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20)
첩자의 마교생활-220화(220/350)
220.
#처형의 날
드높은 비룡당 전각.
그 앞에 놓인 널따란 공터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웅성거림은 그침 없이 흘러나오고, 모두가 고개를 들어 한 곳으로 시선을 꽂았다.
이 장(6m) 높이까지 나무를 교차로 쌓아 올린 평평한 처형대(處刑臺).
그 위, 양 끝 기둥에 포승줄로 묶여 십(十)자로 결박당한 채 서 있는 사내.
그의 이름은 장이서.
오늘 열리는 처형식의 주인공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래.”
“첩자 혐의로 공개 처형을 한다더구먼.”
사실 소문을 듣고 몰려온 이들은 대부분 처형대 위에 선 이가 누군지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범람하는 이야기의 홍수 속에 그를 알게 되는 건 그리 오래 걸릴 일은 아니었다.
“칠소궁이면 요즘 제일 유명한 곳 아닌가. 한데 보좌께서 대체 왜…….”
“대공자님이 직접 형을 집행하신다던데. 뭐 뻔한 일 아니겠는가.”
“정쟁(政爭)이구먼.”
일각에선 안타깝다며 혀를 차기도 했다. 최근 칠소궁의 활약을 익히 잘 알기 때문.
이 정도 견제와 모략은 마교에서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그저 저 처형대 위의 사내가 그 희생양이 된 것일 뿐.
“한데 어째 곧 죽을 양반의 눈빛이 저리 차분한 거여.”
“그러게…….”
물론 아직 진짜 정쟁은 시작도 안 했지만 말이다.
“대공자께서 오셨다-!”
그리고 그때, 인파 사이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듣기 좋게 울렸다.
동시에 웅성거림은 뚝 끊기고, 일시에 시선이 뒤의 남문으로 돌아섰다.
이내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좌우로 갈라지는 군중.
그들이다.
실상 다음 세대 천마전을 이끌어갈 자들.
흑색 일련의 무복을 입고 웅장하게 걸어오는 일소궁 흑화위다.
그 중심엔 대공자 천무기와 유령마군 환사. 그리고 사공자 한이 있었다.
“오셨습니까, 대공자님.”
그리고 이에 대조되듯 백색 도포를 휘날리며 비룡당주 묘채경과 최정예 당원들이 마중했다.
이리 한데 묶이니 흘러나오는 기세가 한낱 신도들이 담기엔 숨이 멎을 수준.
웅성거림은 온데간데없고 숨소리마저 사라졌다.
“흐음…….”
그리고 대공자는 걸음을 멈추고 좌중을 훑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유령마군이 안광을 번뜩이며 대신 물었다.
“이들은 다 무엇이냐. 허한 적이 없는데 누가 부른 거지?”
“그것이…….”
묘채경은 진땀을 흘렸다.
당연했다.
오늘의 군중은 대공자의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그렇다고 묘채경이 생각한 것도 아니다.
‘장담하죠. 당주께서 손해 보시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이 모든 건 전부 처형대 위에서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는 저 미친놈.
장이서의 계획이었다.
*
*
*
“뭘 하면 되는 것이냐.”
묘채경과 장이서가 손을 잡은 그날.
장이서는 이렇게 말했다.
“우선 판부터 바꿔야겠습니다.”
“음?”
“우리가 그의 판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가 우리 판에 오도록 만드는 겁니다.”
“처형식을 말하는 것이로구나.”
장이서에겐 몇 번이나 물을 먹었지만, 묘채경 역시 이면공작엔 일가견이 있는 자.
척하면 척이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네가 뭘 꾸미든 집행을 막을 순 없을 거다. 네 말대로 권위를 생각하면 어떻게 해서든 널 죽이려고 할 테니.”
“누가 막는다고 했습니까.”
“그럼 뭘 하겠다는 것이냐.”
“그 반대입니다. 판을 키우시죠.”
“키우다니.”
“공개 처형으로 바꾸십시오. 군중들을 불러 모아 참관하게 하는 겁니다.”
“제정신이냐? 보는 이들이 있으면 본보기로 더더욱 널 죽이려고 날뛸 것이다.”
“그러라고 하는 겁니다.”
이 새끼가……? 그럼 나는. 네놈이 이대로 죽으면 나는?! 어이가 없어서 눈을 아래위로 부라리자 장이서가 시원스레 답했다.
“대공자께서 시작한 싸움입니다. 끝을 보기 전까진 누구도 물러서게 하지 않을 겁니다.”
물러서게 하지 않을 거라니. 설마 대공자가 내뺄까 봐, 판을 키우겠다는 것인가?
이건 뭐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가.
아니, 그래. 그렇다고 치자.
“그럼 그다음은?”
그 후는 무엇이란 말인가.
장이서는 이에 씨익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밟아야죠. 다시는 못 기어오르도록.”
그때 묘채경은 오소소 소름을 느끼며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놈은 미친놈이라는 것을.
그리고…….
절대 적으로 만들면 안 되는 미친개라는 것을.
*
*
*
“왜 대답을 못 하는 것이냐! 당장 고하지 못할까?!”
유령마군의 살기 어린 엄포에 묘채경은 눈을 번쩍 뜨며 회상에서 깨어났다.
‘근데 이 붕대 새끼가 3급귀 보좌 주제에 감히 당주인 내게 말끝마다 하대를…….’
정신을 차리니까 갑자기 유령마군이 졸로 보인다.
원래 직급은 둘째치고 그의 명성이나 인품을 알기에 한 수 접고 대우를 해줬는데.
같은 보좌인 장이서하고 비교가 되어서인지. 아니면 곧 장이서한테 물 먹을 놈이라 생각했기 때문인지.
묘하게 만만해 보인다.
아마 정확하진 않으나 이거 하나는 확실했다.
‘장이서 저 새끼 때문에 나도 미쳐 가는구나.’
“당주. 말 잘해야 할 것이다.”
알겠다, 이 붕대 새끼야! 묘채경은 눈을 부릅떴다가 금세 갈음하곤 대공자에게 직접 보고를 올렸다.
“얼마 전 도라옥 사건도 있고 하여 신도들의 민심이 흉흉합니다.”
“감히-!”
도라옥 사건은 대공자 앞에선 꺼내면 안 되는 금기 사항.
이를 입에 올리자 유령마군이 격분했다. 하나 대공자는 됐다는 듯 손을 들어 올려 제지했다.
지금은 보는 눈도, 듣는 귀도 많다.
“계속하거라.”
살벌한 저음으로 명하자 묘채경이 침을 꼴깍 삼키곤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속삭였다.
“오호호호!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일은 본교의 간부 중 하나가 첩자로 드러난 사건. 공개 처형으로 일을 키우면 신도들의 마음도 달래고, 또 그분께 인정받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분. 절대 지존인 천마를 뜻함이다. 그의 인정이란 천무기한테는 사막의 단비 같은 것.
“원치 않으시면 지금이라도 돌려보낼까요?”
“되었다. 신도들도 알아야 할 권리가 있겠지. 구경꾼이 많아야 저놈도 심심치 않을 테고.”
“오호호호,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자리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묘채경이 슬쩍 유령마군을 보곤 코웃음 치며 앞서 걸어갔다.
‘저년이……!’
유령마군의 눈이 시뻘게진다. 하나 분위기상 지금은 따라야 할 때.
애꿎은 주먹만 부르르 털고 뒤를 따랐다.
안내된 자리는 정확히 처형대로부터 스무 걸음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거기엔 대공자를 위한 의자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는데 자리에 앉자 장이서와 보기 좋게 정면으로 대면한다.
이윽고 눈이 마주치는 두 사람.
드디어 그들이 만났다.
집행자와 배교자가 되어.
“오랜만이로구나.”
“잘 지내셨습니까.”
그저 서로 바라본 것뿐인데도 형용할 수 없는 분위기가 휘몰아쳤다.
마치 흑룡과 미친개가 서로를 향해 울부짖는 것처럼.
“저 하나 잡겠다고 일을 크게도 벌리셨습니다.”
“후후후, 본교에 쥐새끼처럼 숨어 있는 첩자를 발본색원하는 일인데, 이 정도는 벌여야 하지 않겠느냐.”
“제 주변인들까지 볼모로 잡고 말입니까?”
“그게 뭐 어때서.”
대공자는 희열에 찬 웃음을 지으며 당당히 말했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첩자와 얽힌 순간부터 형벌은 피해 갈 수 없는 것이다. 그게 누구든.”
이는 마오도, 칠무위도 조사에서 예외로 두지 않겠다는 뜻.
“하지만 모든 건 제가 첩자여야만 성립될 수 있는 이야기일 겁니다.”
“당연하지. 하지만 허락도 없이 천산을 나갔다 붙잡혀 온 네가 무슨 말을 더 하겠느냐.”
“이야기를 못 들으신 겁니까, 아니면 듣고 싶지가 않으신 겁니까. 전 분명 사공자께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천산 밖으로 나갔다 온 건…….”
“아아, 혈교를 쫓았다는 것 말이냐.”
대공자가 말을 자르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눈을 번쩍 치켜뜬 뒤 말했다.
“증거 있느냐?”
“무슨 증거 말입니까.”
“네놈이 혈교를 쫓았다는 증거 말이다. 있다면 이 자리에서 증명해 보거라. 그럼 믿어주지. 하나 그게 아니라면…….”
대공자가 손을 들어 올리자.
스릉! 흑화위가 일시에 검을 뽑아 들었다.
“오늘 이 자리가 네 마지막이 될 거다.”
그가 손을 떨구는 순간, 단박에 날아올라 이 자리에서 목을 베겠다는 뜻.
‘확실히 다르구나.’
장이서는 간담이 서늘했다.
상대는 고도로 훈련된 일백의 무사들과 초절정 고수인 사공자와 유령마군. 그리고 대공자 천무기다.
싸워서 이길 가능성은 전무한 일.
순식간에 팽팽하던 기 싸움에서 속절없이 밀린다.
‘혈마귀를 꺼내면 달라질 수 있을까.’
그럴지도. 그러나 혈마귀는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양날의 검.
머릿속에서 최후의 최후까지 미뤄두는 게 옳다. 그리고 지금 당장 꺼내야 하는 최선책은…….
“그리하죠.”
“뭐?”
“증명하겠습니다. 제가 첩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자리에서 대공자가 준비한 모든 수를 깨부숴 버리는 것이다.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장이서의 눈에서 하늘빛 광채가 뿜어졌다.
목숨을 건 승부가 시작되었다.
*
‘증명을 하겠다고?!’
대공자는 장이서의 돌발적인 발언에 자못 당황했다.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이더냐.’
자신이 한 제안은 그냥 억지를 부린 것. 오자마자 바로 감옥에 처박힌 그가 갑자기 무슨 수로 증거를 내밀겠는가.
그저 명분을 쥐고 가고자 던진 말에 불과했다.
한데 대뜸 증명을 하겠다니.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바로 코웃음을 치며 응수했다.
“네놈이 무슨 수로 증명을 한다는 것이냐. 또한 네놈의 말을 어찌 믿고.”
“대공자께서 일부러 절 노린 게 아니라면, 안 들을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뭐……?”
“직접 증명을 하라고 하셨고, 전 알겠다고 응한 것입니다. 듣고 판단해 주시지요.”
건방진 놈. 마음 같아선 목부터 쳐버리고 싶지만, 은근히 주변이 신경이 쓰였다.
장이서의 말에 곳곳에서 웅성거림이 빗발쳤기 때문. 여기서 듣지도 않고 형을 집행한다면 누가 봐도 이상한 상황.
“좋다. 어디 지껄여 보거라. 단, 빠르게 해야 할 것이다. 난 첩자 따위에게 그리 너그럽지 않으니.”
결국 대공자는 피식 웃으며 한발을 물렀다. 아무리 생각해도 순간을 면피하고자 임기응변으로 내뱉은 말이 분명하기 때문.
한데.
“지금 이 안에.”
도저히 상상도 못 할 말이 뱉어졌다.
“도라옥의 죄인들이 천산을 활보하게 한 자가 있습니다.”
웅성웅성! 군중들이 발작하듯 소란을 일으킨다. 유령마군은 기함했고, 사공자는 두 눈이 부릅떠졌다.
‘미친개, 네가 기어코…….’
더 미쳐버렸구나. 탄식이 뱉어졌다.
최근 마을들이 불타오르고, 수많은 이가 죽임을 당했다. 이에 신도들의 분노는 극에 다다른 상태.
한데 그 원흉이 이 안에 있다니.
사실이든 아니든, 잔잔하던 바다에 거대한 해일이 일어난 건 분명했다.
“누구요! 그게 누굽니까!”
“대공자님, 명명백백히 밝혀주시옵소서!”
그리고 이는 대공자에 대한 압박으로 몰려들었다.
이에 일소궁의 전력에 한없이 밀리던 장이서의 기세가 군중의 힘을 통해 되살아난다.
흑룡의 기세는 움츠러들고, 미친개가 반격의 포효를 내지르기 시작한 것.
“대공자님…….”
유령마군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주변을 경계했다. 그리고 도끼눈으로 먼발치의 비룡당주를 찍었다.
“저년이 괜히 쓸데없는 짓을 벌이는 바람에…….”
하나 대공자는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건 당주의 문제가 아니다.”
“예?”
그리고 곧장 처형대 위를 손가락질하며 읊조렸다.
“저놈이다. 저놈이 판을 바꾸려 꾸민 것이다.”
실로 격정에 찬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