는.
‘보좌 장이서입니다.’
처음엔 그저 임무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장이수라……. 처음 듣는데?’
칠공자 마오. 천재라고 떠드는 멍청이. 그 녀석을 만난 후부터 어딘가 이상해졌다.
‘너야말로 나 잡으려면 각오하는 게 좋을걸? 교주님도 포기한 놈이 나거든.’
‘배울게. 배우면 되잖아. 한다고. 아니, 무슨 대단한 절세 신공이라도 가르쳐 주고 죽든가! 대답해. 대답하라고, 장이서!’
‘천재 귀환-!’
대상에게 없어야 할 감정이 생겼고.
‘사나이 용태. 앞으로 보좌님을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용태와 메기가 불쑥 들어왔고.
‘과평이오……. 살려줘서 고맙소, 형님.’
‘잘 부탁드립니다. 아신입니다.’
철마적이라는 든든한 동료들과.
‘너의 뒤에는 언제나 내가 있을 것이다.’
구유라는 버팀목을 얻었다.
‘이제부턴 내가 네 가족이자 일평생 조건 없는 우군이 되어줄 것이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꾸나, 이서야.’
독산각에서 일평생 없던 가족이 생겼으며.
‘내가 원래 수컷들은 절대 내 방, 안 보여주는데 특별히 우리 장 형이니까 초대하는 거라고.’
‘다음 술은 내가 사지.’
소오와 사해령이라는 벗도 사귀었다.
‘주인님……. 몸이 많이 안 좋으신 거군요?
‘나도 하겠네. 호형호제.’
‘장 보좌 건드리지 마-!’
맹목적으로 지지해 주는 홍란과 지대호. 맹휘라는 우군까지.
고작 임무 하나를 받았을 뿐인데, 삶이 너무도 변해버렸다.
인생에 없던 인연이 가득해져 버린 것.
그저 임무일 뿐이었는데.
첩자로서 이용해야 할 대상들일 뿐인데.
‘왜 자꾸 어른거리는 거냐.’
아무래도 사상이 불순해진 것 같다.
돌아가고 싶다.
집으로. 그들에게로.
이대로 죽고 싶지는 않다.
이제야 해야 할 일들이 생겼다.
소교주도 만들어야 하고, 혈교한테 받은 빚도 갚아야 한다.
지금 이렇게 죽어버리는 건…….
‘하여튼 보좌라는 자식이!’
주객도전이잖아!
정신을 번쩍 차리고, 눈을 부릅떴다.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집중하자. 아직 끝이 아니다.
할 수 있는 딱 한 가지가 남았다.
그건 바로…….
남천능가경(南天楞伽經).
달마 조사께서 남긴 불가해의 심법에 모든 것을 걸어보는 거다.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숨이 붙어 있는 한은 포기하지 않겠다!
[쿠오오오오오-!]어느새 더 가까워진 교룡!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자.’
달마는 누구인가.
저 머나먼 남쪽 천축국의 왕자이자, 중원으로 넘어와 처음으로 심법과 좌선 수행을 알렸던 분이다.
끝내 밝히지 않은 심법의 이름이 남천능가경인 이유도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을 그리워했기 때문.
또한 중생들을 위해 수많은 선행과 가르침을 내리기도 했다. 그런 분이 절대 마공을 만들었을 리 없다.
그러니까 이건 애초에 해석이 잘못된 것이다.
예전에 생사신의가 점혈법을 가르칠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혈과 맥은 믿음과 수련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중원에 십사경맥이 있다면, 서장엔 중맥이 있고. 천축국에는 통맥(通脈)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통맥.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단 일곱 개의 혈로 이뤄져 있으며, 그들은 이를 두고 차크라라고 부른다고.
그러니까 만일 남천이 천축국을 뜻하는 말이라면 이는 분명 통맥에 맞춰 쓰였을 공산이 크다.
【심연 끝의 규룡(虯龍)이 빛을 찾아 오르는구나.】
심연의 끝은 회음인 옥문(玉門).
【기나긴 여정에 성년이 되고, 새끼를 품으니. 배가 불러 가슴으로 낳았노라.】
생식기는 지궁(地宮). 복부는 태양궁(太陽宮). 가슴은 심궁(心宮).
【노년에 다다라 숨이 차고, 눈이 멀어 길을 잃었을 때. 비로소 뜻이 닿아 빛을 마주하니, 그곳이 하늘이었도다.】
숨구멍은 혼문(魂門). 두 눈은 천궁(天宮).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늘로 향하는 백회혈인 천문(天門).
이거다. 이것이 바로 구결의 진의인 거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물살을 가로지르며 가부좌를 틀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선 양기부터 불러 모아야 한다. 호흡이 불가하니 오직 의념으로만 해야 한다. 조화술을 펼치고, 그저 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거다.
우우웅!
잠시 후 조금씩 몸 안으로 기운이 스며들었다. 불안감은 버린다. 오직 기운에만 집중한다.
뜨거운 양기가 서서히 몸 안에 쌓인다.
본래라면 단전에 모아 선회한 후에 움직여야 옳겠으나 그랬다가는 천마기에게 잡아먹히고 말 것이다.
그러니 곧장 회음혈로 간다. 애초에 중원의 무공과는 궤가 다른 것. 단전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회음혈에 기를 쌓고, 이어서 음부에 해당하는 관원혈. 복부인 신궐혈. 가슴은 중앙의 전중혈이 아닌 좌측 심장이 있는 심수혈. 나아가 후골(喉骨)이 있는 염천혈과 미간의 인당혈.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인 백회혈!
애써 가슴을 진정시키고, 미간까지 채운 양기를 서서히 머리 위로 올려보냈다.
그런데 그 순간!
[퀴아아아아아-!]컥! 뇌리를 강타하는 혈마귀의 포효와 함께 숨이 턱 막히고, 기혈이 들끓었다.
그러곤 피거품을 토해내며 목구멍으로 쉴 새 없이 물이 넘어오기 시작했다.
‘어, 어째서……?’
실패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마지막 순간, 내면의 혈마귀가 훼방을 놓은 것이다.
‘설마 날 죽이려고?’
그랬다간 기생하는 저도 죽게 될 텐데. 같이 죽겠다는 건가? 대체 왜.
하나 의문에 대한 답을 알기도 전에 숨이 턱 막혀오고, 정신은 혼미해졌다.
[쿠오오오오오!]거기다 이젠 교룡의 입아귀 말고는 다른 게 보이지도 않았다.
그만큼 코앞까지 가까워졌다는 얘기.
죽음이 임박한 것이다.
‘안 돼. 이대로 끝낼 순 없다!’
저 머리끝에 서린 빛줄기라도 붙잡아 악착같이 살아 나가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만……!
‘잠깐. 빛줄기?’
일순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분명 아까 석양이 사라지고, 어둠이 짙게 자리했다. 지금은 태양이 없는 밤이라는 얘기. 한데도 빛이 서려 있다.
그것도 은빛의 아름다운 빛줄기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빛을 쫓던 교룡은 태양이 사라지면 등천을 멈추었을까.’
달마는 좌선 수행을 무엇보다도 중시했던 정파의 조사.
그렇게 생각해 보면 내기의 움직임은 곧 수행이고, 수행은 곧 멈추어서는 안 될 보리심(菩提心-깨달음을 얻으려는 염원)이다.
그런데 빛이 사라졌다고 이를 멈춘다니. 어불성설이 아닌가.
그렇다면…….
다시 위를 바라보자 역시나 은색의 빛줄기가 선명히 보인다.
‘달빛이다. 빛은 태양에만 있던 것이 아니야!’
그랬다.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태양과 달이 서로 손짓하며 밤낮으로 내려앉으니 교룡 또한 멈춰 설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교룡이 쫓는 빛은 양기가 아니라 음기도 함께여야만 한다.
혈마귀가 포효를 내지른 건 날 죽이기 위함이 아니라, 같이 살고자 했던 것.
양기만 백회혈까지 끌어 올렸다간, 남천능가경을 온전히 터득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게 될 테니.
그러니까.
‘음양의 기운을 하나로 모아 천축국의 차크라를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남천능가경의 비결인 거다!’
조화술을 펼치자 음양의 기운이 동시에 몰려들었다.
원래라면 이는 절대 섞일 수 없는 고유의 힘.
하지만 음양일원의 단계에 오르면 얘기가 달라진다.
두 개의 기운은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면서도 본래 하나였던 것처럼 태극을 이루며 회음혈에 안착했다.
꽈아아앙!
그러자 폭음과 함께 혈(穴)이 넓어지고, 이내 붉은 광채가 쏟아졌다. 앞서 양기만으로 시도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기운!
그리고 다시 시작된 거침없는 운기.
꽈과과광!
몸 안에서 빛줄기가 연달아 폭발했다.
적(赤), 주(朱), 황(黃), 녹(綠), 청(靑), 남(藍), 자(紫).
일곱 개의 혈(穴)은 무지개처럼 비상한 광채를 뿜어냈고, 백회혈을 마지막으로 빛이 하나로 이어지는 순간.
꽈아아앙-!
또 한 번 내면에 폭발이 일었다.
그리고…….
장이서의 육신에서 영롱하고도 청명한 기운이 무지갯빛으로 심연을 가득 채웠다.
천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이곳 곤륜산 심연에서 장이서가 남천능가경(南天楞伽經)을 터득한 것이다.
이는 보리달마의 원류심법이 부활하는 숭고하고도 기념적인 순간이었다.
‘다…… 끝난 건가?’
폭발이 지난 후 조급했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해졌다. 죽기 직전까지 막혔던 숨도 숲속에 누운 것처럼 상쾌했다.
이어 육신 밖으로 뿜어지던 광채는 사그라들고, 심장부인 심궁의 녹광(綠光)과 목젖에 해당하는 혼문의 청광(靑光)만이 미약하게 기운을 뿜어냈다.
그리고…….
[쿠오오오오오오-!]발아래를 내려 살피니, 더는 빨려오지 않는 장이서한테 잔뜩 화가 난 교룡이 수포를 뿜어내고 있었다.
한데 왜일까.
그 어떤 두려움도 조바심도 일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남천능가경은 비단 공력의 힘만이 아니라, 일곱 개의 영역에서 각기 고유한 힘을 지닌다는 것을.
목에 위치한 혼문은 자연의 기운으로 숨을 쉴 수 있게 해주었고, 여전히 강렬한 기운을 발산하는 심궁은 공포와 사심에 대항할 수 있는 항마력(降魔力)을 품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를 깨닫게 된 건, 정말 우연이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낼수록 심궁의 힘도 강해졌고, 이에 반응하듯.
[퀴아아아아아!]머릿속에선 끝없이 괴로워하는 마귀의 괴성이 울렸던 것.
지금도 마찬가지.
발아래 교룡을 보며 강한 마음을 품자 혈마귀는 더 거세게 비명을 토했다.
그렇다. 한마디로 심궁의 힘은 지지 않겠다는 불굴의 의지가 커질수록 더 거세지며, 그와 함께 항마의 힘 역시 비례하듯 강해지는 거였다.
남천능가경을 통해 혈마귀를 상대할 힘의 단초를 얻은 것이다.
물론 그의 처지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긴 했다.
소리까지 질러서 죽을 뻔한 걸 기껏 살려줬더니, 목에다 칼을 겨눈 격.
하나 어쩌겠는가.
어차피 사이좋게 갈 팔자도 아닌 것을.
그러니까.
[여기서 같이 죽기 싫으면, 그 힘 내놔.] [퀴아아아아아아아-!]머릿속에 고막이 터져 나갈 듯한 노호가 울렸다.
그리고 그 순간.
콰직!
교룡의 아가리가 그대로 장이서를 집어삼켰다.
설마 이대로 끝인가?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잠시 후, 교룡의 얼굴이 체한 것처럼 시퍼렇게 질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울퉁불퉁 부풀어 오르는 머리.
『천마신공(天魔神功) 혈마귀(血魔鬼) 강림(降臨)』
콰콰과과광!
교룡의 육신이 머리부터 꼬리까지 붉은빛과 함께 차례로 터져나간다!
그리고 그 끝엔…….
[퀴아아아아아아!]꽈아아앙!
심연의 바닥까지 다 깨부숴 버리는 절대마귀(絕對魔鬼)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