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2)
첩자의 마교생활-22화(22/350)
22.
그날 밤.
취선루는 그 어느 날보다 밝고, 또 시끌벅적했다.
이는 며칠 전 도살방으로 인해 심란해진 민심을 달래주기 위한 잔치가 열렸기 때문.
덕분에 개방한 일 층을 비롯해 바깥 길목에도 자리를 길게 마련해 교인들을 위한 술과 진수성찬이 준비됐다.
또한 이 층은 준비를 위해 고생한 흑룡파와 취홍란. 그리고 마오와 장이서가 함께 했다.
“설마 천하의 도살방을. 그것도 간부인 막귀를. 그렇게 작살을 내실 줄 진짜 몰랐습니다. 예. 사나이 용태. 앞으로 보좌님을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용태가 엄지를 추켜세우며 인사를 올렸다. 이에 장이서는 고개를 절절 저으며 술잔으로 목을 축이곤 말했다.
“내가 그쪽보다 누가 봐도 어리지 않나.”
“존경심이 들면 형님이지요. 사나이 용태 그렇게 구닥다리 아닙니다.”
“술이나 잡숴.”
“예! 형님께서 허락하셨다. 마셔라!”
“와아아아!”
누가 왈패 아니랄까 봐. 장이서가 피식 웃으며 빈 잔을 내려놓자, 옆에서 취홍란이 배시시 웃으며 술을 들었다.
“제가 따르겠습니다.”
“어, 고마워. 루주도 한잔해. 내가 따를게.”
“받겠습니다.”
주거니 받거니. 참으로 사이좋고 훈훈한 광경이다.
단 한 사람.
야차처럼 인상을 찌푸리고, 혼자 나발을 부는 칠공자를 제한다면 말이다.
그럴 만도 했다.
혼자 인근 인왕산 정상까지 쉬지 않고 뛰어 올라갔다 왔더니, 장이서는 온데간데없이 여기서 술판을 열고 있었으니.
결국, 참다못해 폭발한 그가 술상을 와르르 엎고는 벌떡 일어나 외쳤다.
“이것들이…… 주객도전이냐! 여기 주인 누구야. 나야, 나. 천재 중의 천재 마오!”
주객전도겠지. 뭘 도전해.
“누가 뭐랍니까. 괜히 왜 상은 엎습니까? 이거 준비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크아아아아! 시끄럽다! 날 성의있게 받들라 이 말이다!”
“예, 그럽시다. 오늘 이 자리도 만들어주셨는데.”
“누가.”
장이서가 역으로 턱짓을 보내자 마오가 눈을 깜빡이며 제 가슴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나?”
그러자 장이서가 피식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난간 밖의 교인들을 향해 외쳤다.
“그간 많이들 심란하였을 텐데, 오늘은 아무 걱정 없이 마음껏 드시오. 모두 여기 계신 칠공자님께서 베푸시는 것이니.”
뭔 소리야. 내가 뭘. 바로 그때였다. 와아아아! 교인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이 울려 퍼졌다.
“칠공자님, 감사합니다!”
“칠공자님! 잘 먹겠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마오가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옆에서 장이서가 옆구리를 툭 치며 말했다.
“민심을 다루는 것도 소교주의 덕목입니다. 보십시오. 다들 얼마나 좋아하고 있습니까.”
정말 그랬다. 평소 자신을 바라보던 시선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망나니라며 두려워하던 모습이 아니라 환하게 웃으며 환호했다.
어째서?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것이 민심입니다. 소교주가 되고 싶다면 저들의 시선부터 바꾸도록 노력하세요. 한 짓이 있으니 한 번으로 바뀌진 않을 겁니다. 지금은 분위기에 취한 것뿐이죠. 그러니 이제 진심으로 베푸세요. 저들을 지켜주세요. 그럼 언젠가는 우리의 든든한 우군이 되어줄 겁니다.”
“든든한 우군…….”
마오는 뭔가 마음의 벽에 새로운 파장이 인 것처럼 초점을 흐렸다.
망나니 칠공자.
이곳 사람들이 정녕 그가 두려워서 떨었겠는가. 아니, 그가 가진 칠공자라는 배경에 고개를 숙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에 의존해서는 절대 소교주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게 장이서의 지론이었다.
두려움이 아니라 공경이 함께하여 경외 받는 자가 되는 것.
그것이 시작이다.
“근데…… 난 베풀 돈이 없는데?”
마오는 오늘도 자기 객관화를 실천하며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하나 무슨 상관인가.
“오늘이 없지, 내일이 없겠습니까. 빌리면 다 됩니다. 자, 손이라도 흔들어 답해 주세요.”
“아니, 근데 난 빌릴 마음이…….”
“어서요.”
장이서가 웃으며 턱짓하자 쭈뼛거리던 마오가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와아아아! 더 크게 함성이 빗발쳤다.
이에 마오도 흥이 나는지 점점 입꼬리를 올리며 자연스레 손을 흔들었다. 나중엔 아예 잇몸이 활짝 올라갔다.
그래. 이렇게 민심을 읽고, 성웅의 자리에 다가가는 것이다.
‘물론 모든 비용은 네 이름으로 취선루 앞에 달리겠지만. 참고로 연이자는 오 할이다.’
장이서도 활짝 웃으며 같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유난히 소란이군.”
고저 없는 아름다운 목소리가 계단 쪽에서 흘러들었다.
오늘을 축하해 주기 위해 초대된 또 다른 손님.
“여. 왔어?”
장이서가 피식 웃으며 반갑게 손을 흔든다.
살짝 매서운 눈빛에 뚱한 몸매와 얼굴.
“흥.”
진산파파.
아니, 인피면구를 쓴 삼공녀 사해령이 자리를 빛냈다.
“아, 아니…… 어, 어떻게……?”
그리고 그녀의 등장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반응을 보인 건 마오였다.
“음? 칠공자님 아는 여인입니까? 평소 여자라면 질색을 하시는 분이 웬일로?”
왜겠는가. 당연히 구면이기 때문. 평소 사해령이 암행을 다닐 때 주로 쓰는 인피면구다. 측근이랄 수 있는 마오가 모를 리 없는 일. 그녀가 제 누님임을 단박에 알아봤다.
[소란 떨 것 없다. 지나는 길에 잠시 들른 것이니.]용태의 눈치 없는 질문에 진산파파는 매섭게 그를 노려본 뒤, 마오에게 전음을 보냈다.
도대체 어딜 지나가야 변두리 월하촌이 나오는 걸까. 하지만 마오는 다행히 생각이 깊지 않은 자였다. 사해령도 마오의 그런 점을 좋아했다. 쓸데없는 의문을 품지 않으니.
물론.
“아, 그렇구나. 지나는 길에 들르셨군!”
“예? 칠공자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어? 뭘.”
다각도로 생각이 짧아서 문제지만 말이다. 진산파파는 콧김을 후 뿜고는 차갑게 자리를 둘러 살폈다.
둥그런 원탁에 우측 끝부터 취홍란, 장이서, 용태, 메기, 마오가 앉았다.
이에 별다른 고민도 없이 저벅저벅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장이서와 용태 사이. 거리낌 없이 사뿐히 자리에 앉자 좌측에 있던 취홍란이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실례지만 존함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아, 인사해. 초면이지? 이쪽은 진산파파. 내 보좌 시험관이야.”
그리고 우리의 든든한 방패막이 되어줄 분이기도 하고. 장이서가 웃음 지으며 대신 답해 주자 취홍란의 표정이 더욱 어색해 보인다.
“파파(늙은이)라 부르기엔 많이 젊으십니다.”
“그러네. 그럼 그냥 진산이라 부르자. 어감 좋네. 사내답고 잘 어울려.”
“그걸 왜 네가 정하지? 그리고 난 사내가 아니다.”
진산파파가 사납게 노려보자 장이서는 너스레를 떨며 제 술잔을 비우곤 그녀 앞에 탁 건넸다. 그러곤 또르르 술을 따라준다.
이건 네가 먹던 거 아니냐.
이에 그녀가 인상을 찌푸리지만, 또 거부하진 않고 술잔을 잡아 털털하게 비웠다.
“와줘서 고맙다, 진산.”
저, 저 새끼 지금 말 깐 거야? 마오의 눈이 띠용 튀어나왔지만, 두 사람은 일절 관심 없다는 듯 소소한 안부를 나눴다.
“소식은 들었다. 제법 큰일을 치렀다고.”
“큰일은 무슨. 그냥 소일거리 한 거지.”
“도살방의 막귀를 꺾은 게 소일이라면 겸손이다.”
“오, 그렇게 말해주니까 왠지 막 가슴이 따뜻해지고 어깨가 올라가는데?”
“흥, 호들갑은.”
“하하! 자, 마셔.”
너무도 친근해 보이는 모습. 마오는 입을 떡 벌린 채 눈을 박박 비볐다.
그사이 다른 이들은 돌아가면서 한 명씩 그녀와 인사를 나누었다.
“취선루를 운영하는 홍란이라고 합니다.”
“용태요. 오른손에 검은 용이라면 근방에선 제법 알아주지.”
“메에에에기.”
이 새낀 인사가 왜 이래. 장이서가 메기를 쳐다보자 벌써 취했는지 눈이 풀렸다. 술이 좀 독하긴 했다.
다음은 마오의 차례.
모두가 그를 바라보자, 화들짝 놀라며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짓는다. 누님을 누님이라 부를 수 없으니 난감한 노릇.
“크흠, 큼……. 마아아아오.”
얜 또 왜 이래.
“뭐 하십니까?”
“어, 응. 그냥.”
그렇게 모두의 인사가 끝이 나자 진산파파는 별 대답 없이 고개만 까닥였다.
자칫 무례하고 도도해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 별다른 의도 없이 이게 그녀의 원래 성향이다.
남에겐 일절 관심 없고, 또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면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
그래서 더더욱 마오는 지금 이 상황이 잘 믿기지가 않았다.
이렇게 잔칫날 술자리에 참석해 준 것도 모자라 남이 마시던 술까지 받아먹다니. 심지어 하대까지 허용한다?
‘이거 수상해. 그러고 보니 이 자식을 보낸 것도 누님이잖아. 그래 놓고 인피면구까지 쓰고 신분을 감추다니. 이건…….’
마오가 의심을 잔뜩 담아 장이서와 사해령을 번갈아 노려봤다. 그러곤 뭔가 깨달음을 얻었는지 눈을 번뜩였다.
‘장이서를 감시하고 있는 거구나! 나한테 잘하는지 보려고!’
그의 단순함이 참 좋다.
그렇게 진산파파의 합류로 술잔이 술술 넘어가고, 취홍란은 술과 안주를 더 가져오겠다며 위로 올라갔다.
뒤이어 만취한 메기와 용태. 그리고 마오는 흥에 겨워 서로 어깨동무한 채 일 층까지 내려가 교인들과 어울렸다.
덕분에 이 층에는 장이서와 사해령 단둘만 남겨졌다.
삽시간 고요한 적막이 흐르고, 자연스레 바깥 경치를 감상했다.
달이 없는 밤이라 그런가, 별빛이 유난히 반짝이고 은하수를 이룬다.
그리고 아래선 어느새 인기인이 된 마오가 교인들과 인사를 나누며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설마 교인들과의 잔치를 열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사해령이 적막을 깨고 입을 열었다. 고저 없는 말투였지만, 이는 극찬 중의 극찬. 크게 감탄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고맙다는 뜻이기도 하고.
마오가 저리 즐겁게 누군가와 어울리는 모습을 얼마 만에 보는지. 본래 흥이 많고 사람을 좋아하던 아이였음을 알기에 더더욱 여운이 짙다.
“말했잖아. 세 손가락 안에는 들게 할 거라고. 그러려면 망나니라는 꼬리표부터 떼어내야지. 주변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칠공자를 교주님이 인정할까.”
“그럴 리 없지.”
사해령이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래, 맞다. 그게 순리다. 그리고 그에 감탄해서 버릇없이 삼소궁으로 전서구를 대뜸 보낸 장이서의 초대에도 응해준 거다.
칭찬해 주고 싶어서.
“호룡당주를 통해 도살방에 무리한 요구를 했다더군. 사씨 형제의 사과를 원한다고.”
“무리라…….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죽는 거에 비하면 쉽지 않나.”
“사씨 형제가 왔었어도 이겼을 거라는 말로 들리는구나.”
“어려울 것 없지.”
“여전히 자신이 넘치는군.”
“자신 아니고 확신.”
푸훗! 사해령이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정색한다.
장이서는 이에 장난기 없이 진지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방첩대 삼조장의 업적으로 보자면 도살방 막귀가 대단해 보일지 모르지만, 보좌로서는 별거 아닌 일이지. 칠공자님이 노력한다고 다 되는 문제가 아니야. 나 역시 마찬가지. 보좌로 인정받기 위해선 부단히 노력해야 해. 그런 의미로 사씨 형제 정도는 밟고 가야지. 어떻게든.”
사해령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총명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자신의 처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솔직히 나쁘지 않다. 아니, 꽤 마음에 든다.
“물론 잘한 건 잘한 거고.”
장이서가 짠 하자며 잔을 들고 웃는다. 능글맞은 자식.
사해령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앞만 보고 가는 겁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