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35)
첩자의 마교생활-235화(235/350)
235.
#패검문주 만세극
“괴물……?”
“아니, 제가 괴물 같은 폭우랬지. 언제 괴물이라고 그랬습니까?”
“비슷해.”
“그게 어떻게 비슷합니까!”
만광이 당황한 사이, 장이서는 성큼 앞으로 한 걸음을 디뎠다.
“천산에서 온 감찰관 장이서요. 그쪽이 지부장이라고.”
“크크크……. 본산에서 온 것이냐. 겁 없는 애송이 한 마리가 또 내려오셨군. 당주가 보낸 녀석인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노려보는 눈빛이 곧 죽어도 범은 범이다.
근데 그게 꼭 싫지만은 않다.
어설프게 자존심만 강한 자들은 대게 무게가 가볍고 화만 가득하다.
하나 그의 눈빛은 녹록지 않았던 제 삶을 증명하듯 사나웠고, 무거웠다.
범 흉내 내는 이리 따위가 아니라는 얘기.
“누가 보냈는지가 중요한가. 누가 왔는지가 중요한 거지.”
장이서가 털썩 앉으며 웃었다. 이에 만세극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새끼 봐라.
그가 이곳 청해에서 땅에 묻은 놈들만 수백이오, 부러트린 이빨만 수천 개였다.
그래서 눈만 봐도 안다.
허세만 가득한 놈인지, 아니면 사선 위를 넘나들던 놈인지.
“이번엔 당주가 제법 쓸만한 놈을 보내왔구나.”
만세극이 때아닌 호평을 내뱉자 노심초사하던 만광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아버지가 잠드신 동안 허 총관 이 새끼가 흑사방하고 붙어먹고 배신을 했습니다. 그때 이분께서 위기에 처해있던 절 구해주셨고요.”
“위기?!”
“아, 그게…… 제가 만취해 있는데 흑사방 새끼들이 갑자기 덮치는 바람에…….”
“이런 멍청한 놈!”
만세극의 입에서 우레와 같은 노호가 터졌다.
“총관한테 얕보인 것도 모자라 고작 흑도 새끼들한테…… 크윽!”
불같은 성미를 못 참은 만세극이 가슴팍을 움켜쥐고 몸을 숙였다.
“의, 의원! 밖에 의원이 있느냐!”
만광은 황급히 뛰쳐나갔고, 장이서는 턱을 괸 채 헐떡이는 만세극을 골똘히 살폈다.
정확히는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파를 읽었다.
‘숨구멍이 꽉 막힌 것처럼 기가 빈약하다. 주화입마에 빠져 커다란 내상을 입었다더니. 이건 곧 묻을 송장과 다를 게 없구나.’
잠시 후 만광과 함께 의원이 들어오고, 탕약을 먹인 뒤에야 간신히 호흡이 돌아왔다.
그새 진이 빠졌는지 얼굴색이 더 병약해졌다. 의원이 나가고 만광이 물었다.
“아버지 괜찮으십니까?”
“못난 놈…….”
만세극은 만광의 손을 뿌리치곤, 사납게 노려보며 말했다.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그래도 자식 구해준 대가는 치르겠다는 건가. 성질머리치고 은원관계는 확실한 자다.
“같은 본교 사람 구해준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신경 쓸 것 없소.”
“흥, 내숭 떨 것 없다. 비루하게 죽어가는 꼴일지언정, 누구에게 빚지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
자조적인 미소를 짓는 만세극. 그만큼 자신의 상태를 절망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리라.
“그럼 하나 물읍시다. 어쩌다 그리된 거요.”
뜬금없는 질문에 만세극과 만광 부자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하나 장이서의 눈빛은 집요했고, 담긴 의미는 중요했다.
‘어쩌면 혈교가 개입한 것일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허 총관 사태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참극이 벌어질 수도 있는 일.
“꼭 그걸 들어야겠느냐?”
“들어야겠소.”
“끙…….”
만세극에게서 짙은 침음이 뱉어졌다. 말로 꺼내기 상당히 부끄러운 이야기였기 때문.
하나 사내가 한 입으로 두말할 수는 없는 일.
“독문심법의 대성을 넘어 극성을 이루려다 주화입마에 빠졌다. 되었느냐?”
그것도 홀로 방 안에서 기혈이 막혀 억! 쓰러졌다.
만세극은 이빨을 꽉 깨문 채 얼굴이 상기됐다.
장이서는 경직된 얼굴이 멍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짧지만 금세 이해가 됐다. 강호에선 흔한 일이었다.
심법은 단순히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육신을 만들어가는 과정과도 같았다.
가령 천양지체의 마오가 빙공은 절대 익힐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여 심법은 단순히 오래 한다고 끝에 다다르는 게 아니라 체질도 변화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극성에 오른다는 건 심법과 육신이 완전한 일체화를 이룬다는 것.
한마디로 극악에 가까운 도전이라는 말이다.
“한심해 보이느냐?”
그럴 리가. 혈교의 소행이 아닌 걸 다행으로 생각할 뿐.
“비웃고 싶다면 비웃거라. 하나 내 도전에 후회는 없다. 한계를 부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
“수련하다 다치는 건 비일비재한 일이오. 더구나 한계를 부수고 나아가기 위한 도전은 무인의 기본자세이지. 이는 실패했다고 비웃음을 받을 일도, 비난받을 일도 아니요. 동정받을 일은 더더욱 아니고.”
“……!”
예상 못 한 반응인지 만세극의 두 눈이 짝눈으로 커졌다.
“왜 그렇게 보시오.”
“……아니다.”
아니라고 말했지만, 사실 가슴이 간질거리는 건 분명히 있었다.
자신이 쓰러졌을 때 대부분의 반응은 안쓰러워하거나 동정이 전부였기 때문.
대부분이 안 될 거라며 사전에 말렸던 터라 더 그랬다.
누구도 뻔히 실패할 결과를 향해 가는 과정을 인정해 주지는 않으니 말이다.
해서 장이서와 같은 반응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게 알게 모르게 위로가 됐다. 아니, 솔직히 울컥했다.
‘누구냐, 너는.’
처음부터 쉬운 놈이 아니라고는 느꼈지만, 지금 보니 더더욱 깊이가 달라 보인다.
마치 숱한 수라의 장을 건너 깨달음에 다다른 거인의 느낌.
실력을 떠나 기질이 제 자식과 비슷한 연배로는 도저히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감찰관이라고 했나.”
“그렇소.”
“지부장 자리는 대마선사(大魔禪師)에게 넘기겠다.”
“아버지!”
대마선사(大魔禪師) 지승. 청해지부를 이루는 네 개의 방파 중 도탑사의 수장이다.
서장 라마교 출신들로 불가를 표방하나 실상은 자객집단.
기습 통보에 장이서는 이채를 띠었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소.”
“자식새끼는 아직 어려 물어뜯길 것이고, 간부란 것들도 하나같이 가벼워 탐탁진 않으나……. 그나마 대마선사가 가장 고강하니 그리하는 것이 낫다.”
“탐탁지 않다면서 그리 쉽게 내려놓아도 되는 거요?”
“네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내려놓지 않았을 거다. 간부란 것들이 서로 감투에 욕심을 부려 싸우려 들 것이 분명하니까.”
솔직한 마음이었다. 만세극이 스스로 치료 방도가 없음을 알면서도 여태 묵묵히 버텨온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청해가 무너지는 꼴은 죽어서도 보기 싫기 때문에.
하지만 눈앞의 장이서라면 왠지 분쟁이 더 커지지 않도록 잘 중재해 줄 것 같다는 믿음이 들었다.
“나을 방법은 아예 없는 거요?”
골똘히 살피자 옆에서 만광이 부언했다.
“용하다는 의원들은 다 불러봤는데도 원인을 찾지 못하고 힘들다는 말만을 되풀이합니다. 상태는 갈수록 안 좋아지시는데…….”
이해는 갔다.
의원이 치료를 하려면 우선 심법과 체질을 이해해야 하며, 어디부터 잘못됐는지를 일일이 풀어헤쳐야 하기 때문.
이런 경우 같은 무공을 익힌 자가 아니라면 매우 어려울 터.
‘만세극. 분명 성미는 불같으나 청해를 아끼고, 대의를 행할 줄 아는 사내다. 이런 자가 한번 마음을 열면 든든한 아군이 되어줄 텐데.’
묘하게 아쉬움이 남는 자다. 하지만 주화입마에 빠져 죽어가는 이를 앞에 두고 무얼 할 수 있겠는가.
장이서는 얕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지부장의 뜻은 잘 알겠소. 하지만 후임을 정하는 건 내 몫이오. 좀 더 생각해 보고 결정하겠소.”
“크크. 내가 괜한 간섭을 떨었군. 마음대로 해라. 하지만 시간을 오래 끌수록 곤란해지는 건 너일 거다. 지금쯤이면 네 소식도 놈들에게 들어갔을 테니.”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소?”
“놈들은 다음 지부장 결정이 너를 통해 이루어지는 걸 원치 않을 거다. 그러니 가장 먼저 배척하고 배제하려 하겠지. 어쩌면 물어뜯으려 들 수도 있고.”
“그렇다고 일을 허투루 할 수 있나. 지존께 위임받은 일이니 천천히 알아보고 결정하겠소.”
“화를 자초하는 녀석이로군.”
“그런 셈이지. 근데 그게 두려워 도전을 못 하면 칼 안 잡고 붓을 잡았어야지. 안 그렇소, 지부장?”
“……!”
만세극은 아픈 것도 잊은 채 크게 놀랐다.
왜냐하면 남들이 말릴 때도 자신이 심법 극성에 도전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
그리고 먼 옛날 천마 진우광이 했던 말이기도 했다.
‘실패가 두려워 도전을 하지 않겠다면, 차라리 그냥 죽거라. 아니면 붓을 잡든지. 어차피 베여 죽을 테니.’
만세극이 멍해진 눈으로 일어서서 돌아나가는 장이서를 흘겼다.
‘대체 저놈은…….’
장이서는 유유히 밖으로 나섰다.
드르륵.
그리고 뒤따라 나온 만광은 머쓱한지 머리를 긁적였다.
“면목 없습니다. 아버지 성격이 좀 유별나셔서. 그래도 이 정도면 굉장히 마음에 드신…… 죄송합니다. 주제넘었죠.”
꾸밈없는 목소리에 고개를 젓자 말을 잇는다.
“아무튼 좀 괄괄하시지만, 틀린 말씀은 안 하시는 분입니다. 지부장 자리는 빨리 내주시는 게 나을 거예요.”
“넌 욕심이 없는 거냐.”
“저요? 에이. 전 아직 멀었습니다. 성질만 급하고, 사고만 치고 다니는데요.”
“스스로를 잘 알수록 그만큼 성장도 빠른 법이지.”
“예? 아, 예. 하하하!”
소탈한 반응에 피식 웃으며 밖으로 나서자 연무장이 펼쳐졌다.
그러자 기합성과 함께 백색 무복을 입고 훈련 중인 문도들이 눈에 담겼다.
수는 많지 않으나 다들 칼끝이 예리한 게 제법이다.
“저희가 다른 건 몰라도 검법 하나는 자부합니다. 청해뿐만 아니라 어디에도 밀리지 않죠.”
누구나 다 하는 자랑처럼 들리지만, 볼수록 일리가 있어 보였다.
몸의 움직임은 유수처럼 부드럽고, 휘두르는 칼날은 태산을 가를 기세로 매서웠다.
해서 움직임을 예측하기가 난해하고, 설령 알았다 하더라도 갑작스레 몰아치는 검격에 상대는 난처해지기 일쑤일 터.
확실히 뛰어난 검법이라 자찬할 만했다.
“지존께서 가르침을 주셨다던데.”
“예. 뭐 무공을 직접 내려주신 건 아니고, 저희에게 맞게 잡아 주셨죠.”
대충 이해는 갔다. 심법과 일치해야 하는 건 육신뿐만 아니라 행위도 마찬가지이니.
‘이 정도 정성과 해학(解學)이라면 만세극이 극성에 이르지 못한 건 선천적인 체질 문제일 확률이 높다.’
장이서는 연무장을 지나쳐 대문으로 향하며 물었다.
“집에 지병이 있나?”
“지병이요? 아뇨. 저희가 욱하는 거 말고는 대대로 아주 건강합니다. 하하!”
“그런가.”
“예!”
피식 웃고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속내는 달랐다.
만세극이 실수했을 리는 없으니 반드시 몸 안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아마 사기(死氣)가 들어찬 곳이 바로 그 원인일 거다.
어느새 대문에 다다르자 만광이 허리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대인, 그럼 이제 어찌하실 겁니까?”
“지부장을 봤으니 나머지 간부들도 만나봐야지. 내일 정오까지 이곳에 모이라고 해라. 그때 찾아오마.”
“아, 아니 저기!”
만광을 뒤로한 채 장이서는 청해객잔으로 향했다.
“이런 젠장, 곱게 와 줄 양반들이 아닌데……?”
걱정에 짙은 한숨이 뱉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