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42)
첩자의 마교생활-242화(242/350)
242.
#동생들
그날 저녁.
“장이서-!”
마오가 벌떡 일어나며 그의 이름을 외쳤다. 이어 주변을 살피자 고즈넉한 방 안. 청해객잔의 객실이었다.
분명히 아까 장이서를 만났는데. 설마 꿈?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그럴 리가. 반가운 목소리에 고개를 휙 돌리자 장이서가 따뜻하게 우려낸 차 하나를 들고 다가온다.
“너, 이 자식!”
마오가 벌떡 일어나 장이서에게 달려온다. 이내 감동의 포옹을 하려는 순간! 제지당했다. 검결지에 미간을 눌려서.
“뭐 합니까?”
어이가 없어 묻자 마오가 고개만 뒤로 꺾인 채 중얼거렸다.
“너 부교주 안 한다고 했다며. 그래서 여기 온 거라며.”
그건 또 누구한테 들었대.
“예, 그러기로 했잖습니까. 뭘 새삼스럽게.”
장이서가 손가락을 치우고 협탁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마오가 설핏 울먹이며 말했다.
“나 때문이잖아.”
“예?”
“나 소교주 만든다고 네가 부교주 자리까지 포기한 거잖아…….”
“아니, 뭐. 그건 그렇긴 한데…….”
설마 그것뿐이겠냐. 내 팔자에 안 어울리니 그렇지. 입맛을 다시자 마오가 침상에 털썩 앉고는 말했다.
“나 그거 듣고 결심했다.”
“뭘요, 또. 하지 마요. 그냥 하지 마.”
“앞으로 장이서 네가 내 혈육이다.”
고개를 들고 눈을 올려 뜨는 마오.
“혈육이 뭔 뜻인지는 압니까?”
“바보냐? 말이 그렇다는 거잖아. 이제 네가 내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는 뜻이라고. 그러니까 이제 혼자 아무 데도 가지 마.”
하. 사람이 너무 진지해지니까 웃음도 안 나온다.
“그래서 지금 그거 때문에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당연하지! 위험천만한 곳에 혼자 갔다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냐?”
“만마분총은 어쩌고요.”
“내가 누군지 잊었어?”
아니까 묻지. 거길 어떻게 나온 거야. 무공을 터득하든가, 백일이 지나야만 나온다던데.
“딱 사흘. 믿어져? 사흘 만에 싹 다 익혀버렸다. 왜? 난 천재니까.”
“뭐 삼재검법 나왔습니까?”
“야, 이 씨! 아니거든? 너 놀라지 마. 나 지금 겁나 세.”
“됐고. 여긴 위험하니까 얼른 천산으로 돌아가십시오.”
“됐고! 너 가면 갈 거야.”
“이게 지금 억지로 될 일 같습니까? 여기 지금 화약고입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잘됐네. 나 불에 강해. 알잖아.”
“어설프게 나설 일 아니라는 겁니다. 지금 이 안에 혈교가 숨어 있습니다.”
“더 잘 됐어. 내 실력 보여줄게.”
“가라면 가.”
“안 가!”
결코 물러서지 않는 두 사람의 신경전이 극도로 치달을 무렵.
“계세요?”
밖에서 맑고 고운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이 목소리는…….”
제갈소미. 그녀다. 장이서가 기막을 펼친 뒤 다급히 말했다.
“좋습니다. 남으십시오. 대신 여기선 반드시 제 말을 따르셔야 합니다. 함부로 신분을 드러내도 절대 안 되고요.”
“나도 그 정도는 알지. 이름도 하오라 그랬어. 머리도 염색하고 왔잖아.”
하오는 무슨.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린 같은 집안사람이고, 제가 집 나간 공자님을 찾아온 것으로 하죠.”
“알았어!”
마오가 당차게 답한다. 이에 장이서는 기막을 지운 뒤, 문을 열었다.
“계셨네요.”
제갈소미와 선유가 서 있다.
“여긴 무슨 일로.”
“아, 도와주신 것도 있고.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제갈소미가 웃으며 말한다. 이에 장이서는 흘깃 두 사람의 표정을 살폈다.
반은 맞고, 반은 거짓말.
고마운 건 맞으나 사실 홧김에 눈이 돌아 그런 거지, 선유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그들이 이리 찾아온 건,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두 사람이 매우 수상했기 때문.
지금도 아닌 척하면서 은근슬쩍 방 안을 살피기 바빴다.
당연했다.
흑사방은 사도련의 팔대방파 중 하나. 그중 간부 하나를 순식간에 해치웠고, 마오는 무자비한 공력을 선보였다.
무명인 두 사람이 펼쳤다고 보기엔 기가 막힌 수준.
“괜찮으니 돌아가시오.”
장이서가 차갑게 말하며 양 문을 닫았다. 한데 불쑥 고운 손이 들어와 이를 붙잡는다. 제갈소미다. 쉬이 넘어가진 않겠다는 것.
“하오 소협은 어떻게 된 건가요?”
하오? 설마 마오?
“우하하! 내 걱정 돼서 온 거냐?”
장이서를 뚫고 나와 손을 흔드는 마오. 얘네랑 아는 사이?! 어이가 없어서 쳐다보자 마오가 별일 아니라는 듯 해명했다.
“오다가다 만났어.”
만나도 하필. 꼬여 가는 상황에 장이서가 숨을 깊게 삼키자 제갈소미가 놓치지 않고 물었다.
“근데 두 분은 관계가 어떻게 되시나요?”
“어, 그게…… 우리가…… 무슨 사이냐 하면…….”
마오가 허둥지둥거리자 보다 못한 장이서가 대신 나섰다.
“철없는 동생이오.”
“어, 맞아. 내 동생이야. 아니. 쟤 동생이지. 어? 내가 네 동생?!”
첩자의 재능에도 순번이 있다면 가장 뒷놈이 바로 저놈일 것이다.
“보다시피 제정신이 아닌 녀석이라.”
“억!”
장이서가 마오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슥 밀어내곤 답했다.
다행히 선유와 제갈소미는 서로를 한번 살피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렇군요.”
“야! 그렇긴 뭐가 그런데! 뭐가!”
뭐겠냐.
“한데 저 녀석하고는 무슨 일로…….”
“아우분 말씀대로 오는 길에 우연히 만났습니다.”
“야. 너희가 내 뒤통수친 건 왜 얘기 안 하는데?”
“호호.”
제갈소미가 어색하게 웃자 장이서는 신경 쓸 것 없다는 듯 담담히 말했다.
“내 아우가 또 신세를 진 모양이군. 워낙 사고뭉치인 녀석이니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오. 그럼 우린 바빠서 이만.”
장이서가 철벽 치듯 축객령을 표했다. 얘기가 더 길어져 봐야 좋을 게 하등 없는 일.
다시 문을 닫으려는 찰나였다. 한데…….
“대협께서 도와주신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선유의 목소리에 흠칫하며 멈춰 섰다.
선유의 눈길은 계속해서 장이서에게 닿았다. 한데 시선이 호감으로 가득하다.
평이한 용모이나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고, 정이 가는 느낌.
특히 그에게서 느껴지는 정대한 기운이 유독 마음에 들었다.
‘선한 자다.’
과거에 천마신공을 운용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평가. 곽태보를 제압할 때 남천능가경을 운용한 게 이유였다.
장이서는 얕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동생과 또래 같아 형이 된 마음으로 도운 것이니 신경 쓸 것 없다.”
“……!”
제갈소미를 대할 때와 달리 친근한 하대에 선유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아, 예…….”
자칫 무례해 보일 수 있으나 싫지만은 않았다. 아니, 이상하게 좋았다. 괜히 입꼬리가 올라갈 만큼.
근데…….
“헤헤.”
너는 왜 웃는 거냐. 선유가 미간을 찌푸린 채 마오를 살폈다.
뭐가 좋은지 제 인중을 검지로 비비며 좋아한다.
제 형과 달리 볼수록 별로인 녀석.
훈훈한 분위기 속에 제갈소미가 불쑥 제안했다.
“흑사방에서 그냥 넘어가진 않을 거예요. 괜찮으시다면 저희가 안전한 곳으로 모시고 싶은데. 어떠신가요.”
일단 잡아두고 천천히 알아가겠다. 뭐 그런 것인가. 장이서가 속으로 코웃음을 삼켰다.
‘애가 집요한 구석이 있네. 더 귀찮아지기 전에 얘기를 해야겠다.’
마음을 굳혔다. 오늘 중 그녀를 따로 만나기로.
“호의는 감사하나 오늘은 그냥 여기 머물겠소. 혹 괜찮으시다면 내일 다시 이야기 나누어도 되겠소?”
이 정도 얘기했으면 물러설 터. 아니나 다를까 제갈소미는 살짝 환해진 눈으로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저희도 오늘은 이곳에 머물 것이니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찾아주세요.”
“그리하겠소.”
두 사람이 포권을 취하고 돌아섰다.
장이서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들의 뒤를 살폈다.
* * *
그날 밤.
제갈소미가 머무는 객실에는 둥그런 나무 욕통이 놓였다.
모처럼 씻기 위해 점소이에게 미리 부탁해 놓았던 것.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게 보기만 해도 몸이 뜨셔진다.
제갈소미는 마음이 급해졌다.
청해까지 제대로 씻지도, 쉬지도 못하고 달려왔기 때문.
“흐응.”
절로 콧노래가 나오고 스륵, 스르륵. 옷자락은 하늘하늘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머리까지 올려 묶어 비녀로 고정하곤 아름다운 나신으로 풍덩!
“좋다.”
아늑해지는 기분에 몸이 사르르 녹았다.
선유에게 먼저 하라고 양보하였으나, 그는 급구 사양하며 밖으로 나갔다.
수줍어하던 모습이 꽤 귀여웠던 것 같기도 하다.
“그나저나 103호를 어디 가서 찾지? 잘 보이는 곳에 표식이라도 남겨둬야 하나.”
그새 머리가 일 생각으로 가득 채워진다.
“혹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 상대는 혈교잖아. 아무리 103호라도…….”
끔찍한 생각. 그녀가 애써 고개를 저었다.
뭐든 속단하기는 이르다.
‘꼭 무사하셔야 해요. 이번엔 제가 구할게요.’
마음을 다잡고 눈을 감았다.
이내 나쁜 생각을 뿌리치듯 화제를 바꿨다.
오늘의 관심사는 하오 소협과 그의 형이었다.
‘둘 다 엄청난 고수들이었어. 나이도 비슷한 것 같은데……. 대체 정체가 뭐지.’
아무리 무림은 바다와 같고, 고수는 모래알과도 같다지만 그저 그렇구나 하고 넘기기엔 너무나 굉장했다.
하오의 공력은 범접 불가할 수준이었고, 그 형이라는 자는…….
‘치우고 꺼져.’
너무도 섬뜩해 등골이 시릴 정도였다.
살면서 그 정도로 살기를 가득 뿜어내는 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하여 마교가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그건 선유가 아니라고 단정 지었다.
‘마인이 아니다. 정도인이다.’
기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는 자이니 안 믿을 수도 없는 노릇.
그러고 보면 묘하게 화낼 때의 눈빛이 낯이 익었다.
‘그 손 놔.’
연천산장에서 처음 만났던 103호. 분명히 그도…….
훅!
그때였다. 짤막한 바람이 장내에 일더니 방 안에 켜진 등불이 일시에 꺼져버렸다.
한순간에 찾아든 어둠.
이에 제갈소미가 옆에 세워둔 칼을 잡으려는 순간.
“그만.”
“……!”
침입자답지 않게 듣기 좋은 사내의 목소리가 귓가에 스며들었다.
이에 경고를 무시하고 검파를 붙잡자 스윽. 뒷목에 서늘한 감각이 느껴졌다.
‘언제!’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분명 목소리는 훨씬 더 멀리서 들렸거늘.
믿기지 않을 만큼 뛰어난 신위.
“이런 상황에서 할 말이 아닌 건 알지만, 이해 좀 해주면 좋겠는데. 나도 틈을 내기가 쉽지 않은 처지라.”
이런 상황? 제갈소미가 제 몸을 내려다보곤 수치심에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가만히 그대로만 있으면 돼. 그럼 서로 아무 문제 없이…….”
“헛소리!”
사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제갈소미가 핑그르르 돌며 뽑아 든 검을 휘둘렀다.
쐐애애액!
곧바로 몸을 뒤로 젖혀 피해내는 사내. 칼끝이 흑립을 가르고 지나간다.
“이게 무슨…….”
“정체를 밝히세요!”
파아앗! 뭐라고 말할 새도 없이 그녀가 옆에 걸린 천으로 몸을 휘릭 말고는 연이어 검격을 퍼부었다.
슈슈슈슛!
“이런.”
무시하기에는 날카로운 검격. 결국 장이서는 이를 날렵하게 피해내곤 검결지로 그녀의 마혈을 툭툭 찍었다.
“아…….”
가녀린 신음과 함께 쓰러지는 그녀. 장이서가 자연스레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