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244)
첩자의 마교생활-244화(244/350)
244.
#형이라고 불러
제갈소미가 탄식하듯 답했다.
“왕야의 측근 중에 생존자가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도착하기도 전에 능가경에 대한 소문이 불씨처럼 번져 있었죠.”
장이서의 눈매가 번뜩였다.
애초에 놈들의 목적은 능가경이 아닌, 능가경으로 인한 혼란.
확실하진 않지만 일부러 살려뒀을 공산도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용모화는…… 저도 알아보려고 온 거고요.”
슬쩍 탁상 위의 용모화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짓는 제갈소미.
설마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특히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
흘깃 장이서를 살피니 저와 나이 차도 별로 안 나는 용안이 눈에 담긴다.
부끄러워 제대로는 못 봤지만, 보다 보니 괜찮은 것도 같고.
괜히 붉어진 얼굴로 자그맣게 입을 열었다.
“전보다 지금이 훨씬 좋…….”
“놈들은 내가 죽은 줄 알 거다. 그래서 이 용모화를 쓴 걸 거고.”
“예? 예! 맞아요!”
뭔데, 갑자기.
“하려던 말이 있었나?”
“아니요! 없습니다!”
이놈의 입이 원수지. 제갈소미가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였다. 장이서는 아랑곳없이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어쨌든 이 모습을 아는 건 너희 둘. 그리고 그놈들뿐이다.”
“그럼 역시 배후에 혈교가…….”
고개를 끄덕이는 장이서.
“청해에서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해.”
“정말 쉴 틈을 주지 않네요.”
“무림맹에서는 조사를 나오지 않은 건가?”
“대외적으로는 그렇지만 사천지부에 임시 본부를 만든 것으로 알아요.”
역시. 그냥 있을 리가 없다. 만약을 대비해 바로 남쪽에 터를 잡고 대기 중인 것.
“그럼 소림은? 이번 일은 그들이 맡기로 했다던데.”
“그렇긴 합니다만, 사실상 신승께서 혼자 움직이고 계세요. 여럿이 움직이면 혼란만 가중하고 보기도 좋지 않을 거라고…….”
역시 정도의 큰 어른. 사려 깊은 판단이다. 그래서 더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그럼 지금 어디 있는지도 알아?”
“섬서에 계신다고 전해 들었어요.”
섬서라면 화산파가 있는 곳.
안도의 숨이 뱉어졌다. 그럼 일단 신승은 무사하다는 얘기.
그럼 혈교만 빨리 찾아내 처단하면 끝이다.
“혹시 혈교가 노리는 게 소림인 걸까요?”
“지금으로선 가장 유력해. 능가경이 나타났을 때 가장 크게 반응할 곳이니.”
제갈소미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눈을 빛내며 말했다.
“청해에 암각과 거래하는 정보상이 있어요. 청하루(靑河樓). 평범한 주루처럼 보이지만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훤하죠. 혹 소림에서 이곳에 온 적이 없는지 저도 한번 알아볼게요.”
“그래 주면 고맙지. 하지만 조심해. 어디에 혈교가 숨어 있을지 모르니까.”
“네. 그럴게요.”
제갈소미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장이서는 제갈소미의 방에서 나와 복면을 올리곤 얕게 숨을 뱉었다.
서로 할 일을 정하고 대화를 끝낸 것까진 좋았는데, 생각해 보니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마오가 이상하게 생각하겠는데.’
뒤늦게 걱정이 치닫는다. 하지만 일 층으로 내려간 순간 쓸데없는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왔어어어? 우헤헤헤!”
“오셨습니까…….”
탁상부터 바닥까지 어느새 술병이 열댓 병 널브러져 있고, 두 소년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달궈져 있던 것.
‘지금까지 둘이 이걸 다 마셨다고?’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 아니, 그것보다 돈은 있는 거냐?
“죄송합니다. 이렇게까지 마시려던 건 아니었는데…….”
“아니, 됐다. 앉아 있어.”
선유가 민망함에 벌떡 일어서려 하자, 고개를 저으며 어깨를 눌러 앉혔다. 이내 만취한 마오 앞에 다가서자 그가 게슴츠레 눈을 올려 뜨곤 말했다.
“아, 어디 갔다가 이제 오는 거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형이라는 인간이 말이야. 아주 빠져 가지고. 주객도전이야, 이거!”
형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 말하는 거냐.
“많이 취했다. 일어나 올라가서 자라.”
“싫어. 오늘 밤새도록 마실 거야! 야, 걸봉아. 너 그거 알아? 원래 이 형이라는 자식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뭐. 장이서가 눈매를 좁히고, 선유도 관심이 가는지 눈썹을 올렸다.
“원래 날 죽이려고 자객까지 보낸 놈…… 웁!”
이런 정신 나간 놈. 마오의 입을 막은 채 선유에게 단호히 말했다.
“그런 적 없다.”
“놔! 자객들 보내서 내 친구들 싹 다 죽여버린 나쁜 새끼…… 억!”
동공 흔들리지 마라. 그런 적 없으니까.
“다시 말하지만, 나 아니다.”
“……예.”
이 서늘한 분위기 어떡할 건데.
“우헤헤헤! 근데 그 개자식은 이제 내 형 아니야. 내가 아주 박살을 내버렸거든. 이제 내 형은…… 얘야. 내 진짜 형. 나 안 버릴 내 가족.”
마오가 새삼 뿌듯해하는 눈으로 장이서를 흘긴다.
이에 선유는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장이서는 그런 선유를 보며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묘하게 방향이 다른 세 사람이었다.
“하, 기분 좋다. 히히.”
쿵! 신나게 떠들다가 그대로 머리 박고 기절해 버리는 마오.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선유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아우분께서 대협을 참 좋아하나 봅니다.”
“그런가…….”
“예. 그럼 두 분 들어가서 편히 쉬십시오.”
선유가 다정히 웃으며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장이서도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같아선 대화라도 더 나누고 싶지만……. 마오를 보니 그럴 상황이 아니다.
이에 마오를 둘러메고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뒤에서 또르르. 선유가 스스로 외로이 잔에 술을 채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갈소미와 한방에 머물 수 없으니 홀로 여기 있겠다는 뜻.
결국 걸음이 우뚝 멈추어지고, 얕게 한숨이 뱉어졌다.
그러곤 돌아서서 말했다.
“자고 갈래?”
*
‘내가 대체 뭘 하는 거지.’
무심결에 방까지 따라 들어온 선유는 석상처럼 굳어선 채 인상을 찌푸렸다.
자고 가라는 말에 홀린 듯 따라나서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었기 때문.
‘난 제갈 소저를 지키라는 임무를 받고 온 거다. 한데 누군지도 모를 자의 뒤를 졸졸 따라나서다니.’
자책감이 밀려든다. 솔직히 왜 왔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이상하게 말하면 다 따라야 할 거 같은 기분.
본래 화산파 일대제자 사이에서 사형들 말 안 듣기로 유명한 미운 오리 새끼거늘.
왜 이리 마음이 물렁물렁해지는지.
이건 진짜 아니다 싶어 말을 꺼내려는 찰나였다.
“이쪽 침상을 써.”
장이서가 흘깃 두 개의 침실 중 하나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다른 하나는 이미 마오가 드러누워 있으니, 남은 건 그게 다다.
“그럼 대협께선…….”
“난 잠이 없거든.”
피식 웃으며 복면을 내리는 장이서.
‘형……?!’
그 순간 선유는 처음으로 본 그의 얼굴에서 제 형의 모습이 떠올랐다.
확신은 아니지만, 왠지 더 보고 싶고, 정이 가는 느낌.
넋을 잃은 사이, 장이서는 객실을 나가 제갈소미를 불러 대화를 나누는가 싶더니 다시 돌아와 말했다.
“신경 쓸까 봐, 소저한텐 미리 얘기해 뒀다.”
“아니, 그렇게까지…….”
“편히 있으라는 얘기야.”
졸지에 애가 된 기분. 하지만 이상하게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다.
선유는 어찌할 줄 모르는 표정을 지으며, 결국 장이서의 뒤를 따랐다.
그러곤 세차게 뛰는 심장을 억누르고 그의 모습을 또렷이 살폈다.
워낙 어릴 때 헤어진 터라 사실 형의 얼굴이 보인다는 건 착각에 가까웠다.
하지만 왠지 지금 형을 만난다면 딱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우애가 돈독해 보여 보기 좋습니다.”
“그런가?”
이에 장이서는 탁자 앞에 앉고는 피식 웃었다.
마오와의 관계는 뭐라고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했다. 하지만 이제 부정할 순 없겠다. 사이가 정말 가까워졌다는 것을.
“그쪽은…….”
“아, 선유라고 합니다. 그냥 편하게 불러주시면 됩니다.”
“그래. 선유, 너도 사형제들이 있을 것 같은데.”
다가와 마주 앉은 선유에게 장이서가 넌지시 물었다. 겉만 보면 평온해 보이지만, 사실 물으면서도 속으로 많이 떨렸다.
어떻게 살았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누가 도와줬고, 또 누구와 친했는지.
알고 싶은 게 너무나 많았지만, 십여 년간 묻지 못했던 질문을 입 밖으로 꺼내니 상당히 낯설었다.
“좋은…… 분들이시죠.”
“다행이구나.”
“예?”
“아, 본래 잘날수록 시기하고 질시하는 자들이 많은 법이니까.”
장이서가 방긋 웃는다. 뒤늦게 제가 잘났다고 돌려 말해준 것임을 깨달은 선유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럼 대협께선…….”
“형이라고 불러.”
“그래도 되는 겁니까?”
장이서가 기분 좋게 웃자 선유도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형……. 그럼 형은 형제가 저 녀석 하나뿐인 건가요?”
“하나 더 있지.”
“웃으시는 표정을 보니 많이 아끼시나 봅니다.”
“그럼. 어디에 있든 늘 생각이 나고. 이렇게 멀리 나와 있을 땐 미안도 하고. 무사히 잘 지내주기만 바라게 되고. 그렇지.”
장이서의 말이 가슴에 깊이 닿았다. 같은 마음이기에 더 크게 느껴졌다.
절 위해 떠나간 형이 원망스러운 게 아니라 미안했고, 고마웠고, 부디 건강하게 잘 있기만을 바랐다.
“좋은 형님이시네요.”
“전혀. 마음뿐이야. 바쁘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찾아보지도 못했어. 그래서 힘든 시간을 혼자 보내게 했지. 그게 늘 미안해.”
“그럼 이제라도 말을 해주면 되지 않습니까.”
“그래야 할 텐데. 쉽지가 않네.”
“왜죠?”
말없이 웃는 장이서. 그의 웃음 뒤에 가려진 사정이 무엇인진 모르겠지만, 선유는 지금의 마음이 꼭 아우에게 닿기를 바랐다.
저 역시도 사라진 형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또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늘 궁금했으니까.
“다시 만나면 꼭 이야기해 주세요. 보고 싶었다고. 그럼 아마 다 이해해 줄 겁니다.”
“……그래.”
장이서가 잠긴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색해진 분위기에 선유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좋은 형님이십니다. 이렇게 아우들을 생각해 주고 계시니까요.”
“좋은 형 아니야. 아까 봤잖아. 쟤 기절시키는 거.”
“하하.”
입가에 저도 모르게 호탕한 웃음이 뱉어졌다. 원래 누구랑 있든 이렇게 크게 웃는 성정이 아니거늘. 되레 제가 웃고 제가 놀랐다.
‘이상하게 마음이 가는 사람.’
훈훈한 분위기 속에 장이서는 선유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늦었다. 피곤할 텐데 쉬거라.”
“형은요?”
“말했잖아. 잠이 없다고.”
정말인가? 미안함에 지그시 살피자 창가에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기는 장이서.
선유는 그의 배려에 또 한 번 고마움을 느끼곤 정중히 포권을 취한 뒤 침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장이서는…….
‘미안하다, 윤아. 보고 싶었다.’
마음으로 용서를 빌었다.
임무를 모두 마무리 짓고 나면 그땐 꼭 돌아오겠노라 약속하면서.
두 형제의 마음이 가까이 있음에도 닿지 못해 안타까운 어느 밤이었다.