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19)
첩자의 마교생활-219화(219/350)
219.
#항복 선언
‘쓸데없는 걸 보였군.’
장이서는 놀란 그녀를 보고 앞으로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강호에서 제힘을 쉬이 드러내는 건 하수나 하는 일.
설마 세 개의 기운이 이리 오랫동안 잔존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이득이었다.
묘채경의 기가 꺾여 쓸데없는 소모전은 줄일 수 있었으니.
“들어오십시오.”
“어? 어. 그러려고 했다.”
누가 보면 네 집인 줄 알겠구나. 놀란 가슴을 애써 다독이며 안으로 들어서는 묘채경.
갈수록 그의 체취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마치 뱀 앞의 쥐가 된 기분.
골려주러 왔다가 괜히 입장만 뻘쭘해졌다.
쓸데없이 주변을 살피면서 힐긋힐긋 곁눈질로 장이서를 살폈다.
그러면서 놀란 마음은 더 키웠다.
‘이놈이 원래 이리 컸던가……?’
지금까지는 분명 3급귀 보좌라는 직책이 장이서에게 안 맞는 옷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그 생각은 지금도 동일했다. 하지만 뜻이 달랐다.
‘어째서 놈에게 대종사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냐.’
지금 풍기는 기세만 놓고 보면 장로의 직책도 부족해 보였다. 이 정도면 천마의 후계라고 해도 믿을…….
‘그게 말이 되느냐!’
스스로 생각하고도 말도 안 되는 일. 고개를 휘휘 저으며 날려버렸다.
설마 어젯밤 느낀 패배감과 수치심의 기억이 만들어낸 착각인가.
‘그럴 리가 없지 않으냐! 이리 생생하게 느껴지는데!’
당연히 아니다. 그녀가 누구인가. 비룡당주 묘채경이다.
이 정도도 가늠 못 하면 옷 벗어야 한다.
이건 그냥 장이서가 예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강해졌다는 얘기.
“뭘 그렇게 보십니까?”
장이서가 퉁명스레 묻자 묘채경은 화들짝 놀라며 횡설수설했다.
“보기는 뭘 봤다는 것이냐! 안에 먼지가 이리 많아서야!”
먼지 없는 감옥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
“목소리 낮추십시오. 울립니다.”
“흥, 곧 죽을 놈이 까탈스럽기는…….”
말은 그리하지만, 목소리가 조금씩 줄어든다. 이에 장이서는 픽 웃음을 흘렸다.
어쨌든 그녀의 방문은 장이서 입장에선 반가운 일이었다.
‘비룡당주는 대공자의 장기말일 뿐이다. 이용만 당하고 후환이 생기면 모든 책임을 대신 져줄 장기말.’
그리고 미안하지만, 장이서에게도 지금은 대신 움직여 줄 장기말이 필요했다.
기왕이면 잘 나는 하얀 매.
물론 길들이는 게 먼저겠지만 말이다.
“볼모들은 안전하답니까.”
장이서의 물음에 묘채경은 또 한 번 크게 놀랐다. 이번엔 아까와 같은 당황이 아니라 감탄으로.
‘이 새끼는 눈에도 발이 달렸나. 대체 무슨 재주로 제 주변이 당한 걸 알아낸 거지?’
방금 그의 주변인들을 모두 붙잡았단 보고를 듣자마자 냉큼 달려온 것이기 때문.
“어떻게 안 것이냐?”
사실 오래 고민할 것도 없었다. 자신에겐 악재가 그녀에겐 희재. 그러니 저리 웃으며 뛰어온 것일 터.
“너무 염려는 말아라. 아직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으니. 네놈만 죽어주면 다 풀려날 것이다.”
“아직도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십니까?”
“흥, 또 수작을 부리려는 것이냐?”
그녀가 코웃음을 치며 툭. 바닥에 서신 한 장을 던졌다.
“네놈의 방에서 나온 것이다.”
장이서가 이를 들고 펴보자 간결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이달 그믐. 청해호(靑海湖). 12호 접선 요청.】
그리고 밑에는 무림맹의 직인이 꽝 찍혀 있다.
“이게 뭡니까.”
“증거 아니냐. 네놈이 무림맹과 결탁했다는 확실한 증거.”
“하하.”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할 말을 잊었다. 청해호가 얼마나 큰지 알고 하는 말인가. 그리고 12호 아니고 103호다.
물론 이렇게 말해줄 수는 없고.
“조작된 증거 아닙니까. 어느 누가 밀서를 제 방에 둔 답니까? 설마 이거로 절 엮으려는 건 아니시죠. 그럼 너무 실망인데.”
“흥, 아무리 네놈이 밉다 해도 간부는 간부. 그런 허접한 증거로 네 목을 쳤다가 나중에 내가 무슨 봉변을 당할 줄 알고?”
확실히 묘채경이 간사하기는 해도 머리는 굴러간다.
알고도 대공자에게 멍청히 당하진 않겠다는 얘기. 어제 장이서를 풀어주려고 했던 이유도 일맥상통했다.
“그럼 다른 증거라도 나온 겁니까?”
“당연하지. 내가 설마 믿는 구석도 없이 널 비웃으러 왔겠느냐?”
묘채경이 씨익 웃으며 이어갔다.
“네놈이 방첩대에 재직 중일 때 무고한 이들을 첩자로 몰아 살해하고, 막대한 재물을 탈취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
“고미산 중턱에 있는 허름한 네 집. 그 안에 재물과 함께 그때 써먹던 무림맹 직인을 숨겨두었다지? 오호호!”
천마고다. 그곳을 알아낸 거다.
*
– 고미산 중턱.
“이곳인가?”
절벽 어귀에 쓰러져가는 폐가 앞.
까악, 까악.
까마귀 말고는 아무도 살지 않을 것 같은 곳.
“이 안에 장이서가 쓰던 무림맹 직인과 모아둔 재물이 있다. 반드시 찾아내라!”
“예-!”
비룡당이 장이서의 본집에 들이닥쳤다.
*
장이서는 멍해진 얼굴로 제 턱을 쓰다듬었다.
천마고에 숨겨놓은 재물은 천하가 들썩일 수준. 더구나 그 안에는 분명 무림맹의 인장도 있다.
밝혀진다면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명백한 증거.
“오호호호! 표정을 보니 너도 사람이긴 한 모양이구나. 이리 애타 하는 걸 보니.”
“확실히 준비를 많이 하신 모양입니다. 제가 천산 밖으로 나간 것도 알아내고, 본집까지 찾아내시다니.”
“억울하니? 그러게 까불지 말았어야지!”
묘채경은 소리를 빽 지르면서 찌릿찌릿한 감정을 느꼈다. 무너졌던 자신감이 회복되는 기분.
“처음엔 나도 긴가민가했는데 이제 확실히 알겠다. 네놈이 날 또 기만했던 것이야! 넌 첩자가 맞다. 그것도 무림맹과 결탁한 첩자!”
입술을 꾹 다물자, 묘채경은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 얌전히 죽을 준비나 하고 있거라. 소식이 닿는 대로 다시 널 추궁하러 올 것이니. 그땐…… 이리 말로 끝나진 않을 것이다.”
쾅!
그녀가 눈을 희번덕거리고는 밖으로 나갔다. 거센 철창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린다.
“흠…….”
혼자 남겨진 장이서는 고심에 잠겼다.
“어떻게 알아낸 거지?”
자신이 천산 밖으로 나간 것도, 집 안에 재물을 숨겨둔 것도. 이를 아는 건 전부 흑거뿐이다.
당연히 그가 불었으니 알아냈을 거다.
그걸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궁금한 건 대체 왜 흑거가 저들의 조사 대상에 올랐냐는 거였다.
아무리 사공자의 감시가 철저했다고 해도 천산 밖으로 나간 것까진 알아채지 못했을 텐데.
천마고도 마찬가지. 흑거가 굳이 묻지도 않은 말까지 뱉었을 리는 없다. 결국 뭔가를 알고 물었다는 얘기.
“대공자는 아니다. 그보다 날 더 잘 아는 자가 뒤에서 제보하고 있는 거다. 대체 누가.”
물론 뭐가 됐든 바뀌는 건 없다.
왜냐하면…….
쾅! 시간이 좀 흐르자 다시금 문이 벌컥 열리고, 그녀가 씩씩대며 들이닥쳤다.
“장이서어어어어어!”
미쳐버릴 것처럼 소리를 빽 지르면서.
당연했다.
“증거는, 찾으셨습니까?”
천마고는 이제 세상에 없으니까.
장이서가 재회의 인사를 건넸다.
세상 가장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
천마고가 사라진 건, 엄밀히 말하면 사공자 덕분이었다.
사부의 정체를 안 순간부터 생각한 일이기도 했고, 마가에서 월하촌으로 돌아왔을 때 누군가 따라붙은 낌새를 느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가 있는 동안 몇 가지 일 좀 처리해줘. 어렵진 않을 거야.’
해서 바로 홍란에게 재물을 옮기고, 입구를 무너트리라고 말해뒀었다.
“어디로 빼돌린 것이냐!”
“무얼 말입니까.”
“네놈이 약탈해간 재물과 무림맹의 인장 말이다!”
“이리 발끈하시는 걸 보니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하셨나 봅니다.”
“이 새끼가……!”
“당연히 못 찾죠. 전 그런 적이 없으니까요.”
“……!”
묘채경은 절망했고, 장이서는 웃었다.
한순간에 승패가 뒤집혔다. 이제 본론을 얘기할 시간.
“다시 원점이군요. 묻겠습니다. 증거도 없는데 여전히 절 죽음으로 내몰 생각입니까?”
“닥쳐라…….”
“후에 일이 잘못되면 당주께서도 모든 책임을 지셔야 할 겁니다. 아마 모든 걸 잃고 죽게 되시겠지요. 아주 비참한 말로일 겁니다.”
“닥치라고 하였다-!”
묘채경의 날카로운 손톱이 궤적을 그리며 쇄도한다. 하지만 장이서의 몸에 닿기 직전.
“……!”
우뚝!
그녀는 석상처럼 굳어졌다. 장이서의 무심한 눈빛을 보고 직감한 것이다. 지금 들어가봤자 뚫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이놈…… 빈틈이 없다!’
심지어 그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금빛의 내기는 절대 닿을 수 없는 성역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지난번 목에 상처를 낸 건 이놈이 봐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이 새끼 도대체 뭘 하고 다닌 것이야?!’
절로 침이 꼴깍 삼켜지고, 들어 올린 어색한 손은 바들바들 떨렸다.
마냥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녀 역시 초절정을 바라보는 절세 고수.
다만 장이서의 말이 곱씹을수록 다 맞기 때문이었다.
이대로면 모든 책임은 자신이 뒤집어쓰게 될 것이다.
결국 대공자 좋은 일만 시키는 꼴.
“……빌어먹을 새끼. 내 앞에서 당장 꺼지거라.”
항복 선언. 결국 그녀가 백기를 들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을 패했다.
이 정도면 인정해야 했다. 장이서가 제 머리 위에 있음을.
한데…….
“하하하!”
장이서는 웃음을 터트리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뭐 하는 것이냐? 가라니까?!”
“당주. 이게 저와 당주의 싸움으로 보이십니까.”
“뭐……?”
“이건 저와 대공자의 싸움입니다. 당주께선 그저 그 사이에 들어와 계신 것뿐이고요.”
“……!”
“당주가 끝내고 싶다고 끝낼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묘채경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이에 장이서는 멈추지 않고 일침을 내뱉었다.
“그리고 대공자는 증거가 있든 없든 절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겁니다.”
“증거도 없는데 어째서 그런 무모한 짓을!”
“권위.”
이곳이 어디인가. 마교다. 힘을 숭상하고, 권력을 숭배하는 사교도 집단. 한데 만일 대공자가 여기서 멈추면 어찌 되겠는가.
보좌 하나 제대로 처리 못 했다는 흠집이 생기는 거다. 그럼 위상이 흔들리고, 그의 아성에 구멍이 뚫린다.
권위에 금이 가는 것이다.
하여 그는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총력을 다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건 장이서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벗어나면 주변 사람들이 다치고, 가만히 있다간 내가 죽게 될 거다. 그러니 나 역시 목숨을 걸고 부딪치는 수밖에.’
결단을 내리듯 단호히 말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대공자의 모든 책임을 떠안고 함께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비룡당주답게 살길 하나 열어두시겠습니까.”
“너……!”
“장담하죠. 당주께서 손해 보시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묘채경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서렸다.
오늘따라 장이서가 유독 더 커 보이는 것은 착각일까.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
“뭘 하면 되는 것이냐.”
두 사람의 은밀한 거래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처형의 날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