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24)
첩자의 마교생활-224화(224/350)
224.
#좋아할 일이 아니다
– 무림맹 호북지부 암각.
천산이 장이서로 인해 들썩일 그 시각.
암각에서도 그에 대한 대화가 한창이었다.
“다시 말해보거라. 능가경을 가져간 자가…… 정녕 103호라는 말이더냐?!”
무림맹에서 이제 막 복귀한 제갈상은 혼란스러운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노왕야를 시해하고 원류심법을 훔쳐 달아난 자를 찾기 위해 무림맹엔 특급 비상이 걸렸다.
한데 그자가 103호였다니!
“예. 하지만 그가 노왕야를 살해했다는 건 아니에요.”
“그럼…….”
“혈교. 그들이 한 짓입니다.”
“……!”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제갈상은 정신이 아찔했다. 그리고 제갈소미는 빠르게 자신이 겪은 일을 설명해 나갔다.
103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능가경을 주웠고, 이내 천리미향이 뿌려진 걸 깨닫고 103호가 스스로 혈교의 미끼가 되었다는 것까지.
제갈상은 갈수록 놀란 표정이 굳어지고, 입술은 굳게 다물어졌다.
만일 모든 말이 다 사실이라면 노왕야의 죽음은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는 얘기.
“103호는 손속이 잔혹했으나 정의롭고, 희생을 아는 자였어요. 그가 아니었으면 저와 선유 소협은 살아 있지 못했을 겁니다.”
그랬을 거다. 선유는 103호의 동생. 그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불구덩이라도 뛰어들었을 것.
제갈소미에게 같이 보낸 것이 신의 한 수였다.
“혈교는 마교에도 수십 년간 숨어 있었다고 했어요. 분명 무림맹에도 암수가 뻗쳐 있을 거예요.”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 제갈상은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 일을 누가 더 알고 있느냐.”
“저하고 선유 소협뿐이에요. 누구도 믿을 수 없어 각주님이 오실 때까지 함구했습니다.”
“앞으로도 반드시 함구해야 할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말해선 안 된다.”
충격적인 이야기. 혈교에 대한 일을 묻으라는 것인가.
“예.”
한데 제갈소미마저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당연했다. 이는 혈교를 묵인하겠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 반대.
이제부터는 그 누구도 믿지 말고, 더 신중하고 은밀하게 파나가야 한다는 뜻.
확증도 없이 들쑤셨다간 오히려 서로를 믿지 못하고 자중지란에 빠지게 될 게 자명했으니.
‘실로 험난한 날이 되겠구나.’
제갈상은 씁쓸함이 차올랐다.
이제야 알겠다. 천기가 왜 이리도 탁했었는지.
이는 마교가 아니라 혈교가 문제였던 것이다.
“103호도 능가경을 보았느냐?”
“예. 하지만 훑어본 게 다였어요. 당연히 원류심법인 건 알지 못했을 거고요. 그 자리에서 해독하는 건 저도 쉽지 않았으니까요.”
과연 그럴까. 제갈상이 쓴웃음을 삼켰다.
‘그 아이는 그 자리에서 모두 읽어냈을 것이다. 그리고 범상치 않은 물건임도 깨달았겠지.’
하지만 더 긴 말은 하지 않았다.
모두에게 추앙받는 원로들마저 혀를 내둘렀던 괴물이 바로 103호다.
그에 대한 일화를 늘어놔 봤자 허탈함만 늘어날 뿐.
어쨌든 천만다행이다.
가치가 크다는 걸 알았을 테니 무슨 수를 써서든 능가경을 사수했을 터.
혈교로서는 아주 끔찍한 변수를 맞이하게 된 셈이었다.
‘후후, 그 아이라면 상대가 혈교라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제갈상의 입가에 숨길 수 없는 미소가 자욱이 번졌다.
‘103호……. 네가 무림을 위해 수고를 해주어야겠구나. 부디 능가경을 끝까지 지켜다오.’
이용만 하는 현실에 늘 그렇듯 미안한 마음이 짓쳐 든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것이 있었으니, 103호는 이미 능가경을 지켜내다 못해 제 것으로 만든 지 오래라는 것.
또한 점점 함부로 다룰 수 없는 거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장이서가 끔찍한 변수인 건 얘나 쟤나 마찬가지라는 얘기.
“지금부터 우리 암각은 혈교의 진상을 파헤칠 것이다. 험난한 길이 될 것이다. 갈 수 있겠느냐?!”
제갈상의 결의 섞인 물음에 제갈소미는 웅장해지는 가슴을 느끼며 힘차게 답했다.
“예!”
“좋다! 이제부터 은밀히 103호의 행방을 추적하거라. 반드시 선유와 함께 움직이거라. 그 아이가 널 지켜줄 것이니.”
제갈소미가 힘 있게 포권을 취한 뒤 밖으로 나섰다.
오늘도 천하를 위해 애쓰는 암각이었다.
* * *
– 마해산 비룡당.
모두가 숨이 멎은 채 얼어붙었다.
장이서가 부교주라니.
“마, 말도 안 돼…….”
천무기는 털썩 주저앉은 채 아예 넋이 나갔다.
“자, 장이서가 뭐를 해?!”
“으음…….”
“지금 나만 잘못 들은 게야? 부, 부교주라니.”
마오와 구유. 그리고 마의 역시도 놀라기는 마찬가지.
아니, 누가 놀라지 않겠는가.
‘장이서가 부교주라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것이냐!’
묘채경은 아예 눈이 튀어나올 뻔했고.
‘역시 소천마가 맞았구나! 이제부터 제대로 본격적인 후계 구도를 밝히시는 거다.’
당연하다는 듯 환호하는 번천검객도 있었다. 하지만 생각의 종착지는 모두 동일했다.
‘본교에 대파란(大波瀾)이 일겠구나.’
지금까지의 권력 구도에 새로운 변화가 들이닥친 것.
“부교주는 천마전으로 오거라.”
그렇게 천마는 혼란만을 남겨둔 채 하늘 높이 비상했다.
“천마지존 만마앙복!”
“천마지존 만마앙복!”
처형식은 끝이 났다.
‘첩자인 내가…… 부교주라고?!’
경악이라는 여운만을 남겨 둔 채.
*
천마가 떠나가고 장이서는 서둘러 처형장을 빠져나왔다.
가는 길은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시끄러웠다.
“장이서, 그거 할 거야? 부교주.”
당연히 주제는 천마가 남기고 간 선물 아닌 선물이었다.
마오는 가는 내내 아기 새처럼 들러붙어 쫑알쫑알 떠들었다.
“부교주 하지 마.”
“왜요.”
“나보다 높아지는 거잖아……. 그건 싫어…….”
“앱니까? 그리고 그딴 독재자 같은 소리 수줍게 하지 마십시오.”
“이 정도면 신분 상승이 아니라 신분 환생이잖아!”
마오의 말대로였다. 그야말로 다시 태어난 수준.
이대로면 장로고, 당주고 간에 장이서에게 고개를 조아려야 하고, 후계들도 소교주가 아닌 이상 그에게 예를 갖추어야 했다.
명실상부 마교의 이인자가 된다는 것.
“으아아악! 배 아파! 왜 네가 더 올라가는 건데!”
“말 또 이상하게 하시네.”
“너 솔직히 말해. 처음부터 이러려고 나한테 접근한 거지. 어?”
그랬으면 너한테 갔겠냐. 집게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꾸욱 눌렀다. 그러자 마오가 갑자기 심각한 고민에 빠지는가 싶더니 툭 말을 뱉었다.
“아니다. 너 그냥 부교주 해!”
“또 왜요.”
“부교주 하면서 내 보좌도 같이 해. 그럼 네 주인은 나니까 내가 더 높은 거야.”
“무슨 그딴 논리가…….”
“우하하하! 내 보좌는 오늘부터 부교주다!”
마오가 신난다고 달려 나간다. 이럴 땐 참 부럽다. 쟤의 순박함이.
“그래도 무사해서 다행이군.”
“어쨌든 첩자 누명은 벗었으니 다행인 게지.”
고개를 돌리자 구유와 마의가 다가선다. 표정들을 보니 십년감수한 것처럼 아직도 놀란 기색이 남아 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 죄송합니다, 형님.”
둘에게 사과를 건네자 구유는 대답 대신 어깨를 툭 두드렸고, 마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답했다.
“나보다 엽굉 저놈이 얼마나 날뛰던지. 당장 구하러 가야 한다고 직접 노까지 저었다.”
마의가 흘깃 후방을 살핀다. 칠무위 옆에 의생들과 함께 걸어오는 부각주 엽굉이 보였다.
모두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만일 천마가 나타나 중재하지 않았다면 참형을 면치 못했을 일이었다.
첩자를 도와 일소궁과 칼을 겨눈 것이니.
한 마디로 목숨 걸고 저를 지켰다는 것. 마음이 저릿하지 않을 수 없다.
“한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게냐. 그러고 보니 그새 더 강해진 것도 같고.”
절정 끝자락에 오르면 가끔 자신도 모르게 기운이 흘러넘쳐 새어 나올 때가 있다.
방금이 그랬다. 순간 화가 차올라 주체하질 못했다. 두 사람은 그걸 바로 간파했고.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장이서는 내기를 갈무리하곤 그답게 두루뭉술 답했다.
“그래. 무사하면 되었다.”
두 사람도 이젠 하루 이틀 일이 아닌 터라 그러려니 했다.
“그보다 앞으로가 걱정이구나.”
마의의 얼굴에 깊은 시름이 담겼다.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 때문.
바로 부교주라는 자리였다.
장이서는 폭탄 같은 발언을 던졌다.
“천마께 명을 거두어 달라 청할 생각입니다.”
두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심인가? 진심이다.
“부교주 자리를 거절하겠다는 건가? 어째서.”
구유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묻는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를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잘 생각했다.”
하지만 마의는 의외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이에 구유가 다시 물었다.
“부교주가 되면 좋은 것 아닌가?”
좋지. 하지만 해선 안 될 이유가 있다.
마오를 소교주로 만들어야 해서? 아니, 오히려 그건 보좌 때보다도 더 쉬울 거다.
이에 대한 답은 장이서 대신 풍채 좋은 두 사람에게서 흘러나왔다.
함께 와준 호룡당주 지대호와 금룡당주 만금수였다.
“아무리 허기가 져도 아무거나 먹으면 탈이 나는 법이지.”
“맞습니다. 하물며 나보다 훨씬 더 큰 떡이라면…… 먹기도 전에 깔려 죽는 법이지요.”
두 사람의 말대로였다. 장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부언했다.
“냉정히 말하자면 좋아할 일은 아니야. 아니, 역으로 아주 위험한 상황이지.”
“……!”
부교주가 무엇인가.
말 그대로 교주가 없으면 교주. 명실상부 마교의 이인자라는 얘기다.
심지어 진우광이 단 한 번도 내준 적 없던 공석. 쉽게 말해 부교주 없이도 잘 돌아가고 있었다.
한데 고작해야 이립도 안 되고, 초절정도 못 넘긴 장이서가 마교 부교주에 앉는다면?
‘가차 없이 칼부림이 벌어질 거다.’
그리고 그건 조금 전 처형장에서 이미 벌어질 뻔했었다.
천마가 무책임하게 날아가 버린 뒤, 어색하고 무거운 침묵 속에 유령마군이 읊조렸다.
‘감히…….’
그러곤 억눌렀던 살기를 폭발시키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 대상은 장이서. 뼛속까지 마인인 그에게 뒷일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장로로서 명한다. 당장 해산하라! 해산!’
그때 마의가 노련하게 대처하고, 지대호와 만금수. 그리고 번천검객이 나서지 않았다면 무조건 칼부림이 벌어졌을 거다.
‘사해령하고 이공자 표정도 평소랑 달랐지.’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뚫어지게 쳐다보던 그 눈빛. 생각만 해도 등골이 서늘했다.
“그런 것이었나.”
구유가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정쟁이었다.
“이대로 부교주가 된다면 앞으로 수많은 이가 널 노릴 것이야. 장로들도 가만히 두고 보진 않겠지.”
마의의 말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맞는 말이다.
본래 위계질서가 확실할수록 변화를 반기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마교는 권력 구도가 확실했다.
당주들과 장로들은 내실을 다졌고, 후계들은 소교주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예상외 범주가 그리 크지 않다는 얘기.
하지만 장이서라는 부교주가 나타나는 순간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장이서는 당주와 장로들의 소사에 관여할 권한이 생기고, 후계들에겐 비슷한 또래의 장이서가 걸림돌처럼 느껴지게 될 거였다.
존재 자체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일.
그럼 아무런 세력도, 힘도 없는 장이서는 어찌 되겠는가.
‘뜯어 먹히든가, 이용만 당하다 사라지게 되겠지.’
그랬다. 이것이 바로 부교주라는 자리가 마냥 좋을 수 없는 이유였다.
지금도 마의와 독산각. 그리고 지대호와 만금수가 동행하는 이유가 장이서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갑자기 누군가 암습을 해올지도 모르니까.
“크하하하! 그래도 잠시라도 우리 장 보좌가 크게 출세한 거 아닙니까. 경하드립니다, 부교주님.”
지대호가 능청스레 포권을 취하며 장난을 쳤다. 이에 만금수도 껄껄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이 상황에 농담들이 나옵니까.”
장이서도 픽 실소를 짓자 모두가 사이 좋게 웃음을 터트렸다.
어쨌든 지금이라도 천마에게 가서 바로 잡으면 되는 일이다. 그저 한 가지 불안한 것은…….
‘천마가 떠나면서 웃던 모습이 꼭 지난날 내게 숙제를 내리던 모습 같았다.’
유희를 즐기는 듯한 그런 악랄한 모습 말이다.
‘설마 아니겠지…….’
머릿속에 잡념을 떨쳐내고 말했다.
“가죠. 천마전으로.”
천마를 빨리 만나야겠다.
장이서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먼발치 앞서 나갔던 마오는 웃던 얼굴을 지우고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하늘만을 바라보았다.
결의를 다진 사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