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36)
첩자의 마교생활-236화(236/350)
236.
#궁금하시오?
다음 날.
만광의 걱정은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이게 다인가?”
“그게…….”
장이서가 장원에 들어서자, 깃발을 든 세 사람만이 내키지 않는단 표정으로 덩그러니 서 있던 것.
깃발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대마선사(大魔禪師) 지승.
천수낭자(天壽娘子) 성소경.
비무투광(比武鬪狂) 이지산.
모두 청해지부를 대표하는 도탑사, 광천루, 항우방의 수장들이었다.
물론!
‘볼품없는 기백에 비리비리한 행색만 봐도 저자들이 진짜는 아닐 테고…….’
대행인가? 절로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이건 아예 작정하고 한번 붙어보자는 얘기.
“인사 올립니다. 선사께선 용무가 다망하시어 대신 나오게 되었습니다.”
“인사드려요. 루주께서 오늘 태양이 너무 강하다 하시어서요. 피부가 좀 약하시거든요.”
“항우방이올시다.”
세 사람이 번갈아 인사를 올렸다.
말상, 쥐상, 개상.
어디 가서 찾기도 힘든 동물 상들이 고루 나왔다.
흘깃 옆을 살피자 만광은 이마를 척 짚고 고개를 숙였다.
제가 생각해도 졸렬한 수법이 너무나 부끄러웠던 것.
하지만 모두 예상한 일이기도 했다.
‘그 인간들이 쉽게 올 리 없지.’
이건 흔한 기세전이었다. 직급상으로는 감찰관이 위지만, 그들은 청해에서 닳고 닳은 노장들.
부름에 쉽게 응할 부류들이 아니었다.
아마 직접 찾아갔어도 별별 이유를 갖다 붙이며 문전 박대할 공산이 컸다.
게다가 지금은 지부장 선정 건이 걸려 있는 상황.
누구를 선정해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개입 자체도 허용하지 않으려 들 거였다.
언제까지? 장이서가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그야말로 온실 속 상관 길들이기.
한데…….
“바쁘면 별수 없지.”
장이서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무덤덤하기만 했다. 이에 대신 온 세 사람은…….
‘호구 새끼가 왔구나!’
속으로 조소를 삼키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저런 개새끼들.’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건 만광뿐.
“어쨌든 세 사람을 거기 적힌 간부들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건가?”
“예, 저희의 뜻이 곧 그분들의 뜻이지요.”
말상의 땡중이 합장하며 답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요놈, 말투 봐라. 새파랗게 어린놈이 감찰관이랍시고 거들먹거리는 꼴이라니.
“오늘 내가 부른 용건은 간단해.”
뻔하지. 지부장 선정 건. 세 사람이 아니꼬운 눈으로 눈썹을 씰룩였다.
뭐라 말하든 한 귀로 흘려 시궁창에 보내 주마.
하지만 그들도, 만광도.
장이서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그는 마주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도탑사, 광천루, 항우방. 오늘부로 이 세 곳을 청해지부에서 제명코자 한다. 이의 있나? 있으면 지금 말해.”
“예?”
청천벽력이 떨어졌다! 제명이라니!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오늘부로 마교에서 퇴출하겠다는 얘기.
“가,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잘 이해가……?”
말상이 당황하여 말까지 더듬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네 사정이고.”
“하오나 이리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시면…….”
“다섯 센다. 하나.”
“억!”
뱉던 숨이 턱 막히고,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대체 뭘 항변하란 말인가. 저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졸개들인데.
말, 쥐, 개가 서로 눈치를 살피며 당황스러움을 발산했다.
그들이 아는 건 딱 이것뿐이었다.
청해지부에서 제명된다는 건, 교인의 자격이 박탈된다는 것.
그리고 천마신교는 이유 막론하고 나간 자들을 결코 살려두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까…….
‘다 죽으라는 얘기 아닌가!’
세 사람의 얼굴이 희멀겋게 사색으로 물들었다.
“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이건 저희가 나설 수 있는 일이 아닌 듯합니다!”
말상이 호소한다.
“둘.”
“돌아가서 루주께 여쭙고 올게요!”
쥐상이 허리를 크게 숙인다.
“셋.”
“제, 제발! 조금만 더 시간을……!”
개상이 엎드린다.
하나 장이서는 이런 일에 자비가 없다. 차가운 눈매로 툭 말을 뱉었다.
“넷.”
“당장. 당장 데리고 오겠습니다!”
파아앗! 그러자 세 사람은 깃발을 내던진 채 뒤도 안 보고 경공을 펼쳐 달아났다.
만광은 입을 떡 벌린 채 이를 지켜봤고, 장이서는 코웃음을 치며 돌아섰다.
“온다는군.”
“아니, 그게…… 예……. 그렇네요.”
만광이 넋 나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진짜 이 인간한테 청해가 먹힐지도 모르겠다고.
*
장이서는 안채에 놓인 방으로 위풍당당하게 향했다.
드르륵!
그러곤 제집처럼 돌아다니다 협탁 앞에 턱 앉아 말했다.
“만광. 차 좀 내오겠나?”
“예? 예에.”
뒤따라온 만광이 눈치를 살피다 총총 밖으로 나섰다.
장이서는 잠시 사색에 잠긴 듯 턱을 괴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옆에서 짜증 가득한 목소리가 흘러든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지?!”
포단 위에 누운 병든 범. 패검문주 만세극이다.
장이서는 실눈으로 슬쩍 보고는 다시 눈을 감으며 말했다.
“보면 모르오. 쉬고 있지 않소.”
“그걸 왜 내 방에서 하냐는 말이다!”
“명색이 감찰관인데 손님 방에 머무를 순 없는 일이지. 보는 눈도 많은데.”
뭐 이런 새끼가 다 있는가. 만세극이 어이가 없어서 쳐다보자 장이서가 되레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잠이 다 깨버렸군.”
“그게 지금 다 죽어가는 환자 앞에서 할 말이더냐!”
만세극이 고함을 내질렀다. 장이서는 슬그머니 눈을 뜨곤 뚫어져라 살피며 말했다.
“어제랑 달리 옷매무새도 단정하고.”
“……!”
“잠겨 있던 창문은 열려 있고.”
“무, 무엇이?!”
“엉성하게 급히 편 포단 위에 앉아 있는 걸 보니, 몰래 엿들었던 모양이군.”
“미친놈. 실로 어처구니가 없구나! 내가 엿들었다고? 나 만세극이 말이냐?! 크하하하하!”
아니오? 무심히 눈으로 묻자 만세극이 웃음기 싹 거두곤 답했다.
“귀신같은 놈.”
그래. 엿들었다. 안 궁금하면 어디 그게 사람인가. 대낮부터 앞마당에서 이 난리를 피우는데.
“엿들었으면 알 거 아니오. 간부들이 올 때까지 잠시 신세 좀 집시다.”
“간부들이 언제 올 줄 알고? 광천루가 있는 청해호는 여기서 가는 데만 걸어서 네 시진(8시간)이다. 하긴 천산에만 틀어박혀 있던 자가 뭘 알고 떠들어야지.”
만세극이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리려 하자 장이서가 도리어 웃으며 답했다.
“오래 안 걸릴 거요. 어차피 근방에 다 모여 있을 테니.”
“……!”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하루 사이에 셋이 의기투합하였소. 얼핏 보면 사이가 좋아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만, 실은 그 반대.”
“뭐?”
“오히려 믿지 못하는 거지. 혹 누구 하나 배신하고 내게 엉겨 붙을까 봐. 어쨌든 지부장 자리가 걸린 일 아니오. 그래서 인근에 다 같이 모여 있는 거요. 서로 견제하느라.”
“크하하하! 천산에 틀어박혀 상상만 한 것이냐? 청해지부가 그리 녹록한 줄…….”
“오기 전 관군에게 들어보니 새벽녘에 세 사람이 나란히 서녕으로 들어왔다더군.”
“이런 미친놈들!”
만세극의 노호가 터졌다. 그깟 지부장 자리가 뭐라고 자존심도 없이……!
아니, 그보다도 관군이 저에게 아무런 언질이 없었다는 게 더 충격이었다.
보나 마나 다 죽어간다는 얘길 듣고, 홀대하겠다는 것.
‘후, 말년의 팔자 한번 기구하구나. 그보다 이놈은 배짱만 좋은 게 아니라 머리도 보통이 아니다.’
알면 알수록 기괴하기 짝이 없는 놈. 이러니 더 이해가 안 됐다. 툭 터놓고 말했다.
“네 말대로 놈들이 여기 있다고 치자. 한데 대체 뭔 생각으로 그런 도발을 한 것이냐?”
“도발은 얄팍한 수작을 부린 그들이 한 것이고.”
“청해지부에서 제명한다면서. 놈들이 그 말을 듣고도 널 가만 놔둘 것 같으냐? 천만에! 이제 뵈는 거 없이 덤벼들 것이다. 아닐 것 같으냐? 그리 보았다면 청해를 아주 우습게 본 것이다.”
한마디로 영특한 놈이 뒤는 생각도 안 하고 일부터 저질렀다는 얘기.
한데…….
“그 정도 기개는 있어야지.”
“그게 무슨……!”
“궁금하시오?”
장이서가 빙그레 웃으며 묻는다. 만세극은 괜한 자존심에 인상을 팍 찌푸리고 답했다.
“다 죽어가는 팔자에 더 알아서 무엇 하려고. 지부장도 내려놓은 나다. 죽든지, 말든지 맘대로…….”
“내가 여기 온 건 청해지부 때문이 아니오.”
“그게 무슨 말이냐?”
“궁금하시오?”
이런. 만세극은 뒤늦게야 제 실수를 깨닫고 벌게진 얼굴을 휙 돌렸다.
장이서는 피식 웃으며 이어갔다.
“난 청해에서 벌어질 음모를 막으러 온 거요.”
음모?! 만세극의 두 눈이 번쩍 커졌다.
“그리고 함께 막을 이들을 찾는 중이고.”
“으음……!”
“어쩌면 이곳의 모두가 죽어 나갈 수도 있소. 그만큼 위험한 녀석들이지.”
“청해지부가 있는 한 그럴 리 없다!”
“그게 혈교라고 해도 말이오?”
장이서가 또다시 빙그레 웃는다. 반면 만세극은 거침없는 이야기에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혈교라니.
“그 말을…… 믿으라는 것이냐?”
“믿든, 안 믿든. 그게 사실이니까.”
실로 충격적인 이야기. 만세극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물었다.
“혹 능가경과 관련이 있는 것이냐?”
역시 지부장을 허투루 단 게 아니다. 장이서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답했다.
“이미 청해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이가 들어와 있소. 바꿔 말하자면 그들 모두가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지.”
“……!”
만세극이 짝눈을 뜨고 입을 벌렸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청해를 넘어 중원의 위기다.
“……내게 지금 이 말을 하는 저의가 무엇이냐.”
“이미 말하지 않았소. 함께 막을 이를 찾는 중이라고.”
“미친놈. 다 죽어가는 노인네를 얻어서 얻다 쓰려고.”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정말 청해를 위한다면 숨이 붙어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맞지 않겠소? 아니라면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이고.”
“이딴 몸으로 내가 무얼 할 수 있다고.”
“그건 당신이 정하는 게 아니오. 필요로 하는 내가 정하는 거지.”
“……!”
만세극의 말문이 턱 막혔다. 그때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만광이 들어와 다급히 외쳤다.
“대인! 간부들이 쳐들어왔습니다!”
“가지.”
장이서가 씨익 웃고는 밖으로 나선다.
그리고 홀로 남겨진 만세극은 넋 나간 얼굴로 마지막 말을 되뇌었다.
‘그건 당신이 정하는 게 아니오. 필요로 하는 내가 정하는 거지.’
우연일까.
분명 수십 년 전에도 똑같은 말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흑도 무리가 서녕에 쳐들어 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그날.
‘지키고 싶으냐.’
가족을 잃고 억울함과 분노함에 피눈물을 흘리던 그날.
‘그럼 가서 싸우거라.’
그가 나타나 말했었다.
‘한낱 삼류에 불과한 저희가 대체 저들을 무슨 수로 상대한단 말입니까!’
‘그건 너희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정하는 것이지.’
그리고 그날 만세극과 간부들은 처절한 싸움 끝에 서녕을 지키고 다시 태어났다.
“천마시여…….”
천마 진우광.
바로 그로 인하여.
“대체 넌 누구냐……!”
만세극의 시름이 더욱 깊어지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