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31)
첩자의 마교생활-231화(231/350)
231.
#제3의 눈
– 서녕 패검문.
대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들어섰다.
본판만 생각하면 어디에도 꿇리지 않을 용모거늘, 콧등과 눈썹에 깊이 파인 흉터가 이를 가린다.
그의 이름 만광.
패검문의 소문주이자 마교 청해지부장의 아들이었다.
평소 그의 성질머리는 지랄맞기로 유명했다. 그리고 그건 집안 내력이기도 했다.
외지 세력이 청해에 나타나면 아비고 아들이고 쫓아가 박살을 내야 직성이 풀렸다.
그 짓을 하도 오래 하니 소문이 돌아 근래에는 좀 뜸했었는데…….
“능가경인지 지랄인지 찾아다 불태워버리든가 해야지. 끝도 없이 기어들어 와! 열 뻗치게.”
요즘은 그것도 옛말. 너무 많은 이가 청해에 들이닥치자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흑사방과 시비가 있었다니요!”
“후우…….”
그리고 전쟁은 안에서도 이어졌다.
염소수염의 사내가 총총걸음으로 달려와 잔소리를 퍼붓기 시작했다.
“소문주님. 제가 사도련과는 척을 지면 안 된다고 누누이 말씀드렸지 않았습니까!”
“허 총관. 먼저 시비 건 건 놈들이고, 맞은 것도 난데 왜 나한테 지랄이야?”
“누가 했느냐가 중요합니까! 지금 상황이 안 좋다고 몇 번을…….”
“아, 거. 상황이고 나발이고, 우리가 흑도 새끼들한테 굽신거려서 되겠냐고! 쪽팔리게.”
만광이 인상을 찌푸린다. 하나 허 총관은 더욱 노한 음색으로 호소했다.
“그들이 소문주님을 왜 살려준 줄 아십니까? 패극마검(覇極魔劍) 만세극! 문주님 때문에 살아계신 겁니다.”
“그게 뭐. 어쨌든 살았잖아. 뭐가 문젠데?!”
그래, 아무 문제 없다.
“문주님께서 주화입마로 쓰러지시지 않았습니까.”
지부장 만세극이 앓아눕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신통하다는 의원들도 모두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입단속을 한다고 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와도 같지요.”
그야말로 촌철살인에 가까운 일침.
“문주님과 함께 청해를 호령했던 세 분도 이미 등을 돌렸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분들은 오직 자신을 꺾을 수 있는 자에게만 고개를 숙인다는 것을.”
“아버지가 이대로 끝날 거 같아? 웃기시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벌떡 일어나실걸? 저 양반 성질 알잖아.”
“이번에는 다릅니다. 벌써 백 일이 넘었습니다.”
저주와도 같은 단언에 만광은 분노의 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뭐라고 대꾸할 말이 없었다.
이제 하루에 만세극이 깨어 있는 시간도 세 시진(6시간)이 채 되지 않으며, 그마저도 헉헉대며 앓고 있었다.
당장 오늘이 고비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일.
“x발……. 그럼 어떡하라고! 뭣도 아닌 새끼들이 내 집에서 주인 행세 하는 걸 보고만 있어? 아버지가 그걸 좋아하실 거 같아?”
“제발 정신 좀 차리십시오! 지금은 참회의 심정으로 고개를 숙여야 할 때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참회를 하냐고!”
“소문주님-!”
“두고 봐. 천산에선 우릴 절대 버리지 않을 거니까. 지금 상황을 다 해결해 줄 거라고. 아버지한텐 허 총관이 대신 인사나 좀 해줘. 간다.”
만광이 밖으로 다시 나간다. 이에 허 총관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아직도 천산을 믿는 것인가. 이리 멍청해서야……. 그 아비에 그 아들이구나.”
잘못 들은 것인가. 아무리 화가 났다고 하더라도 관계를 고려하면 나오기 힘든 말이다.
하나 더 놀라운 건 그 뒤에 옆으로 다가온 수하와의 대화였다.
“……어찌할까요.”
“어쩌긴. 어차피 이대로면 패검문은 끝장이다. 용하다는 의원들도 문주님을 치료하지 못했으니.”
허 총관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
“이제라도 명예롭게 보내드리는 것이 충신의 자세.”
“……!”
“흑사방에 연통하거라. 내가 제안을 하고 싶다고.”
청해지부의 수장인 패검문에 반란의 향연이 음산히 퍼지기 시작했다.
허 총관은 이제 패검문이 변화를 맞이할 때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건…….
‘이거 아주 재밌게 흘러가는구나.’
지붕 위에 숨어 엿듣던 비룡당주 묘채경도 마찬가지였다.
* * *
– 서녕 청해객잔.
청해에 도착하고 어느새 하루가 지났다.
장이서는 새벽의 공기를 마시며 명상에 잠겼다.
가장 큰 걱정은 근본적인 문제였다.
‘내가 혈교를 막아낼 수 있을까.’
이것이 이번 임무의 가장 큰 관건.
막상 떠나오긴 했지만, 이긴다고 확신하는 건 자신감이 아니라 무모함일 것이다.
그들의 힘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막강했다. 당장 창귀신 적아린만 나타나도 매우 난감해질 것이다.
수준만 놓고 보면 삼공녀 사해령과 크게 차이 없는 절세 고수.
물론 지금은 남천능가경을 익히고, 세 번째 구멍까지 막았으니 전처럼 쉽게 당하진 않을 거다.
하지만 그런다고 결말이 바뀌는 건 아니었다.
‘혈마귀의 힘을 빌리지 않는 한 지금 내 수준으로는 그녀를 이길 수 없다.’
무슨 수를 써도 절정이 초절정을 넘을 수 없는 건 당연한 일.
결국 최악의 상황을 위해 역전의 패 하나는 지니고 있어야 했다.
막연히 떠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사숙이 준 만년설삼의 영단을 취하고, 네 번째 천공을 봉하는 것.
‘불가. 아무런 심법도 없이 행했다간 천마기에게 잡아먹혀 사라질 공산이 크다.’
바로 고개가 저어졌다. 그럼 남은 건 차선책인 두 번째.
그것은 바로 혈마귀를 다루는 거였다.
‘혈마귀는 또 다른 너의 자아이자 내면. 네가 직접 마주할 때 비로소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천마는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그리고 장이서는 그 뜻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 두 번이나 겪어봤으니까.’
온통 어둠으로 가득 차 있던 내면의 세계.
분명 그 안에서 혈마귀를 마주했었다. 그리고 그의 모든 감정에 감응했다.
갈증과 탐욕. 살의와 열망.
그 모든 것이 생경하게 느껴졌었다. 마치 스스로가 느끼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건 허상이 아니라 분명히 존재하는 실체였다.
장이서는 그 안에 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다시 들어가지?’
분명 정신이 약해졌을 때 혈마귀를 마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옳은 방식이 아닌 듯했다.
‘약자로서가 아니라 동등한 권위자로서 그를 찾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맨정신에 스스로의 의지로 문을 두드려야 하는 것.
‘천천히 생각해 보자.’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두 눈을 떴을 때 담기는 전경인가. 그것도 맞다.
하지만 장이서는 이를 전달의 개념으로 축소했다.
‘두 눈은 결국 실체를 대뇌로 전달하는 도구이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다고 실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위치나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인다고 실체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결국 시력은 곧 실체를 바라본 찰나의 순간, 두뇌가 얼마만큼 인지했느냐의 차이.
바꿔 말하자면, 무언가를 바라본 순간 인지를 극대화한다면 지금껏 보지 못한 것들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엔 문제가 있었다.
‘두 눈이라는 도구로는 결코 담아내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 내면도 그중 하나.’
그러니까 내면을 보려면 단순히 인지력을 높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도구도 바꾸어야 했다.
바로 눈이 아닌 기(氣).
기감을 통해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기는 각자 고유의 색을 지닌다. 고결할수록 섬세하며 수많은 감각을 전달하기도 한다.’
그리고 장이서는 감히 그중 최강이라 칭할 수 있는 기를 지녔다.
무려 천마의 기(氣).
그러니까 내면의 세계로 이끌어 준 것은 분명 천마기다.
“후…….”
멎은 숨을 뱉어내며 마음을 비웠다.
이론은 끝났다. 남은 것은 실전.
모든 감각을 개방하고, 핑! 천마의 기를 원형으로 발출했다.
우우웅!
장이서의 주변으로 파동이 되어 흘러 나간 천마기가 두 눈이 되어 수많은 감각을 전달한다.
떠다니는 공기. 이를 실어 나르는 바람.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온도. 혼재된 자연의 기운.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실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장이서는 이를 느끼는 것에서 안주하지 않고 보고자 노력했다.
안 된다고 억지로 상상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시 시도했다.
다시. 다시. 또, 다시.
그렇게 무아지경에 들어선 채 수없이 이를 반복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는지도 잊어버릴 때쯤.
웅웅웅!
미간 사이에 짙은 남색의 기운과 함께 미지의 힘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건……! 남천능가경?!’
그랬다. 분명 남천능가경이었다.
그것도 지금까지 한 번도 발현한 적이 없던 천궁의 힘!
‘눈과 관련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천궁의 힘이 심안을 뜻하는 것이었을 줄이야.’
놀라움도 잠시. 어느새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제3의 눈이 개안(開眼)한 것이다.
‘이렇게 생겼었구나……!’
그중 처음 바라보게 된 것은 바로 바람이었다.
커다란 물결 속에 각기 헤엄쳐 노니는 어류를 본 기분. 이는 실로 복잡하면서도 오묘했으며 아름다웠다.
오래지 않아 사라져 버렸지만, 이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쾌감이었다.
장이서는 그때부터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바람, 공기, 온도, 심지어 미세하게 흐르는 자연의 기운까지. 그렇게 긴 시간을 적응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다.
“후…….”
명상을 시작할 때의 눈부셨던 햇살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어느새 칠흑처럼 어두운 밤이 되어버린 것.
하지만 장이서가 천마기의 파동을 일으키는 순간.
핑!
두 눈에 어둠이 걷히고, 보이지 않던 수많은 것들이 함께 담기기 시작했다.
이중 흐르는 바람을 집중해서 바라보자, 어느새 서서히 느려지고 확대된 것과 동시에 마치 시간이 멎은 듯한 착각까지 일었다.
‘실체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달리 흐르는 것인가.’
지금으로선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는 일.
이는 구유의 만안과도 유사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만안은 눈으로 다량의 정보를 던져주는 것이고, 장이서의 심안은 오감과 기를 통해 수용한 정보를 머릿속에서 재해석하는 것이다.
훅!
천마기를 다시 거두어들이자, 불이 꺼진 듯 다시금 세상이 어두워진다. 시간 역시 원래대로 흘러갔다.
“이건 대체…….”
자신이 펼쳐 놓고도 솔직히 얼떨떨했다.
그저 혈마귀가 보고 싶었을 뿐이거늘, 실로 놀라운 힘을 얻게 된 것.
사실 이는 천마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보이지 않는 영역을 기로 바라보는 것은 입신지경인 극마에 올라야 가능한 일.
이를테면 독마가 바라본 대나무 숲의 암영이나 우사가 바라본 칠소궁의 독무가 그런 것이다.
해서 천마가 말한 것은 단지 내면과 마주하는 감응에 불과했었다.
한데 지금 장이서는 천궁의 힘을 깨우치면서 완전히 새로운 제3의 눈을 얻어버렸다.
“혹시 불사독으로도 가능한가?”
일순 기대감에 심장이 벌렁거렸다.
남천능가경은 원기를 강화하고, 육신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주는 심공.
천마신공이 아닌 불사독마공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다르지 않을까.
핑!
장이서는 망설임 없이 불사독으로 파동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저 어둠뿐. 외의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헛된 기대였던 건가. 한데 바로 그때였다.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