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38)
첩자의 마교생활-238화(238/350)
238.
#함께 갑시다
독마안은 죽어가는 기운을 읽는 능력.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만세극의 몸에는 그런 사기(死氣)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였다.
‘흉부의 전중혈과 그 바로 아래 중정혈. 여기가 문제로구나. 딱 봐도 균열이 가득한 게 죽기 직전이다. 게다가 모두 임맥에 위치한 곳들.’
임맥과 독맥은 심법에 빼놓을 수 없는 곳인지라 그만큼 상할 위험이 크다.
하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딱 흉부의 두 혈만 이리 상해 있다는 건 쉬이 납득이 가질 않았다.
‘문제를 알았으니 이제는 기의 흐름을 읽을 차례다.’
핑!
독마안의 기파가 거두어지고, 이번엔 천마의 기운이 파동을 일으켰다.
천마안이다.
그러자 시간이 서서히 느리게 흐르고, 자연의 모든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기엔 만세극의 몸속에서 흐르는 기의 흐름도 포착되었다.
‘패검문의 무공은 유수(流水)의 기운을 품고 있구나.’
그러자 그간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음양오행이 감지되었다.
만세극의 기운은 마치 급류와도 같았다. 빠르고 변칙적이면서도 그 흐름은 일관했다.
회음혈을 지나 요추에서 세 갈래로 나뉘고, 이어 흉추의 척중혈에서 다시 만나 하나가 된다.
그리고 거침없이 정수리의 백회혈을 찍은 뒤, 다섯 갈래로 찢어진 내공이 염천혈에서 하나로 합쳐지면서 폭포수처럼 떨어졌다.
이어 흉부의 전중혈에 닿는 그 순간.
콰앙!
‘떨어지는 폭포수가 단단한 돌덩이에 부딪쳐 산산이 부서지는구나.’
이어 바스러진 내기는 바로 아래 중정혈에서 한참을 선회하며 다시 힘을 모아 단전으로 향했다.
이것이었다.
두 혈에 사기가 맺혀 있는 이유.
‘선천적으로 전중혈에 토(土)의 기운이 가득해 운기를 방해하는 것이다. 처음엔 그도 작았겠으나 경지가 오를수록 함께 커진 것.’
하여 극성을 향한 그의 도전이 주화입마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물로는 저 돌덩이를 부수지 못했기에.
단번에 내려진 정확한 진단.
사실 장이서는 모르겠지만, 아주 오래전 천마 진우광도 패검문주를 보며 똑같은 결론에 도달했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생각도 결이 비슷했다.
암석을 뚫을 수만 있다면…….
‘언제고 쓸만한 녀석이 되겠구나.’
‘초절정 경지에 오를 수도 있다!’
시대를 넘어 동시에 느낀 것이다.
장이서와 진우광이라는 두 사형제가!
하지만 물로 바위를 뚫는 건 수백 년의 세월이 필요할 만큼 요원한 일.
이는 그저 기적이나 요행을 바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야말로 부술 수 없는 선천적 한계.
하지만…….
장이서는 누구보다도 그 한계를 깨부수는 데 이골이 난 자!
“지부장.”
장이서의 망막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시간이 다시 흐른다.
“무엇이냐.”
갑작스러운 부름에 검을 높이 든 지부장이 고개를 돌렸다.
한데 바로 그때.
“함께 갑시다.”
척! 장이서의 손바닥이 그의 등을 짚었다. 그러고는 대뜸 자신의 내력을 그에게 집어넣었다.
실로 위험천만한 일!
“흡!”
하나 만세극은 화내는 것도 잊어야 했다.
왜냐하면 자신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영롱한 황금빛 기운이 허락도 없이 파고들었기 때문.
지금 천하를 달구고 있는 희대의 무공!
남천능가경의 힘이었다.
‘이, 이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본래 내기는 서로 쌓아온 것이 다르기에 함부로 전해서도 안 되고, 받아서도 안 된다.
수만 가지 이유로 내상에 빠져 죽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
한데.
‘대체 무슨 무공이기에 이리 아무렇지 않게 스며들 수 있는 것인가.’
이건 마치 자신이 일평생 익힌 심법처럼 너무나 자유롭게 몸 안을 주유했다.
한데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나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장이서의 남천능가경은 수많은 심법의 모체로 통하는 원류심법.
접근성과 친화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남천능가경은 그렇게 허락도 없이 순식간에 단전까지 파고들었다.
그러자 더더욱 믿을 수 없는 기적이 발현되었다.
‘말도 안 된다!’
만세극의 원천이 되는 내공과 점점 동화되더니 기세가 강해지기 시작한 것.
졸졸 흐르던 시냇물은 폭포수가 되고, 탁하던 흙탕물은 청명한 지하수가 되었다.
어느 순간에 이르자 주체하지도 못할 정도.
그렇게 고강해진 내기는 제멋대로 등골을 타고 올라가 정수리까지 한순간에 다다랐다.
심법이 극성에 다다르면 이런 기분일까.
이건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힘이었다.
‘아아…….’
황홀한 기운에 어느새 무아지경에 빠져들고, 내기는 이제 정점을 지나 임맥을 타고 전중혈로 하강했다.
떨어지는 내기의 끝은 송곳처럼 날카로워지고, 이내 꽉 막힌 전중혈의 돌덩이를 깨부술 듯 쏘아져 나갔다.
‘지금!’
그리고 장이서의 확신에 찬 목소리가 뇌리에 울림과 동시에 만세극의 두 눈에선 푸른 하늘빛 광채가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앙!
비명과 함께 떨어진 물줄기에 시원하게 부서져 내리는 전중혈!
동시에 만세극의 검도 떨어져 내렸다.
『패왕공(覇王功) 극성(極成) 천지일참(天地一斬)』
수와아아아악!
“피, 피해라-!”
하늘과 땅을 갈라버릴 만큼 드높은 검기가 전방을 가르고 지나간다.
답답했던 지난 백일을 날려버리듯.
나무도, 집채도, 담벼락도.
그 무엇도 가리지 않고 다 베어내며 저 끝까지 쭈욱.
“미, 미친…….”
“허…….”
하다못해 이를 지켜보던 간부들의 투기마저도 갈가리 찢어버렸다.
패검문주 만세극.
마침내 주화입마를 지나 절정의 벽을 넘어…….
솨아아아아!
초절정 경지에 도달하다.
깊은 심호흡과 함께 안개처럼 그의 몸에서 수기(水氣)가 뿜어져 나왔다.
“지, 지부장…….”
“아버지…….”
대마선사를 비롯한 모두가 그의 달라진 기백에 바짝 긴장했다.
분명 차이는 있어도 비슷한 경지라고 생각했거늘, 이제는 신선이라도 마주한 것처럼 차원이 달라 보였다.
그건 벽을 부수고 새로운 경지에 발을 디딘 만세극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저를 바라보는 이들을 뒤로한 채 천천히 몸을 돌렸다.
과거 천마가 그러했듯.
자신을 이끌어준 자.
‘그건 당신이 정하는 게 아니오. 내가 정하는 거지.’
‘그건 너희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정하는 것이지.’
장이서…….
챙그랑. 만세극이 검을 내던지곤 다가와 털썩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아버지?”
“무슨…….”
그리고 모두의 물음을 씹어 넘긴 채 결의에 찬 음색으로 목청껏 외쳤다.
“신 만세극. 지존을 뵙습니다!”
지존이라니! 모두의 얼굴에 두 번째 경악이 터졌다. 이번엔 장이서도 마찬가지.
“이제부터!”
만세극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뒤를 돌아보며 매섭게 말했다.
“이분이 나의 지존이시다. 조금이라도 지존께 해가 되는 자가 있다면. 그게 누구든…….”
솨아아아아!
그저 쳐다본 것뿐이거늘,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침을 삼켰다.
“나와 피를 봐야 할 것이다.”
파르르. 모두의 두 다리가 떨리고, 정신이 혼미했다.
이는 자식인 만광도 예외가 아니었다.
병환에 찌들었던 만세극에게선 도저히 볼 수 없던 위압감!
초절정 경지에 오른 절세 고수만이 보여줄 수 있는 기백이었다.
“전부 꺼지거라. 내가 다시 부를 때까지.”
저항할 수 없는 엄포에 간부들은 입을 오물거리다 끝내 몸을 돌렸다.
만세극은 끝까지 그들을 노려보곤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장이서한테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들어가시지요. 만광 무엇 하느냐! 지존께 올릴 차를 준비하지 않고!”
“사람이 갑자기 달라지면 갈 때가 돼서라던데…….”
“이미 다녀왔습니다.”
하. 장이서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만세극과 장이서의 관계가 새로운 책자에 담기는 순간이었다.
*
“지존이 아니셨다면 전 이미 죽은 목숨입니다. 앞으로의 삶은 지존을 위해 바치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까진…….”
만세극은 장이서를 상석에 앉히고 두 무릎을 꿇은 채 경배를 올렸다.
말릴 틈도 없었다.
어찌나 완고한지 독불장군이다.
“무엇하느냐! 지존께 인사 올리지 않고.”
“아, 예. 인사 올립니다, 지존!”
옆에 멀뚱히 서 있던 만광까지 납작 엎드려 절을 올린다. 영문은 모르지만 싫진 않은 듯한 표정.
“견마지로를 다하겠나이다. 부디 수족이라 생각하시고 편히 대해주십시오.”
“편히 대해주십시오!”
장이서는 거침없는 부자에 턱을 괸 채 고개를 절절 저었다.
그러곤 차분히 설명했다.
“이보시오, 지부장. 그냥 서로를 위해 한 일이라고 칩시다. 그리고 지존이 뭡니까.”
천산이었으면 반역으로 목 날아갔다.
“천마께서 주신 지난 삶이 다하고, 지존께서 주신 새로운 삶이 열렸습니다. 당연한 수순이지요. 그리고 어차피 사람 구하러 오신 거 아닙니까. 그럼 빼지 말고 받으시지요. 제가 지존의 검이 되겠다지 않습니까.”
“협박이야, 뭐야. 눈은 왜 부라리는 겁니까?”
“성질머리가 원래 그런 놈이니 지존께서 그냥 이해하시지요.”
“무슨 지존이 이래. 지존 맞아?”
“그렇다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만.”
“참나.”
장이서가 헛웃음을 뱉었다. 그러자 만세극도 따라 웃는다.
생각보다 금세 친해질 것 같은 느낌.
훈훈한 광경이다.
“아니, 근데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아버지 몸이 왜 다시 건강해진 건데.”
만광이 눈치를 살피다 이때다 싶었는지 불쑥 끼어들었다.
이에 만세극도 눈을 부릅뜨곤 장이서를 살폈다. 그도 궁금하긴 마찬가지였기 때문.
‘분명 지존께선 나의 내기를 한 단계 끌어올려 주셨었다.’
도대체 무슨 수로. 장이서가 패검문의 무공을 알 리도 없을뿐더러, 그가 격체전공으로 보내온 기운은 완전히 궤도 달랐다.
만세극이 고심 끝에 말했다.
“너는 잠시 나가 있거라.”
“물은 게 난데?”
“나가.”
만세극이 사납게 노려보며 으르렁거리자 만광이 울상을 짓곤 밖으로 나섰다.
이내 완전히 나가고 나서야 기막을 펼치고 무거운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주제넘은 말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장이서가 짤막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말을 이었다.
“지니고 계신 그 무공에 대해선 절대 함구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음…….”
장이서는 얕게 침음을 뱉었다. 그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
‘태양궁의 힘은 상대가 경험해 보지 못한 경지를 체감시켜 준다.’
이게 무슨 뜻이겠는가.
기연(奇緣).
경우에 따라 만세극처럼 한계에 부딪힌 이들에게 엄청난 기연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가본 자와 가보지 못한 자의 차이는 천지 차이이므로.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그만큼 위험천만한 시도이기도 했다.
자칫 갑작스러운 변화로 주화입마에 빠져버릴 수도 있는 양날의 검.
‘남천능가경의 존재가 생각보다 훨씬 더 크고 위험하다. 지부장의 말대로 자중하는 것이 옳다.’
장이서가 마음을 굳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만세극은 그제야 위안이 되는지 입꼬리를 올렸다.
“한데 정말 지존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천산에서 대체 뭐 하시는 분입니까?”
“하하하!”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에 지존이라니. 서로 알아가야 할 게 많은 듯하다.
그리고…….
“벌써 청해지부까지 손에 넣은 것이냐? 하여튼 이 괴물 같은 놈.”
“비룡당주?!”
만리신조 묘채경.
그녀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