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21)
첩자의 마교생활-221화(221/350)
221.
#묘채경의 결단
대공자는 대번에 장이서의 수를 간파했다.
모이면 자제력을 잃고 선동되는 군중의 특성을 이용해 본질을 훼손하려는 것.
“비룡당주를 그새 설득하다니. 난 놈은 난 놈이로구나.”
대공자의 시선이 흘깃 비룡당주에게 향했다. 속을 꿰뚫는 눈빛에 그녀는 침을 꼴깍 삼키곤 휙 고개를 돌렸다.
‘젠장. 제대로 찍혔구나.’
하나 어쩌겠는가. 이미 벌어진 일.
그리고 계획은 성공했다. 절대다수가 장이서의 처형이 아닌 그의 대답을 바라고 있으니.
하지만.
“전부 내보내거라.”
상대는 대공자 천무기.
이 정도에 흔들릴 거라 생각했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존명!”
흑화위가 바깥으로 휙 몸을 돌리곤, 군중을 향해 칼끝을 들이밀었다.
“아, 아니! 이게 무슨……!”
“대공자님! 어찌하여 저희에게 이러시는 겁니까.”
“저희도 알아야 할 권리가……!”
“닥치고 나가거라. 죽고 싶지 않으면.”
그야말로 경악스러운 일. 하나 유령마군과 흑화위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반원으로 대형을 짜 군중을 바깥으로 밀어냈다.
판을 흔들자, 거들떠보지도 않고 이를 엎어버린 것. 이를 보던 장이서도 허탈함에 고개를 저었다.
‘정파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민심을 이따위로 짓밟다니. 정녕 마교의 대공자답구나.’
군중은 남문까지 몰리고, 휑해진 공터에 대공자는 피식 웃으며 일어섰다.
“아쉽구나. 어렵게 짜낸 비책이었을 텐데, 써보지도 못하고 사라졌으니.”
“민심을 쉽게 보지 마십시오. 앞으로 저들이 대공자님을 어찌 볼 것 같으십니까.”
“두려워하겠지. 허튼소리를 지껄였다간 그 목이 달아날 테니.”
가관이다. 그에게 부끄러움은 정녕 없는 것인가.
“그게 장차 천산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할 대공자께서 하실 말씀입니까?”
“대공자이니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게 무슨…….”
“그리고 그게 바로 권력이라는 것이지. 네놈이 아무리 진실을 부르짖고, 수없이 설득하려고 해도 그저 우물 속 아우성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는 것 말이다.”
장이서의 눈빛이 차갑게 식는다.
새삼 다시 깨달았다. 이자는 절대 소교주가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을.
만일 그가 자리에 오른다면 무림엔 반드시 크나큰 화가 잇따를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꺾어놔야 한다.
“……틀렸습니다.”
그가 중얼거렸다.
“뭐?”
“짓눌러 얻어내는 권력은 결코 오래갈 수 없습니다. 상대가 저항하는 순간 그 힘을 잃으며, 그 뒤엔 모든 권위를 잃는 겁니다.”
“하하하하! 감히 누가 내게 저항을 한단 말이냐. 한낱 신도들 따위가 무얼 할 수 있다고.”
“정말 그리 생각하십니까.”
그때였다. 장이서의 입꼬리가 말아 올라갔다. 시선은 저 멀리 뒤편을 향했다.
이에 대공자가 흠칫 놀라며 휙 몸을 돌리는 순간.
“가아아아알-!”
우렁찬 일갈이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육장로……?”
육장로 마의 사마균.
그리고 머리며, 눈썹이며 털 한 가닥 없는 무모(無毛)한 고수들.
파두망량 엽굉과 독산각의 의원들이 나타났다!
“공개 처형이라기에 참관하러 나왔더니, 나더러 돌아가라? 감히 나더러?! 이 무슨 무례인 게야!”
마의가 눈을 부라리며 유령마군에게 엄포를 터트렸다.
갑작스러운 장로의 등장에 대공자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나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길을 열어라. 베이고 싶지 않다면.”
두 자루의 칼을 차고 우아하게 사박사박 걸어오는 천상의 미녀.
“사해령…….”
삼공녀 사해령. 그리고 나락과 월광십귀가 나타났다. 도대체 저들이 왜…….
“야. 거, 말로 해서 뭐 하냐? 그냥 밀어버리면 되지. 하여튼 겉도 시커먼 것들이 속내는 더 까매요. 조 보좌, 뭐 해? 밀어.”
사자 머리 호남자의 명에 일백의 괴인들이 머리부터 들이민다.
“밀어라.”
“키키키키!”
거침없이 흑화위를 향해 밀고 들어가는 조양악과 백괴단이다!
그들까지 이곳에 당도했다.
마의와 사해령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도대체 무한성은 왜.
너무 뜬금없는 등장에 사해령도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여긴 왜 온 거죠?”
“왜긴. 참관하러 왔지. 근데 장이서 저 새끼 실제로 보니까 더 떨리네? 와, 이거 뭐지.”
뭐긴. 미친 거지. 사해령이 인상을 쓰곤 먼발치 장이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두근, 두근, 두근.
그리고 미친 건 나도 마찬가지고.
“도대체 네놈들이 여길 어떻게…….”
천무기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전개에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흑화위는 조금씩 뒤로 밀려나고, 군중들은 다시 공터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사이 고명한 이들이 여럿 더 자리했다.
그중 하나가 마가칠객의 수장 번천검객.
“일장로가…… 보낸 것인가?!”
그건 아니다. 명확히 말하면 번천검객은 스스로 왔다. 그것도 일장로를 설득까지 해가면서.
‘장이서가 이번에 살아 나오지 못한다면 칠소궁과의 관계도 여기까지다.’
‘죽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죽지 않도록 살려야 합니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장이서를 소천마로 알고 있는 그로서는 오히려 지금 상황이 농간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일.
‘최대한 잘 보여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산다.’
오해에서 비롯한 일이지만, 이미 충복을 맹세한 그에겐 이건 잘 보일 기회.
외에도 호룡당주 지대호와 금룡당주 만금수도 있었다.
두 사람은 죽립 아래로 눈을 마주치곤 서로 놀라며 안부를 물었다.
“지 당주께서 여긴 어쩐 일로 오신 겁니까. 많이 다치셨었다던데.”
크하아앙!
“아픈 게 대수인가. 장 보좌와 호형호제를 바라면서, 아우 될 자의 죽음을 모른 체 할 수는 없지. 그러는 만 당주는?”
“허허, 이런 우연이. 저도 장 보좌에게 크게 투자해 놓은 게 있어서요.”
자신의 목숨과 미래라는 아주 큰 투자 말이다.
그 밖에도 나름 한가락 하는 자들이 여럿 들어차 있었다.
이들의 합류에 군중은 힘을 얻어 금세 원래의 자리를 되찾았다.
다시 죽어가던 장이서의 기세는 불씨처럼 살아났다. 그것도 전보다 훨씬 더 큰 산불로.
반면 대공자와 흑화위는 비좁게 엉켜 진땀을 흘렸다.
묘채경은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장이서와 흘깃 눈을 마주했다.
‘하여튼 영악한 놈. 집행을 방해하면 배교 행위지만, 참관은 아무 상관이 없지. 공개 처형의 숨은 참뜻은 바로 이거다. 졸지에 대공자는 신도들을 내쫓으려다 호되게 당한 것이고.’
그렇다. 이것이 바로 장이서가 준비한 두 번째 수.
천무기의 엄포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군중을 자신의 힘으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도라옥의 죄인들이 천산을 활보하게 만든 자가 누굽니까!”
“당장 저분을 풀어주십시오!”
들불처럼 번진 군중들의 외침이 하늘을 관통했다.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고성.
‘너 때문에 이 형이 늙어 죽겠구나!’
물론 마의와 독산각처럼 상황 안 따지고 사생결단의 자세로 참석한 이들도 있긴 했지만, 그들만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기세였다.
“이것들이…….”
수세에 몰린 대공자는 살광이 가득 담긴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장이서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짓눌러 얻어내는 권력은 결코 오래갈 수 없습니다. 상대가 저항하는 순간 그 힘을 잃으며, 그 뒤엔 모든 권위를 잃는 겁니다.’
한낱 신도들이 자신을 노려보며 소리치고 있다. 권위가 낙엽처럼 땅바닥에 떨어진 거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르고, 두 눈은 이성을 잃고 흔들렸다.
“장이서, 네놈이…….”
그의 농락에 또다시 휘말렸다는 사실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죄인들이 천산을 유린하는 사이, 본교의 전력 대부분은 서문에 발이 묶여 있었습니다. 바로 대공자께서 그리 명하셨지요.”
심지어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실책으로 상황을 몰아가고 있지 않은가.
격앙되는 분위기.
저를 향한 따가운 시선.
“그리고 전 그런 대공자께 분명히 서신을 보냈습니다. 도라옥의 배후에 혈교가 있고, 그들이 지금 천산을 활보하고 있다고.”
웅성거림이 극에 달하고, 천무기의 몸에선 핏기가 사라졌다.
곧이어 자욱하게 살기가 깔린다.
콰과과과과!
도포 자락이 펄럭이고,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당장이라도 출수할 기세.
이를 본 사공자가 당황하며 속삭였다.
“진정하셔야 합니다. 지금은 우선 상황을 현명히 넘기시고…….”
“집행하거라.”
한데 그때. 믿기 어려운 판결이 떨어졌다.
사공자의 눈이 넋을 잃고, 소란에 제대로 듣지 못한 유령마군은 고개를 휙 돌렸다.
잠시 시간이 멎은 듯한 기분.
그리고 이를 깨트리듯 천무기가 악에 받친 목소리로 커다랗게 외쳤다.
“저 첩자 놈을 당장 처형하거라-!”
이럴 수가. 여론을 뒤집고 사형 선고가 떨어졌다. 군중들은 경악에 빠졌다. 수뇌들도, 유령마군도. 심지어 사공자마저 당황했다.
누군가는 이를 실책이라 말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무리수였노라 평할 것이었다.
그만큼 이건 최악의 수였다. 권력을 앞세워 스스로 켕기는 게 있음을 만천하에 드러낸 꼴.
하나 그는 차기 교주로 거론되는 천마신교의 절대자이자, 장이서의 형을 집행하는 재판관.
어떤 결정이든 그의 명이 떨어진 이상…….
“쳐라!”
그것이 곧 교리다.
파파팟!
흑화위들이 잘 벼른 검을 사선으로 떨구고, 경공을 펼쳐 날아올랐다.
“이서야-!”
이에 마의가 처형대로 뛰쳐나가려는 순간, 휘감은 붕대 위에 흑색 피풍의를 걸친 사내가 길을 막아섰다.
유령마군 환사다.
“형을 집행하는 일. 설령 장로라 할지라도 이를 방해하면 배교로 간주할 것이다.”
“네놈 눈에는 이게 정당한 판결로 보이느냐! 다치고 싶지 않다면 비키거라!”
“기어코 배교를 저지르겠다는 것인가.”
“배교고 나발이고 나와-!”
살벌해지는 분위기. 유령마군이 흘깃 뒤의 수하들을 살피며 말했다.
“내가 육장로를 맡을 테니, 저놈의 목을 취하거라!”
“존명.”
연달아 처형대로 날아오르는 흑화위들. 마의가 매섭게 탁! 뱀 지팡이를 바닥에 꽂았다.
긴 대화는 필요 없다.
“장로들의 실력이 궁금하긴 했지.”
“오냐, 저승 가서 실컷 자랑하거라.”
파파팟!
마의와 유령마군의 거침없는 접전이 시작됐다.
“미치겠네!”
한편 묘채경은 발을 동동 굴렀다.
장이서의 계획에 자신이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
‘그래. 네놈 말대로 다 된다고 치자. 한데 대공자가 그래도 기어코 널 죽이려고 한다면? 잘 알지 않으냐. 그가 집행을 맡은 이상, 그의 말이 곧 법이라는 것을.’
‘그렇게 되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겠죠.’
‘있긴 한 것이냐?’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이런 미친놈!’
그게 무슨 방법인가. 그냥 막 가겠다는 거지.
하나 돌이켜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이젠 확실히 노선을 정해야 할 시간.
이제라도 장이서를 죽이든가, 아니면 하늘을 믿어 보든가.
그 선택은…….
“장이서, 이 새끼야-!”
그녀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장이서를 향해 비수를 내던졌다.
피이잉!
파공음을 터트리고 칼날이 궤도를 그리며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